여노는 환희보다는 땅 위에 오래 살았다.
지켜보기도 했지만 그는 듣거나 속삭이는 것에 더 가까우며, 때문에 가면서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여노는, "혹시 커피 좋아하나?" 라고 묻자 환희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커피를 가져와 플라스틱 통째로 집어삼킨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뭐, 좋은 열량거리지.
천사는 원래 먹을 것이 필요치 않으나 여노의 경우, 어느정도는 좋아하고 뭐든지 잘 먹는 편이었다. 일종의 죄책감을 더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형제였던 악마를 다시 지옥으로 내쫒곤 했으니, 환희가 악마였다면 아마 되돌아가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저런 절에서 왔다면 정당했을 테니.
"나와 생활방식이 유사한가 보군." 환희가 저 싱글벙글한 건지 짜증나서 웃는 척 하는 건지 모르는 여노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글쎄, 그닥 아닐 것 같은데," 여노는 어떤 화내는 사람을 본다. 아마 거리를 가다가 무언가가 심통이 났나 보길래 여노가 잠깐 소근거린다.
그러자 남자는 잠잠해진다. 갑자기 소리들이 고요해지더니, 분노의 냄새가 자그라지는 것이다.
환희는, 여노가 분노의 감정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한거야, 그거."
"그야 난 분노를 먹곤 하니까. 내 일 중 하난데?"
"그 말이 아니라, 나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
여노는 환희의 눈을 보다가 붉은 기운을 보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나방이 꼬였군."
"좀 정확히 말해줄래?"
"음, 말하자면 약간 달라. 네가 그 술주정뱅이한테서 읽은건 욕망이겠지. 그 사람의 욕망과 생명력, 그리고 그런 빛을 집어삼킨 거야. 그야 중독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생욕도 먹어치운다면 어디 살겠나."
"욕망을 먹는다고?"
"정확히는 좀 더 다르겠지. 생존 본능도 앗아가니까."
"조절하는 방식은 있어?"
"흠. 보자면... 너는 어떤 속성을 지녔지?"
"기초적으론 불이지만 이곳 원리는 따라할 수 있는 것 같던데."
"어디 한번 보여줘 봐."
환희는 고개를 하늘로 향해 구름을 모이게 하고, 비가 내린다. 사람들은 우산이 없어 근처로 뛰어가고 아니면 택시라도 잡는다.
"다른 것은?"
환희가 땅으로 손을 짚자 반짝거리는 광물이 모인다.
"좋아. 그런 원소는 다루는군. 영혼같은것도 가능한가?"
이전에 새의 영혼을 날려보낸 거나, 새끼 다람쥐를 살린 다람쥐 이야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확히 너는 불꽃은 아니라는 거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불꽃이 아니라, 순환에 가깝기도 하겠지. 뱀이기도 하니 생명력이라도 할 수도 있겠군."
"꿈 속에서.. 나는 눈이 많았어. 그건 뭐지?"
"좋아. 난 눈 많은 뱀을 좋아하니까. 그만큼 많은 원리나 속성을 본다는 거지. 너는 아마 추상으로 이해하겠지만, 존재성을 다루는 거다.
그렇다는 건 너가 그 전쟁의 추라는 것이군?"
환희는 살짝 움찔댔다. 이런, 저 여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이제까진 잘 대답했던데.
"전쟁이라... 언젠간 터질 줄 알았지. 그래, 천사와 신들이 죽던 순간부터 말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볼 때는 그들은 나타나고 모이게 되는 거였다고."
"껍데기를 벗는 인간들을 얘기한 그 예언인가?"
"너도 그걸 보았나?"
"그건 기록하는 자들이 직접 내리니까, 뭐 마지막 내용도 알지. 이미 인간은 어느 정도 신 노릇을 하고 있어. 반신이거나, 아니면 초월적인 이들도 꽤 있지."
"나와 같은 이들이 인간 모습이라는 건가?" 환희는 약간 눈을 반짝였다.
"많지는 않고, 훔쳐간 자들이라네. 그야 너도 아수라나 다른 존재는 알지 않나?"
"훔쳐간다면... 이전의 신을 죽이는 그 사냥꾼들?"
"바로 정답이야. 역시 뱀은 이야기가 빨라."
"그들이 신을 죽이고 신이 된다고?"
"아, 기독교의 신은 아니지. 작은 신들의 신성을 훔치고 자신이 갖는다네."
"아까 그 아귀가 전부 다일까?"
"설마. 천사와 인간 사이의 네필렘이나 귀태들, 계약한 인간이나 인간 태생의 악마, 별의별 존재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물론 아수라들도 있지. 신성을 훔치는 것들은 죽어야 한다네. 복수자들이 맡고 있지."
"절도 공격받는다는게 그 말인가?"
"맞아." 여노는 한기를 느끼는 사람이 따듯하도록 어깨에 손을 대었다.
"그럼 빨리 가야지!"
"이미 내 다른 형제가 도착해있어. 삼백년쯤 전부터 뱀파이어를 맡던 형제인데, 아마 둘 다 거기 있을거야."
환희는 굳었다.
"중립지대 선언을 하러 간거지. 천사와 악마, 신들의 전쟁지역에서 어느정도 벗어나게 되거든."
안도의 한숨이 나오자 여노가 킥킥거린다. 놀리는 반응이 꽤 재밌다.
"어느 정도라니?"
"중범법자가 들어오는 경우가 꽤 있으니 말야."
"아수라를 죽이기도 하겠지?"
"아수라는 신성이 전부 있진 않고...아마 신성을 훔치는 이들이니 관련한 존재를 더 죽이겠지?"
절은 안전할까? 괜찮을까.
스님. 스님을 도와야 한다. 안그러면...
"묘법 스님은 잘 계시나?"
"지금 스님은 일산 스님이야. 이전에, 이전에 붉은 아수라를 막다가 돌아가신 큰스님이 계셨다 했어."
"묘법 스님의 후계자인 거군. 안타깝네."
"안타깝다고? 너도 그런걸 느끼나?"
"난 훌륭한 인간은 좋아해. 너는 아니지만."
"그 곳 분들은 훌륭하셔."
"글쎄, 몇몇은 아닐걸. 나는 냄새를 맡거든. 분노의 냄새를."
아이들이 싸우던 것을 떠올린다.
이 주니어와 진, 그리고... 더 작고 약한 다인, 자한 스님.
진과 이 주니어는 대결했었지...
"누가 분노하는지는 알아? 그 분노를 먹어줄 수는 있어?"
그는 고개를 젓는다.
"뭔데, 이미 일어난 거야? 고칠 수 없냐고."
환희가 화를 내려고 하자 이미 잠룡사였다. 뱀의 길. 아직 환희는 열지 못하지만 여노는 영가들이 다니는 단축된 길을 통해 순식간에 잠룡사에 도달하고, 환희는 바로 문을 재껴 열었다.
자한 스님의 시체를 마주했다.
"일산 스님! 이 주니어! 다인아, 진! 대답 좀 해봐요! 대체 누가 이런 거야!"
눈 앞에 본 것은, 진과 다인이가 뒤엉켜 만드는 아사리판,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이 주니어."일산 스님은 어디계신거야! 모두 전부 멈춰." 환희의 분노로 모든 아수라들이 행동을 거둔다.
"얘들아. 일산 스님 어디계셔?"
대답이 없다.
"어디 계시냐고!"
"젠장, 대답이라도 좀 해!"
다인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아 자한 스님...
환희는 이해해버렸다. 다인은 약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전에 그 일, 그래 그 검은 거인이 자신을 깨운 일, 그리고 흩어져 먼지가 된 것.
일산 스님은?
잠들어 계셔.
왜?
"언니." 진, 쓰는 이름은 양서진이지만, 자신을 진이라 불러달라 하고 방금 전까지 다인이와 싸우던 그 애가 말한다.
"이곳은 잠룡사야."
"그래서, 뭔데 그게!"
"일산스님은 용이야. 모든 주지승은 나중에 잠들어서 산에 계셔. 다음 용이 나타나면 잠을 자는 거지."
"나는... 그러면 나는..." 환희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까 고민한다.
"언니가 바로 그 용이야." 모든 것이 뒤엉킨다. 환희는 구역질이 나 위를 게워낸다.
이딴 게 무슨 예언이라고.
그야, 전쟁의 예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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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
FantasyThe Art of Being a Creature의 각색 버전으로, 많은 부분을 다듬어서 사실상 플롯만 비슷한 다른 책입니다. 정서적으로도 한국식으로 많이 고쳤습니다. 실시간으로 다듬고 있어서 중간중간 내용이 바뀔 것 같네요! +진도나 순서같은게 정말 많이 달라요 ㅠㅠㅠㅠㅠ 읽으시다가 다른쪽에서 스포당할 수도 있을거같네요 죄송합니다... 영어판:The Art of Being a Creature 같은 사람입니다 저작권 안걸림 처음 쓰는거라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