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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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 더 지난다.
나는 원소들의 힘을 내면의 성질과 결합하는 연습, 흉내내는 연습, 그리고 흩어지는 연습을 반년 내내 했다.

내 이마는 종종 뜨거워졌고, 붉은 눈과 붉은 머리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것처럼 재조합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갈색 머리, 흑갈색 눈을 달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다. 나는 원래 몸이 있는 "존재"가 아닌 원래 이곳의 원소와 유사한 원형적 힘이었으므로, 사람의 몸을 달고 흉내낼 때마다 나를 짓누르는 중력이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영원히 흩어져 살 순 없었다. 예언을 실현시키고픈 마음이 크진 않았지만 몸과 힘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의 키, 얼굴, 몸무게 등은 살과 뼈를 재구성하거나 아니면 분해하며 조합하는 거지만 나 역시도 익숙해져 있는 일반 규격이 있기 때문에 원래의 인체를 선호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수라의 힘을 제어할 수 있으니 돌아가고 싶어졌다. 세상으로. 붉은 아수라가 되어서야,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남들과 함께 살고 싶어지다니. 나에 대한 불안이 줄어서일까. 더이상 사람들도, 자기 자신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스님에게 내 의사를 밝혔다.

스님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대가를 지급할테니,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는 동의하시지만 훈련이나 제어법, 그리고 "우리"의 생태라거나, 아니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한달에 두어번쯤 와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조언하셨다.

산에 1년을 지내고 나서야 하산하는 것이다. 아이들 또한 각각의 부모 집으로 곧 돌아가니, 내가 지옥에서 왔든 천국에서 왔든, 외계의 존재든 사람 사이에 섞여 살 권리는 지구상에 있으면 누구나에게 있는 것이리라.

나는 거리의 나무처럼, 하늘의 구름이나 별처럼, 살고 죽는 인간과 생물과 같이 이곳에 나타났으니 살 권리도 있었다.

설령 죽음을 부를지언정, 내가 죽음을 당할지언정 나는 나의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산한 길로 나는 도시로 들어가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나는 서울로 돌아간다.

3개월전부터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식욕이나 성욕도 없었으니 그저 남들을 적당히 흉내내어 먹거나 아니면 숲에서 흩어지거나, 여튼 이 생리성 덕에 먹고 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사람 사이의 짐승이었어도 그들을 해치지 않으니까, 사실 진짜 걱정이라면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 예고없이 닥치는 거였지.

나는 사람 흉내를 낼 수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다.

혹시라도 아수라가 아닌 다른 존재를 만나거나,
아니면 나와 같은 짐승이 사람을 해친다면

아마도 나는 사람 편에 설 것 같다. 이종에 대한 애착은 아마도 후천적으로 알게 된 동족의 습성이 내가 배웠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전쟁의 불씨이기 때문인가.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