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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 절차가 끝나가지만 비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가족들의 흐느낌은 도통 멎을 기미 없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홀로 멀끔한 얼굴을 한 남자는 빈 허공만을 쫓으며 부지런히 시선을 움직였다.
"형. 혀엉."
그때, 엉망이 된 얼굴의 청년이 다가와 남자의 상복을 잡아끌며 자리를 옮겼다. 우느라 힘이라곤 죄다 빠졌는지 옷깃을 끄는 손길이 형편없다. 남자는 그 애처로운 이끎을 묵묵히 따라주며 인적이 드문 구석으로 향했다. 청년, 그의 사촌 동생 이상현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내가 진짜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형, 우는 시늉이라도 좀 해."
남자가 말없이 시선을 주었다.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냐는 눈빛이라, 이상현은 울컥 치미는 울분을 가까스로 삼키며 작게 읊조렸다.
"여긴 그런 장소잖아. 그런 상황이고. 이럴 때는 슬픔을 나누면서 위로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주변 좀 돌아봐. 다들 엉망인데 지금 형 혼자만 멀쩡하거든? 그거 보기 안 좋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가 대꾸했다.
"다수의 감정에 동화하지 않으면 이상한 건가. 그 반대는 어떻게 생각해. 내 감정에 동화한다면 적어도 우는 것보단 체력이 덜 닳을 텐데."
"......."
기가 차 헛웃음이 터진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제 사촌을 잘 아는 이상현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모나게 눈에 띄는 그의 사회성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태연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상현은 치미는 가슴께를 주먹으로 치며 울분을 삼켰다. 그러나 미처 삭히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짜증스레 물기를 닦아낸 그는 이 눈물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사촌 형을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그 서글픈 시선을 받아낸 남자, 김석영이 툭 내뱉었다.
"죄를 짓지만 않는다면, 훗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 알잖아."
"......알지. 아는데,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볼 수 없다는 거잖아. 당장 보고 싶어 죽겠는데 훗날까지 어떻게 기다려?"
"살아 있을 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면서. 사람들은 꼭 죽고 나서야 그러더라."
아, 너보고 하는 말은 아니야. 넌 자주 찾아뵀으니까. 고저 없는 투로 내뱉은 김석영의 답변에 이상현이 제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아, 됐어. 괜히 말 걸었어. 내가 미쳤지, 시발, 악!"
"누가 상갓집에서 욕하래. 버르장머리 없게."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바닥으로 가차 없이 얻어맞은 입술이 얼얼했다. 아씨, 누가 할 소리를! 제 입술을 부여잡고 짜증스레 김석영을 노려본 이상현의 어깨너머로 불쑥, 희뿌연 빛무리가 어른거렸다. 김석영의 시선이 곧장 그쪽으로 향한다.
이상현을 지나치고 제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그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빠악― 거친 타격음과 함께 김석영의 고개가 푹 꺾였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그 소리를 들은 이상현이 벙찐 낯짝으로 제 사촌과 그를 둘러싼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어?"
"아씨―"
하여간 노인네. 손 한번 더럽게 맵지. 혀를 끌끌 차며 매섭게 노려보는 노인의 시선을 맞받아친 김석영이 제 얼얼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러게, 왜 애를 때리고 그래. 이놈아.」
"욕하니까 때렸지. 예쁘다고 때렸을까."
"헉, 형. 할아버지지? 이거 할아버지 맞지?"
이상현의 시선이 김석영을 에워싼 빛무리에 향했다. 온 감각을 일깨우는 듯한 맑은 기운. 그것을 향한 김석영의 태도와 말투에서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리운 조부가 그들의 곁에 찾아와 주었다는걸. 비록 어중간하게 기운만을 보고 느낄 뿐이지만 타고나길 눈치가 빠른 이상현이었다. 그런 제 사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김석영이 대꾸했다.
"좋겠다, 넌. 복수해주는 할아버지도 다 있고."
"허으으, 할아버지이......."
기어이 눈물샘을 다 짜내버릴 작정인지, 흉측하게 부어터진 눈에서 재차 물기가 쏟아졌다. 구슬픈 울음을 터뜨리는 사촌을 질린 듯이 바라보던 김석영에게 노인이 말했다.
「독한 놈 같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애비가 죽었는데 너무 멀쩡한 거 아니냐.」
"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슬프진 않네요. 다 알면서 뭘 묻고 그러세요."
대수롭잖은 대답이었다. 그에 잠시 복잡한 얼굴을 하던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익숙해지진 말아라.」
"......."
뒤이은 말은 생전에도 지겹도록 당부하던 것이었다.
익숙해져야만 하는 환경에 처한 자에게 익숙해지지 말라니. 당신 역시 그런 삶을 살아오셨기에, 말을 꺼내는 노인의 심정을 머리로는 이해하나 그와 별개로 김석영에겐 참 모순적으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노인, 그의 조부가 제게 그럴 때마다 김석영은 그저 고개를 대충 끄덕일 뿐이었다.
늘 그래왔는데 이번이라고 뭐가 다를까.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는 제 손주를 바라보던 노인이 재차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망자의 긴 한숨은 한기가 되어 울고 있던 이상현에게 닿았다.
'갑자기 서늘하네.'
으슬으슬 떨려오는 몸을 추스른 이상현이 울먹한 얼굴로 부서져 가는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아, 이제 가시려나 보다. 인식하기 무섭게 무형이 되어 사라진 빈 허공이 애달팠다. 인사를 하듯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 김석영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제 뒷머리칼을 매만졌다. 때릴 땐 언제고, 참 투박하게도 쓰다듬는다.
"......할아버지 가셨어?"
손을 내린 김석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도 다 안 끝났는데 그냥 가버리시네. 노인네 참 매정하지."
"이게 다 형 네가 나 때려서 그런 거 아냐. 그 꼴 보기 싫다고 빨리 가신 거야."
"......."
얄미운 읊조림에 김석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걸 괴롭힐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을 간파한 이상현이 눈치를 보며 딴청을 피웠다. 퉁퉁 부어터진 낯짝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대거리할 힘이 빠진 김석영이 벽에 몸을 기대던 순간이었다.
딸랑―
청량한 종소리가 그들의 주변에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들은 이상현이 김석영의 손목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상복의 소매에 가려진 염주에서 둘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진동이 이어졌다. 재차 딸랑이는 소리에 왈칵 인상을 구긴 이상현이 불퉁하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상중엔 문 닫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왜 이럴 때에도 일이 생기는 건데. 아예 상중이라고 써 붙이지 그랬냐."
무감한 시선으로 제 손목을 바라보던 김석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썼는데도 안 먹히네."
"......진짜 적어 붙였다고?"
아니, 난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벙찐 제 사촌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김석영이 걸음을 옮겼다.
"가봐야겠다. 상중에 눈치 없이 방문한 손님 맞으러."

তেওঁ মই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