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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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지, 너."
"아, 그게......."
「헛, 전령 나리!」
화들짝 놀란 아이가 제 물건들을 감싸들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눈길을 붙잡던 물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윤재하가 황급히 몸을 돌렸으나 붙들린 팔의 힘이 너무 강했다.
"잠깐, 잠깐만요. 확인할 게 있어요......!"
"잊었나 본데, 여긴 저승의 경계야. 네가 확인할 만한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에요. 분명......!"
다급하게 터진 말은 서늘한 표정을 마주한 순간 허공에 흩어졌다.
"윤재하."
"......."
"설령 이곳에 네가 아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냥 잊어."
"그러고 싶은데,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건 분명......."
애처롭게 흔들리는 눈망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어졌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둘러싼 장소가 김석영의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주었다. 윤재하의 어깨를 단단히 붙든 그가 다갈색의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소리가 되지 못하고 뻐끔거리던 입술은 이내 꾹 다물렸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돌아가면 네 기억을 지우겠다고."
"......."
"기억을 지우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 수 있어. 당장은 거북하겠지만 곧 그 감정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
"......모르는 게,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그게 맞는 거겠죠."
스스로를 타이르는 듯한 자조적인 말이었다. 그게 맞지. 그래, 그게 맞는 거지. 이성이 내린 문장은 입안을 맴돌았으나 옥죄이는 심장은 둔통을 만들어냈다.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낯을 조심스럽게 감싼 김석영이 느리게 마주 닿는 눈동자를 담았다.
"가자."
"......."
검은 강의 잔잔한 수면 같은 눈을 바라보던 윤재하가 서늘한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네. 가요."
'돌아가고 싶어요' 하고 덧붙이는 말에, 뺨을 감싼 손이 거둬지고 곧 힘없이 늘어진 손을 붙들었다. 뻣뻣하게 굳어진 손가락의 틈을 파고드는 서늘한 체온에 잠시나마 엉망으로 뒤엉켜진 신경을 빼앗겼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남자의 손은 맞닿은 피부를 아릿하게 조여왔지만 윤재하는 그 알싸한 고통이 달갑기만 했다.
얽힌 손이 이끄는 힘에 기대어, 건조하게 나풀거리는 검은 머리칼을 바라보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은 또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김석영의 걸음이 멎었고 윤재하 역시 걸음을 멈췄다. 그를 이끈 길잡이가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빛무리와 함께 강하게 이끄는 손길을 따라갔을 때, 윤재하가 마주한 것은 고택의 내부였다.
다시 돌아왔다. 이승으로.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침입자로 인해 고가구를 비롯한 진귀한 물건들이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감실감실 떠다니던 연기가 범인의 몸을 쿡쿡 찔렀다. 별다른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게 내부를 어질러 놓은 것에 대한 타박이라는 걸 알아챌 순 있었다.
"......엉망으로 어질러놔서 죄송해요."
겸연쩍은 마음에 입술을 달싹이던 윤재하가 곳곳을 확인하던 김석영에게 사과를 건넸다. 어깨를 으쓱인 그가 가벼운 손짓으로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어질러진 물건들이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흐름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됐네."
내부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연신 커다란 눈을 굴리며 김석영을 바라보던 윤재하가 감탄을 흘렸다. 화답하듯 눈썹을 으쓱인 김석영이 바지 주머니 속에서 수신자의 물건을 꺼냈다. 작게 줄여놓은 것을 원래의 크기로 돌려놓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그때. 별안간 멈칫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요?"
삐딱하게 선 채로 물건을 응시하던 김석영이 눈을 돌렸다. 건조한 흑안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윤재하를 훑어 내려갔다. 기묘한 시선에 옥죄이던 윤재하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보......."
"윤재하."
"네."
"생각해보니까, 너. 바로는 못 가겠다."
"네? 그게 무슨......."
의아한 빛이 어린 눈에서 시작해 윤재하를 이루는 곳곳을 살핀 김석영이 말했다.
"너한테 저승의 냄새가 배었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 상태로 밖에 나갔다간 골치 아플걸. 영가들이 평소보다 배는 꼬일 테니까."
윤재하를 둘러싼 기운은 완연했다. 불순물 하나 없이 맑고 강한 기운은 언뜻 보기엔 축복과도 다름없지만, 도리어 과도하게 주어진 탓에 성장하면서 서서히 닫혀야만 하는 영안이 훤히 트여버렸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처지에 영기만 특별해봤자 무엇할까. 차라리 기가 좀 약해도 남들처럼 안 보고 사는 게 훨씬 나을 텐데.
이승을 떠도는 영가들은 그들을 인지해주는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설령 다가가기 힘들다 할지라도 주변을 맴돌거나 장난질을 하며 관심을 끌고자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윤재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과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궁극적으로 망자들이 도달해야 할 저승의 기운까지 묻어버린 지금은 망자들에게 있어 불가항력적인 힘을 풍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다행히 심하진 않아. 아마 네 영기가 정화하고 있는 거겠지. 돌아오는 내내 손을 잡고 있던 덕분인지 나 역시 평소보단 기운을 보전하고 있고. 이 기세론 빠르면 하루, 오래 걸려도 이틀이면 기운이 가실 거야. 그때까진 너, 아무 데도 못 가."
"아......."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껏 당황한 윤재하가 제 몸을 살펴보았다. 곧 피부 위를 맴도는 무형의 기운을 확인하곤 숨을 삼켰다. 낯이 익은 기운이다. 쓰러져 있던 김석영에게서 보았던 것이니까.
그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예상치도 못한 변수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스스로의 의지를 갖추고 머무르는 것과 강제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곳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란 건 사실이지만 결코 이런 형태이길 바란 적은 없었다. 떠나기를 결심한 지금으로선 퍽 난처하기만 했다. 하물며, 갑작스럽게 휘몰아친 상황 탓에 형체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분명 걱정하고 있을 텐데. 저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진 않을까....... 빨리 내려가서 확인해야만 어지럽게 뒤엉킨 불안과 조급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요. 저택 안에만 있으면 되는 거죠?"
먹먹한 한숨을 내쉬며 묻자 김석영이 답했다.
"아니. 안채에서 지내야지."
"......네?"
윤재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안채라니....... 안채는 김석영이 머무는 곳이 아니던가. 그럼 잠깐이지만 그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건가?
"저택에 보냈다가 한밤중에 몰래 떠나기라도 할지 누가 알겠어. 그러게 사고를 좀 치셨어야지. 신뢰감이 바닥이야."
"아, 아니에요. 안 도망가요. 정말이에요. 약속할게요......!"
말투에 고스란히 드러난 당혹스러움에 김석영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기운이 완전히 가시고 기억을 지우기 전까진 어림도 없어."
"그, 그럼 잠깐만이라도......!"
"안 돼. 정 내려가고 싶으면 같이 가던가."
"......."
"너무 싫어하네."
움찔한 윤재하가 시선을 피하자 김석영의 건조한 웃음이 뒤따랐다. 윤재하가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그 이유야 뻔했다. 달고 다니던 영가가 신경 쓰이는 거겠지. 혹여 제가 영가를 소멸시키기라도 할까 두려운 것이다.
망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제게 그 존재를 들키기 무섭게 곧장 이곳을 떠나려 할 정도라면 꽤나 유대감이 깊은 상태일 터. 그건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망자와의 유대감이 깊어지면 육체와의 상성 또한 깊어지기 때문이다. 곁을 맴돌던 망자가 언제 돌변해서 윤재하의 육신을 빼앗으려 할지 모른다.
사실 어리석게 망자를 끌어들여 육체를 빼앗기든 말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무시하면 그만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려 했지만, 자꾸만 그를 둘러싼 세상에 윤재하가 얽혀들었다. 쉬이 내버려 둘 수 없게 알짱거려 신경을 긁는다.
과거에도 윤재하는 무료하던 일상에서 유일하게 눈길을 사로잡던 아이였고 비슷한 공통분모를 가진 것에 남모를 유대감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결코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어엿한 성인의 모습으로 다시 마주하게 됐으나 그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위태롭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그때는 망자 따위를 곁에 두진 않았으니.
'무시할 수 없다면 직면하는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거슬림을 인식한 순간부터 도외시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일이었다. 거슬리는 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윤재하의 몸에 밴 저승의 기운이 가시는 즉시, 그와 얽힌 영가를 없애고 이곳에서의 기억을 지울 것이다. 속내를 감춘 김석영이 평연한 어조로 말했다.
"길어도 고작 이틀이잖아."
"그 이틀 동안 감시하려는 거잖아요."
"안 그러면 달아날 거잖아."
"......아니라고 했잖아요."
"못 믿는대도 그러네."
도망을 확신하는 말에 윤재하의 말간 낯 위로 원망의 기색이 어렸다. 모함받는 무고한 선민의 얼굴이 이러할까. 보란 듯이 가볍게 비웃어준 김석영이 몸을 돌렸다. 손을 붙잡고 단단히 이끌어주던 경계에서와는 달리, 그는 윤재하를 홀로 내버려 둔 채 앞서 나갔다. 덜컥 초조해진 윤재하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뒷문을 빠져나가자 고택의 형상은 허공 속에 자취를 감췄다.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든 김석영이 눈가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턴가 붙들린 옷자락을 향해 시선을 보내니, 제 행동에 지레 움찔한 윤재하가 손을 거두었다.
"방은 따로 줄 테니까 겁먹지 마."
"......겁먹은 적 없어요."
신경질적인 대꾸는 흡사 처음 동거를 시작했던 나비의 태도와 비슷했다. 느른한 웃음을 매달고 눈매를 늘어뜨린 김석영이 안채를 향해 턱짓하며 걸음을 뗐다.
비교적 익숙한 장소에 있자 불안감이 가신 윤재하가 시선을 분주히 움직였다. 사랑채로 내려가는 길목과 김석영의 뒷모습을 번갈아 살피며 은밀하게 숨을 삼켰다. 이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툇마루에 느슨히 걸터앉은 김석영이 시선을 보냈다. 어색하게 굳은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달아나지 않겠다고 절절하게 호소하시더니."
"......달아나려는 게 아니라, 안채로 들어가려고 한 거예요."
"이젠 제법 뻔뻔하기까지 하고."
속내를 들킨 것에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시선을 회피한 윤재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음의 거리감을 드러내듯 김석영과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영 성에 안 찼는지 물끄러미 닿아오는 눈길을 피해 휙, 고개를 돌렸다.
'어리긴.'
속으로 웃으며 뒤로 몸을 뉜 김석영이 늘어지게 하품을 내쉬었다. 늘 그렇듯 투둑, 찢어진 입술에 피가 맺혔다. 알싸함이 느껴지는 위치를 보아 윤재하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뜯어졌던 부위가 벌어진 모양이다. 송골송골 맺히는 피를 훑으며 고개를 돌린 김석영은 고집스레 눈을 피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내내 손을 잡은 덕분에 덩달아 윤재하의 청량한 기운을 흡수했으나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경계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이 신경 쓰여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다녀왔다는 걸, 저 말간 낯의 청년이 알 리가 없다. 안 하던 행동을 하게 한 주범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밑바닥에서부터 은근한 가학심이 피어올랐다.
"윤재하."
미세한 상처가 남은 턱 끝이 움찔했다. 목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윤재하가 널브러진 김석영을 바라보곤 눈을 크게 떴다. 피가 고인 입술에 시선이 붙들린 것이다.
"피가......."
"입술은 좀 괜찮아?"
싹둑- 말이 잘렸다. 고인 피를 응시하던 말간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선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굳어버린 낯을 바라보며 김석영은 혀끝으로 피를 훑었다. 눈에 띄게 움찔하는 게 꽤 볼만했다. 부러 평연한 낯을 가장한 그가 재차 물었다.
"입술 괜찮냐고, 너."
발갛게 달아올라 뻐끔거리는 모습이 퍽 가련했다. 연약한 것을 희롱하는 파렴치한이 된 기분이었으나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얄궂은 심보였다.
"아까 피 나는 것 같던데."
"그건....... 그건, 내가 아니라......."
"아, 네가 아니었어? 그럼 내 피였나? 어쩐지. 아프더라."
"일부러,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죠......."
눈가를 파르르 떤 윤재하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짓궂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걸 이제 알았어?"
"사람이 진짜, ......왜 그래요?"
"사회성이 모자라서 그래. 네가 참아."
남 얘기하듯 대꾸한 김석영이 상체를 일으켰다. 순간, 만성적인 빈혈이 눈치도 없이 찾아왔다. 급격하게 창백해진 김석영이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냉기가 흐르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어 눈가를 지압하는 움직임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양 자연스러웠다.
두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제야 뚫어질 듯 닿아오는 시선을 향해 눈을 돌렸다. 원망이 담겨 있던 눈빛이 걱정으로 변모한 것을 확인한 김석영이 김새는 미소를 지었다. 이래선 더 놀리지도 못하겠네.
"윤재하."
"......네."
"배고프지 않아?"
"......아!"
중요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놀란 윤재하가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이......."
어슴푸레 붉게 물든 하늘이 아침을 바라보는지, 저녁을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신이 없긴 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못한 걸 보니. 패딩을 뒤적거린 윤재하가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날이 흐른 상황은 아니었다.
'이참에 엄마에게도 연락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씁쓸하게 생각을 삼킨 윤재하가 김석영을 바라보았다.
"저녁 시간 다 돼가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은 거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그렇죠."
"그럼 들어가자. 너는 뭐라도 속에 넣어야지."
안채로 들어선 김석영이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제 키만 한 냉장고를 연 그가 물끄러미 내부를 확인했다. 덩달아 뒤에 서서 냉장고 안을 살펴본 윤재하가 한숨을 삼켰다. 이건 무슨 장식용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니야. 아마 냉동실에 얼린 밥이랑 국 있을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냉동실을 확인하자 김석영의 말대로 소분하여 얼려놓은 곰국이 빼곡했다. 다만 손 한 번 안 댄 모양인지, 꽁꽁 언 지퍼백은 어느새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이래선 빼내기조차 쉽지 않아 보이는데....... 왠지 불안해진 윤재하가 손을 뻗는 김석영을 만류하려던 순간이었다.
"제가 할......."
투두두둑, 쿠쿵―
"......."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더니, 결국 그의 예감대로였다. 무작정 힘으로 잡아당긴 김석영으로 인해 냉동고 안에 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진 것이다. 하물며 쏟아진 내용물은 오랜 시간 얼려 있었던 탓에 흉기처럼 단단했다. 살벌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것들을 바라보던 윤재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품 안의 남자를 살폈다.
"괜찮아요?"
그가 재빨리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김석영은 온몸으로 저 흉기들을 맞았을 것이다. 김석영은 맞닿은 등 뒤로 놀란 윤재하의 심장박동을 느꼈다. 눈을 느릿하게 끔벅이던 김석영이 한 박자 늦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걸 힘으로 당기면 어떡해요. 얼어붙은 거 잘못 만지면 손 다쳐요."
"몰랐어."
단조로운 대꾸에 한숨을 내쉰 윤재하가 품 안의 김석영을 뒤로 물렸다.
"그래요. 모를 수도 있죠. 여긴 제가 치울게요. 앉아 있어요."
타박하는 말은 아니었으나 왜인지 기분이 묘해지는 말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원목 식탁의 의자에 앉은 김석영이 능숙한 손길로 자리를 정리하는 윤재하를 응시했다. 그러다 그의 붉어진 손끝에 시선이 붙잡혔다.
"윤재하."
나직한 부름에 고개를 든 윤재하가 시선을 맞추었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손은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얼어붙은 거 잘못 만지면 손 다친다며. 근데 너는 왜 맨손이야."
"아......, 저는 괜찮아요."
"왜 너는 괜찮은데. 네 손은 얼음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했어?"
아니던데. 따뜻하던데. 은근히 덧붙이고 나서야 손이 멈췄다. 돌연 황당한 낯으로 김석영을 마주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걱정해주는 거예요, 비꼬는 거예요?"
"아마 둘 다일걸."
"그럼 걱정만 고맙게 받을래요."
"그래. 근데 너 대답 안 했어."
"......."
직시해오는 시선을 피한 윤재하가 남은 것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냥 잘 참아요.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그래서 그래요."
참는 것엔 이골이 났다. 이정도야 대수롭지도 않았던 그는 냉동고의 안을 빠르게 정리했다. 이후엔 미리 빼둔 곰국 두 팩을 살펴본 후 곧장 싱크대로 향했다.
"하부 장 좀 열어봐도 될까요?"
"좋을 대로."
집주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재하는 조심스레 하부 장을 살펴보았다. 곧 적당한 크기의 냄비를 꺼내 들곤 가볍게 먼지를 씻어냈다. 물을 받아 곰국을 해동하는 동시에 얼린 밥 역시 뜨거운 물 속에 담아 둔 그가 김석영을 돌아보았다.
"......김치가 없는데, 저택에 다녀오면 안 될까요."
"김치가 먹고 싶어?"
그 핑계로 저택에 가려는 속셈을 누가 모르냐는 듯 대꾸하자 윤재하가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어요."
"그래?"
묘하게 웃은 김석영이 몸을 일으켰다. 따라오라는 손짓에 의아한 마음으로 그 뒤를 따라선 윤재하는 발걸음이 멎은 곳에 존재하는 것을 보곤 숨을 집어삼켰다.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장독대가 그를 반긴 것이다. 친히 뚜껑을 열어준 김석영이 윤재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자. 네가 바라던 김치."
"......맛있겠네요."
빈말은 아니었던 게 김치의 때깔은 실로 군침이 돌 만했다. 식성도 까다롭고 입도 짧은 남자가 직접 김치를 담았을 리가 없는데, 김석영은 마치 제가 담은 것마냥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윤재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힘 빠지는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결국 장독대에서 김치를 담아간 윤재하는 빠른 속도로 식사를 준비했다. 반찬이라곤 김치뿐인 밥상이었지만 곰국에 김치라니, 이만한 조합도 없었다. 따끈한 김이 오르는 국과 밥을 바라보던 김석영이 식사를 시작했다. 수저의 반의반도 안 되는 양의 국물을 떠서 맛본 김석영이 눈매를 나른하게 늘어뜨렸다.
"맛있네."
"제가 한 건 없어요."
"네가 한 거 맞아. 내가 만지면 이런 맛이 안 나오거든."
내용물은 같은데 꼭 저가 만지면 이상해진다고 김석영이 덧붙였다. 그러자 문득 주방을 활보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도 특유의 무감한 얼굴로 냄비를 응시하겠지. 화력이 약해서 한참을 서성이든가, 아니면 화력이 강해서 냄비를 태워 먹든가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실없는 상상을 한 윤재하가 설핏 웃음을 흘렸다. 이내 눈앞의 느긋한 속도를 따라 식사를 이어갔다.
"잘 먹었어."
"벌써 다 먹은 거예요?"
수저를 내린 김석영을 향해 윤재하가 물었다. 그다지 많이 푼 것도 아니었는데, 밥을 반이나 남긴 것이다.
"응. 이제 안 먹혀."
사실 김석영은 식욕보단 수면욕이 앞선 편이었다. 윤재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 정도 굶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나 그와는 달리 윤재하는 한창 먹어야 할 나이였다. 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남까지 굶게 할 순 없지 않나. 그래도 굳이 식사한 것 치곤 예전보다 많이 먹은 것이었다. 어느 성실하신 도우미로 인해 위가 좀 늘어난 영향이었다.
"넌 천천히 먹어. 부족하면 더 먹고."
"어, 그럼, 남긴 거 제가 먹을게요."
"새로 퍼서 먹지, 뭐 하러?"
"깨끗하게 먹었는데 아깝잖아요. 아....... 혹시 불쾌한 거면......."
지레 당황하는 낯에 김석영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침도 삼켰는데, 그럴 리가."
"큽, 콜록......!"
단조로운 음성을 빙자한 화살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사레가 든 탓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기침을 토해낸 윤재하가 제 입을 부여 막은 채로 김석영을 노려보았다. 턱 끝을 매만지며 삐죽 솟은 입매를 가린 그가 무해한 눈으로 마주 바라본다.
"......그만 좀 놀려요."
"그러고 싶은데 네가 너무 반응을 잘하니까."
"그게 지금 내 탓이라는 거예요?"
"네 탓 맞잖아. 네가 반응을 잘하는 게 내 탓이야?"
"하아....... 됐어요."
이 사람, 원래 이렇게 느물거렸나. 더는 저 장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무표정을 가장하려는데 속도 모르는 손끝이 자꾸만 떨려왔다. 윤재하는 부러 대수롭잖은 태도로 김석영의 밥그릇을 끌어왔다. 호기롭게 수저를 갖다 댔으나 머뭇거림은 길어지기만 했고 끝내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맞은편으로부터 넘어오는 낮은 웃음소리에 입술 끝을 잘근 짓씹은 윤재하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식탁을 정리하는 손길이 매서운 거로 보아, 화가 났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순진하긴.'
늘 적막하기만 하던 공간에 윤재하 한 명으로 인해 생동감이 가득해졌다. 김석영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어린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다소 거칠게 물을 틀고 고무장갑을 끼던 윤재하는 제풀에 민망해졌는지 누그러진 손길로 설거지를 했다. 그러다 조용한 공기가 못내 신경 쓰인 듯, 살짝 고개를 돌리던 그는 김석영과 떡하니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왜?"
먼저 보고 있던 건 김석영이었으면서. 한발 늦은 탓에 제가 해야 할 말을 빼앗겨버린 윤재하가 힘없이 대꾸했다.
"......아니에요."
머쓱한 기분으로 설거지를 끝낸 그가 물기를 털어내며 뒤를 돌았다.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싶더라니, 김석영은 식탁에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백한 낯 위로 짙은 피로가 맴도는 걸 보아 선잠에 빠진 모양이다.
"......볼 때마다 피곤해 보였던 게 이거구나."
나른하던 눈매와 서늘한 체온. 미동도 없이 죽은 것처럼 잠을 자고 있던 것 역시 저승을 다녀온 영향을 감당하고 있던 거였다. 아무리 그것이 그의 능력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망자들의 세상을 드나드는 것에 대한 영향이 없을 수 있을까.
저만 해도 그렇다. 저승의 경계에 다녀온 후로 묘하게 몸이 무거웠다. 그곳의 공기가 몸 구석구석에 묻어나 온몸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작 경계에 다녀온 것만으로 이럴진대 삼도천 너머의 세상에까지 발을 담근 김석영은 어떻겠는가.
저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인데. 아니, 실제로 강한 사람인데도 윤재하는 그의 창백한 낯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러다 미약한 생기마저 사그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낮은 체온이 한없이 낮아지다가 끝내 차가워질 것만 같아서. 그의 피로를 덜어주진 못할망정,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았는데. 자꾸만 사고를 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기억을 따라갈 때와는 달리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은 광활한 초원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차갑기만 하던 손의 체온이 비슷한 온기를 머금게 될 때까지 윤재하는 김석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었다. 손을 놓지 않고 이끌어주는 길라잡이의 단단함에 복잡하게 뒤엉키던 정신과 마음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도움만 받는 주제에 자꾸 사고 쳐서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차마 목소리로 낼 용기가 없어 입술만으로 중얼거린 윤재하는 맞은편에 앉아 잠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현재의 모습 위로 먼 과거의 모습이 덧그려졌다. 그러다 어느 결에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톡, 토도독, 톡―
우악스러운 손길에 투둑, 끊어진 줄에서 작은 구슬들이 떨어졌다. 바닥 위를 나뒹구는 알들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명심해. 절대, 절대 빼면 안 돼. 알겠니?"
손목을 단단하게 붙들며 당부하던 목소리가 뇌리에서 반복됐다.
아, 안 되는데....... 혼날 텐데.......
당황과 조급함, 그리고 두려움을 인식하는 찰나, 등줄기를 가로지르는 선뜩함에 어린 윤재하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던 감각이 단번에 증폭했다.
「끼기기긱끼익―」
「속닥속닥속닥―」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를 빨리 감은 듯한 알 수 없는 소리와 시야를 어른거리는 형체들. 악을 지르며 제게 달려드는 아이의 등 너머로 떠다니는 것들이 저를 향해 보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순간, 윤재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세상을 다시 마주하고 말았다.
"헉, 하아......."
식은땀 한줄기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렸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숨을 토해냈다.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심장께를 꾹 억누르며 상체를 일으킨 윤재하가 주변을 살폈다. 좌식 서랍장과 그가 누워 있던 이부자리가 전부인 방은 아무래도 안채의 공간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거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긴 그가 기억을 되짚었다. 저녁 식사의 뒷정리를 끝내고 잠이든 김석영을 바라본 후로 기억이 끊겨 있었다. 잠시만 바라본다는 게 그만, 저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방에서 깬 걸 보면 김석영이 옮긴 것일 텐데 주방에서 방까지 이동하는 내내 깨지도 않았다니....... 잠 신경이 예민한 편이었기에 기절하듯 숙면을 한 것이 당황스러웠다.
"......하아."
꿈의 여파인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께를 재차 억누른 윤재하가 몸을 일으켰다. 장지문을 열고 나가자 서늘한 새벽공기가 막힌 숨을 트이게 한다. 방에서 곧장 이어지는 대청마루로 걸음을 옮긴 그는 언뜻 시야에 걸린 색채에 고개를 돌렸다.
'아....... 눈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석영이 자주 앉던 대청의 한 가운데에 앉은 윤재하는 마당에 쌓인 숫눈을 바라보았다. 소리를 잡아먹는 고요함 속에서 희끗희끗하게 나부끼는 눈발이 어수선한 기분을 가라앉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비는 잘 갔을까.'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날에 재회해서인지, 소복하게 쌓여가는 눈을 보고 있자니 나비가 떠올랐다. 마지막 인사를 꿈으로 대신한 게 아쉬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어느 결엔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왼쪽 손목을 어루만지던 윤재하는 저승의 경계에서 만났던 아이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아이의 헝겊 주머니 속에 있던 것을.
"......."
그건 분명 염주의 알이었다. 아주 어릴 적, 그의 모친이 조부의 지인을 통해 구해와 직접 채워준 염주. 어수선한 세상의 모습을 가려주던 부적이었다. 잘못 본 것일 리가 없었다. 늘 제 몸처럼 함께했고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보았던 것이니까. 그건 분명, 윤재하의 염주였다.
"왜 그게......."
저승의 경계에 있는 걸까. 사고가 난 이후로 영영 잃어버린 것이 왜 그곳에.......
기분이 복잡해졌다. 긴 한숨을 내쉰 윤재하가 마른 얼굴을 쓸어 넘겼다. 서늘한 입김의 자취를 눈으로 좇으며 깊어지는 생각을 억누르던 그는 김석영이 있을 방을 마주했다. 굳게 닫힌 장지문 너머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덩달아 숨을 죽인 채 바라보던 윤재하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가며 신발을 신은 윤재하는 김석영의 방을 응시한 채 한 걸음을 떼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몸을 돌리고 걸음을 내디뎠다. 최대한 외곽의 길로 향하며 나부끼는 눈발이 저의 발자취를 메워주길 바랐다.
안채를 벗어나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 다급한 걸음과 설로의 상성은 최악이라, 몇 번이나 눈밭 위를 나뒹굴고 나서야 험난한 숲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탓에 온몸이 눈투성이였다. 느슨하게 드러난 목과 얼굴, 손끝까지 죄다 얼어버린 윤재하는 추위를 느끼지도 못하고 황급히 저택을 둘러보았다. 현관문 앞에 있던 짐은 그대로인데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철렁했다.
"......어디, 어딨어....... 어디 갔어......."
그의 기운을 살피려고 해도 당황한 마음 탓인지 소란스러운 눈발 탓인지, 감각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모친을 부르던 윤재하가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을 생각도 못하고 집안 곳곳을 뒤져보았으나 그가 찾는 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옥과 숲길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네가 온 이후로 이곳의 영가들이 대거 줄어들었어. 누구 말에 의하면 영가들을 달고 다녔다던데. 어때. 네가 듣기에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나?"
불쑥, 김석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재하는 방황하던 걸음을 멈춰 세우고 그의 시야에 닿는 것들을 살폈다. 저택의 내부, 그리고 창 너머의 마당까지.
"......없어."
터에 자리 잡고 있던 영가들이 보이지 않았다. 저택에 적응하면서 종종 마주했던 존재들이 어디에도 없다. 김석영의 말이 맞았다. 여태까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우스울 만큼, 이곳의 영가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영가들을 없애고 있다.
"......안돼. 엄......."
말간 눈 위로 두려움과 초조함이 엇갈리던 순간이었다. 선득한 감각이 발치로부터 타고 올라와 윤재하의 뒷덜미를 조여왔다. 적막한 사위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그의 흐트러진 호흡뿐이었으나 그마저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좀먹히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불안정한 호흡을 멈춘 그때. 줄곧 혼자였던 공간에 무언가가 침범했다.
'......엄마?'
언뜻 희미하게 형체의 기운이 느껴졌다. 흠칫 몸을 굳힌 윤재하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세상의 빛을 모조리 삼킨 것만 같은 검은 무언가가 시야에 걸리던 찰나, 비릿한 혈향이 뒤엉킨 악취와 함께 서늘한 손가락이 뻗어왔다. 앙상한 검은손에 감싸인 시야가 암전된다.
「......어가 사라졌구나.」
무언가 읊조리는 말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윤재하는 의식을 잃었다.

তেওঁ মই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