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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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의 코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자취를 남겼다. 거실 바닥에 몸을 뉘어주고 녀석의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었다. 조심스럽게 코끝에 손을 가져다 보니 숨은 쉬고 있었다. 파리해진 낯으로 몸을 일으킨 윤재하가 형체를 찾아 저택을 뒤졌다.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시간쯤이면 그가 밖을 돌고 온다는 걸 알지만, 불안한 마음이 휘몰아쳤다. 악의가 가득 찬 것들은 제 힘을 키우기 위해 영가의 몸을 뜯어먹기도 한다. 김민재의 몸속에 있던 사귀도 그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양어깨와 뒤통수에 붙어 있던 것들이 사귀의 몸에 융합되어 있었으니까. 잡귀를 세 개나 해치우고 힘을 얻어, 삿된 말로 김민재의 몸을 빼앗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재된 악의를 끌어올린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제 몸이 목적이었다면, 잡귀 셋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거다. 분명 더 많은 영가들을 씹어 삼켜 힘을 키웠을 것이다.
엄마가 목적이었나. 그렇다면 왜? 많은 영가를 제치고 왜 하필 엄마를? 아니면 정말, 단순히 자극하기 위한 말이었을까? 단순히 김민재의 악의가 전부인가?
엄마는 지금 괜찮은 걸까. 지금 돌아와서 그 사람의 눈에 띈다면....... 아니, 악귀가 아닌 이상 그 역시 함부로 건드리진 않을 것이다. 그가 영가들을 인도하는 자였다면 이곳에도 오래된 영가들이 없었을 테니까. 그냥 지나치는 영가라고 생각하겠지. 그래, 다 괜찮을 거다.
"하아......."
머리가 아팠다. 갑작스레 닥쳐진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마를 부여잡고 힘없이 벽에 기댄 윤재하의 시야로 김민재가 흘린 핏자국이 보였다. 울컥하는 숨을 삼키고 입술을 짓씹은 윤재하가 걸레를 찾아 핏물을 닦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의 끝이 형편없이 떨렸다. 문득 김석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적 있냐던. 이젠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자조적인 숨이 터져 나왔다.
"흐으, 으윽......."
그 사이 정신을 차린 김민재가 앓는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렸다. 더듬더듬 힘겹게 몸을 일으키다가 윤재하를 발견한 그가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웅크렸다. 비틀린 한숨을 내쉰 윤재하가 피로 물든 걸레를 툭 내려놓고 김민재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얻어맞은 얼굴이 엉망이었으나 연민이 일진 않았다. 때렸다는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묻고 싶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해?"
무감한 음성에 몸을 움찔한 김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한테 씌었던 건."
"......알아."
"귀신을 받아들이는 데에 네 의지는 있었던 거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시선을 피한 김민재가 몸을 물렸다. 그만큼 다가간 윤재하가 물었다.
"왜 그랬어."
"......."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어쩌고 싶었는데."
시발, 잇새 사이로 나직하게 욕을 짓씹은 김민재가 악에 받친 눈으로 쏘아보았다.
"나는 옛날부터 네가 존나 싫었어. 너네 집안 때문에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내 인생은 진창으로 떨어졌다고. 알아?"
눈자위가 벌겋게 충혈된 낯으로 울분을 토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정신 놓은 노인네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우리 아버지 안 돌아가셨어! 결국 노인네 말대로 됐는데, 그게 저주가 아니면 뭐냐고....... 내가 널 증오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아버지 죽인 노인네의 핏줄인데. 그 핏줄 이어받아서 귀신이나 보는 주제에, 사람은 개무시를 하질 않나......, 그따위로 사라져서, 또 나만, 나만 배척당했다고!"
"다 내 잘못이라고."
"그래,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어. 겨우, 겨우 잊고 살고 있었는데, 그러게 왜 내 눈앞에 나타났어, 왜!"
"......."
악에 받친 고성에 윤재하의 고개가 푹 꺾였다. 다갈색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숨을 몰아쉬던 김민재가 흠칫 몸을 굳혔다. 간헐적으로 떨고 있던 윤재하가 웃는 얼굴로 그를 마주한 것이다.
"야."
"......."
"그게 왜 내 탓이야."
"......뭐라고?"
"치매 걸린 노인네가 하는 말이 무슨 힘이 있어서. 비 오는 날 차 조심하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특별해서.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으면 조심하지 그랬어."
"야 이 개새끼야!"
쿵―
몸을 날려 윤재하를 쓰러뜨린 김민재가 멱살을 부여잡고 악을 질렀다. 무감한 시선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쿵, 쿵―. 머리를 바닥에 후려치는 것에도 표정 한 톨 변하지 않은 윤재하가 고저 없는 말을 이어갔다.
"네 인생이 진창으로 떨어진 건 네 탓이야, 병신아."
내 인생이 내 탓인 것처럼.
눈이 뒤집힌 김민재가 주먹을 날렸다. 윤재하는 반항조차 하지 않고 제게 향하는 폭력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화풀이를 당하는 인형처럼 생기 없이 침잠된 두 눈이 소름 끼쳤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먹질을 멈춘 김민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제 위에 올라탄 무게를 밀쳐낸 윤재하가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앞으로 어떡할래. 뭣도 모르고 귀신을 받은 탓에 귀문이 열렸는데."
"......뭐?"
경기를 일으키듯 움찔한 김민재가 되물었다.
"귀, 귀문이라면......."
"네 몸이 귀신의 통로가 되었다는 거야."
사형선고라도 받은 죄수의 낯이 이러할까. 경미한 것이라 여긴 일의 대가가 제 예상보다 컸던 모양이었다.
"......그, 그럼, 내 몸에 귀신들이 달라붙는다는 거야? 내, 내가 거부해도?"
"거부해도 소용없어. 붙기만 할까. 네 몸을 빼앗고 멋대로 사용하겠지."
"어, 어떡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어? 시이발....... 야, 어떡해....... 어떡하냐고오......."
두려움에 좀먹힌 김민재가 윤재하의 옷자락을 생명줄처럼 부여잡았다.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무언가라도 붙잡지 않으면 낭떠러지에 처박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정신 나간 사이비 집단에서 나와. 이후엔 무당을 찾아가서 굿을 받던지, 그도 아니라면 정상적인 종교 찾아서 신한테 기도나 해."
"그, 그러면, 그렇게만 하면 귀문인지, 뭔지가 닫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
"장담은 못해."
성의 없는 답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윤재하로선 최선의 말이었다. 무감한 어조의 대답에 김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나타나서, 날 무시해서......."
"징징거려봤자 달라지는 거 없어."
절망에 옥죈 낯이 목쉰 울음을 터뜨렸다. 들썩이는 어깨를 잡아 쥐고 서늘하게 바라본 윤재하가 말했다.
"네가 말했지. 죽은 엄마와 함께 지내는 거 안다고. 그게 이곳에 있다는 것도."
"흐윽, 흑, 끅......."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내가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한다는 걸 알 수가 없지. 어떻게 알았어. 아니, 어떻게 그것과 만났는지부터 말해."
"......흑, 가, 가위에 눌렸어. 그때 그, 그게 내 몸에, 올라타서는....... 자기와 함께 있으면, 나,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혼내줄 수 있다고....... 지금 당장, 날 괴롭히는 게 뭐냐고....... 나는, 그게 너라고 말했고, 그게 널 고통스럽게....... 만들어주겠다고 했어."
"어떻게."
"한 몸이 된 순간, 내 기억을 봤어. 그랬더니 기억을 들쑤시자고....... 그렇게 해서 네가 동요하면 그때 널 꼬드겨서, ......모임에 데려가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재차 흐느끼기 시작한 김민재가 말했다.
"사실, 사실 나도 나오고 싶었어....... 처음엔, 나도 평범한 상담소인 줄 알았다고. 날 받아주고 사람 취급해 주는 곳은 거기가 처음이었어....... 그런데 점차 이상한 사상을 가르치더니 새로운 사람들을 구해와야 한다고 압박했어.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그때 네가 보였어. 널 끌어들이고 나는 도망가려고 했어.......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엄마 얘기는 뭐야."
"그건 그냥 해본 말이었어. ......예전에도 그랬었던 것처럼, 너는 귀신을 보니까....... 너네 아버지 귀신도 보는 거 아니냐고 했었을 때 네가 화를 냈던 게 생각나서......."
김민재의 어깨에서 툭, 손을 떼어낸 윤재하가 힘없이 물었다.
"안에 있는 거 안다고 말했던 건."
"......네가 동요하길래. 그게 내 몸에 들어오고부터 귀신이 보이는데, 담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게 느껴져서......."
"정말, 그게 다라고......."
모친에 대해 알고 접근한 게 아니라 안심해야 하는데도 가라앉은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자 코안에 맺혀 있던 핏물이 떨어졌다. 차라리 옷 위로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바닥에 더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아 황급히 소매 끝으로 닦아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김민재가 다른 팔을 붙잡고는 사정했다.
"재하, 재하야. 나 진짜 어떡하면 좋냐.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해? 그거라도 하면 좀 나을까? 응? 나, 나 너무 무섭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절이라도 가 있던가."
"허흐윽, 흑......."
인생이 끝난 것처럼 울음을 토해내는 것에 한숨을 내뱉은 윤재하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읊조렸다.
"내가 널 도울 방법은 없어. 미적거리고 있지 말고 무당을 찾아가든, 절에 가든, 성당을 가든,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
"시, 싫어. 안 나갈래. 나 여기에 있게 해줘. 응? 부탁할게, 제발......."
"여긴 네가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애초에 내 집도 아니라고."
"그럼....... 아, 그, 그러고 보니 분명 어떤 남자가 오고부터 의식이 사라졌었어. 그 남자지? 그 남자가 여기 주인이지? 그 남자가 나한테서 그 귀신을 빼준 거지?"
희번덕 눈을 빛낸 김민재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성을 잃고 움직이는 속도를 미처 저지하지 못한 윤재하가 다급하게 뒤를 쫓았다. 하지만 신발도 신지 않고 현관문을 여는 김민재를 가까스로 잡아챘을 땐 이미 활짝 열린 후였다. 눈앞이 새카매졌다.
"너 이게 무슨 짓......!"
화를 참지 못하고 터진 고함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문 옆에 기대고 서있던 남자 때문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붙잡힌 팔을 떨쳐낸 김민재가 김석영의 옷자락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그의 눈길이 윤재하를 지나쳐 김민재에게 닿았다.
"사, 살려주세요. 아까 그 사람 맞죠? 저,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뭘요?"
"귀, 귀문, 귀문이라는 게 열렸대요....... 내 몸이 귀신 문이 되었다고요......!"
한껏 격양된 목소리를 무던하게 감상하던 김석영이 대답했다.
"네. 그렇네요."
그런데 뭘 어쩌라는 태도였다. 잠시 말문이 막힌 김민재가 고개를 돌렸다.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서늘하게 받아친 윤재하가 김석영의 옷자락을 막무가내로 붙잡고 있던 김민재의 손을 떼어냈다.
"이 이상 소란 피우면 신고할 거야. 가."
"시발, 못 가. 아니, 안 가! 나 도와주기 전까진 절대 못 가!"
"김민재!"
막무가내로 덤비는 걸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필 김석영의 앞이라는 것도 윤재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제게 꽂히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김민재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질질 끌리다가 바닥 위로 나뒹구는 몸뚱이가 반항하듯 바르작거렸다.
"시발, 놔! 놓으라고!"
"너 진짜 적당히 좀......!"
"놓아달라잖아. 놔줘."
어느새 다가온 김석영이 윤재하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그의 서늘한 체온에 움찔하여 힘을 풀자, 김민재의 상체가 툭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손을 떼고 다가간 김석영이 상체를 숙이고 물었다.
"귀문만 닫으면 되는 거 맞죠."
"흐으, ......네, 네! 맞아요!"
"그래요, 그럼. 도와줄게요. 그런데 내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라서요. 그쪽 도와주는 대신에 받고 싶은 게 있는데. 승낙하면 도와주고요."
아니면 말고요. 저는 손해 볼 거 없다는 듯 미간을 늘어뜨리는 것에 마른침을 삼킨 김민재가 물었다.
"......뭐, 뭔데요?"
"별거 아니에요."
잠시 윤재하를 바라본 김석영이 답했다.
"그쪽 기억이요."
"......기억이요?"
황망한 물음을 마주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재하를 만났던 순간부터 이렇게 내 앞에 빌고 있는 지금까지. 딱 이 정도면 되는데. 어때요, 정말 별거 아니죠?"
"......."
김민재는 혼란스러운 듯한 낯으로 시선을 돌렸다. 엉망이 된 윤재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음을 삼키던 그는 결국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잘 생각했어요. 그럼, 잠시 몸 좀 만질게요."
커다란 손으로 김민재의 눈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상체를 더듬던 김석영이 억지로 벌어진 구멍의 틈새를 천천히 조였다. 몸 안의 무언가가 느릿하게 조여드는 생경한 감각에 온몸을 떨던 김민재가 앓는 숨을 토해냈다. 식은땀을 줄줄 흐르는 낯을 무감하게 바라본 김석영이 부러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고통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으흐윽, 흐윽......."
"다 돼가요."
'시발, 기분 더러워. 아파, 이상해.'
숨통을 부여잡고 비트는 듯한 느낌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들의 향연에 김민재의 온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덩칫값 못하게 엄살이 심하네.'
더 시간을 끌었다간 졸도라도 할 것 같았다. 낮게 혀를 찬 김석영이 단번에 문을 닫았다. 완전히 막힌 것을 확인한 그가 숨을 몰아쉬는 김민재에게 물었다.
"어때요. 내가 무서워요?"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잔뜩 웅크린 김민재가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잘생긴 낯짝이었으나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와 서늘한 인상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무섭, 무섭긴 한데,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나아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기, 몸이 좀 둔해진 것 같은데......."
"감각이 닫혀서 그런 거예요.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살핀 김민재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귀문이 닫힌 모양인지, 더는 이상한 소리나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보지 않아도 될 것과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듣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깨달았다. 차마 윤재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럼 이제 약속한 대가를 받을게요."
"......아, 예에."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는 금방 잊혔다. 막상 기억을 지운다고 하니 떨떠름해진 김민재가 낯을 굳혔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어투에 건조하게 웃은 김석영이 줄곧 굳어 있는 윤재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른쪽 뺨이 흉하게 부어올랐고 코와 입 주변엔 피를 닦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얻어맞은 곳곳을 눈에 담고 김민재를 바라보니 윤재하보단 덜 엉망진창이었다. 가는 눈으로 이목구비를 살피던 김석영이 입을 열었다.
"시작할게요."
"......예, ......컥!"
빠악, 불시에 왼쪽 뺨을 얻어맞은 김민재가 옆으로 나뒹굴었다. 옷깃을 단번에 끌어와 제 앞에 둔 김석영이 재차 손을 올리자 기겁하여 소리쳤다.
"왜, 허흐으, 왜 이러세요......!"
"왜긴, 기억을 지우려는 건데요."
'시발, 그게 패면서 병신 만들겠다는 소리였냐고!'
혼비백산한 김민재가 다급히 몸을 기었으나 종아리를 낚아챈 김석영이 쭉, 끌어당겼다.
"대세요."
"......사, 살려 주세요....... 살려주세요!"
"안 죽여요."
참으세요, 라고 덧붙이며 무던하게도 말했다. 안면을 너끈히 잡아채고도 남는 손을 재차 드는 것에 비명을 지른 김민재가 제 얼굴을 숨겼다. 목석처럼 굳어서 바라보기만 하던 윤재하가 뒤늦게 김석영의 팔을 붙잡았다.
"그, 그만....... 그만 해요."
두 팔로 매달리듯 끌어안아 저지하는 것에 김석영이 힘을 풀었다. 종아리를 낚아챈 손을 툭 떨어뜨린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그 틈을 타 엉금엉금 기어가던 김민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으나, 단번에 앞을 막는 구두코에 욕설을 토하곤 발을 굴렸다.
"왜, 왜요! 때렸으니 끝난 거 아닙니까?"
"기억이 멀쩡한데 끝나긴 뭘 끝납니까."
부어터진 낯짝에 핏기가 가셨다. 김석영이 손을 들어 올리자 눈을 질끈 감는다. 닫힌 눈꺼풀 위를 어른거리는 움직임에 실눈을 든 김민재는 서늘한 손끝이 이마에 닿기 무섭게 몽롱해진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뒤로 넘어가려는 그의 멱살을 잡아챈 김석영이 약속한 대가를 빼내었다. 손가락 사이에 얽힌 기억을 영기로 없애버리고 멀뚱히 서 있던 윤재하에게 턱짓했다. 황급히 다가온 그가 멱살을 붙잡혀 선 채로 기절한 김민재를 부축했다.
"어디 사는지 알아?"
"......아니요."
혀를 찬 김석영이 김민재의 겉옷을 뒤졌다. 전자담배와 잡다한 쓰레기만 손에 잡혔다. 하는 수 없이 바지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자 굳은 피로 엉망이 된 손이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제가 할게요'라고 작게 읊조린 윤재하가 제게 기댄 몸을 추스르고 바지를 뒤졌다.
"여기요."
지갑을 건네받은 김석영이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를 확인했다. 같은 구 안에 있어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자 때마침 근처에 있던 한 대가 금방 도착했다.
피떡이 된 채 정신을 잃은 김민재와 그를 부축하는 두 남자가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들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택시 기사의 모습에 김석영이 선뜻 웃돈을 얹어 주었다. 승용차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로 십만 원의 웃돈을 얻은 택시 기사가 입을 합 다물고 떠나갔다. 제 돈은 아니었지만 저와 얽힌 김민재 때문에 낭비한 것이 아깝고 염치도 없어서 윤재하의 낯이 한껏 가라앉았다.
"지금 쓴 돈은 급여에서 차감해주세요......."
피식. 웃음을 흘린 김석영이 건조하게 말했다.
"넌 꼭, 안 해도 될 말을 사서 하지."
"......차감해주세요."
"그래. 그게 네 맘이 편한 길이라면."
가볍게 대꾸한 김석영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제 뒤를 따르는 인영을 흘끔 바라보니 꼴이 아주 가관이다. 얼굴만 보면 가련한 피해자였으나 꾹 다물린 입술을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게, 마치 벌을 받기 전부터 미리 겁먹은 어린애 같았다. 그 애처로운 낯을 보고 있자니 말간 낯 위로 새겨진 상흔들이 눈에 거슬렸다.
보들거리던 생머리가 엉망으로 뒤집히고 턱을 가로지른 목 주변엔 길게 긁힌 손톱자국에 피가 맺혀 있었다. 뺨은 퉁퉁 부어올랐고 코와 입 주변은 성의 없이 닦아낸 피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웬 머저리가 만들어놓은 흔적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김석영이 윤재하를 불렀다.
"......네."
"병원 가봐."
움찔한 윤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에요."
"네가 의사야?"
툭 던지는 말의 어조가 이전과는 다르게 사뭇 낮았다. 심장이 철렁하여 눈을 들고 바라보니 무감한 표정의 김석영이 시선을 직시하며 말했다.
"병원에 갈 정도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
"아픈 정도를 파악하는 건 네가 아니라 의사야."
"......."
고집스레 입을 다문 윤재하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빛이 바래 색이 날아간 어깨 부분과 군데군데 푹 꺼진 패딩은 겨울바람 한 조각에도 베일 것 같았다. 흙먼지를 비롯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물마저 묻어 있는 겉옷이 엉망이 된 그의 얼굴만큼이나 아파 보였다.
"여기서 기다려. 아니, 그냥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에, 걸음을 떼려던 김석영이 멈춰서서 말을 이었다.
"도망가지 말고."
한마디를 내뱉고 제 거처로 향한 그는 옷장에서 가장 두꺼운 파카를 꺼냈다. 문을 닫으려는 찰나, 시선을 사로잡은 목도리를 꺼내 손등을 문질러본 그가 곧장 발걸음을 뗐다.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니 오늘따라 말 안 듣는 윤재하가 현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어도 기척은 느껴졌는지 살포시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눈이 마주치기 전, 정수리 위로 파카를 툭 놓은 김석영 때문에 옷감의 무게감을 정면으로 맞은 윤재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입어."
"......."
묵직한 겨울 파카를 조심스럽게 내린 윤재하가 멍하니 보고만 있자, 덩달아 몸을 숙이고 앉은 김석영이 낡은 패딩을 벗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훅 다가오는 차가운 손끝에 놀라 숨을 삼킨 윤재하가 상체를 물렸다. 웬 시정잡배 취급을 당한 것에 멈칫한 김석영이 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뭐 하는......."
"멀뚱히 보고만 있길래. 입는 방법도 모르나 했지."
"......옷 입는 걸 어떻게 몰라요."
"알면 갈아입어."
혼란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김석영이 툭 내뱉었다.
됐다고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살펴본 제 꼴을 알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덥석 입는 것도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된다. 사실 입지 않아도 초라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일 테지만 괜한 고집을 부리게 되는 거다. 하지만 계속 버티고 있기엔 김석영의 직설적인 시선을 감당해낼 방법 따윈 몰라서, 윤재하는 제 겉옷을 벗고 그가 건네준 것을 걸쳤다. 묵직한 무게감만큼이나 아늑하고 따뜻했다.
"입던 건 집에 두고 나와."
"......."
버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에 멍하니 바라보자 김석영이 제 핸드폰을 흔든다. 지도 위로 택시 모양의 아이콘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적거릴 시간 없어. 곧 택시 도착할 거야."
"아....... 네, 잠시만요."
벌떡 일어난 윤재하가 황급히 저택에 들어섰다. 벗은 옷을 현관 앞에 두고 나오니 느슨해진 넥타이를 잡아당겨 풀어낸 김석영이 시선을 틀었다. 셔츠의 깃 사이로 드러난 목이 시려 보였다. 핏기 없이 새하얀 목을 보고 있자니,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던 그날의 서늘한 체온이 떠올랐다. 눈살을 찌푸린 윤재하가 줄곧 김석영이 들고만 있는 목도리를 가리켰다.
"왜 안 해요. 추워 보이는데."
"아, 이거."
깜박하고 있었네. 혀를 찬 김석영이 팔에 걸쳐놓은 목도리를 손에 쥐고 윤재하를 바라보았다. 손톱에 할퀴어진 상흔이 따가울 수도 있으나 찬바람을 맞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어릴 때만큼은 아니어도 맞닿은 시야가 좀 더 낮았다면 편했을 텐데. 동등해진 눈높이 탓에 상체를 틀어 목도리를 감은 김석영이 매듭을 지었다. 옅은 미색이 윤재하의 피부색과도 잘 어울렸다.
"나보단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
"예쁘네. 잘 어울려."
목에 닿는 촉감이 아이의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바람 한 점 스밀 틈도 없이 휘휘 감은 탓에 따스한 온기가 온전하게 머물렀다. 이토록 가볍고 부드러운 목도리는 처음이었다.
"가자. 택시 왔네."
온기를 얻은 저와는 달리, 앞서 걷는 김석영의 목덜미가 휑했다. 이 보드라운 목도리는 제가 아닌 그의 목에 둘려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가 매어주는 손길이 생경하고도 따스해서. 차마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울대가 뜨거워진 게 그가 감싸준 목도리 탓인지 울컥 솟아난 마음의 온도 탓인지 차마 헤아릴 용기 또한 없어서 애꿎은 섬유에 코끝을 묻었다.
시린 향이 났다. 겨울의 것이기도 하지만 분명 김석영의 것일 테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인근의 대학병원이었다. 동네의 정형외과 정도를 예상했던 윤재하는 눈앞에 드리운 규모에 덜컥 마른침을 삼켰다.
"뭐해. 들어가자."
목석처럼 굳어져서 머뭇거리는 걸 본 김석영이 말했다. 피딱지가 엉겨 붙은 입술을 잘근 짓씹은 윤재하가 김석영의 코트 자락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 저 진짜 괜찮아요. 며칠만 지나면 금방 아물 상처인데, 이런 병원은 좀 오버하는 것 같은데요. 그냥 약국에 가서 약만 사고 돌아가요."
죽을병도 아니고 하물며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었다. 고작 경미한 타박상에 대학병원이라니....... 부담스럽다 못해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이런 곳은 단순 진료만 보아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게 분명했다. 묵직하게 이어지던 통증이 병원 앞에 선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상처도 제 수준을 아는 것이다.
"저 진짜 안 아파요. 보기에만 요란해 보이지, 사실 별거 아니에요."
윤재하는 가히 필사적으로 눈을 맞추며 제 고통의 무게를 가벼이 대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죄를 짓는 것마냥 상처를 변호했다. 꽁꽁 싸맨 탓인지, 변호하느라 진땀이 나서인지,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헛웃음을 삼킨 김석영이 눈을 찌르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진단이 무서운 건 아닐 테고. 진단 이후에 이어지는 과정과 결과가 무서운 거라면 그냥 입 다물고 따라오기나 해."
"......싫어요."
주먹을 꾹 쥔 윤재하가 시린 낯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왜. 자존심 상해?"
"......."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것 같은 눈이 김석영을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한 꺼풀 꺾여주고 싶은 낯짝이었으나 김석영은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윤재하."
"......."
"자존심은 그럴 만한 여유가 있을 때나 부리는 거야. 그런데 지금의 넌."
"......."
"애석하게도, 때가 아니야."
숨을 흡 들이 삼킨 윤재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말 한마디에 그가 뱉은 말과 마음과 행동은 치기 어린 감정이 토해낸 찌꺼기가 되어버렸다. 분한 것은 그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말은 비수와도 같아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뒤따르고 만다. 목울대를 어른거리는 통증의 잔재를 꾹 눌러 삼킨 윤재하는 차마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한없이 고개만 숙였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김석영이 미약하게 떨고 있는 손목을 잡아끌었다. 속절없이 김석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버티고 있어봤자 구차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운하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어. 이럴 땐 너도 한 꺼풀 져주는 거야."
"......네."
결국 김석영이 이끄는 대로 병원에 들어섰다. 붓기를 조금 가라앉힌 후 CT를 찍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골절은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별거 아닌 증상에 민망함이 일었다.
그러게, 그냥 동네 약국에서 약만 사다 발랐으면 좋았을걸....... 괜한 투정의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으나 뱉어낼 자격도 염치도 없다는 걸 알기에 삼켜낼 뿐이었다.
겉보기만 요란한 상처를 치료하고 나오니 대기석에 앉아 있던 김석영이 맞아주었다. 윤재하의 얼굴 곳곳을 꼼꼼히 확인한 그가 헝클어진 뒷머리에 손을 뻗었다.
"안 그럴 것처럼 생겨선."
"......."
"너 참 손이 많이 가네."
손빗으로 머리칼을 정리하며 김석영이 말했다. 그건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자니 유치하고 인정하기엔 납득이 가지 않아 시선을 피하자, 그에게서 짧은 웃음이 들려왔다.
"가자."
김석영이 앞서 걸었다. 코트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넥타이가 나비의 꼬리처럼 살랑거렸다.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스르륵 휘날린 넥타이를 주운 윤재하가 옅은 속웃음을 흘렸다.
"너 참 손이 많이 가네."
받은 말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었다. 차마 말로 되돌려주진 못해도 넥타이는 건네주어야 했기에 서둘러 따라잡았다.
"넥타이 흘렸어요."
"아, 고마워."
잃어버렸어도 대수롭잖게 여겼을 태도로 그가 대꾸했다. 그래도 이번엔 떨어지지 않도록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두었다.
로비를 지나쳐 밖을 나오니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약을 처방받고 주변을 둘러보던 김석영이 죽집을 발견하곤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가게에 들어선 윤재하가 쭈뼛거리며 서성이기만 하자 제 앞자리의 테이블을 톡톡 건드린 그가 눈짓했다.
"뭐 먹을래."
"그냥, 아무거나......."
"세상에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어."
종종 아무거나 무작위로 내놓는 메뉴가 있으면 편하겠단 생각을 하던 김석영이 피식 웃으며 타박했다. 귀 끝이 붉어진 윤재하가 메뉴판을 살폈다. 메뉴의 이미지보다는 숫자를 빠르게 훑은 그가 가장 저렴한 흰죽을 가리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 김석영이 메뉴판을 건네받곤 물었다.
"나는 뭐가 좋을까. 이런 덴 뭐가 맛있지?"
"어....... 잠시만요."
고개를 내밀어 메뉴판을 살핀 윤재하가 평소 그의 식성을 상기하며 고민했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니까 무난한 야채죽도 괜찮을 것이고, 식감이 좋은 전복죽도 괜찮을 것 같다. 아, 그런데 버섯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종류가 많아서 귀찮네. 너는 뭐가 제일 맛있어 보여?"
"음, 전복죽도 고소하니 맛있을 것 같고, 소고기 들어간 버섯죽도 맛있어 보여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메뉴판을 닫은 김석영이 점원에게 주문을 넣었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이어졌는지, 눈을 깜박이던 윤재하가 황망한 낯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분명 흰죽이라고......."
"그랬나? 미안. 근데 네가 말했던 메뉴 두 개 다 맛있어 보이잖아. 맛은 보고 싶은데 내가 입이 짧아. 네가 좀 맞춰."
"아......."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고맙네'라며 김석영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물티슈로 제 손을 꼼꼼하게 닦은 그가 물잔을 채워주었다.
연상인 그보다 제가 먼저 준비했어야 했는데....... 사색이 된 윤재하가 손을 뻗으며 만류했지만 이미 각자의 몫을 따라낸 후였다. 물컵을 건네며 김석영이 말했다.
"어른 공경하듯이 하기엔 내가 너무 젊지 않나."
"......."
"애쓸 필요 없다는 소리야."
누구 말마따나 사회성이 부족해서 불필요한 예의 따위에 애쓰는 건 귀찮기만 했다. 생수로 목을 축이고 의자에 비스듬히 상체를 늘어뜨린 김석영이 묵직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잠을 못 잤나.......'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많이 피로해 보였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으나 옷차림 역시 평소와는 달랐다. 검은 양복에 검은 코트라니. 그의 많은 모습을 본 건 아니지만, 어쩌다가 마주칠 때면 늘 넉넉한 스웨트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이렇듯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무언가 달라 보였다. 약간은 길다고도 할 수 있는 흐트러진 머리만 아니었다면 능력 있는 회사원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남자는 정말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왜 저를 도와주는 걸까. 단순히 호의라 할지라도 베푸는 것엔 무언의 형태로나마 대가가 필요하다. 무한한 자비와 선의를 가진 베풂에도 분명히 되돌아가야 할 것이 있다. 베풀어진 것을 양식 삼아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의 짐 역시 대가의 형태이다.
......나는 지금 이 사람한테 얼마만큼의 빚이 있나.
일이 구해질 때까지의 시간과 주거의 자유를 주었고 김민재의 일을 해결해주었다. 그도 모자라서 이제는 병원비까지 더해졌다. 지금의 식사도 윤재하에겐 작은 빚의 일환이었다. 김석영의 호의를 빌미 삼아 도우미 일을 이어가려고 했던 주제에 불편함을 느끼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죽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 모두 잊고 있던 식욕이 돋아났다.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죽그릇을 나란히 올려둔 김석영이 제 몫을 따로 담으며 눈짓했다. 그의 손길이 먼저 닿은 죽을 뜬 윤재하가 숟가락을 들었다.
적당하게 푼 죽을 끌고 와 톡톡 입술 끝에 가져다 대니 단숨에 삼키기엔 뜨거웠다. 호오, 입김을 불어 열기를 잠재우고 나서야 맛을 보았다. 고소하지만 감칠맛이 났고 씹지 않아도 되니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맛있었다.
입술의 표면과 입안에 난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게 눈 감추듯 제 그릇을 비운 윤재하가 김석영의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다 비워가고 있었다. 때마침 남은 죽을 싹싹 긁어먹은 김석영이 다른 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적당량을 덜어낸 그가 국자의 방향을 잡기 편하게 돌려주었다. 머쓱한 기분에 멈칫한 윤재하가 바톤을 이어받듯 국자를 들어 죽을 덜어냈다. 이번 것도 맛이 좋았다.
아무런 대화 없이 식사가 이어졌다. 입이 짧은 김석영이었으나 그 역시 허기가 졌던 모양인지 제법 부지런히 죽을 먹었다. 그렇다 해도 한 그릇을 다 비우진 못했고, 남은 죽은 윤재하의 몫이 되었다. 만든 이가 다 뿌듯할 만큼 깨끗하게 비운 그릇에 김석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김석영이 이미 반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서둘러 일어난 윤재하가 옷을 챙기고 그의 뒤를 따랐다. 값을 치른 김석영이 카운터에 있던 사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잡다한 게 섞여 있는 것을 뒤적거리다가 두 개를 고르곤 식당을 나섰다. 한걸음 물러선 윤재하를 돌아본 그가 손을 내밀었다. 주먹 쥔 손이 펼쳐지고 보이는 손바닥 위엔 멜론 맛 사탕이 있었다.
"너는 멜론 맛. 나는 누룽지 맛."
왼손가락으로 집어 든 누룽지 맛 사탕을 흔든 김석영이 얼른 집어 가라는 듯 눈짓했다.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윤재하가 조심스럽게 사탕을 집어 가며 읊조렸다.
"......왜 난 멜론 맛이에요?"
"어리잖아."
"......."
그럼 그쪽은 늙어서 누룽지 맛이에요?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려는 말을 꾹 삼킨 윤재하가 바스락거리는 사탕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에 안 드나 봐. 나름 고민해서 고른 건데."
마음이 안 드는 것보다도 고심해서 고른 안목의 이유가 궁금해서 가만히 있자 김석영이 답한다.
"딸기나 포도 맛은 흔하잖아. 오렌지 맛은 감기약 맛이 나서 별로고. 계피 맛은 네 연령대엔 안 좋아하지 않나? 고민하던 와중에 멜론 맛이 딱 하나 숨어 있더라고."
"......"
어른 공경하기엔 젊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으면서. 그는 꼭 어린애를 대하는 어른처럼 말했다. 스물넷은 절대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 그렇다고 이 생각을 곧이곧대로 입 밖에 꺼냈다간 진짜 어린아이처럼 변명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고집스레 꾹 다문 입술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김석영이 걸음을 뗐다. 택시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평균치보다 월등히 높은 키를 가진 두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기엔 택시의 좌석은 턱없이 비좁았다. 맞닿는 어깨에 쏠리는 신경을 억지로 끊어내며 차창에 머리를 기댄 윤재하는 도시의 불빛으로 언뜻 비치는 남자를 훔쳐보았다. 시선을 느낄까 하는 염려는 필요 없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쭉 올라가요? 유턴하기 힘들겠는데."
"초입에서 세워주시면 됩니다."
택시 기사의 말에 눈을 뜬 김석영이 눈꺼풀을 간질이는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역시 피곤해 보였다. 그의 피로감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아 죄스러워진 윤재하가 한숨을 삼켰다.
"수고하세요."
히터의 열기로 답답하던 택시를 빠져나오니 겨울의 한기가 마냥 달갑기만 했다. 비좁은 공간에 몸을 구긴 탓에 찌뿌드드한 목을 가볍게 돌린 김석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걸음 물러서 있던 윤재하는 시선을 내리깐 채 목도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상현과 동갑이라 했던가.'
물에 빠져 죽으면 입만 동동 떠오를 만큼의 촉새인 제 사촌과는 달리 윤재하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삼키려 했다. 저 작은 머리통 안에 무수한 고뇌가 휘몰아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퍽 안쓰럽기도 해서, 김석영이 그답지 않게 신경을 쓰고 만다는 걸. 저 말간 낯의 청년은 알고 있을까.
뒤따라 경사를 오르는 기척을 등으로 느끼며 저택에 다다르자, 핏줄이 돋아난 주먹을 멈춰 세우고 굳어 있던 윤재하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침잠되어 있던 눈으로 돌아오는 이성과 뒤따르는 당혹감엔 언뜻 절망과도 비슷한 것이 섞여 있었다. 이해한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있으니까.
평소의 김석영이었다면 못 본 척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제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널브러져 있던 인간의 몸에 융화된 악귀가 노인이 말했던 것과 연관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며, 무결점의 낯 위로 새겨진 상흔이 아파 보였고, 그게 못내 거슬렸던 탓이었다.
"윤재하."
"......네."
안온하던 일상에 끼어든 것이 미세한 잡음을 일으켰다. 귀찮고 거슬리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만다.
휘말린 것은 나일까, 아니면 윤재하일까, 하는.
어찌 되었든.
"내게 해야 할 말이 있을 거야. 나는 너한테 들어야 할 말이 있거든."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런데 오늘은 너에게도 피곤한 하루였을 테니."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 꼭 오늘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묻지 않을게. 대신 너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날 찾아와. 그게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
"대답해야지."
달싹이던 입술이 벌어졌으나 대답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다는 듯, '그래'라고 대답한 김석영이 대문을 열었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 맞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코트의 주머니를 뒤진 김석영이 처방받은 약 봉투를 던졌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것에 황급히 대문을 넘어서 저택으로 달려간 윤재하가 간신히 잡아챘다. 떨어져서 깨지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몸이 불쑥 튀어 나갔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자 숲길을 향하고 있는 김석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내 어둠이 그를 삼켜버렸다. 바스락거리는 약 봉투를 품에 안고 사라진 잔상을 그리던 윤재하는 한참을 서 있다가 비로소 걸음을 뗐다.
「화났어?」
힘없이 고개를 저은 윤재하가 형체의 곳곳을 살폈다. 지친 낯 위로 더해진 걱정에 윤재하를 감싸 안은 그가 힘겹게 말했다.
「괜찮아. 재하야. 난 괜찮은데, 네 얼굴이 이게 뭐야. 속상하게 정말.......」
"나도 안 아파. 괜찮으면 됐어."
그는 여느 때처럼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저택으로 돌아오는데 악한 냄새를 풍기는 사귀와 그것을 붙든 남자를 보았다고 했다. 김석영이었다. 그에게서 흐르는 기운이 너무도 무서워서 다가갈 수 없었다고 말한 모친은 제 나약함을 탓했다.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윤재하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말하면서.
「그 남자가 여기 주인이구나.」
"응."
「무서운 남자였어.」
윤재하를 껴안은 형체가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진정하라는 듯 등을 토닥이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재하는 안 무섭니?」
"......무서운 때도 있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오히려......."
「오히려?」
"......."
다정한 구석이 있다고 말하기엔 그다지 친밀한 사이가 아니어서 말을 삼켰다.
"아니야, 아무것도."
재차 고개를 저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인 윤재하가 엄지손톱만 한 사탕을 만지작거렸다.
"내게 해야 할 말이 있을 거야. 나는 너한테 들어야 할 말이 있거든."
"......"
단순히 김민재와의 소동만을 묻는 것 같진 않았다. 사귀를 처리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해야 할 말에 모친의 존재를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숨겼던 것은 아니지만 사귀를 단번에 잿더미로 만드는 능력을 갖췄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가 알지 못하도록 모친을 숨겨야 했다. 어차피 곧 이곳을 떠나야 할 처지이니 지금의 상황만 잘 모면하면 되지 않을까.
"......."
속 깊은 한숨을 눌러 삼킨 윤재하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하는 행위에 단 한 번도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김석영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왜 그래. 아파?」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하지만 이것 역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흐릿한 형체로만 존재하는 모친은 그에게 남은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 그가 어린 저를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가 모친을 지켜야 했다.
"엄마."
「응. 재하야.」
"내일 고시원 계약할 거야. 이제 여기서 나가자."
「......이렇게 갑자기?」
탐탁지 않은 듯 묘한 얼굴로 형체가 물었다.
"일 잘렸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어차피 나가야 했어. 게다가 오늘 일도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은 아니야. 그 사람이 엄마의 존재를 알고 있을 수도 있어."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상황에 따라서 사람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어."
말을 하면서도 명치가 묵직하게 조여왔다.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혼자 밖에 나가지 마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무서워......."
목소리의 끝이 떨렸다. 쓰게 웃은 형체가 윤재하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할게. 재하 말대로 할게.」
그의 다정한 손길이면 금세 안정을 찾던 마음이 오늘따라 고집을 피워서, 윤재하는 못내 스스로를 다그쳐야 했다.
* * *
아침 식사가 그대로였다. 무감한 낯 위로 어른거리던 피로를 떠올린 윤재하가 묵묵히 보온 박스를 수거했다. 뒷정리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한 그는 형체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미리 봐두었던 고시원의 주변과 호실을 꼼꼼하게 살폈다. 영가들이 있긴 했지만 형체에게 해코지를 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한 달짜리의 단기계약을 마쳤다. 떠나는 것에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시원의 두 평 남짓한 방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낡고 비좁게 느껴졌다. 아마 김석영의 저택에서 지낸 것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월등히 키가 큰 윤재하에겐 온전하게 두 다리를 펴지도 못할 구조였다. 씁쓸히 한숨을 내쉰 형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낡았던데....... 덜컥 계약하지 말고 다른 곳도 좀 알아보지 그랬어.」
"따지는 게 많아지면 어딜 가든 불편해지잖아. 이 정도면 돼요."
그러니 새삼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나갈 여건이 안 된다면, 쾌적하고 안온한 것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쓸데없는 바람만 늘어나 현실을 비관하고 말 테니.
돌아가는 길에는 장을 봤다. 저녁 식사를 만들고 사랑채에 향하려던 윤재하는 노파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형체에게 당부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숲길로 오지 말고 도망치라고. 어떻게든 찾으러 갈 테니 숨어 있으라고.
아무래도 어제의 일이 느슨했던 경각심을 일깨웠던 모양이다. 형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윤재하가 발걸음을 뗐다.
숲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딸랑― 청량한 종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가옥의 기운이 거세진 게 느껴졌다. 대문을 넘어 사랑채의 툇마루에 보온 박스를 올려둔 윤재하가 고택이 있을 안채의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미세한 막 너머에 김석영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가 찾아온 것일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번 생겨난 궁금증은 쉽사리 가시질 않아, 자꾸만 그의 영역을 침범하고픈 충동을 일으키려 했다.
'주제넘게 선 넘지 말자.'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끝내 한숨을 내쉰 윤재하가 점심용 보온 박스를 열었다. 다행히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저택을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부쩍 살이 빠진 것 같았다. 아침을 거른 것도 모자라 점심까지 걸렀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다시 뚜껑을 덮고 보온 박스를 안아 든 그는 사랑채를 벗어났다.
저택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단출한 짐을 정리했다. 애초에 늘어놓고 생활할 만큼의 짐도 없었던 터라 금방 끝이 났다. 다만 한가지 눈에 밟히는 게 있다면 김석영이 건네준 파카와 목도리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게 주었다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행색이 초라해서 잠시 빌려준 거겠지만 한번 온기를 맛보고 나니 욕심이 났다. 실로 못난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옷은 뭐니? 산 거야?」
옷의 표면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형체가 물었다. '아니' 하며 고개를 젓자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사람이....... 빌려줬어."
「그랬구나. 좋아 보인다.」
멋쩍게 웃은 윤재하가 텅 빈 옷장에 파카와 목도리를 차례로 걸어두었다. 문을 닫으려는 찰나, 불쑥 떠오른 것에 황급히 파카의 주머니를 뒤져 손에 쥐었다. 멜론 맛 사탕이었다. 웬 거냐고 묻는 형체에게 또다시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른 말이긴 했다.
"그냥....... 그 사람이 줬어."

তেওঁ মই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