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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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겉보기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낯을 하고 있었지만, 윤재하의 지독한 명줄은 차사가 찾아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생을 이어받은 김석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먼 의식의 저편에서 헤어 나온 건 벚꽃이 만개한 봄의 절정이었다. 먼저 눈을 뜬 김석영은 시야에 잡힌 분홍빛의 색채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때마침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방문한 남자가 깨어난 김석영을 확인하곤 황급히 다가갔다. 괜찮냐 묻는 그에게 죽다 살아난 김석영이 돌려준 말은 가히 가관이었다.
“낙하한 벚꽃 중에 가장 성하고 가장 예쁜 거로 주워줄래요?”
“……벚꽃?”
남자가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니, 창밖에 시선을 떼지 않은 김석영이 입을 뻐끔거렸다.
“윤재하 귀에 꽂아보고 싶어서요.”
예쁠 것 같지 않냐고 덧붙이면서.
남자는 서늘하게 식어버린 얼굴을 하면서도 김석영의 바람대로 밖을 나섰다. 가장 아름답게 만개한 벚나무의 아래에 선 그는 꽃을 바라보며 협박 어린 말을 중얼거렸다. 파스스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져 나간 꽃이 남자의 손바닥 위로 안착했다. 누군가의 바람처럼 가장 성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하자, 남자의 도움을 받아 병실을 나선 김석영은 곧장 윤재하에게 향했다. 술수로 인해 시들지 않고 생생한 벚꽃을 손안에 담고서 잠든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드라운 머리칼을 손가락에 휘감고, 왼쪽 귓가에 벚꽃을 꽂아 넣었다. 막연히 상상하던 것보다 더 예뻤다. 미소를 머금은 김석영이 말간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부드러운 어조로 속삭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마치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윤재하가 눈을 떴다. 흐릿하던 시야가 걷히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남자의 얼굴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잘 잤어?”
뺨을 쓰다듬는 손바닥에 고개를 묻은 윤재하가 뻐끔거렸다.
“보고 싶었어요.”
간지러운 입 모양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김석영이 답했다.
“나도 그래. 보고 싶었어.”
그래서 도저히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리 속삭였다.
“징한 것들 같으니.”
의식을 되찾은 두 사람은 빠르게 호전되어 일반 2인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두 환자를 질린 듯이 바라보던 남자가 읊조렸다. 그 말에 코웃음을 친 김석영은 탐스러운 사과를 곱게 깎아 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매를 접었다. 시선을 맞춘 윤재하는 발갛게 볼을 붉히며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곧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사과를 포크에 찍어 건넸다.
“……염병할.”
포크를 잡는 척하며 손을 훑는 김석영을 보니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질린 듯한 낯짝을 흘끔 바라본 윤재하가 포크를 건넸으나 남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황천길 건넜을 것이다. 알고 있나?”
“네. 알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날 선 호통에 돌아온 건 태평한 인사였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남자는 이내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한숨에 섞인 웃음은 안도를 머금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 날. 새벽의 동이 터올 때쯤 걸려 온 전화에 달려나갔던 현장은 처참했다. 피 웅덩이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널브러진 두 남자는 시체와 다름없었다. 불쑥 들려온 한숨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살아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그만큼 두 사람의 상처가 심했다.
「명줄이 이어져서 숨은 붙어 있으나, 이대로 두었다간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으니 병원에 데려가시지.」
차사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별안간 입을 떡 벌렸다.
“며, 명줄이 이어졌다고?”
「그래. 저놈이 김가의 명줄을 늘려놨다. 정확히 수명의 반을 나눠줬더군. 내 김가와 얼굴을 마주한 세월도 있으니, 기껏 정중히 인도하려 했더니만. 헛걸음했지, 쯧.」
“아…….”
남자는 윤재하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낯으로 기절한 주제에, 입가에 미소를 매단 청년은 달콤한 꿈을 꾸는듯했다. 어쩐지 웃음이 터져 나와 입술을 꿈틀거린 남자는 연신 구시렁거리면서 저승길로 떠나버린 차사를 배웅했다.
남자는 귀기를 놀려 엉망이 된 공간을 정리하고 반 시체 두 구를 병원으로 옮겼다. 사건이 커지지 않도록 최면을 부려 사람들의 눈도 가려주었다. 남자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도움을 바라고 구급차가 아닌 저를 불렀다는 사실을. 노고의 값은 삶의 끝자락에서 돌아온 것 자체로 충분했다.
창백하게 질린 낯에서 따스한 생기가 돋아난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줄 알면 됐다는 말을 읊조리면서.
* * *
신록이 창취한 초하(初夏)였다.
답답한 병원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앙상하던 가지를 기억하던 윤재하는 푸른 숲의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리쬐는 빛줄기가 다갈색의 망막에 맺혀 반짝였다. 자연의 색채가 어우러진 눈에 시선을 빼앗긴 김석영은 가슴속에 퍼지는 온기에 설핏 미소 지었다.
그가 웃을 때면 귀신같이 알아채는 윤재하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맞부딪히기 무섭게 입매를 내린 김석영이 부러 의아한 눈빛을 만들어내자 아랫입술을 삐죽거렸다.
“뭐예요. 내 미소 돌려줘요.”
“웃기지 마. 내 미소는 내 거야.”
“내 지분도 있잖아요. 빨리요.”
깍지 낀 손을 흔든 윤재하가 재촉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과장스레 한숨을 내쉰 김석영이 입술을 올렸다. 미소를 받아낸 윤재하는 나비의 수염 같은 보조개를 보여주었다. 흐드러지게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인디언 보조개는 김석영이 사랑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손끝으로 보조개를 문지르며 입을 맞추자 간지러운 웃음이 이어졌다. 화답하듯 키스를 퍼붓던 윤재하는 손안 가득 느껴지는 온기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생을 받아마신 김석영은 부쩍 체온이 올랐고 창백하던 낯에도 생기가 깃들었다. 그게 왜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건지. 윤재하는 틈이 날 때마다 손을 뻗어 온기를 매만졌다.
“손길이 질척한데.”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느른한 낯을 한 김석영이 거짓을 속삭였다.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윤재하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손을 내렸다. 곧장 얽혀오는 손가락에 웃음을 삼켰다. 그대로 손을 잡고 안채에 다다른 그들은 대청에 널브러진 인영을 발견하곤 우뚝 멈춰 섰다. 인기척을 느끼기 무섭게 몸을 일으킨 이상현은 오묘한 표정으로 맞잡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우리 형이 게이라니…….”
“게이 집엔 찾아오려면 미리 허락받아야 하는 거 몰라? 겁도 없긴.”
대놓고 혀를 차는 것에 눈을 부릅뜬 이상현이 소리쳤다.
“왜! 둘이서 뭐 하려고? 뭘 숨기고 싶은데?!”
“보여줄 맘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
은근한 속삭임에 귓불을 붉힌 윤재하가 입술을 달싹인다. 불순한 렌즈를 장착한 이상현에게 그 모습은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는 것처럼 보였고, 느른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김석영은 순진한 사람을 꼬여내는 시정잡배와 다를 것 없었다.
“……도둑놈.”
소리가 절로 나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쟤 나랑 동갑이야. 이 도둑놈아!”
당신이 고등학교 졸업장 받을 때 저 녀석은 초등학교 졸업장 받았다며 소리친다. 내심 나이 차이가 신경 쓰였던 윤재하는 짜증스런 눈으로 이상현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어리게만 볼까 봐 걱정인데, 굳이 나이 차이를 확인시키는 망나니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김석영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얼굴로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래. 앞으로 네 인생에 연상은 없는 거야. 혹시라도 만났다간 지금 나한테 했던 말, 네 상대방에게 그대로 돌려줄 거란 것만 기억하고.”
“허! 난 무조건 동갑이 좋거든? 연상을 왜 만나냐?”
빼액! 소리를 치며 호언장담한 이상현은 훗날, 이날의 발언을 후회하게 되지만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사촌 동생의 연애사엔 일말의 관심도 없던 김석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안채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을 구석구석 꼼꼼히 눈에 담은 그는 연신 아랫입술을 불퉁하게 내밀고 있는 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돈 값도 못하는 망나니는 아니라 다행이네.”
“…….”
열심히 청소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저렇게 비꼬면서 해야 할까.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짜증을 발산한 이상현이 윤재하를 돌아보았다.
“……야. 너는 정말 저 인간이 좋냐?”
“응.”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꾸에 허탈해진 건 이상현이었다. 펄펄 끓어오른 열을 단번에 식게 해준 대답에 전의를 잃고 말았다. 어휴, 한숨을 폭 내쉰 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리며 드러누웠다. 송골송골 묻어난 땀을 훔치며 주방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때. 그들을 뒤따르는 빛무리가 불쑥 시야에 꽂혔다.
“어?”
희미한 빛무리는 돌아가신 조부처럼 맑은 기운이 묻어났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그것은 점점 이상현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제 사촌처럼 선명하게 영가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순 있었다.
그 예로, 지금 눈앞에 어른거리는 빛무리처럼 맑은 기운이 묻어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해를 끼치는 영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킨 이상현이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
빛무리가 진동하듯 움직였다. 마치 인사에 화답하여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이상현이 히죽 웃어 보인 찰나, 불쑥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 윤재하가 입을 열었다.
“거기서 뭐 해요?”
“어? 나?”
뭐야, 갑자기 웬 존댓말이래. 휘둥그런 눈을 한 이상현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묻자 고개를 내저었다.
“너 말고.”
“나 말고? 나 말고 누구?”
“엄마.”
멀뚱하게 눈을 깜박이던 이상현은 묘하게 비껴간 다갈색의 시선을 따랐다. 또다시 진동하듯 움직이는 빛무리에 눈길이 닿은 순간, 번쩍이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어, 어머니? 윤재하의 어머니?”
깜짝 놀란 이상현이 울상을 지었다.
“아이고, 어머니이신 줄도 모르고……. 이해해주세요. 제가 눈이 덜 트여서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재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상현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넨 이상현이 휙 고개를 돌렸다. 제게 꽂히는 눈길에서 단번에 생각을 간파해낸 윤재하가 멋쩍게 말했다.
“……뭐, 반가우시대.”
“앗, 저도 반갑습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설핏 웃음을 터뜨린 윤재하가 형체를 바라보았다. 재밌다는 듯이 웃은 그가 따스한 눈빛으로 시선을 보냈다. 조여오는 숨을 조심스럽게 가다듬은 윤재하가 눈매를 늘어뜨린다.
형체와의 오해를 풀고 모든 사실을 깨달은 그 날. 악귀의 바람대로 형체와의 상성이 완성되었다. 그를 집어삼킨 악귀는 맞닿은 상성을 이용해 몸을 빼앗았고, 의식 아래로 가라앉고부턴 영영 형체를 잃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행히도, 악귀에게 삼켜졌던 형체는 가장 마지막에 스몄던 탓에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을 수 있었다. 위협을 느낀 악귀가 원혼을 떨쳐내던 순간에 정신을 되찾은 그는 온 힘을 다해 윤재하를 도왔다. 형체가 아니었다면 분명 힘겨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기력을 쏟아붓고 기나긴 잠에 빠졌을 때도 형체는 윤재하와 함께했다. 깊은 의식 너머에서 마주한 둘은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처 하지 못했던 무수한 말들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온전하게 서로를 마주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비록 흔적은 남았지만 더 이상 아프진 않았다. 길었던 겨울이 잠들고 봄이 만개한 어느 날. 윤재하와 함께 눈을 뜬 형체는 떠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겹겹이 쌓인 미련을 한 꺼풀, 한 꺼풀 벗어냈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온몸을 짓누르던 무게에서 벗어난 형체는 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남겨질 이에게 인사를 고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만남을 기다린다.
“이제 그만 갈까요.”
목을 축이고 주방에서 나온 김석영이 형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형체가 놀란 낯의 이상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웠어요.」
본능적으로 마지막을 느낀 이상현이 빛무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심히 가세요. 떠나는 길엔 평안만이 가득하길, 마음 깊이 바라면서. 안녕을 빌었다.
“너도 이제 돌아가.”
“응. 알았어.”
소중한 누군가가 곁을 떠난다는 건 늘 슬픈 일이었다. 코를 훌쩍인 이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꼼지락거리며 신발을 신는 그때,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깜박거리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윤재하의 손을 잡고 마당을 가로지르던 김석영의 뒷모습이 희미해져갔다. 지금의 저로선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세상으로 향한 그들은 곧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뭐야, 안 어울리게.”
손길이 닿은 머리칼을 쓱쓱 매만진 이상현이 입술을 삐죽였다.
연락조차 안 되고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의 조부처럼 김석영 역시 이승을 떠난 것이라 여겼다. 모질었던 성정처럼 인사도 없이 떠난 사촌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봄이 무르익던 어느 날, 불쑥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이상현은 내내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특유의 무심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사촌은 안채의 관리를 부탁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연락을 준 김석영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현의 눈에는 다 죽어가는 환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람이 어찌 이리 무심할 수 있냐.”
“너는 인간도 아니다. 네게 감정이란 게 존재하냐.”
“너는 주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인간이니, 평생 혼자 살아라.”
슬픔으로 지새웠던 만큼 원망의 말들이 쏟아졌다.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면서 울분을 토해내는 이상현을 잠재운 건 폭탄과도 같은,
“안돼. 윤재하랑 살아야 하거든.”
커밍아웃이었다.
“도둑놈. 도둑놈.”
가는 눈으로 빈 허공을 노려보던 이상현이 몸을 일으켰다. 연신 투덜거리는 입과는 달리, 안채를 벗어나는 발걸음은 더할 나위 없이 경쾌했다.
* * *
「저승길은 외롭고 삭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름답구나.」
푸른 초원을 바라본 감상이었다. 어깨를 으쓱인 김석영이 말했다.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변하기도 하죠. 저승의 형태는 다양하거든요.”
「그렇군요.」
설핏 웃은 형체가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 모른다. 온유한 낯빛으로 그들의 세상을 마주한 형체가 걸음을 떼어냈다. 기억을 보지 않고 찾아가는 길은 멀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다 왔네요.”
어느새 경계의 지점이었다. 헤어짐의 순간을 앞두고 북받치는 감정을 삼켜낸 윤재하가 형체를 바라보았다.
「재하야.」
아이는 미련한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함께했던 세월은 소중한 일부가 되어 남은 삶을 이어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형체는 마음속의 어둠이 걷혀, 찬란하게 빛나는 청년을 끌어안았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
“응. 나중에 다시 만나요.”
훗날을 기약하며 형체는 떠났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재하는 흐드러지게 미소를 지었다.
긴 기다림의 지루함을 저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던 아이는 새로운 잡동사니로 몸을 치장한 채였다. 여느 때처럼 물 위를 건너는 망자들에게 손을 흔들던 아이가 불쑥 몸을 돌렸다. 제게 다가오는 기척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더니 곧 빠르게 지면을 박찼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품에 안겨, 오래도록 참아온 눈물을 토해냈다. 윤재하는 재회의 순간을 선물처럼 눈에 담았다.
“……드디어 만났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아이는 물 위를 건넜다. 자라나지 못한 손을 단단하게 붙들어준 어른의 손과 함께.
“쓸쓸해?”
단단하게 조여오는 손깍지에 시선을 옮긴 윤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당장 주어진 이별의 아픔보다는 먼 훗날 이어질 재회의 순간을 상상했다. 다시 만난다는 믿음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
지금 그에겐 남은 삶을 함께할 사람이 있으니까.
“사랑해요.”
사랑을 속삭일 때마다 입맞춤을 내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사랑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나란히 걸음을 맞춘 두 사람은 푸른 초원을 거닐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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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Mar 05,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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তেওঁ মই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