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린 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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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조금씩 산책 시간을 늘려갔다. 처음에는 갑자기 황제가 나타난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는데 - 그는 우연인 척 했지만, 아무리 봐도 고의였다. -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일단 황궁은 엄청나게 컸다. 예상보다도 엄청난 크기에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 황궁의 중심부보다 조금 오른쪽에 있었다. 궁의 중심부에는 예전에 내가 아침 식사를 하러 갔던 황제의 궁이 있었다. 연못으로 둘러쌓인 그 황제의 궁은 유사시에 연못에 악어를 풀어놓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리들도 무슨 단추를 누르면 전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궁이 가장 중심부에 있고,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온실이 오른쪽 윗쪽에 있다.
일단은 황제의 궁보다 외부와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정작 담을 본 적이 없어서 넘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내 모든 것은 황제에게 보고가 들어가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도망친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글을 배운 것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유브라데어는 영어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지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황제의 서고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 것은 황제의 배려였다. 그는 내가 돌아다니는 것보다 어느 한 구석에 쳐박혀 있는 쪽을 환영했고, 그래서 내가 서재에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했다.
하루 종일 나는 글자가 적은 책들부터 매달렸다. 하루 종일 매달리고도 모르는 글자들은 비서관에게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라프라 시녀장도 글을 알고, 시녀 누나들도 글을 알아서 대답해 줄 사람은 많았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내 수능성적은 끝내줬을텐데. 지금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것을 살짝 후회하면서, 나는 사흘이나 쳐박힌 끝에 황궁 배치도를 찾아냈다.
일단은 무리였다. 황궁을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아아주 무리였다. 황궁은 지나치게 컸던 것이다. 황궁의 주변은 숲뿐이었다. 숲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와 비교해 본 결과는 그랬다. 황궁이 중심에 있다고 했을 때 그 주변은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그 숲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라는 원 안에 숲이라는 원, 그리고 그 원 안에 황궁. 이런 구조였던 것이다. 맙소사, 이 황궁을 어떻게 빠져나가.
절망스러웠다.
결국 배치도며 지도며 잘 집어넣고 하루 종일 황궁내를 서성거렸다. 그래봐야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내 온실이 있는 하렘구역부터 황제의 궁까지. 그나마도 왼쪽 건너에 있는 황제의 숲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하렘내도 충분히 아름답기는 하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수많은 화초들, 미로같은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소규모의 방들.
아름다운 누님들.
눈 보신은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심난했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잖 아. 아무리봐도 없다.
아니야, 그런 게 어딨어. 난공불락이니 뭐니 하는 감옥에서도 사람이 빠져나가는 판국이야. 웃기지 마. 이 동네는 인터넷도 없어. 일단 빠져나가면 될 거야.
걸으면서도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어떤 여자가 갑자기 정원 수풀을 헤치고 달려나오다 나랑 마주쳤다. 놀란 그녀가 잘 못 서서 넘어지려는 걸 내가 겨우 잡아주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웬만한 시녀 누나들도 나보다 큰 데 이 아이는 작다.
울었는지 빨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가여워졌다.
「괜찮아요?」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고 하려다 생각났다. 전에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황제 궁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녀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시녀장이......
「이게 무슨 행동이십니까? 기혼에서는 공주께 예법을 가르치지 않는 겁니까?!」
이렇게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공주였어? 그런데, 시녀장 왜 이래요?
「마마, 가시죠! 이런 곳에 더 계셔봐야......!」
시녀 누나들도 가차없이 적의를 드러내는 가운데 공주는 혼자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나와 공주와 새 어머니가 겹쳐졌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굳어져서 나왔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다들 왜 이래요? 먼거 가 계세요.」
「마마......」
다들 만류하는 목소리가 늘어졌다. 그들이 나를 모시고 있는 건지, 나를 감시하는 건지 순간 짜증이 났다.
「먼저 가 계시라니깐요! 아니면, 지금 절 감시하시는 건가요?!」
지나친 말이었다. 내 말에 시녀 누나들이 일제히 시녀장을 쳐다보았다. 당황한 얼굴이었다. 나도 당황스러워. 한숨을 토했다. 실은 이 시녀군단도 꽤 짜증스러웠다. 없으면 좀 자유로울 것 같은데 완전히 지쳤다. 왜 이렇게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쫓아다니는 건가.
「조금 후에 다시 뫼시러 오겠습니다.」
시녀장은 그 말을 남겨놓고 시녀들을 데리고 갔다. 마지막으로 보낸 시선은 염려로 가득찬 것이어서, 더더욱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래, 저 사람들은 감시를 하려는 게 아냐. 그냥 나를 돌봐주려했을 뿐이지. 단지, 그 돌봐주려는 그 부분이 내게는 감시가 되지만.
「괜찮아요?」
그녀는 어렸다. 내가 그렇게 묻는 순간, 그녀는 무너졌다. 내 품에서 그녀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통곡에 가까운 그 울음소리 때문에 더 우울해졌다. 나도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무릎이 꺽인채로, 체중을 전혀 모르는 남자에게 맡긴 채로 여자는 무척 많이 울었다.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