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나는 멍하니 네트를 바라보았다 멍한 것은 나만이 아닌 듯 상대도 굳은 얼굴로 네트를 노려보고 있었다.강서버 아니 '광서버'라고 불리는 상대의 세컨드 서브가 네트를 맞고 떨어졌다. 오늘만 해도 폭풍처럼 서미스 에이스를 따내던 상대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 5세트의 15-40 이 중요한 순간에 그가 서브 미스를 낸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멍한 가운제 심판이 승리를 선언한다. 심판의 선언이 방송되는 순간 침묵의 코트에서 갑자기 열광이 물결쳤다. 와아아아아아--------- ! 그 소리에 나는 도리어 놀라고 말았다. 깜짝 놀라 어깨를 떨자 상대가 하아, 하고 한숨처럼 웃었다. 그가 네트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내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서 오라는 제스처에 몸이 떨렸다.
유령을 본 사람처럼 휘청휘청 걷자 상대가 손을 내밀었다.[솔직히 조금 놀랐어]
그의 말에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놀랐어? 나는 완전히 놀라버렸는데.
[오늘 경기 정말 훌륭했어 꼭 결승까지 남길 바라]
[고마워 정말 좋은 경기였어]
내가 그 손을 맞잡자 그가 나를 휙 당겨 끌어안았다. 장난스럽게 어깨를 토닥인 그가 먼저 심판에게 향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심판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맙소사, 나는 QF를 통과하고 SF에 진출한다 윔블던 4강에 진출하는 것이다 나는 두 주먹을 쥐고 "우와아아아!"라고 괴성을 질렀다. 마음이 벅차서 표출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미칠 것 같이 좋았다. 핏속에 마약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발끝이 어지러웠다. 4세트 부터는 무릎도 쑤셨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팔이 잘려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더웠다. 너무나 더웠다. 더워서 숨이 막히고 머리도 녹았다.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눈앞이 일렁인다.
코트를 나오자마자 취재진이 나를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냈다.[생애최초로 윔블던 SF에 진출하시는데 소감은?]
[급격히 향상된 기량은 최근 영입한 길버트 데이먼 때문입니까?]
[서비스 에이스가 갑자기 늘었는데 서브 앤 발리어의 성향을 목표로 하십니까 아니면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목표로 하는 겁니까?]
[갑작스런 스태프의 물갈이는 뭘 의미하는 겁니까?]
[코치가 팀 포드에서 길버트 데이먼 으로 완전히 바뀐 겁니까?]
기자들이 시끄럽게 물어댔다 그들 얼굴에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해서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나왔다.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그들을 헤쳐나가 겨우 차에 오르는데 "헤일 와익스러와는 무슨 사이입니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시오엔의 이름이 나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시오엔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래 확실히 뒤져]
시오엔이 뭔가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기자를 확인했다. 기자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하긴 내 익숙한 기자라고 해봐야 몇 없고 그들은 아닌 것 같았다. 문득 기자들로 한 얼굴이 보였다. 흔들리는 긴 머리카락 그리고 다른 이의 몸을 지쳐 보이는 여자의 독기 어린 얼굴
[나디아 스미스?]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이 아니라 그녀의 얼굴이 먼저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오엔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가 사라진 뒤였다. 분명히 나디아 스미스였다. 시오엔이 혀를 찼다. 아직 끊지 않은 전화에 대고 그가 말했다.[하나 더 있다 나디아 스미스가 윔블던에 온 모양인데 역시 뒤져와. ....... 그래 그렇게 해 목적이 뭔지 그런 것도 알아내고 런던에 연고지나 지인이 있는지도 알아봐]
시오엔이 내 머리를 감싸고 그의 어깨로 밀었다. 쉬라는 제스처에 순응해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광고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끊겼다? 어지간히 인덕 없는 여자군 그래 그래 기다리지]
시오엔이 전화를 끊은 기척이 느껴졌지만 눈을 뜨는 게 귀찮았다. 머리끝까지 오른 흥분 뒤엔 눈이 감겨왔다. 나는 세미파이널에 나간다 어쩌면 정말 진정한 의미의 센터코트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쟁반과 우승컵을 두고 벌이는 전쟁에 참여할 수 잇는 권리를 획득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