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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익슬러의 저택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멀리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디붉은 노을이 처연하다기보다는 그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지금 내 마음이 ㅁㅂ시 평온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택의 현관을 전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뒤에 서있던 와익슬러가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 갈 겁니까?"

그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그 가라앉은 목소리에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좋은 것고 같고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한 복합적인 기분은 느끼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가야 해요. 갈아입을 옷도 없고."

"옷이라면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어요."

와익슬러가 그런 핑계는 대지도 말라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라켓도 없어요."

나는 조금더 절실한 걸 말했지만 와익슬러는 다시 그 말을 부정했다.

"당신만 원한다면 세상의 테니스 라켓을 전부 가져올 수 있어요. 당신이 쓰는 종류든, 당신이 쓰지 않는 종류든."

"아버지가 걱정하실  거에요."

내 말에 와익슬러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졌다. 그는 뭐라고 할까. 세상의 아버지를 다 데리고 와주겠다? 너네 아버지든 남의 아버지든? 그렇게 말할 생각일까. 그렇게 말하는 와익슬러를 상상하고 슬그머니 웃는 내게 와익슬러가 무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저만큼 당신을 그리워하진 않으시겠죠?"

"우린 만난 지 이제 이틀째잖아요."

"당신의 입장에선, 그렇지만."

그는 마치 나를 십 년은 기다린 사람처럼 말해서 나를 난처하게 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가 흩날려 눈을 가늘게 뜨자 그가 손을 들어 내 눈을 감겼다. 어제도 그는 이렇게 내 논을 감겼었다. 섹스를 하기 직전이었고, 그가 우아한 태도를 벗어던지면서 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정중하고 기품 있는 태도로 내 눈을 가려주고 있었다.

"바람이 붑니다. 조금 더 있다 가세요"

어리고 약한 이를 대하는 것 같이 다정하게 위하는 말에 쿡쿡거리는 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나는 운동선수였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제법 성취를 보인 운동선수이긷 했다. 그런데도 그는 ㄴ가 이런 바람에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이 말을 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기분이 조금 좋기도 했다.

"가야 해요."

내 말에 그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바람이 자니가자 그가 내 눈 위를 덮었던 손을 떼었다. 눈을 뜨자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고작 내가 간다는 말에 이렇게 시무룩해있다. 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손을 뻗어 그의 양 뺨을 감싸자 그가 기다리는 것 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발 뒤꿈치를 들어 나보다 10센티는 커보디은 그이 이마에 키스했다.

"내일도 올게요."

내 말에 그가 눈을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금안이 기쁨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언제 오실 겁니까."

내가 아는 헤일 와익슬러는 이런 타입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게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철혈의 기업가였다. 와익슬러가 무슨 스캔들에 쉬말리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대며 욕했지만 그는 거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철혈의 이미지였고, 게다가 철의 자악에 가려 있는 신비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그가 다른 유명기업인들과 달리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중과 친밀해지려는 노력을 거듭하는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모습을 거의 노출시키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남자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쁨과 슬픔을 오가고 있었다. 철혈의 기업가도 할리우드 배우들을 수없이 갈아치우는 호색한도 아니었다. 뺨에 닿아있는 내 손에 기대 채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그저 친절하고 다정하며 점잖을 뿐이었다.

"언제 집에 있는데요."

내가 묻자 "종일 집에 있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럼 아무 때나......"

그의 얼굴이 다시 흐려질는 것 같아, 나는 서둘러 말을 정정했다.

"아니 점심때쯤 올게요."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