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엔은 민후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져 민후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
다. 이제 연세가 든 노 의학자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얄미운 게 흠이었다. 뻔히 분위기로 눈치 챘을 텐데도 사람을 도발하는 발언을 하고는 도망쳐버렸다. 시
오엔이 민후를 내려놓으며 눈으로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붕대에 오래 머물러서 민후를 난처하게 했다. 그는 정말이지 시오엔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다정하고 상냥하게, 그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꼬여간다. 상황이 그의 손을 벗어나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다.
어릴 때는....... 그러니까, 전전생의 시오엔과 있을 때 그는 상당히 잔혹했었다. 아마도, 어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삼
년 뒤엔 돌아간다던가, 당신은 황제니 그만큼의 의무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라던가........ , 잘도 그런 소리를 했구나 싶을 정도로 잔인했다. 몸은 좋지만
마음은 내키지 않아, 마음도 갔지만 그래도 정착할 순 없어. - 그런 말들을 하고 그런 태도를 보였었다. 어릴 때의 그는 그것이 솔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어른이 된 지금의 그에겐 몹시 간악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테지.
"또 다쳤군."
시오엔이 중얼거렸다.
"너는 계속 다쳐."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을 들으며 민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사람은 살다보면 다쳐."
위로하듯 말해보았지만 시오엔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왜, 몸을 함부로 다루는거야. 소중히 다뤄, 소중한 몸이야."
그 말을 하는 시오엔은 몹시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민후의 육체를 소중히 여겼는지는 누구보다 민후가 잘 알고 있다. 그는 민후와 - 정확
히는 민후의 크리스티와 - 만난 이래 내내 자신의 몸은 소중하다며 강력히 주장해 왔었으니까. 그런데 민후에게로 오자마자 이 몸은 계속 다치고 있다. 그것
이 미안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계속 붕대투성이가 되고 있잖아. 이렇게 예쁜 몸인데."
민후가 시오엔의 몸을 '타인의 몸'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시오엔도 민후의 몸을 타인의 몸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니, 시오엔은 아마 처음부터 민후의 몸을 타
인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민후는 짓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시오엔."
민후가 부르자 붕대를 들고 있던 시오엔이 말해보라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표정조차 새침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 민후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저 얼굴을 계속 봐왔고, 저 몸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고 있고, 몸에도 새겨져 있는데도 보면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이다. 시오엔이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저 아름다운 얼굴을 빛나게 했다. 자신에게 있을 때는 무미건조하던 얼굴이었는데, 소유주가 바뀌자마자 표정이 피어나오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시오엔, 이 몸이 좋아?"
민후의 질문에 시오엔이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몰라서 묻는 거라면, 오늘 밤이 즐거울텐데."
"아니, 아는데. ......... 그럼, 이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자위했었어?"
민후의 질문에 시오엔이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나이가 들긴 들었군."
시오엔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민후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했다. 웃으면서 손에 든 붕대로 자신의 턱을 톡톡 치던 시오엔이 장
난스럽게 눈꼬리를 내렸다.
"어떨 거 같은데."
"했을 거 같아."
"흐음."
민후의 즉답에 시오엔이 잠시 시간을 끌다 정답을 말해주었다.
"시도는 해봤어. 하지만 재미가 없어서 그만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