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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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엔은 정말 서른 살에 죽게 되는가? 그의 천수는 거기까지인가?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크리스티 국무대신의 형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시오엔이 황명으로 국무대신의 형을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시오엔은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는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내가 어디에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나는 감옥으로 숙소를 옮기게 되었다.


쪼잔하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 네글자가 쉼새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좀생이다. 물론 나도 거울로 내 눈동자를 보았더니 이상한 문양이 있어서 놀라고 화나기는 했다. 그러나 시오엔이 이럴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내 잘못도 아닌데 나를 냉큼 감옥으로 쫓아보내다니.
감옥 안은 또 화려해서 ‘애인에게 끝까지 잘하는 병’이 또 도졌나, 싶을 정도였다. 나한테 질렸나. 나에게 화가 났나. 그렇더라도 얼굴은 보이고 말하는게 예의 아닌가. 합방식을 할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니였나? 그 감정은 그냥 월인에게 신기한 정도였나? 아니면 다른 이가 자신의 사람에게 각인을 새겨둔 것을 배신으로 여기는 타입이였나? 이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왠지, 과거 때문에 애인과 싸운 여자의 심정이 되었다. 아니 여자들은 ‘너무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남자인 나는 ‘걸리면 다 죽었어’라는 각오로 늘 손가락 관절을 꺾고 있었다. 차라리 드래곤이 꿈에라도 나타나면 ‘지금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러느냐!’고 따져볼텐데, 그럴 수도 없다.
황제라서 그런걸까? 용서할 수 없는 걸까?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용서를 받아야 하냐고! 내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건 다- 시오엔 탓이잖아. 아아, 시오엔이든 용새끼든 걸리기만 해봐라, 아주 작살을 내주지.
창살 너머로 보이는 달은 여전히 예쁘다. 창백한 빛이 시오엔을 떠올리게 한다. 아, 나쁜 자식. 순진한 청소년을 몸으로 꼬셔놓고 이렇게 버리다니. 정말 나쁜 놈이다. 열받는다.
비서관이 가져다 준 책을 읽으며 꽤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감옥에 있든 시오엔의 방에 있든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국무대신과의 계약에 따르면, 나를 이년뒤에는 보내줘야 국무대신이 사는 것이니까. 잠깐 ‘시체로 보내주지’ 따위의 대사가 생각났지만 이 동네 신을 믿기로 했다. 레인지 데인지간에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그 정도 잔재주는 간파해주지 않겠어?
실은 우울하다. 시오엔이 나를 정부로 원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잠시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l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아,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그는 나를 좋아했어. 지켜줘,라고 속사이던 그 목소리. 도망친 나를 잡은 날 그 쓸쓸한 시선. 모든 기억들이 거짓이었다고 외면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두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크게 해보았다.
실은, 믿고 있다. 여기에 날 가둔 이유는 뭔가 있을거라고. 그가 지금 내게 오지 않는 것도, 뭔가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골드 드래곤과 관련이 있을거라고. 만나면 한 대 거하게 때려주긴하겠지만, 시오엔을 믿고 있다.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나는 여기에 가둘 사람도 아니고, 그는 나에게서 관심이 떠난 것도 아니다. 그저, 단지……그에게는 이럴 필요가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말은 하란 말이다, 말은! 입은 열어야 할 거 아니냐고!
일주일만에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갑자기 담배가 피고 싶다. 열받아서인지 어째서인지 알 수가 없다. 하나 확실한 건, 시오엔을 내 눈앞에 세워야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 이유로 나는 단식을 시작했다. 세끼를 다 먹지 않자, 그 다음날 아침 비서관이 보초의 엄중한 에스코트(를 빙자한 감시)를 받으며 면회를 왔다. 한국에서는 면회실이 따로 있지만, 이 빌어먹을 탑에는 면회실도 없다. 그녀는 쇠창살 밖에서 나를 만나야 했다.
의자라도 좀 가져다주지. 보초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일단은 죄인이고. - 어쩌면, 정말 죄인일지도 모른다. 매순간 믿음이 흔들리고, 다시 공고해지고. 멀미가 날것같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비 마마. 식사를 전혀 하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아.」
시오엔을 부르느라 단식을 한다는 소리를 하면, 비서관은 걱정하겠지. 찬바람이 부는 외모와는 달리 상냥하고 착한 비서관이다. 그녀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오엔은 나에 대해 보고받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고받지 않을 정도로, 시오엔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오싹해졌다. 관심이 없다면 - 아니,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자.
「그냥 입맛이 없어서요.」
「식사는 같은 주방장이 만들어 올리는데…… 속이 안좋으신겁니까? 의원을 데려올까요?」
「아니에요. 그냥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가봐요.」
내 말에 비서관이 당장이라도 걱정으로 압사될 것 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쇠창살에 달라붙었다.
「이런, 몸이 안좋으신건가요? 환경이라니, 어디가 문제신겁니까?」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모르겠는게 문제에요.」
내 말에 비서관이 아, 하고 의미없는 감탄사를(아니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뱉었다. 그녀는 잠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이 감옥은 정치범 수용소라서요.」
……나, 정치범인거야?!
평생 나와 관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단어가 튀어나와서 내 눈알도 튀어나올 뻔 했다. 정치범 수용소?
「여기라면, 다른 힘이 통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나, 골드 드래곤이라면.」
비서관의 손가락이 창살을 어루만지고 있다. 여자다운, 곱고 아름다운 손가락. 나는 그 손가락을 보면서 다른 이의 손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검을 쥐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손이 아닌가, 하고. 남자의 것이라기보다는 여자의 손가락처럼 보이는, 저 비서관의 손가락과 닮은, 그 창백하고 섬세한 손가락을.
「골드 드래곤은 이 탑에서만큼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비 마마를 일단 옮기신 걸거에요. 지금 폐하의 궁에도 결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간 나를 죄인으로 처박은 건 아니구나. 힘이 빠져서 침대에 걸터앉아야했다. 믿음과 의심의 갈팡질팡 댄스를 일주일 내내 초단위로 추었기 때문인지, 안심의 강도는 컸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온 몸이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시오엔은 저한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거죠?」
내 말에 이번에야말로 정곡을 찔린 듯한 얼굴로 비서관이 나를 외면했다. 그녀는 내가 추궁하려고 하자 갑자기 바쁘다며-그녀는 일년 내내 바쁘다,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지 않은가! 이제와 그 핑계라니! 내가 국무대신처럼 보이나!- 가버렸다. ……가버린다, 이거지?
좋아, 끝까지 해보자.
골드 드래곤의 힘이 통하지 않는 곳에 나를 두었다. - 라는 건, 시오엔의 마음이 내게서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는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내가 죽을테니까.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