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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과 트레이닝을 끝내고 벤치의 트레이닝 점퍼를 들었을 때 핸드폰이 굴러떨어졌다. 하진스 양이 건너줬던 그 핸드폰이다. 어제 시오엔고 통화할 때는 좋았었는데, 이 핸드폰도 돌려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재벌이란 핸드폰이든 시계든 껌 값에 불과한 걸까. 그럼 그냥 받을까? 연애를 난생 처음 해보니 그냥 받는 게 좋을지 받지 않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다.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줒ㅂ는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연애라는 건 두근두근하고 좋은데, 복잡하구나. 상대가 헤일 와익슬러가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지.
핸드폰 액정에 내려다보는데 문자표시가 보였다. 문자를 확인하자 하진스 양이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삼십 분 전에 연락주시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몹시 간단한 문자였다. 안젤라 하진스 보낸 이 이름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렇다는 건 그녀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버튼을 눌러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안젤라 하진스, 크리스토퍼 버넷, 헤일 와익슬러, 잭 루튼, 팀 포드.......
몇몇의 전화번호는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잭 루튼'이라는 이름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누굴까. 잠시 생각하다 문득 시오엔의 전 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몸 안쪽에 싸늘한 바람이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한 시간 뒤쯤 내가 말한 시간에 정확히 데리러 온 하진스 양에게 은근 슬쩍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루튼."

하진스 양이 갑자기 앞좌석을 향해 이름을 부르자 운전사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네, 하진스 양."

"모시게 될 버넷 씨와 아직 인사 못 하셨지요?"

하진스 양의 말에 나는 운전하시는 분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 한 칠십대 분이셨다. 이 분을 잠깐 시오엔의 전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에 시오엔에게 미안해해야 할지 이 분께 죄송스러워해야 할지 영 감이 안잡히지만 어쨌거나 죄책감을 금치 못한 채로 "안녕하세요"하고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해야 할 소리를 루튼 씨가 먼저 했다. 나는 "저도요."라고 어색하게 답하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스 한 잔 하시겠습니까?"

하진스 양이 마치 내 상태를 꿰뚫어본 것 마냥 주스를 건넸다. 그녀가 뚜껑을 따주는 주스를 받아 다급하게 마시면서 나는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 떼지 못했다.
왠지 뺨이 뜨끈뜨끈했다.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를 듣고, 옛 애인인 자하고 억측을 해대고.. 이건 진짜 부끄러운 짓인데? 곁의 하진스 양의 기척에 주의하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등으로 뺨을 눌렀다. 역시나 뜨거웠다. 분명 빨갚게 달아올라있겠지. 하나님, 제발. 제발 이 뺨 좀 냉각시켜주세요, 지금 당장요. 하지만 하나님은 나 같은 놈의 이런 시시껄렁한 소원 따위 언제나처럼 무시하셨고, 나는 시오엔의 커다란 저택 대문을 지나서야 겨우 하진스 양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진스 양이 생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참, 와익슬러 씨께서 버넷 씨의 스태프를 수배하라 하시더군요 다프네에서도 테니스를 치시는 것이 가능하길 바라시는 듯하던데, 버넷 씨께서는 어떠신지요?"

"다프네가 뭡니까?"

어머, 하진스 양이 입술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정신 좀 봐. 와익슬러 씨 저택 이름입니다."

붉은 외관의 저택은 낭만적이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과 불타는 외벽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폴론을 물 먹인 요정의 이름과 어울렸다.

"어울리네요."

내 말에 하진스 양이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속삭였다.

"실은, 와익슬러 씨의 부모님의 로맨스가 이루어진 곳이랍니다. 와익슬러 씽의 어머님 취향이라고 하더군요. 그 어머님 취향 그대로 지은 집이 '다프네' 입니다. 그리고 와익슬러 씨가 저 집과 함께 청혼했다고 하시거라고요."

엄청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하진스 양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억만장자의 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은 몇 개월치 월급을 털어 티파니에서 반지를 살때, 억만장자는 이억 달러짜리 집을 지어 청혼하는구나. 놀라울 따름이다.

"저 집은 와익슬러 씨 어머님이신 미셀 와익슬러 여사가 디자인한 집이에요. 건축가시거든요."

"예에........"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