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일정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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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인은 거친 음성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늘도 그의 '각하'께오선 새파란 애송이의 품에 잠들어 계실 것이다. 그렇게나 '시오엔'을 싫어하더니 하는 짓은 딱 그 짝으로 흐르고 있다. 신전과 반

목하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검은 머리칼의 소년과 침대를 공유하는 것이다. 금발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크리스티가 마음만 먹는다면 상당한 바람둥

이가 될 것이고, 원한다면 다른 남자와도 침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 그도 남자인지라 당연히 여자

를 원할 테지만, 크리스티는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었다. 황제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상 꼬투리를 잡히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었

다.

그런 크리스티가 아무리 이동 중이라지만 남자와 한 침대를 쓰다니,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리스티는 원래 누군가와 자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제네인과 한 번 같은 침실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그는 아예 밤을 새웠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소년을 만나자마자 매일 같이 그 품에서 잠드니............

"오늘이야말로."

제네인이 이를 악물었다.

오늘이야말로 그만두라고, 분명히 말해야겠다. 가뜩이나 크리스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황제다. 월인처럼 검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과 크

리스티가 같이 있는 꼴을 보면 또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트집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대위님!"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와 제네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제네인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당장 제네인의 일을 책임지게 될, 바로 밑의 남자 - 소트였다.

"좋은 아침."

제네인이 상투적인 인사를 입에 담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리자, 바로 앞까지 달려온 소트가 '좋은 아침은 무슨 좋은 아침입니까?'라며 벌컥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쁜 아침이냐?"

제네인이 비꼬자 소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성주가 살해 당했습니다."

곤혹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염이라도 된 듯, 제네인의 목소리도 난처해졌다.

"........ 각하도 아닌 성주가 왜 살해를 당해..........?"

유브라데에서 추종자와 적이 가장 많은 크리스티가 있는데 정작 성주가 살해 당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크리스티의 군대가 머물 때 살해라니, 마

치 이건 모함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크리스티는 황족이다. 테온의 성주처럼 그저 그런 귀족의 목숨 두어 개로는, 실제로 크리스티가 귀족을 죽였고 그 현장을 잡혔다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테온 성의 가솔들이 목숨을 걸고 항의해야 배상금을 조금 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고, 그 배상금을 물어봐야 크리스티는 황제 다음으로

재산이 많다는 말을 듣고 있을 정도니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함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쓸모없는 방식이다. 사사로운 원한이라도 진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티의 군대가 머물 때 원한을 품다니, 크리스티가 만약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나서면 유브라데 제일의 군대에게 쫓기는 신

세가 될........, 잠깐만.

제네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이 경우에 딱 맞는 말을 배웠는데, 그게 뭐더라? 각......... 진다? 각 진다였나?

"소트."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서 근위대 몇이나 남았는지 세고, 출발 준비하고 있어. 각하는 내가 모셔갈 테니까."

각 진다, 져.

몇 번 입 안에서 웅얼거리고 나자, 틀린 말이 입에 붙고 말았다.

"각이 지다니, 그게 무슨?............"

제네인의 입 속에서 맴도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소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