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작은 뒤통수였다. 어디서 보던 뒤통수다. 갈색 머리카락에 아주 작은 몸. 어린애인 것 같다. 다섯 살? 여섯 살?
「깼군.」
예상했던 얼굴이 나를 돌아보았다. 황태자다. 신관파에게 황제가 되라고 부추겨지고 있다더니 고새 넘어갔냐. 하긴 여섯 살짜리가 황제 시켜준다는데 넘어갈 법도 하지만.
「창녀같으니.」
무시무시한 얼굴로 황태자가 나를 모욕했다. 하지만 사실 너무 웃겨서 별로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남창,이겠지. 창녀는 여자잖아. 난 남자고.」
그 순간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을 뜨자, 황태자가 채찍을 들고 서 있었다. 자기 몸길이보다도 긴 채찍을.
저걸로, 내 얼굴을 때린 것이다.
한 때는, 황태자에게 말을 잘해서, 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 전에는 그가 가엽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어릴 때의 내 모습이 겹쳐져 안타깝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저 빌어먹을 아새끼가 사람을 ‘마리’라고 칭한걸로 모자라서 채찍으로 때려?
「너같은 건!」
내가 멀쩡하게 일어나자 황태자가 소리치다 말고 굳었다. 그래 옆구리가 찔린 내가 멀쩡하게 일어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머릿속 한구석에서 시오엔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이는 네가 아니야.’
그래, 저 아새끼는 정말 싸가지가 없는 아새끼일뿐이다.
황태자가 뭐라고 소리치기전에 나는 황태자에게 몸을 날려 그의 입을 막았다.
「읍읍!」
미친듯이 반항해봐야 고작 여섯 살. 한손으로 가볍게 누르면 끝이다. 머릿끝까지 열이 받아서, 입을 막은채 바닥에 누르고 채찍을 빼앗았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해줄까?
코딱지만한 게 진짜 열받게 하는군. 난 어린애한테 관대한 인간이 아니다. 내가 이 애새끼에게 이제껏 너그러웠던 건 이 애새끼가 시오엔의 아이인 동시에 나에게 어린시절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옴싹달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채찍으로 도대체 몇 사람을 후려친걸까?
나는 황태자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은 채 채찍으로 아이를 한 대 쳤다. 그렇게 아픈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황태자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이 꼭 이런식이다. 린트인 아이들이 그립다. 그 아이들은 착하고 총명하고 성실하고 강단도 있었다. 이 놈은 뭐냐고, 도대체. 시오엔의 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참……약하다. 주변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안 닥쳐?」
내 으름장에 황태자가 놀란 눈으로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가엽지만, 이 놈은 좀 세상 무서운 걸 알 필요가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인내심이 더 이상 남아있지가 않다.
내가 황후가 되겠다고 결심한데는, 너의 입지 문제도 있었단 말이다- 이 나쁜 아새끼야아아! 시오엔은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황후가 남자라면, 현재 임시인 황태자도 그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될것이다’라고. 그래서, 나는 황후는 정말 싫지만, 하지 뭐-라고 생각한 것도 조금 있었단 말이다.
이런 썩을 새끼가, 사람 마음도 모르고!
나는 황태자를 끌고 창가로 데려갔다. 채찍 한 대로, 얼굴이 찢어져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한손으로 황태자를 끌고 다른 한손으로 피를 닦다가, 황태자의 얼굴에 문질러주었다. 황태자가 더욱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황태자의 방은 삼층이라 들었다. 화려한 내장으로 보건대 황태자의 숙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을 여니 바닥이 멀리 보였다. 이 황궁은 유난히 천장이 높아, 삼층이라 할지라도 거의 육층 수준이다. 떨어지면 여섯 살짜리는 죽을지도 모른다.
입을 놓고 목을 잡아 창가 밖으로 손을 뻗었다. 손아귀에 잡힌 목에서 캑캑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나갔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제발!」
그리고 밖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황태자의 비서관으로 같이 교육받고 있는 소년 티엔과, 호위병사들이었다. 그 병사 옆에는 아까 병사인 척 하던 놈들이 신관복을 입고 있었고, 나를 찌른 시녀도 서 있었다.
「무엄하다! 전하를 당장 놓아드려라!」
티엔이 상황파악도 못하고 고함을 쳤다. 어린애들이란, 이래서 짜증이다.
「나한테 한번만 더 소리치면, 손 놔버린다?」
내 말에 티엔이 「이, 이런 비겁한……」이라며 이를 갈았다. 잘 살고 있던 사람을 납치한 게 누군데 비겁 운운이야? 그러나 반론하기도 귀찮아서 나는 내버려두었다.
「조, 조건이 뭐냐?」
「시오엔 불러와.」
그러자 안색들이 변했다. 계산하는 거 빤히 보인다. 시오엔이 이 꼴을 보면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나 불러오지 않으면 황태자가 죽고, 그럼 신전파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그 조건은 안돼.」
지랄한다.
「안되는게 어딨어, 되게 해.」
내 말에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황비치고 너무 극악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들 잊는 것 같은데, 나는 황비이기 전에 사내 놈이란 말이다. 열받으면 뵈는게 없어진다고.
그러게 나를 묶어두셨어야지. 내가 칼에 찔려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풀어두면 쓰나. 자, 데려올래, 아님 정말 죽여버릴까.
신관 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려는게 눈에 띄였다.
「신관 놈들. 이상한 짓만 해봐. 황태자도 죽이고, 나도 죽을거야. 그럼 시오엔이, 아니 황제가 가만 있을 거 같아? 늬들은 끝장이야. 게다가, 골드 드래곤도 가만 있을 거 같아?!」
그 말에 신관들이 움찔거렸다.
「타협은 없다, 황제를 데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