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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제니퍼."

제니퍼가 들어가는 방에 같이 들어서면서 나는 그녀를 불렀다. 제니퍼가 방으로 들어서다 말고 뒤를 돌아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녀는 미인이였지만, 나는 그녀와 같이 한 방에 들어서기겐 영 걸리는 게 많았다. 내가 방문 앞에서 왜 같이 들어가냐는 얼굴을 하자 제니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순간 발랄한 웃음을 터뜨렸다.

"들어오세요, 엘. 여긴 스위트룸이에요. 침실은 더 안쪽에 있고, 제가 서 있는 곳이 응접실이랍니다. "

"........그럼 더욱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요. 와익슬러 씨의 침실이라는 거잖아요."

"어머, 아니에요. 여긴 손님용 스위트룸이에요."

손님용 스위트룸?

나는 어이가 없어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런 게 도대체 개인 저택에 왜 필요한 것일까? 내 얼굴을 본 제니퍼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 너무하죠? 부자들이란."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어쨋거나 와익슬러 씨의 침실은 아니랍니다. 와익슬러 씨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만이 묵을 수 있는 스위트룸인 건 확실하지만요."

"술을 마시고 뻗으면 소중히 여기는 친구가 되겠네요."

설마 뻗었는데 내다 버리진 않겠지, 라는 투로 말했더니 제니퍼가 검지를 흔들었다.

"그래도 여기엔 못 와요. 사실 와익슬러 씨는 게스트 하우스를 따로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녀가 응접실의 창문을 열였다. 창문을 여는 순간 저택의 광경이 환히 들여다보여 나는 흠칫했다. 물론 나도 여러 저택을 가보았다. 할리우드 배우라든가 파티에 종종 초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완전히 레벨이 틀렸다. 맙소사,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리자 제니퍼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 정말 '맙소사'죠? 저도 두 번째인데 첫 번째 때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맙소사."

" 아름답네요."

그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창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저택 전면의 풍경이었다. 솟아오르는 분수에 부서져 떨어지는 오후의 햇살, 주황색의 바닥과 그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 계단은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는 계단식 수영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푸른 물이 계단을 흘러내려 가장 아래쪽에 펼쳐져 있는 수영장에 고이고 있다.
계단 양쪽은 잔디가 깔려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호사스러워 나는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말은 들었지만 버넷 씨는 참 점잖네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민망해져 얼굴을 가리고 웃자니 제니처 존슨이 내게 싱긋 웃었다.

" ........ 나는 여기 처음에 왔을 때요, 이 광경을 보면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걸 누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매달 청구서에 벌벌 떠는 사람도 있다니."

그 말에 다시 한 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매달 청구서에 벌벌 떨진 않지만 부자도 아니었다. 내 돈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고 있고 사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두가티 정도였다. 테니스는 돈이 드는 스포츠이지만 그 돈을 낸 건 내가 나이라 피티아를 비롯한 후원사들이었고, 후원이 끊기면 나는 테니스를 못 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사치스러운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보다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장미향도, 그저 아름다운 풍경에 정취를 하나 더할 뿐이었다. 지중해식으로 지어진 저택의 붉은 외관이 마치 클레이 코트를 보는 듯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자 답답했던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나는 서둘러 창가에서 벗어났다. 제니퍼 존슨이 싱긋 웃고 있었다.

"무슨........"

그녀는 손가락을 뾰족이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손가락으로 내 등을 더듬어 내려간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스위트룸이고, 여기엔 저와 당신 둘뿐이죠. 당신은 남자고, 전 여자고요"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녀가 물었다. 무슨 뜻인지 깨닫는 순간 그녀는 성큼 내 품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자의 부드러운 몸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좋기 전에 난감했다. 여기는 내가 잘 모르는 곳이었고, 이 스위트룸은 호화로웠지만 불편했다.
무시무시하게 화려한 저택을 보고 감탄하다가 그 창에 기대어 오늘 처음 본 여자와 섹스 하는 것은 싫었다. 술도 들어가지 않았고, 그녀에 대해 아는 바도 없다.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