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지나간 순간에

0 0 0
                                    

민후는 상아로 만든 화려한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골드 드래곤이 차를 가져오겠다며 부스럭대는 동안 그는 동굴 안을 죽 살폈다. 골드 드래곤

이 어떻게 사는지야 알 바 아니지만, 드래곤의 둥지치고는 참으로 화려한 동굴이었다. 모든 것이 최고급품이었고, 지독하게 사치스러웠다. 가구며 러그며

모든 것이 다. 드래곤의 둥지에서 산 시오엔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마음이었다. 황족으로 산 자신보다 더 호화로운 곳에서 살

고, 자신보다 더 제멋대로 산 것이 분명했다.

"뭐 하나 여쭙겠습니다."

민후가 그렇게 말하며, 드래곤이 건넨 찻잔에 손도 대지 않고 물었다.

"이거, 정말 마셔도 되는 겁니까?"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받은 드래곤이 헛,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약이라도 처넣은 거 아닌가 싶었던 민후에게 드래곤이 난처하게 미소지으면서 '괜찮을 걸. 아

직........ 백 년은 안 지났을 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백 년? 민후가 가늘게 피어오르는 김에 닿으면 뭔가 옮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자를 뒤로 물렸다.

"괜찮다니깐."

드래곤이 혀를 찼다.

"바유는 삼백 년 전 차도 마셨지만, 괜찮았었어."

"그분은 인간이십니까?"

"........크림슨인데."

"크림슨 드래곤과 제가 같습니까?"

민후가 난처하게 웃으면서 의자를 좀 더 물렸다.

"그나저나 드래곤 님께선......"

"리안, 내 이름은 리안이야."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민후는 얼굴을 찡그렸다.

"용서하십시오. 드래곤의 위대한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내가 허락했는데도?"

"그래도, 말입니다."

"내 영향권에 들어오게 될까봐?"

리안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묻자 민후가 피식 웃었다. 아, 다른 말이 없을까? 그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다른 말을 찾아낼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개

를 끄덕였다.

"용서하십시오."

담백한 거절이었다

리안은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는 그 소년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그 소년이긴 했다. 그런데..... , 낯설었다. 지독하게 낯설었다.

그는 전생 아니 전전생의 민후를 떠올렸다. 그는 열정적이고, 그만큼 비관적이었다. 자신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에 -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

라 부르지만 - 그는 지독하게 실망했다. 절망하고 희망을 찾아내고........ , 타협이 없이 무엇이든지 모든 것을 걸고 발악을 하며 헤쳐나가는 타입이었다. 그

게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리안에게는 몹시 매력적이었다. 그런 민후였는데 눈앞의 남자는 난처하게 웃을지언정 이미 모든 타협을 알아버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변했군."

리안의 말에 민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지 않습니까."

민후의 심드렁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리안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사랑한다고, 나를 택하라고, 그렇게 말해야

했는데. 심지어 상대는 말해보라는 듯이 앉아있었다. 딱히 예의를 차리는 태도는 아니지만, 딱히 트집을 잡을 정도로 무례한 태도도 아니었다. 그는 누가 봐

도 황족이었다. 훈련된 예의와 기품을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두르고 있는 황족.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절박하게 미로를 헤매던 민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리안은 그저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변한 모습이었다.

"왜지."

리안이 중얼거렸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왜 너는 변했지."

"글쎄요. 사람마다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누구는 변하고, 누구는 변하지 않고."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