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한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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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는 소년을 안은 채 당당하게 걸었다. 당당하게 걸어야 했다. 소년은 월인이고, 그래서 신이 부정한 자를 단죄한 것일 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걸어 황제의 앞에 도착한 크리스티가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월인께서 다시 피곤해하시는 듯 합니다. 물러감을 허락해 주십시오."

황제가 말없이 그와 소년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서, 크리스티는 불안해졌다. 혹시나 여기서 황제가 월인을 상대로 잘잘못을 가리

거나 하진 않겠지. 그는 몇 번이나 그것을 생각해보고 안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황제는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널 타입이 아니었다. 월인은 신의 대리

인. 신은 라브만을 부정했고, 월인에겐 그를 처단할 권리가 있었다. -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보이는 정황은 그러했다. 그리고 귀족사회에서 명분만큼 중요

한 게 있을까.

"....... 허락한다."

황제가 입술 끝을 올렸다. 그 파리한 웃음은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송구합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그 경고를 못 알아들은 체하며, 바로 신전을 빠져나왔다. 신전을 나오자마자 이미 근위대원에게 이야기를 들은 듯한 제네인과 소트가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록에서 황후전하는 평화주의자라고 읽었습니다만."

제네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때의 라브만도 황후를 두려워했다고 쓰여있지 않았어?"

소년이 크리스티의 품에 안긴 채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쟁관인 시오엔 1세보다, 몸도 약했던 월인 황후를 더 두려워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신관이다 보니 악마보다 더한 취급을 받았지만 어쨌거나 인간

인 황제보다 인간이 아닌 신의 대리인이 더 두려웠었던 것일까.

"원래 라브만이라는 것들을 심판하는 건 월인이야."

소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문득, 크리스티는 소년의 몸이 뜨겁다고 느꼈다. 크리스티가 소년을 잡자 소년이 피식 웃었다.

"왜."

"너 또 아픈거지?"

크리스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소년이 더욱 해맑게 웃었다.

"......... 당신 정말 날 좋아하나 봐. 내가 아픈 것도....... 다 알아보고..........."

해맑은 웃음이 아니라 혼이 좀 빠진 웃음 같기도 했다.

"소트."

"대기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려서, 의원을 집으로 데려와. 제네인, 마차를 몰아. 가능한 빨리 집으로 간다."

크리스티의 명령에 소년이 다시 쿡쿡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티는 소년을 붙잡았다. 열이 심했다. 이번에도 의원은 과로니 마

음고생이니 하겠지만 그건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소년을 의사에게 보여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소년이 '괜찮다'는 것을 확신받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제네인이 마부석으로 통하는 창문을 열고 마차를 멈추게 했다. 잠시 멈췄던 마차는 곧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를 내달렸다. 마차가 전복될 것 같이 덜컹거려서 크리스티는 소년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걱정하지 마."

소년이 중얼거렸다.

"이 몸이 견딜 수 없는 짓을 해서 그럴 뿐, 실제로는 별 이상 아니니까."

소년이 아마도 크리스티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던 듯했지만, 그 말은 도리어 크리스티를 당황하게 했다. 크리스티가 소년을 고쳐 안으며 물었다.

"몸이 견딜 수 없다고? 뭘?"

"그런게 있어."

"너."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