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는 조금 긴장했었다.
자신이 옷을 벗으면 저 치근덕대기 좋아하는 소년이 아예 대놓고 쳐다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싫겠다. 차라리 씻지 말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의
외로 소년은 크리스티의 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창틀에 무릎을 안고 앉아서 소년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지만, 크리
스티는 말을 걸지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자, 기다린 것처럼 소년이 그를 돌아보았다.
"소리 들려?"
크리스티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핑 -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티가 '아아' 하고 신음했다.
"재림 기념 주간이군."
크리스티의 말에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게 뭐야?"
"월인의 재림을 축하하는 뜻에서 열리는 일주일간의 축제야. 수도에서만 하는 짓거리지."
짓거리, 라는 단어에 소년이 잠시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살짝 눈치를 보듯이 물었다.
"싫어하나 봐?"
"......... 웬만한 사람들은 즐거워 해. 싫어하는 건 나 정도겠지."
"왜, 싫은데?"
소년이 물어서 크리스티가 타월로 머리를 닦으며 대답했다.
"내 밑에 놈들이 사고를 치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너도 관리직의 인생을 살아봐라. 이렇게 뭔가 특별하답시고 티내는 날이 제일 싫어."
그래서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건 소년도 알 것 같았지만, 크리스티는 일단 그런 걸로 해두었다. 사실 그는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이미 해버린 이야기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소년의 리드에 넘어가 결혼에 관한 이야기나 황제에 대해서 주절거린 것은 자신답지 않은 짓이었다.
"기억 속의 폭죽보다 훨씬 예쁘군. 당신도 와서 보지 그래?"
소년의 권유에 크리스티가 거칠게 머리칼을 털며 이죽거렸다.
"폭죽따위."
어지간히 싫어하는 것 같은 티를 내자 소년은 더 권하지 않았다. 크리스티가 소년을 바닥에 대충 던졌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크리스티의 말에 문이 열리고 남자 넷과 여자 셋이 들어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들인 것을 보니, 여관 쪽 사람은 아니었다. 크리스티가 당황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검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소년은 창틀에서 내려와 크리스티를 지나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보석상 로베르트라고 합니다. 루비가 몹시 훌륭하시더군요. 해츨리으이 심장이라기보다는 드래곤 하트처럼 보이는, 몹시 훌륭한 것이
어서 감동했습니다."
남자 한 명이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보석상이고, 보석광이라는 소개나 다름없었다. 감동받았다는 얼굴은 정말 감격하고 있는 듯해서 소
년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 사이, 크리스티는 식어빠진 얼굴로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는 중간에도 '오오, 이렇게 훌륭한 사파이어가! 이 광택은 마
치 저 하늘의 사랑스러운 부분만을 담아둔 듯합니다. 정말, 아름답군요!' 라며 온갖 미사여구를 퍼붓는 것이 들렸다. 정말 굉장한 보석광이구나. 크리스
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배낭을 뒤져 두 개의 천을 꺼냈다. 하나는 두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브였다. 두건으로 머리를 싸맨 뒤 로브를 입
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본 크리스티는 피식 웃었다.
-이 짓만 느는 것 같아요.
언젠가 제네인이 그렇게 말했었다. 크리스티도 동감이라고 생각함녀서 창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아무래도 도둑처럼 담을 타고, 남몰래 출입하는
짓만 느는 것 같다. 나가는 걸 소년이 보는 건 상관없었지만, 따라온다고 하는 건 좀 곤란했기 때문에 - 마침 잘됐다 싶어 여관을 나와 골목을 빠져나오
자마자 폭죽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크리스티는 혹시나 금안을 들킬까 봐 로브를 더 깊숙이 쓰고 움직였다. 이 여관을 사용하는 데는 여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