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위압감이다.크리스티가 사교성 미소를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짓눌리는 것 같은 이 위압감은 골드 드래곤이 일부러 기를 노출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외모를 가
졌지만 건방떨지 말라는 건가.
"처음 뵙겠습니다."
깍듯한 태도에도 상대는 별말이 없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그를 보면서 울컥하긴 했지만, 그런 것을 드러내기엔 크리스티는 산전수전을 너무 많이 겪었
다. 크리스티는 말없이 미소 지으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정말 골드 드래곤이면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려보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도리어, 다른 걱정만 들었다. 인간 형태로 폴리모트를 했으니 망정이지, 본체로 돌아가기라도 하면 다 죽는거다. 집이 무너지겠지. 엄청난 일을, 대
수롭지 않은 듯 당하니 머리가 계속 이상한 데로만 굴러가고 있었다. 문득, 크리스티는 상대의 시선을 느끼고 무의식 중에 시선을 맞췄다.
"저............."
골드 드래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순 없고, 뭐라고 해야할까?
"리안이다."
"예에, 리안 님."
진짜 골드 드래곤이구나.
순간 왠지 절망적이라 눈을 감을 뻔했던 크리스티가 뭐라 말을 걸지 못하고 있는데 리안이 마치 자기 집인양 소파를 권했다.
"앉지."
"아, 네."
자기 집도 아닌데 참 뻔뻔하구나.
요즘은 왜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많아. - 라고 생각하며 크리스티는 소년을 떠올렸다. 소년은 대체 왜 화를 낸걸까. 전설의 골드 드래곤을 두고도 소년이
왜 화가 났는지를 떠올리는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한 크리스티에게, 리안이 나직이 물었다.
"누구지, 넌?"
누군지도 모르면서 찾아오셨습니까.
크리스티가 힘빠진 목소리로 줄줄 읊기 시작했다.
"........... 시오엔 유브라데 라 크리스티, 황제의 동생이며 유브라데의 군인이며, 남쪽의......."
리안이 손을 한 번 저었다.
"아니, 됐어. 소개가 길기도 하군."
크리스티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왜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 혹시 혼례 때문인가. 월인과 혼례를 올리는데 감히 허락도 받지 않는다는, 뭐 그런건가? 하지
만 소년은 엄염히 스스로 혼례를 결정할 수 있는 나이이며, 혼례식을 국혼으로 하는 이상에는 이틀째에 골드 드래곤의 인정식이 있는데 굳이 여기까지 찾
아와서 반대를 한다고?
"그 지긋지긋한 이름을 또 듣게 되는군."
골드 드래곤이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지만, 크리스티는 그 지긋지긋한 이름이 뭔지를 깨닫고 신음했다.
시오엔.
백성들에게는 '성군'으로 불리는 오백 년 전 조상께오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아예 바다로 사라진 인물이었다. 그의 전투 스타일도 확실히 놀
라웠지만, 누굴 적으로 삼든 개의치 않는 그 배포는 정말이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특히나 골드 드래곤의 육체를 태워 재를 날려버린 일은 아직도 소름이
돋는..........
......... 잠깐, 복수를 위해서 온건가?
크리스티가 얼굴을 찡그렸을 때였다.
"괜히 겁먹지 마. 널 상대로 뭘 어쩌려는 게 아니니가. ........아직은."
골드 드래곤이 마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해서 그는 조금 민망해졌다.
"아, 네."
"네가 정말 '시오엔'인가?"
골드 드래곤이 눈살을 찌푸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예."
심상치 않은 질문이었지만, 크리스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시오엔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