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합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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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엔이 그를 놔주었다.

"잠깐만."

그 다정한 목소리가, 너무 낯설어서 그는 시오엔을 올려다 보았다. 시오엔. - 그 이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시오엔이 그를 내려주고 휘장을 열었

다. 휘장이 열리는 순간, 그는 창문에 시선이 못 박히고 말았다. 물러갔다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창문마다 금발에 금안을 가진 자가 서 있

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트를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모든 창문에서 금방과 금안을 가진 자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젠 다, 다, 다 끝났습니다......... 이, 이제, 가, 가, 가봐도.........?"

신관이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금발에 금안,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남자가 아까와는 다른 위압감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는 알몸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조각같은 육체가 더욱 인상깊었다. 시오엔이 싱긋 웃으며 신관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수고했어."

"........예, 예에, 에 - 그, 그럼, 가봐도 - "

그 순간 시오엔이 다른 한 손을 올려 신관의 목을 잡았다. 싡관의 목이 꺾인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투둑,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직 식지 않

은 시체를 휙 방바닥에 집어던진 시오엔이 침대에 앉아 멍한 눈을 한 그를 보고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창 밖에는 그를 노려보고 있는 자신과 같은 얼굴

을 보며 시오엔은 후련하게 웃었다.

"기다린다, 라."

시오엔이 코웃음치며 그에게 다가왔다. 창문 밖의 남자는 시오엔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을 뻗어 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시오엔이 휘장

을 닫자, 펄럭이는 천의 틈 사이로 창문 밖의 남자가 고함을 지르는 것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대를 기다린다니."

시오엔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다, 안 오면 말고?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그대를 가질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시오엔은 침대 옆에 있는 배낭에서 램프를 꺼냈다. 그 안에 향을 넣은 그가 익숙하게 불을 붙이는 걸, 소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숨을 걸고 쫓아가도 그대는 때때로 사람을 약 올리지. 그러나 내가 약속했잖아. 어디까지라도, 쫓아가겠다고."

이제는 그대 차례야, 라고 시오엔이 속삭였다.

램프에 든 것이 뭔지 모르는 상태로 소년은 멍하니 램프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향이 온 방에 퍼지는 동안 그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이, 자신의 눈 앞에서, 걸어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저 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

리가 멍해졌다.

시오엔이 천천히 그를 눕혔다. 나른하고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그의 시야에, 금발에 금안을 가진 시오엔이 잡혔다. 분명히 평생을 봐온 얼굴인데, 처음 보

는 얼굴처럼 낯선 것은 다른 영혼이 그 몸을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표정이었다.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몸을.........."

소년이 중얼거렸다.

"몸을 되찾으러 온 거였군."

시오엔이 가볍게 긍정했다.

"그래."

"첫사랑에게 몸 주고 배신당한다는 이야기는 쎄고 쎘지만......... , 내가 그런 꼴이 될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몸을 두 종류나 주게 되다니. 웬만한 이야기보다 심하다며 소년이 웃자, 시오엔이 그 얼굴을 손으로 만졋다. 어째서일까. 소년은 시오엔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저 얼굴을 증오했다. 저 금발과 금안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타인의 것이 되자마자, 이토록 아름답

다고 느끼게 되는 것일까.

"그래, 그대는 몸을 두 종류나 줬어."

시오엔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소년의 뺨을 만졌다.

[그웬돌린] 구원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