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그룹은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저마다 일이 한가득하여 옆 사람을 쳐다볼 새도 없이 바쁜, 그런저런 기업이었다.
한창 업무에 모두가 시달리는 오후 3시 12분.
수영이 테이블 아래 딸린 서랍을 열어 흰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벌떡 일어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큰 보폭으로 걷는 다리에 힘이 실렸다. 수영은 곧장 태진에게 다가가 봉투를 그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본부장님.”
“…….”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으나 태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본부장님?”
그녀는 재차 그를 불렀다.
그제야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쪽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앞에 수영이 서 있다는 걸 깨달은 태진은 언제 무미건조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에요, 최 팀장?”
“여기요. 꼭, 수리 부탁드립니다.”
수영도 그 웃음에 맞게 눈을 휘었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여유롭게, 말투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
평소와는 조금 많이 다른 그녀의 반응에 어떤 낌새를 느낀 듯했다. 태진이 웃음기를 감추었다.
“이게 뭔데요?”
“사직서요.”
“예?”
종잇장 넘기는 소리와 마우스 달칵거리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전부였던 사무실.
“…….”
수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태진의 나직한 물음 뒤로 정적이 쏟아졌다.* * *
모든 것의 시작은 6개월 전, 그때부터였다.
수영이 팀장직을 단 지 고작 열흘 후. 작년에 너무 바빠 쓰지 못한 휴가를 뒤늦게 쓰게 되었을 때부터.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할 예정이니…….]
기내 전체에 퍼지는 안내 음성에 수영은 히죽거렸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자꾸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휴가다. 휴가.
작년엔 한 번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었다.
심지어 월차인 날에도 업무 연락에 시달리는, 월차답지 않은 월차를 쓴 게 대다수였다.
그런 지난날을 단번에 청산하듯 휴가를 갈망하던 수영은 1년 만에 자유를 얻어 냈다.
‘후후.’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까지 전부. 한 달 전부터 계획했다.
최고의 여행이 될 거라, 수영은 감히 장담했다. 하여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방콕은 공항에서부터 후덥지근했고, 한국과는 다른 그 나라의 냄새가 코끝에서부터 느껴졌다.
“후우.”
그런 공항 내 한복판. 수영이 심호흡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보자. 캐리어가…….’
수화물을 찾기 위함이었다.
‘저기 있다!’
끝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캐리어들을 발견한 수영은 반색했다.
“아!”
그리고 다시금 발을 내디디려던 때. 급하게 가려던 나머지 지나가던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수영은 이곳이 타지인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한국어로 사과했다.
“괜찮아요.”
고개를 숙여 급히 사과하자 낯선 외국어가 아닌 익숙한 말로 답이 돌아왔다.
‘헐. 한국인.’
놀란 그녀는 눈을 또르르 굴려 멀어져 가는 남자의 훤칠한 뒤태를 바라봤다.
“어?”
그러다 얼마 안 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대박.’
그녀의 동그랗게 뜬 눈은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 옆에 있는 캐리어에.
‘같은 회사네?’
저 익숙한 디자인에 익숙한 로고.
회사 복지 사이트에서 구매한 캐리어임이 틀림없었다.
제가 가져온 캐리어와 같은 것이었다.
수영이 조금은 신기해하는 낯을 띠었다.
‘어떻게 여기서 회사 사람을 만나냐.’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태국이 익숙해지려 해.
‘흐음. 느낌이 좋은데?’
수영은 출발하기 전부터 느꼈던 설렘을 재차 곱씹으며 다가오는 자신의 캐리어를 집어 들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세웠다.
“아, 맞다.”
그러더니 당장 움직일 것 같던 수영이 멈춰 서서는 제 휴대폰을 꺼내었다.
〈언니, 나 이번에 휴가 내고 태국 갈까 하는데. 같이 갈래?〉
〈프리한테 쉬는 날이 어디 있어? 숨 쉬면 다 돈이다. 혼자 다녀와.〉
비록 언니와 같이 오진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보고를 해야 했다.
〈도착하면 연락해.〉
혼자 여행 간다며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