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하아…….”
모두의 시선이 태진의 한숨에 닿았다. 그는 마치 골칫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얼굴로 인상까지 찡그리고 있었다.
“1팀은 내일 다시 얘기하죠.”
“…….”
“싫어요?”
“아닙니다.”
그의 말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대답을 않던 직원은 재차 돌아온 물음에 결국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차마 그의 날 선 눈을 보고도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던 탓이었다.
“2팀.”
“…….”
“2팀!”
“아, 네!”
‘오늘 왜 이래?’
수영은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이 당황스러워 콧잔등에 주름을 잡았다.
이렇게까지 회의 시간이 숨 막혔던 적이 있었던가.
트집을 잡아도 수영의 팀인 3팀만 잡았지, 어지간해선 그냥 넘겨 버리던 그였다.
그래서 1팀장과 2팀장이 마음 편해하기도 했고.
‘오늘따라 이상하네.’
한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건 비단 1팀만이 아니었다. 2팀도 그의 타박을 면치는 못하였다.
“3팀.”
드디어 3팀의 차례.
수영은 괜히 제가 말을 하는 게 아님에도 긴장감에 목을 빳빳이 세웠다.
어느덧 길고도 짧은 성 대리의 말이 끝나고.
비록 그동안 그에게 까인 전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요즘은 매일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분명 자신들도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할 것을 알았다.
수영을 비롯한 3팀은 그의 말을 흘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태진의 입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하죠.”
“네?”
끝? 이대로? 이렇게?
예상과 달리 무사히 끝난 상황에 수영이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뇨. 전혀요.”
“그럼 됐고.”
문제랄 건 없지만 문제가 없어서 문제다.
앞에선 그렇게 사람을 말로 혹사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얼굴로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수영은 그가 떠난 빈자리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뭐야…….’
도통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 참.”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가 찬다는 듯 내뱉는 웃음과 함께 비아냥 가득한 시선에 더 이해할 생각도 사라졌다.
편애.
왜인지 편협한 것 같은 태진의 언행들에 다른 팀의 눈이 살벌하게 번득였다.
“…….”
타이밍이란 그랬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면 너무 좋아서,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버리는 것.
기껏 아침에 있던 일을 다독인 참이었는데.
“봐. 내 말 맞지?”
공기와 소리가 적절히 섞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와 가슴까지 후벼 팠다.
쿵. 심장이 주저앉는 기분에 수영이 재빨리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
수영은 방금 들린 것이 제가 보고 있는 이들 중 1명의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걸 입 밖으로 내뱉기엔 마치 방패가 되어 주듯 냉소적으로 노려보는 1팀장이 시야에 비쳤다.
서류를 감싸 쥔 그녀의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참…… 자.’
여기서 입을 열었다간 일이 커질 게 뻔했다.
제아무리 같은 팀장급이어도 그들에게 저는 팀장이 아니었다.
그저 어린 애가 운 좋게 눈에 띄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뿐.
지금 그들의 눈빛이 그러했다.
그들은 직급이 아닌 나이가 더 먼저인 사람들이니.
결국 수영은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이며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곤 곧장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성 대리가 쭈뼛거리며 뒤따라 나왔다.
“괜찮으세요?”
“…….”
수영은 괜찮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아주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너무도 애석했다.
그에 그녀는 생각했다.
그럴 수 없으면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되지.
“과장님.”
휙! 수영이 고개를 쳐들곤 결심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성 대리님.”
“네……?”
“저 안 되겠어요.”
“뭐가…… 요?”
“마셔야겠어요. 술.”
하다 하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는 오랜만이었다.
이대로 화를 풀지도 못한 채 집에 갈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에 주희가 눈을 연신 깜박였다.
“갑자기? 오늘?”
“네. 오늘.”
수영은 눈을 번득이며 단호히 대답했다.
“……그래. 그러지, 뭐.”
그에 끄덕이는 2명의 얼굴엔 어색한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