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태진이? 김 대리님을?
주희가 자신을 떠보려 한 질문임을 알고 있음에도 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꾹 다물었다.
‘진태진이랑 김 대리님이 사귄다고?’
순간 저도 모르게 상상해 버렸다.
태진이 김 대리를 쫓아다니면서 애정 공세를 하고, 웃고, 포옹하고, 키스하는 것까지.
‘와…….’
수영은 차마 뱉지 못할 말을 삼켰다.
그녀의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주희는 흥미 가득한 낯을 띠었다.
이윽고 수영이 입술을 벌렸다.
“진짜 이상할 것 같아요.”
“……응?”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태진이 여자랑 키스를?’
그리고 진심으로 비웃음이 터져 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으…….”
“최 팀장.”
바로 그때, 태진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네.”
“잠깐 얘기 좀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는 곧장 회의실로 들어갔고, 수영 역시 뒤따라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앉으세요.”
태진의 앞에는 서류 두어 묶음이 놓여 있었고, 그녀를 부른 이유 또한 업무 관련인 듯했다.
모처럼 그와의 대면이 지극히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치겠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멀쩡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되레 집중이 안 되는 건 이 평화를 바라 마지않던 수영 본인이었다.
‘아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어!’
왜 하필 마지막에 한 이야기와 상상이, 태진이 다른 사람이랑 키스하는 장면이냔 말이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바로 앞에 당사자의 얼굴이 있으니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 때문에 수영은 집중을 하지 못하고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여기까지 취합해서 제출해 주세요.”
“…….”
“최 팀장?”
“네? 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급기야 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해요?”
누가 봐도 수영은 지금 이상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와 표정. 집중하지 못하는 눈동자는 갈피를 잃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어디가 문제인지쯤은 금방 알아챈 태진이 지체 없이 물어 왔다.
“할 말이 뭔데요?”
“키스해 본 적 있으세요?”
“……뭐?”
“어?”
어? 나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어어?”
수영이 뒤늦게 깨닫곤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잡아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입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는지 전혀 의도와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수영의 말에 당황한 건 태진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이상하게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아 넌지시 던진 물음이었다.
그런데 되돌아온 말이 키스해 본 적 있냐는 질문이었다.
태진은 순식간에 달아오른 열에 마른침을 삼키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게 궁금했어?”
“어? 아니? 아닌데?”
“물어봤잖아.”
“그건……!”
“있어. 해 본 적.”
‘너랑.’
그 짧은 순간에도 태진은 말을 아꼈다.
굳이 기억도 못 하는 수영에게 ‘너랑 했잖아.’라고 말해 봤자 거짓말이라며 욕만 들을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 있다고?”
그에 수영은 몸을 움찔했다.
아, 이게 아닌데. 말이 헛나간 거라며 억울함을 표현하기 바쁠 줄 알았던 질문의 다음 상황은 예상과 한참 달라져 있었다.
“어. 왜? ……궁금하다며.”
“어어. 아니야. 아무것도.”
‘있구나.’
하긴. 있겠지.
‘없는 것도 이상하긴 해.’
당장 지금만 해도 다른 부서에서도 태진을 보겠다고 난리라는데, 오늘만 이랬겠는가.
10여 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동안 줄곧 그래 왔을 거다.
그동안 한 번도 사귀었던 여자가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근데 왜…….’
제 기분이 묘하게 다운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늘어놓은, 자신만 바라봤다는 그 꾸밈 가득한 말들이 거짓이라는 걸 새삼 깨달아서 그런가.
‘그걸 은연중에 믿었던 나도 바보지.’
태진의 말이라면 반은 거짓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또 순진하게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씀하신 건 정리해서 이번 주 중으로 드릴게요.”
“네. ……아, 그리고.”
그녀의 몸이 문을 향하려던 찰나였다.
태진이 나지막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오늘 점심은 직원들끼리 먹어요. 저는 약속이 있어서.”
“네. 그럴게요.”
탁. 회의실 문이 굳게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