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전체에 퍼지는 야릇한 감각에 수영이 숨을 멈추었으나, 그는 멈추는 방법을 잊기라도 한 양 손을 더 위로 움직였다.
그가 스쳐 지나는 곳마다 오스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빳빳하게 선 정점에 다다랐고, 그것을 엄지로 지분거리자 수영이 움찔거렸다.
“아……!”
묘하게 간지러우면서도 온 신경이 곤두선 것만 같은 기분. 절대로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었다. 그저 견디기 힘들 만큼 감각이 예민해졌을 뿐.
수영은 몸을 파르르 떨며 손가락을 그의 머리칼 사이로 끼워 넣었다.
“하아…….”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그 잠깐을 허용하지 않은 태진이 거칠게 그녀를 탐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목덜미에만 흔적을 남기던 입술은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그녀의 한껏 도드라진 부위에 머물렀다.
혀가 닿을 때마다 그녀의 입에선 탄식이 흘렀고, 그가 아프지 않게 물 때에는 교성이 터져 나왔다.
쾌락에 몸이 붕 뜨는 기분에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즉 머리는 그를 멈추고 싶어 하나, 그로 인해 달아올라 버린 몸은 자꾸만 그를 원했다.
“진…… 태진…….”
수영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아 태진을 불러 세웠다.
“잠…… 잠깐…… 아!”
하지만 그녀의 만류에도 태진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되레 그녀가 애원해 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수영의 배 아래로 향했다.* * *
“으음…….”
얼마나 지났을까. 쓰러지듯 잠들었던 수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아…….’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그녀는 푹신하게 덮인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협탁 위를 더듬거렸다.
“내 휴대폰…….”
“휴대폰? 여기.”
그러자 툭, 누군가 그녀의 손에 휴대폰을 쥐여 주었다.
‘……응?’
순간, 반밖에 뜨이지 않았던 눈이 평소보다 더 크게 뜨였다.
‘뭐지?’
수영이 급하게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너……!”
그랬더니 벌써 나갈 준비가 끝난 것 같은 차림으로 태연히 저를 쳐다보고 있는 태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가리켰던 그녀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너, 너 왜 여기 있어?”
“……여기 내 방인데.”
“아니, 너……! 엄마야!”
그러다 힘없이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보인 실오라기 하나 없는 제 모습에 놀라 급히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 상황에 놀란 건 그녀만이 아닌 모양인지, 태진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빠, 빨리 옷부터 입어.”
“어, 어어…… 그래.”
그래. 일단 옷부터 입자. 설마 이렇게 잠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체 어제 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옷은 전부 챙겨 입은 직후. 하필이면 기억이 나 버렸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카드 키는 거기 받아 놨으니까 그거 들고 가면 돼.”
게다가 태진을 본 순간 당시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아직 7시밖에 안 됐으니까 누나 안 깼을 거야.”
“…….”
“최수영…… 내 말 듣고 있어?”
“아, 미쳤나 봐, 진짜!”
스멀스멀 밀려오는 민망함에 수영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섰다.
덕분에 소스라치게 놀란 태진이 얼빠진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수영은 그에게 눈길 줄 정신도 없이 카드를 챙겨선 방을 뛰쳐나갔다.
“…….”
순식간에 그의 방은 정적에 휩싸였고, 어젯밤 그녀가 곧장 잠드는 바람에 미처 치우지 못한 격렬했던 흔적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털썩. 태진은 그녀가 누워 있던 침대에 주저앉아 마른침을 억지로 삼켰다.
“…….”
양 무릎을 지지대 삼아 팔꿈치를 대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아. 온갖 감정이 뒤섞인 한숨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젠장…….”
두근. 두근.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에 나지막이 욕을 읊조려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13년이었다. 그가 수영을 처음 본 이래 지난 세월이. 동시에 그녀를 마음에 둔 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얼굴을 보지 못한 10년 동안 잊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보낸 고작 몇 시간 전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
태진은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를 채 식히지도 못하고 뒤로 기울어졌다.
“…….”
꿀꺽. 허공을 바라보며 한 번 더 침을 삼켰다.
“아…….”
어림도 없지. 그런다고 괜찮아질 거였으면 처음부터 이성을 놓지 않았을 거다.
수영에게서 그 어떠한 직접적인 대답도 듣지 못해 놓고. 혼자 괜히.
“기다려야겠지…….”
마치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처럼 태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 *
회사에 출근한 지 30분쯤 되었을까.
“하아…….”
수영이 탕비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후 어찌 집으론 무사히 돌아왔고, 운 좋게도 수진은 수영이 밤새 방에 없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 팀장. 왜 그렇게 힘이 없어?”
하여 옆에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주희가 넌지시 물었다.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네? 주말요?”
“그래, 주말.”
주말……. 주말…….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바다에 갔고.
맥주를 따고 얼마 안 돼서 진태진한테 고백을 ‘또’ 듣고…….
그날 저녁에는…….
“아뇨? 일은요! 전혀요!”
생각하지 말자. 티 내지 말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해.
“무슨 일 있었네. 최 팀장 얼굴이 빨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어야 하는데.
“더워?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게 마음처럼 됐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수영은 고개를 거세게 내저으며 손사래까지 쳤다.
“저 정말로 괜찮아요. 좀 더워서요.”
“더워요? 에어컨 틀어 달라고 할까요?”
“네? 어머, 안녕하세요.”
“…….”
그러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태진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주희가 살짝 놀란 듯하더니 금세 평온한 얼굴로 인사했고, 그 역시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의 등장에 표정을 풀지 못하는 건 수영뿐이었다. 태진은 그녀가 얼어붙어 입도 벙긋 못 하는 사이, 그녀와 저 사이에 있는 테이블을 짚고 상체를 기울였다.
“많이 더워요?”
그러면서 입꼬리는 시원스레 올렸고 눈은 예쁘게 휘어 눈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꼭 무슨 작정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수영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 최 팀장이 방금 덥다고 한 거 들었는데? 얼굴 아직도 빨개요.”
“그건…….”
그야 자꾸 그 얼굴로 웃으면서 다가오니까 그렇지. 누구 심장 멎게 할 일 있나.
수영은 괜한 심통에 소리치려다 말끝을 흐리고 미간을 좁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흠흠.”
그때, 둘 사이의 묘한 낌새를 눈치챈 주희가 억지로 목 가다듬는 소리를 내었다.
“난 먼저 들어갈게, 최 팀장. 얘기하고 와.”
“네? 과장님, 과장……!”
그녀는 결코 수영의 편이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수영이 보기에는 그랬다.
기어이 주희가 모습을 감추고, 나름 넓다면 넓은 탕비실엔 둘만이 남아 있었다.
휙!
그 즉시 수영이 몸을 틀어 개중 가장 시끄러운 커피 머신을 작동시켰다. 저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탓이었다.
“진짜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진이 그녀의 뒤로 바짝 붙어 말을 걸어왔다.
수영은 마른침을 애써 삼키며 대답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럼 다행인데.”
“…….”
“혹시 그 커피는 나 주려고 하는 거야?”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자만심 가득한 물음인지.
수영이 어이가 없어 뒤를 돌아보자 태진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거 라테 안 되는 머신인데.”
“…….”
“너 라테 아니면 안 마시잖아.”
그래서 물어봤어, 하고 잇는 말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혀, 제가 오해한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자, 잘못 누른 거야.”
수영은 급히 손을 뻗어 옆에 놓인 또 다른 머신의 버튼을 누르고자 했다.
삑.
하나 그 버튼은 태진의 손에 의해 눌렸고, 덕분인지 때문인지 그녀의 할 일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 씨…….’
수영은 우두커니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상태에 어쩔 줄을 몰랐다.
뭐라도 해야 어색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무마될 텐데.
그래야 그를 볼 때마다 제 머릿속을 헤집는 그날의 기억이 흐려지지 않을까 싶었다.
“왜 그래?”
그런데 그 생각을 마치 꿰뚫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태진이 물었다.
그는 등을 보인 채 겨우 표정을 감추고 있던 그녀를 가두듯 양옆에 손을 짚었다. 그러곤 살짝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늘 조금 이상하네.”
“이상하긴 누가 이상……!”
은근히 놀리는 투였다.
그의 말에 발끈하여 돌아서자 그가 코앞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이 정도로 가까울 거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태진의 가슴이 이렇게 넓었던가. 평소에 이만큼이나 가까이서 볼 일도, 신경 쓸 일도 없어서 몰랐다. 덕분에 수영의 낯은 더 붉은 열꽃을 피워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