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하세요.”
그중 한 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였다.
“…….”
수영은 제게 인사한 걸 알면서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이 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당연히 받아 줬을 터.
수영은 말없이 제 컵에 커피가 다 차기만을 기다렸다.
“뭐야…….”
자신들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은 게 언짢았던 듯 직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참자. 참자.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독였는지 모르겠다.
한두 번 들은 욕도 아니니까. 원래 남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회사가 다 그렇지, 뭐.
얼마나 자기 합리화를 해 댔는지.
수영은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강 주임님은 조금 전까지 자기 욕한 사람 인사도 웃으면서 받아 줄 수 있나 봐요?”
듣다 못한 수영이 뒤를 돌아 인사를 건넸던 직원을 쳐다보았다.
“전 그렇게는 못 하겠던데. 강 주임님만큼 성격이 좋질 못해서요. 저는 저 싫어하는 사람, 똑같이 싫어하는 편이에요.”
“…….”
“저에 대한 오해가 좀 많으신 거 같은데, 그냥 저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러셨어요. 친절하게 알려 드렸을 텐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언성을 높인 것도 아니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니까.
지금 상황에 대해 반박했을 뿐이다.
“아…… 예. 죄송합니다.”
그에 제가 한 말이 들어 먹기는 한 듯 사과가 돌아왔다.
비록 여전히 그들의 이목구비는 구겨져 있었지만.
직원들은 다시 한번 꾸벅이곤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수영은 홀로 남기 무섭게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왜 자꾸 일이 꼬이냐.’
혼자서 참고 넘어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의 인내심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 *
아마도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혼자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누군가에게 말하기에도 참 애매한 일이었다.
당사자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옆자리인 주희나 성 대리에게 말한다 해도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수영이 일을 하다 말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기, 괜찮아?”
요 며칠, 그녀를 지켜만 보고 있던 주희가 슬그머니 다가와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힘들어해?”
주희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아…….”
수영이 급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괜찮은 거 맞지? 회의할 수 있겠어?”
“네. 그럼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얼른 가세요.”
그러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서 걸어가는 주희의 뒤로 수영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 있어요?”
그런 그녀를 전부터 주시하던 태진은 수영이 평소와 다름을 알아챘는지 그녀에게만 들릴 크기로 물었다.
“…….”
하나 수영은 입을 다문 채 대꾸가 없었다.
직접 물었으면 한 번쯤 쳐다볼 법도 한데 그녀에겐 당장 그 정도의 여유도 없던 탓이었다.
이 모든 게 마치 태진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지금 그를 봤다간 분함에 눈물이라도 쏟을 듯했다.
그녀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회의실로 들어갔다.
“…….”
그는 며칠 전부터 수영이 자신을 피하는 걸 알았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왜 자꾸…….’
태진이 미간을 미세하게 좁혔다.
‘왜 자꾸 네가 갈 것 같냐.’
그는 불안했다. 이렇다 할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으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빠각!
태진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 그가 쥐고 있던 펜이 힘없이 부러졌다.
“…….”
그는 손에 쥔 펜을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잠시나마 무언갈 생각하는 듯하던 태진은 이내 부러진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곤 회의실로 마저 들어섰다.
회의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본디 여러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회의는 대체로 불필요한 말은 오가지 않았다. 하여 분위기는 팀 내에서 진행하는 회의보다 더 조용하고, 회의실에는 진지함만이 가득했다.
“……최 팀장.”
그런 곳에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 태진이 수영을 불러 젖혔다.
“…….”
수영은 넋을 놓은 채 말이 없었고, 옆에 있던 주희가 툭 팔을 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몸을 들썩였다.
“네.”
태진의 말은 곧바로 이어졌다.
“채 과장님이 다른 팀 지원해도 오픈 일정 문제없습니까?”
“아……. 네. 가능합니다. 디자인 쪽은 이미 픽스가 되어서요.”
수영은 황급히 제 앞에 놓인 문서를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태진은 한 템포 쉬어 준 뒤, 나지막이 목소리를 내었다.
“집중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그럼, 채 과장님이 2팀 지원하는 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그의 말을 끝으로 직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마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사이, 정리를 끝마친 수영도 주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둘이 싸웠나?”
“몰라요.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자기들만 있는 덴가.”
“김 대리. 다 들리거든?”
속닥거리는 소리에 주희가 눈을 부릅뜨고 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잖아도 울림이 큰 그녀가 작정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자 직원들의 시선이 이들에게로 쏠렸다.
“…….”
그야말로 1팀, 2팀, 3팀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토할 것 같아.’
수영은 단순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조차 싫었다.
속에서 무언가 불쾌한 것이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휙!
그녀는 직원들을 지나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뒤따랐다.
“최 팀……!”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주희가 그녀를 부르려다 고개를 돌려 김 대리를 노려보았다.
김 대리는 움찔하며 얼굴을 붉히곤 버럭 소리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아, 그러신 분이 상사 좋다고 소문까지 내고 다녔어?”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요!”
“아. 아니야? 아님 말고.”
붉으락푸르락하는 낯이 꽤나 꼴불견이었다.
주희는 승리자의 미소로 히죽이다 이내 급속도로 화가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김 대리, 만년 대리로 퇴사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자?”
“…….”
“어디 윗사람 앞에서…….”
“무슨 일입니까?”
바로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에 태진이 뒤늦게 회의실을 나와 물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개중에는 입을 아예 틀어막은 이들도 있었다.
주희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말문을 열었다.
“본부장님, 실은 1팀에서…….”
“아이고! 본부장님.”
지금 이야기해야 뒤에서 욕하는 것들이 더 이상 입을 나불대지 않으리라.
그런데 평소 눈치 없던 1팀장이 주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큰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팀이 다르다 보니 소통이 잘 안 됐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저희 애들은 제가 알아서 잘 타이를 테니 걱정 마시고, 저랑 같이 차라도 한잔하시죠.”
‘와. 미치겠네!’
주희는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이걸 이렇게 날려야만 한다는 게 그녀로선 상당히 애석한 일이었다.
주희가 억울해하는 낯으로 태진을 쳐다보았다.
제발 그가 알아주길. 그녀는 간절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서요, 본부장님. 가시죠.”
“아. 네.”
그러나 미처 그녀의 간절함이 닿지 못한 듯 태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1팀장에게 끌려가다시피 했다.
“휴…….”
1팀장 덕분에, 동시에 때문에였다.
김 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주희는 분함이 가라앉지 않아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 *
문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화장실엔 정적이 흘렀다.
“…….”
수영은 한참 동안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프흐…….”
한숨을 마음 편히 내쉬는 것도 잘되지 않을 만큼 속에서 화가 끓었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수영이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
울긋불긋 올라오는 열이 얼굴을 뒤덮었다.
그새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때려치울까.’
회사를 그만두면 괜찮아지려나.
수영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덜컹.
그녀는 여전히 풀어지지 않은 마음과 표정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억지로 웃는 척 입매를 끌어 올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저 버티기만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수영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며 사무실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이제 막 잡아당기려는 찰나.
“하하하.”
웃음소리가 복도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큰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돌아볼 정도였다.
수영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 ‘무심코’가 사람을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할지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