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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그녀는 예고도 없이 들어온 태진의 발언에 기침을 토했다.
“헉, 팀장님. 여기요.”
“감, 콜록, 사합, 콜록!”
수영의 기침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얘가 진짜 왜 이래?’
얼굴에 철판을 몇 개나 깐 거야. 어쩜 이런 소리를 눈 하나 깜빡 않고. 미치겠네, 진짜.
“많이 놀랐어요?”
“…….”
딱 봐도 당황하는 제 꼴을 구경하고 싶어서 뱉은 소리였다.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데도 능글맞게 웃고 있는 게 뻔할 뻔 자다.
“네. 없습니다. 잘해 볼 생각.”
수영은 속에서 끓는 화를 억누른 채 단호히 대답했다.
욕 안 하려 혀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쥐가 날 지경이었다.
성 대리에게 받은 냅킨으로 입가를 문지르며 그녀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너랑 잘될 바에야 회사를 관두고 말지!’
어제는 술에 취해 잠깐 겪은 혼란에 불과했다.
일부러 모두가 다 보고 있는 회사에서 사람 불편하게 하는 놈이라는 걸 잠시 잊었던 탓에 생긴 혼란.
“이런. 유감이네요.”
‘나도 유감이다. 너와 얽힌 내 인생이.’
쩝쩝, 입맛 다시는 시늉을 하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친 태진을 보며 콧등을 한 번 찡그렸다.
그러곤 이내 상대하기 싫어 고개를 처박고 밥에 집중했다.
이제부턴 무슨 말이 들려와도 내색하지 않으리라.
“많이 먹어요, 최 팀장.”
전투적으로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 수영을 보는 태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귀엽기는.’
태진은 저 때문에 좁힌 미간을 펼 생각도 없이 우걱우걱 밥을 씹는 수영의 터질 것 같은 볼이, 꼭 햄스터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진짜 귀엽네.’
태진의 다문 입술 사이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꿀이 뚝뚝 떨어지네.’
간이고 쓸개고 다 퍼 줄 것처럼 한없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남자.
적어도 그를 대각선 방향에서 주시하는 주희의 눈엔 태진이 그렇게 보였다.
그녀는 슬쩍 상체를 기울여 넌지시 말을 건넸다.
“본부장님, 최 팀장이랑 전에는 어떤 사이셨어요?”
“어떤…… 사이요?”
“뭐, 최 팀장 말로는 아무 사이 아니라던데. 본부장님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요.”
태진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수영은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양쪽 이야기를 전부 들어 봐야 아는 거니까.
왠지 그녀는 말해 주지 않은 무언가가 있으리라. 주희의 촉이 바짝 섰다.
“글쎄요.”
그가 입을 열자 주희는 귀를 쫑긋거리며 상체까지 기울였다.
“음…….”
제가 하는 모든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주희의 자세에 태진이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애틋한 사이?”
“푸웃!”
‘이건 또 뭔 소리야!’
수영은 분명 내색하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했지만, 그냥 무시하기에는 태진의 발언이 너무도 셌다.
결국 그녀는 때마침 머금었던 물을 살포하듯 뱉어 냈다.
“…….”
“…….”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뿜는 소리를 들은 몇몇은 수영이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
주희와 성 대리가 ‘헉!’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최 팀장……. 괜찮아?”
“그, 보, 본부장님이 장난치셔서 너무 놀라셨나 보다. 그렇죠? 하하, 하하하.”
태진의 눈치를 살피던 성 대리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어색하기 짝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 했으나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설상가상, 수영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팍 구기고 있었다.
‘이게 진짜!’
적당한 장난이면 말을 안 해. 말도 안 되는 말을 자꾸 사실처럼 말하면 어떡하란 말인가.
벌써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짜증이 솟구쳤다.
“…….”
하여 욕을 한 바가지 할 기세로 노려보고 있노라니 뒤늦게 태진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뚝. 뚝.
얼굴은 물론 식판까지 적신 물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후우…….”
스스로의 행색을 본 태진이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늘 환하게 웃지만 정색하면 누구보다도 매서운 얼굴인 그의 낯에서 표정이 사라져 갔다.
‘아 씨…….’
망했다.
회사라는 걸 인지했어야 했다. 남의 눈을 의식했어야 했다.
수영은 마음속으로 제 이마를 몇 번이고 때리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 다시 퍼다…….”
“됐습니다.”
그런 뒤 겨우 꺼낸 말을 태진이 싹둑 잘라먹곤 대답했다.
“다 먹었어요.”
‘아직 한 숟갈밖에 안 먹은 것 같은데.’
자기 밥에 더러운 게 들어갔다고 화났구나. 셋의 직감은 일치했다.
슥.
그러나 태진의 행동은 그 직감과 달랐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저들 사이에 놓인 냅킨을 뽑아 물기를 툭툭 털어 냈다.
그러곤 다시 같은 양을 뽑아 수영에게 건넸다.
“자.”
“……네?”
“닦아요. 입 주변에 묻은 거.”
‘뭐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니 더욱더 뻘쭘해졌다.
‘화난 게 아니었나?’
저 혼자 과민하게 받아들였는가 보다 싶어 수영이 입가를 닦으면서도 그를 곁눈질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내 밥 퍼 와요.’라고 말할 것 같은데 입은 벙긋도 하지 않았다.
“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수영이 콧등에 주름을 잡는 사이, 드디어 태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 밥 먹고 나랑 같이 카페나 가죠.”
“카페는 왜…….”
“배고파서요. 내가 최 팀장이 하는 건 뭐든 좋긴 한데 비위는 좀 약해서.”
“…….”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턱을 괴고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낯짝에 밥이라도 밀어 넣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이거 먹고 입 좀 다물라고.
“하아…….”
하나 언제나 그렇듯 생각과 행동은 일치하지 못하였다.
의지는 있어도 상황이 따라 주지 않음에 수영은 체념 가득한 한숨을 토해 냈다.

* * *

결국 왔다. 그놈의 카페. 진태진과 함께.
식당을 나오자마자 배고파 죽겠다며 칭얼대는 소리에 귀가 뜯겨 나갈 지경이었다.
카페로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선 수영은 급히 정색했다.
“본부장님 뭐 드실 건데요.”
질문이 아닌 빨리 말하라는 의도가 다분한 어조로 툭 말을 던졌다.
친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지만 태진은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싱그러웠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딱딱하네. 아까 그 두 사람의 반만큼이라도 대해 주면 안 됩니까?”
“그렇게 대한 건데요.”
그러자 수영이 즉답했다.
“딱 반만큼.”
벼룩의 간을 반으로 쪼갠 만큼.
“얼른 고르세요. 주문하게.”
“흐음…….”
수영은 그와 말 섞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폴폴 풍겨 댔다.
새침하고 도도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재촉에 태진의 입매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최 팀장은 뭐 마시는데요?”
“네? 저요?”
그런 건 왜 물어. 알아 봤자 같은 거 안 마실 거면서.
“네, 최 팀장. 뭐 마셔요? 아직도 단 거 좋아하나?”
“네……. 뭐, 그렇죠.”
“저도 같은 거로 먹죠.”
“너 단…….”
수영은 저도 모르게 평소답지 않은 오지랖을 부릴 뻔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태진은 단 걸 싫어했고, 제가 항상 마시는 건 달달함의 극치였다.
분명 태진의 입맛에는 안 맞을 텐데.
‘뭐, 입맛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까.’
괜한 참견 말자. 수영은 그리 생각했다.
“……그러세요, 그럼.”
“오셨어요?”
몸을 돌려 카운터로 향하자 사장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오늘은 못 보던 분과 오셨네요?”
“아, 네…….”
“늘 수영 씨 먹던 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되죠?”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아, 그리고 샌드위치도요.”
“늘?”
저들이 들어올 때부터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덕에 사장이 거침없이 포스기를 두드리며 묻자 수영이 끄덕였고, 동시에 태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많이 친한가 봐요?”
“네?”
목소리에 날이 어찌나 섰는지 공기도 자를 판이었다.
수영이 상체를 뒤로 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에 카페 사장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신 답해 주었다.
“하하하, 저희 카페 단골이세요.”
“단골?”
태진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내가 이런 단골 카페 사장보다 못한가 봐, 최 팀장?”
“예?”
“뭔…….”
갑자기 왜 이래? 애도 아니고 진짜.
그가 서운한 티를 내자 수영은 어이가 없어 말끝을 흐렸고, 되레 당황한 건 사장이었다.
그는 멋쩍어하는 웃음만 지은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희 본부장님이 많이 모자라서요.”
그런 그를 발견한 그녀는 재빨리 태진의 등을 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하하. 네…….”
“잠깐, 잠깐만.”
“빨리 가세요, 본부장님. 부끄러우니까.”
“알겠, 알겠으니까 밀지 마요.”
연거푸 머리를 숙여 사과하곤 태진의 말은 듣는 체도 없이 자리를 옮겼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