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입으로는 꿍얼거리면서도 제 몫의 숟가락을 집어 들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수영, 얼굴 좀 펴.”
그러자 이 진태진 놈이 수영의 꿍얼거림이 웃기는지 키득거리며 말을 걸었다.
“이왕 하는 거 좀 웃어라. 봐. 스마일.”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서는 그녀 앞에서 활짝 웃는 태진의 낯에 빛이 가득했다.
거실로 들어오는 햇볕은 다 자기 얼굴로 빨아들인 모양이었다.
수영은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간의 두근거림에 손발이 저절로 오므라드는 것과는 절대 별개로.
하여 그 티를 내지 않고자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래? 미쳤어?”
“최수영! 너는 도와주러 온 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
“아휴, 태진이 반만 좀 닮아라. 태진이 봐. 말도 예쁘게 하고, 응? 너도 얘처럼 좀 웃으면서 해. 얼마나 보기 좋니?”
“허…….”
대체 어떻게 엄마를 구워삶은 건지 아주 사랑이 폭발하겠다.
수영은 거듭되는 어미의 타박에 미간에 주름을 잡고 태진을 노려보았다. 제집에서는 적당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랬더니 이게, 진태진이,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윙크를 날린다.
“이…….”
갑작스러운 그의 윙크에 당황한 수영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이게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해?’
태진은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다시금 눈웃음을 치고는 제가 들고 있던 뒤집개와 수영의 숟가락을 바꿔치기했다.
“네가 전 마저 부쳐. 난 어머니한테 만두 빚는 거나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
“뭐? 야, 이걸 나 혼자 다 어떻…….”
어떻게 해, 하고 말하려던 입이 아직 전이 되지 못한 반죽들을 봄과 동시에 다물어졌다.
거의 바닥을 보이는 큰 스테인리스 볼. 기껏해야 한두 번 더 하면 끝나는 정도였다.
수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야. 너 이거 네가 다 했어?”
“어. 왜?”
“어?”
그러나 태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조금의 꾸밈도 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아니……. 아냐. 아무것도.”
수영이 고개를 저으며 뒤집개를 만지작거렸다.
‘뭐야……. 일부러 준 건가?’
얼마 안 남아서?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하고 생각을 해 봐도 결국은 다시 또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굳이 제게 이걸 넘겨줄 리는 없으니까.
“…….”
별거로 다 사람을 쥐고 흔든다, 진태진. 이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거로 사람 설레게.
수영은 가슴팍이 간질거리는 것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이렇게요?”
“어머. 너 진짜 못하는 게 없구나? 어쩜 이렇게 예쁘게 잘 빚었지?”
“다 어머니가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호호. 그런가?”
슬쩍 고개를 들어 쳐다본 태진은 시치미를 뚝 뗀 채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피식. 수영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태진이가 손재주가 좋네.”
“네. 어릴 땐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우리 수영이는 손재주라고는 요만큼도 없어서 큰일이야.”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녀의 어미 입에서 나오는 험담에 수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치. 손재주가 밥 먹여 주나?”
“그래도 있으면 좋잖니? 태진이 봐. 얼마나 잘해? 보는 내가 다 뿌듯하다.”
한껏 서운함을 토로해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그녀의 어미는 어떤 이야기가 주제가 되든 연신 태진만 칭찬할 뿐이었다.
수영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누구는 좋겠네. 나랑 달리 손재주가 좋아서.”
“그럼 네가 더 좋은 거 아냐?”
“뭐? 어째서?”
“내가 다 할 거 아냐. 집안일은 뭐든.”
“어머.”
태진의 말에 이어진 마지막 감탄사는 수영이 아닌 그녀의 어미 것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려는가 보다, 했던 그녀는 활짝 웃으며 하는 대답에 입을 꾹 다물었다.
‘누…… 누가 들으면 결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엄밀히 말하지만 사귀는 것도 아니다.
비록 키스를 했고, 하룻밤을 보냈고, 그를 볼 때마다 부정맥이 오기라도 한 양 심장이 날뛰지만, 사귀는 건 아니었다.
아마 수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겠지.
첫 밤의 충격이 커서 말할 때를 놓친 거지만 어쨌든.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벌써 무슨 결혼 날짜라도 잡은 것처럼 말을 하는지.
‘하여간…….’
저놈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문제라며 수영은 대꾸도 않고 옆에 내려놓았던 뒤집개를 집어 들었다.
“어!”
그때. 미처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것들을 보지 못한 수영이 액체가 찰랑이는 그릇을 건드렸다.
찰팍.
그릇은 태진의 손보다 빨랐고, 곧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릇 앞에 앉아 있던 건 태진이었다.
“…….”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래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계란 비린내가 온 거실을 장악했다.
수영은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코를 감싸 쥐었다.
“……미안.”
하지만 그녀의 사과는 100%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