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때, 1팀 쪽에서 적잖이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1팀장이었고, 그는 자신의 팀원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개발했는데 문제가 터졌던 걸 이제 알았다는 게 말이 돼? 거기에 테이블까지 날려 먹었다고? 왜! 아주 DB 전부 날려 버리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당장 문제 해결해. 다 끝나 가는 마당에…… 어휴!”
그 때문에 사무실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1팀장의 화에 고개가 돌아갔던 수영은 슬쩍 주희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무슨 일이래요?”
“지난주에 통테(통합 테스트) 하다가 뭐가 안 맞는 게 있었나 봐. 수정하다가 테이블을 날려 먹은 것 같대.”
“네? 데이터가 아니고요?”
“응. 그래서 강 팀장이 저 난리잖아. 당장 다음 주에 오픈인데 DB 관리를 저 지경으로 했으니……. 그렇게 자기네들한테만 권한 다 내놓으라고 DBA한테 억지 부리더니 결국 일낸 거지, 뭐.”
“헙…….”
수영은 등골이 오싹했다. 행여 소리를 지를까 급히 입술을 모아 입을 틀어막았다.
“테이블 신청 다시 해야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DBA랑 사이 안 좋은 유일한 팀인데. 아마 지금 바로 신청해도 똥줄 좀 타라고 금요일에나 결재 내려 줄걸?”
“복구라도 잘해야 할 텐데…….”
“내버려 둬. 자기, 행여나 도와줄 생각 마. 우리 개고생할 때 옆에서 휴가 얘기나 꺼냈던 인간이야. 알지?”
“…….”
재작년, 같은 팀도 아닌데 도와줬다며 1팀장에게 괜한 오지랖 부린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전적이 있는 수영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을 한 건 비단 둘만이 아닌 듯 2팀에서조차 어느 하나 1팀을 선뜻 도와줄 기미가 없었다.
‘괜찮겠지.’
정말 1팀장의 말처럼 이건 오지랖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괜히 자꾸만 시선이 울먹이는 김 대리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던 그때, 마침 사무실로 들어온 태진의 목소리에 삭막했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그게…….”
그러자 김 대리의 옆에서 우왕좌왕하던 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잠자코 직원의 이야기를 듣던 태진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담담히 대답했다.
“큰일이네요.”
‘뭐?’
고작 한다는 소리가, 큰일이네요?
뭔가 거창한 말을 할 것처럼 표정을 짓더니 막상 흘러나온 말은 너무도 가벼웠다.
‘난 또 뭐 대단한 소리라도 한다고.’
순간 황당해진 수영이 어이가 없어 한쪽 입꼬리를 실룩였다.
태진의 말이 거듭 이어졌다.
“권한 다 갖고 있다고 했죠?”
“네…….”
김 대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앉아도 됩니까?”
“네? 아, 네. 앉으세요.”
느닷없는 태진의 물음에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김 대리가 옆으로 비켜섰고, 1팀장도 조금씩 화가 식었는지 작은 눈을 깜박이며 태진을 쳐다보았다.
그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훑어보며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는 듯하더니 이내 그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망설임 없는 타건 소리에 주변으로 침묵이 흘렀다.
설마 그가 이걸 해결할까, 하는 의심과 기대가 직원들 사이에 공존하는 듯했다.
탁!
이윽고 그가 마지막 키보드 소리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됐어요.”
“네?”
“됐다고요. 복구.”
태진은 옆에 놓아두었던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홀짝이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일반적인 방법은 안 돼서 백업 서버 타고 들어갔다 온 거라 김 대리님 자리 IP가 찍힐 거예요. 나중에 연락 오면 서 부장님한테 이유 말씀드리고 권한 돌려 드리세요. 애초에 팀에서 DB 권한을 다 갖고 있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와…….”
김 대리의 연이은 꾸벅임 뒤로 직원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작게는 박수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웬일이야…….’
처음 봤다. 태진이 일하는 거.
아니 뭐, 일이야 늘 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본 건 없었으니까.
그저 새삼 그가 허투루 저기 앉아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이번 건 좀 멋있네.’
수영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1팀은 김 대리 자리로 시선이 돌아섰고, 다른 이들은 자기들끼리 수군대느라 정신이 없을 즈음. 그녀의 시선을 느낀 태진이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그는 곧장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롯이 수영에게만 향한 웃음이었다.
‘뭐야, 쟤……!’
그러나 눈을 피해 버리는 탓에 그 웃음도 오래가진 못하였다.
‘심장 떨어질 뻔했네.’
왠지는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두근거림을 느낀 수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흡을 다듬었다.
‘누가 볼까 봐 그랬던 거야.’
그러고는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 다짐했다.
“후우…….”
그렇게 심호흡 한 번 더.
수영은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자기, 커피 타러 가자.”
“아, 네!”
하나 재차 들리는 주희의 부름에 다시 일어서 탕비실로 향했다.
“본부장님 말이야…….”
주희가 작은 목소리를 더욱 작게 하며 수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낙하산은 아닌가 보다. 그렇지?”
그녀의 눈은 새로운 것을 보기라도 한 양 반짝였다. 여태껏 보지 못한 태진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다 온 걸까? 단순히 경영만 하다 온 건 아닌가 봐. 우리 실무까지…….”
“진짜 대박이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주희만 놀란 게 아닌 듯했다.
상황이 정리되기 무섭게 탕비실에 들어가 있던 1팀의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회의 때마다 보통 분 아니시라는 건 알았는데, 오늘이 진짜 최고였던 것 같아요.”
“그러게. 그냥 낙하산은 아닌가 보다. 음…… 능력 있는 낙하산?”
“에이. 그게 뭐예요.”
“근데 낙하산 아니어도 본부장님은 진짜 언젠간 저 자리 갔을 것 같지 않아요? 왜, 저번 주에 2팀 이슈 생겼을 때 커버 치면서 그랬잖아요. 이럴 때 자길 빽으로 쓰지 언제 쓰냐고.”
“맞다, 맞다. 나도 들었어, 그거. 진짜 우리 팀 누구랑 비교되더라니까. 큭큭.”
대화의 주제는 당연 태진이었고, 내용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주희가 들어가려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듣고 킥킥거렸다.
“크흠!”
그러다 나중에서야 이성이 돌아왔는지 일부러 소리를 내곤 탕비실 문을 열어젖혔다.
둘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1팀의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들의 꽁무니를 쳐다보던 주희는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며 깔깔거렸다.
“자기도 들었지? 1팀에서 얘기하는 거?”
“하하……. 네…….”
듣고 싶지 않아도 주희가 탕비실로 곧바로 들어가려는 제 팔을 잡아끌어 멈춰 세운 탓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시끄럽겠네.’
이슈 하나만 있어도 말에 발 달린 것처럼 퍼지는 곳이다.
아마 두고두고 회자가 될 터.
‘최대한 마주치지 말아야지.’
이 시기에 엮였다가는 괜히 같이 입에 오르내리기 십상이다. 쥐 죽은 듯이 회사 다니는 것만큼 최고인 게 없다.
모르는 척. 아닌 척.
수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추출이 끝난 커피를 덜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 향에 저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
그런데 왜 하필 제 입매가 휘자마자 좀 전에 저를 보고 웃던 태진이 떠오르는지.
‘뭐야……. 왜…….’
단지 커피 향이 좋아 웃었을 뿐인데. 너무 환하게도, 잔잔하게도 아닌 적당한 높이까지 올린 입꼬리가 떠올랐다.
눈은 살짝 접힐 듯 말 듯 하면서 시선은 올곧았던 게.
그 시선이 잠깐이지만 또렷하게 자신을 향했음이.
‘어이없어.’
수영은 아른거리는 그 얼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려 괜스레 입술을 꾹 짓이겼다.* * *
수영은 오늘 꼭 비가 오길 바랐다.
비록 평일 내내 화창했더라도 주말인 오늘만큼은 비가 왔으면 했다.
비를 싫어하지만 오늘만큼은 꼭!
“…….”
한데 날씨는 짜증 날 정도로 좋았다. 전날 새벽까지 그렇게 빌었건만.
전혀 달갑지 않은 주말 아침, 약속 장소에 나온 수영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분명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놈의 날씨는 1분 단위로 바뀌는 모양이지? 하나도 안 맞게.
별게 다 짜증 났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등산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그게 전부 태진의 한마디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진태진…….”
수영은 아직 오지 않은 태진을 기다리면서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문제의 시작은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였다.* * *
“짠!”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영은 태진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팀 봐라. 지겹게 하는 회식인데 참 한결같아, 저기는.”
춤까지 추는 주희의 중얼거림에 수영은 작게 웃어 보였다.
“사실상 오늘은 1팀을 위한 회식이기는 하잖아요.”
수영이 한 번 더 웃고는 술잔을 집어 들어 입 안으로 한 모금 들이켰다.
“아. 자기 그거 알아?”
주희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수영의 팔을 툭툭 쳤다.
수영이 “뭐가요?” 하고 반문하자 주희는 슥슥 주변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1팀의 김 대리, 본부장님한테 사심 있다는 거?”
“푸웃!”
“어쩐지. 요즘 눈빛이 수상하더라니.”
“콜록! 콜록!”
그녀의 말은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어떤 방면으로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뛰어넘은 말이었던지라 수영은 사레들린 나머지 기침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