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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목소리가 귓속에 스며들었다. 쿵쿵 뛰는 심장에 바람은 찬데 몸이 춥기는커녕 뜨거웠고, 알딸딸하던 술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수영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원래라면 제게 다가오는 그를 밀어 낼 생각이었지만, 그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은 새하얬다.
그사이 둘은 조금 더 가까워졌고, 숨결이 닿을 때쯤 입술이 포개졌다.
차가웠던 입 안이 밀려들어 오는 혀와 타액에 금세 달아올랐다. 마치 그의 온기를 나눠 갖듯 수영도 온몸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뭐야, 얘 왜 이렇게…….’
여기가 밖이니까 망정이지, 농도가 짙어도 너무 짙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흣……!”
기어이 수영이 그를 따라가지 못해 신음을 흘려보냈고, 그제야 태진이 수영에게서 멀어졌다.
“…….”
입술이 그의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어 번들거리는 게 느껴졌으나 닦아 낼 정신은 없었다.
아직 숨결이 닿을 거리. 태진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또다시 심장이 쿵쿵거렸다.
“멈췄네. 딸꾹질.”
“…….”
멍했다. 심장 소리가 귀에서 울리는 탓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수영은 바보같이 “응?” 하고 되물었고, 태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누나 온다.”
“어?”
“야, 최수영!”
그리고 때마침. 느닷없는 그의 말에 뒤이어 들리는 제 언니의 부름에 몸을 들썩였다.
벌떡!
수영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나 지금 진태진이랑 한 거야?’
뒤늦게 상황 파악이 끝이 났다. 방금 태진이랑 무얼 했는지.
‘키스를? 그것도 엄청 진…… 진하게?’
수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터질 것같이 변하였다.
‘미쳤어……!’
전이라면 기함했을 일을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감정에 순응했는지 모른 채로 저질러 버리다니.
문제는 그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거였다. 아직 스스로가 마음을 완전히 순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했음에도 나쁘지 않았다는 게.
“오셨어요, 누나?”
“…….”
수영은 입술을 잘근거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수진을 대하는 태진의 뒤를 빤히 쳐다보았다.

* * *

쏴아아아…….
호텔로 들어와 먼저 씻고 잠들어 버린 언니와 달리 뒤늦게 샤워를 시작한 수영은 다 씻고 나서도 물을 틀어 놓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너무 많이 마셨어.’
완전히 정신을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술기운은 여전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태진을 볼 때마다 자꾸 그 장면이 생각나 혼자서 퍼마신 탓이 컸다.
“…….”
슥슥, 제아무리 입술을 문질러 봐도 아직 촉감이 생생했다. 그 뒤론 입 안으로 들어왔던 그 감촉과 숨결을 따라 알코올과 적절히 섞인 체취가 떠올라 다리의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하아…….”
뚝. 수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물줄기를 잠갔다.
‘잠이나 자자.’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진태진도 별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데, 뭐.’
그한테는 별거 아닌 일일 텐데 굳이.
수영은 콧등을 살짝 찡그리며 옷을 걸친 뒤 선반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거 혹시 네 거야?]

그러자 곧장 기다렸다는 듯 태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영은 파우치가 찍힌 한 장의 사진이 함께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제 언니를 돌아보았다.
“언니, 이거 언니 거……. 맞다. 언니 자지. 내 정신 좀 봐.”
수영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가지고 와야겠네.”

[언니 거야. 내가 가지러 갈게.]

‘어차피 옆방이니까.’
게다가 괜히 자는 호적 메이트 깨웠다간 어떤 험한 말을 들을지 몰랐다.
수영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한 채 방을 빠져나갔다.
똑똑. 바로 옆방으로 걸음을 옮긴 수영이 문을 두드렸다. 그 즉시 문이 열렸고, 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우치. 줘.”
그녀는 조금 전까지 같이 술 마신 사이에 인사 따윈 생략한 채 곧장 손을 내밀었다.
태진은 못내 아쉬워하는 얼굴로 그녀의 손바닥 위에 파우치를 올려놓았다.
“갈게. 잘 자.”
그러자 수영이 얼굴도 보지 않고 뒤를 돌았다. 얼핏 그와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어…… 어. 그래.”
결국 그는 아쉬움만 잔뜩 내비치곤 그녀의 뒤통수에 손을 흔들었다.
철컥.
“……응?”
철컥, 철컥.
“……뭐야.”
그런데 진즉 들어가 뒤통수도 보여 주지 않았어야 할 수영이 어째서인지 아직도 문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도 꽤나 당황하는 낯을 띠고서.
“왜 그래?”
태진이 문을 조금 더 열며 물었다.
“문이 안 열려? 카드 안 갖고 나왔어?”
그의 물음에 수영의 입이 다물어졌고, 안색은 새하얗게 변하였다.
이내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한 번 기울었다.
“누나는? 자?”
“……응.”
“하…… 하하.”
설마 하는 눈빛으로 물었던 태진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그녀의 대답에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이라도 더 수영을 볼 수 있게 된 건 좋지만 그녀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자니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애매모호한 기분이었으나 그 와중에 그 표정이 너무도 귀여워 입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태진은 입술을 앙다물어 억지로 웃음을 감춘 뒤 흠흠,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예비 키 하나 더 있을 거야. 프런트에는 내가 연락해 볼 테니까 일단 들어와 있어.”
“…….”
수영은 잠깐이지만 고민했다. 그냥 밖에서 기다릴까, 들어가서 기다릴까. 왠지 저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후우…….”
하나 어쩌겠는가. 카드를 들고 오지 않은 제 탓인걸.
그녀는 심히 피곤한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누가 봐도 잠옷인 차림새로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고 싶지는 않았다.
수영은 끝내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잠깐 앉아 있어. 바로 연락해 볼 테니까.”
방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태진이 수영을 지나쳐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연달아 끄덕였고, 그의 침대로 가 걸터앉았다.
‘피곤하다.’
술도 적당히 취했겠다, 따듯한 물로 샤워도 했겠다. 태진도 방금 씻고 나왔는지 은은하게 객실 내에 맴도는 향이 코끝을 자극하니 포근함마저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 앉아 있기까지 하니 이제 누워서 잠들면 그만인데.
“하필이면 이게 내 침대가 아니란 말이지…….”
아쉽다.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완전히 감을 수 없다는 게.
“방금 뭐라고 말하지 않았냐?”
그때, 이제 막 수화기를 내려놓은 태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얼핏 들은 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최수영?”
그러나 수영은 금세 노곤함에 취해 대답할 기력이 없어진 듯 눈만 끔벅거리며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놈 참…….”
그리고, 멋쩍어하는 그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할 새도 없이 입이 먼저 벌어졌다.
“키스를…… 잘한다 싶어서.”
분명 머릿속으론 ‘잘생겼다 싶어서.’라는 부류의 아무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까의 기억이 강렬했던 걸까.
수영은 손을 뻗어 그를 가리키고는 생각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하긴……. 너는 처음이 아니랬지.”
“…….”
“난 처음인데.”
첫사랑은 첫사랑이고, 줄곧 좋아하고 있었다 해도 10년이면 키스 정도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서운하냐.
이제 와서야 깨달은 거지만 그때 그에게 듣자마자 든 감정은 ‘서운함’이었던 듯싶었다.
“다 지난 일인데…….”
하아. 수영은 차마 한숨을 내뱉을 기력도 없어 속으로만 뱉어 낸 뒤,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몸을 지탱해 주었고, 그녀의 의식은 그대로 눈을 감을 듯 말 듯, 정신을 놓을 듯 말 듯 위태로웠다.
그렇게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리면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을 즈음.
덥석!
태진이 아래로 떨어지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제 목덜미에 걸치곤 상체를 기울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동자는 또렷하지만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진 듯 보였다.
어느덧 숨결이 오가는 소리가 서로의 귓가에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태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처음 아니야.”
“그래……. 알아.”
“너도, 나도. 처음 아니라고.”
“……뭐?”
“그리고 그땐 네가 먼저 나한테 키스했어.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억이 티끌만큼도 나질 않는데. 아무래도 태진이 저를 놀리려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그의 낮게 깔린 음성이 귀를 자극해서, 부정하고 싶기는커녕 조금만 더 제게 속삭여 줬으면 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 건지 태진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조금 더.
더 가까이.
다시금 입술이 맞닿았다.
코끝으론 차디찬 바람과 바다 내음 대신 샴푸 향과 그의 체취가 맴돌았고, 입 안엔 알코올 대신 상쾌한 향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의 타액과 몸은 뜨겁다 못해 불덩이 같았다.
“으응…….”
키스는 아까보다 더 짙게 이어졌다. 혀가 섞이면서 방 안엔 홧홧한 공기와 수분기 머금은 소리가 퍼져 나갔다.
수영이 몽롱한 정신에 입술 사이로 신음을 흘려보내었다.
“흣.”
그게 신호탄이었는지 태진의 입술이 수영의 목덜미로 향했고, 손은 그녀의 옷에 파고들어 허리께를 부드럽게 쓸었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