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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최수영은 옆모습도 예쁘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 탓이었다.
“…….”
그러다 얼마 안 가 그의 얼굴이 착잡하게 변하였다.
〈네. 잘 받았어요. 이것 때문에 아직 퇴근 못 하신 거예요?〉
“…….”
자꾸만 수영이 통화할 적의 표정과 목소리가 잊히질 않았다.
‘기다리지 말 걸 그랬나.’
태진은 수영이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게 걱정되었다. 그 때문에 기다린 시간이었는데, 하필이면 선우의 연락에 활짝 웃는 걸 봐 버릴 게 뭐람.
착한 사람.
섬세하고 인상이 부드러우며,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
수영이 좋아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그럼 태진 본인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몰라도 수영에게 착하단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녀의 앞에서 섬세할 일도 없었으며, 인상이 더럽다는 소리나 몇 번 들어 보았다.
그의 생각에 아마도 자신은 수영의 눈에 차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하나 그게 사실이라 해도 슬프진 않았다.
물론 아쉽지만, 수영의 주변에 다른 남자라곤 아무도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
어느 날 갑자기 수영의 주변에 남자가 생겼다.
그것도 직접 그녀의 입으로 언급했던 ‘이상형’의 남자가.
잘 웃지도 않던 수영이 요즘 들어 쉽게 미소를 보이는 건 아무리 봐도 이선우 때문인 것 같았다.
이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굉장히 분하고 짜증 나지만 합리적 의심.
또다시 질투가 도져 버렸다.
‘……뺏기긴 싫은데.’
그렇다고 수영에게 왜 자신의 맘을 몰라주냐며 보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
그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어떠한 말을 되삼킨 뒤 테이블 위에 상체를 엎드렸다.

* * *

“젠장…….”
태진은 바로 옆 사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살짝 좁아진 미간은 현재 그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음을 나타내어 주었다.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지?’
어제는 기어이 수영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억지를 부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밤을 꼬박 새우듯이 했다.
힐끔, 퀭한 눈동자만 돌려 회의실 쪽을 쳐다보았다.
한숨이 거듭 터져 나왔다.
‘미치겠네.’
집중력이라면 남부럽지 않던 태진이다.
어지간하면 판단력을 잃지 않는 그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펜으로 끼적이는 게 자신의 서명인지 동그라미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다지 알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
태진의 머릿속은 온통 저 회의실 안의 모습을 상상하기 바빴다.
“후…….”
태진은 찌푸렸던 인상을 펼 생각도 없이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노려보았다.
“저…… 본부장님?”
하필이면 남이 갖고 온 서류를.
펜을 쥐고 서명까지 하기는 했는데 좀처럼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는 서류를 보며 직원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사색에 잠겼던 태진이 직원을 올려다보았고, 직원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혹시 결재 서류에 문제라도…….”
토씨 하나라도 틀리는 꼴을 못 보는 사람.
그러니 행여 자신이 쓴 서류에 오타라도 있을까, 직원은 전전긍긍하는 상태였다.
“……아.”
직원의 물음에 태진은 결재판을 덮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뇨. 없습니다. 정 대리님이 저보다 더 꼼꼼하신데 문제가 있을 리가요.”
“아. 하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 칭찬에 90도까지 허리 숙여 인사한 직원이 사라진 후, 그의 입꼬리는 다시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턱을 괸 태진은 적잖이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최수영도 칭찬받는 거 좋아하는데.’
그래서 요즘 칭찬도 왕창 해 주는데. 태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디가 그렇게 못나서?’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태진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후…….”
그가 이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안 되겠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정말 선우에게 빼앗길 것만 같았다.
태진은 굳은 결심을 한 듯 목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떼어 놓는다.’
정 붙을 새가 없으면 있으려던 정도 떨어질 터. 그는 그 부분을 노릴 생각이었다.
태진은 회의실 쪽을 재차 주시했다.
달칵.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
그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 입술을 뗐다.
“그럼 잠깐 카페에 가실래요?”
그러나 그보다 선우의 목소리가 더 빠르고 선명했다.
수영의 고개는 태진이 아닌 선우에게로 향했고,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 좋아요.”
‘네? 좋아요?’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 건 즉시였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수영은 선우의 제안을 승낙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흔쾌히.
“가시죠.”
이윽고 둘은 신속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진짜로 나갔어?’
태진의 미세한 분노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수영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태진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가장 안쪽, 벽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곳 가까이 걸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과 선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듯,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맞은편 카페에 들어갔다.
“…….”
태진이 눈을 부릅뜨고 카페를 노려보았다.
‘어?’
다시는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던 찰나.
둘은 의외로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태진은 안도하며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에 입매가 휘려 했다.
‘뭐야.’
그러나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입매는 더 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
그는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곧 그럴 이유가 없음을 깨닫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수신 상대는 당연 수영이었다.
“…….”
- 뚜르르르.
“…….”
- 뚜르르르.
하지만 그녀는 왜인지 받을 기미가 없어 보였다.
‘안 받아?’
전화가 온 줄 몰라 안 받는 거라면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주머니에서 꺼내어 확인하는 것까지 똑똑히 그의 눈으로 봤건만, 전화를 받기는커녕 다시 주머니에 넣어 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태진의 속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언제까지 안 받나 보자.’
그는 이미 한 번 완전히 끊긴 전화를 재차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진동이 거슬리는지 수영이 그제야 느릿하게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는 게 보였다.
- 무슨 일이신데요.
“무슨…….”
‘무슨 일이신데요?’
태진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기가 차 웃음을 토했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걸 또렷하게 보았던 그는 수영을 주시하며 괜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최 팀장 지금 어디예요?”
- 카페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근무 시간에 이탈해서 노닥거리는 게 볼일입니까?”
- 노…….
아……. 태진이 짧게 탄식했다.
뱉고 나서야 제 말투가 생각 이상으로 날카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 정도로 질투할 줄은 몰랐는데.’
그는 아랫입술이 하얗게 되도록 짓누르며 말없이 수영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태진의 말투에 놀란 게 아닌 듯싶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폼이, 왠지 그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태진은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사이 그녀가 말을 이어 했다.
- 노닥거리는 거 아닌데요.
“별일도 아니겠죠. 회사로 와요. 최 팀장이 할 일이 있는데, 사무실에 최 팀장이 없으니 굉장히 난감하네.”
- …….
그는 한없이 여유롭고 태평한 목소리였다. 스스로도 목소리와 말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고집을 피우는 건 역시 둘이 1분도 붙어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 블을 으느르그느 은 흤는드으?
그 욕심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걸까. 수영이 어금니를 꽉 깨문 듯 웅얼거렸다.
태진이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아 내며 대꾸했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는데? 여보세요?”
- 별일 아니라고는 안 했다고요. 저 지금 엄청 바쁘단 소리예요!
“아, 그렇군요. 근데 나도 엄청 급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와 줬으면 좋겠는데.”
- 후우…….
“응? 어디서 한숨 소리 들리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 뒤 수영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휴대폰 너머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시야에 보이는 그녀는 휴대폰을 멀리 떨어트려 놓은 채 입을 마구 움직였다.
선우를 등지고 있는 걸 보니 거하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는 모양새였다.
‘귀엽기는.’
태진은 그마저도 귀여워 가슴이 간질거림을 느꼈다.
이윽고 수영이 욕을 끝냈는지 대답이 들려왔다.
- 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빨…….”
빨리 와요, 라는 말은 다 하지도 못했다. 그새 전화가 끊겨서.
그녀는 금세 선우와 작별 인사를 하곤 홀로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이후 건물에 가려 그녀가 보이진 않았으나 잔뜩 성질이 난 그녀의 낯이 선했다.
‘됐군.’
태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삑!
자리로 돌아와 앉음과 동시에 사무실 출입증 찍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의 예상에 딱 들어맞는, 썩 좋지 못한 인상의 수영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