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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제 본분을 끝내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누구보다 재빠르게 빠져나간 건 태진이었다.
“…….”
불과 저번 주까지만 해도 있을 수 없었던 일이 이번 주에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주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았고, 수영의 미간은 평소보다 더 좁아졌다.
또다시 든 미묘한 기분 때문이었다.
안 보는 척했지만 하필이면 시야에 진태진이 있었다.
‘바로 옆인데도 대놓고 피한다, 이거지?’
끄트머리에 있기는 했어도 저를 쳐다보다가 벽 쪽으로 붙는 것까지 전부 다 보였다.
‘그냥 보낼 걸 그랬어. 누군 자기랑 타고 싶어서 탄 줄 알아.’
왜 괜히 같이 타서는. 아침부터 아주 기분 제대로 상했다.
“자기, 그날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요. 없었어요, 그런 거.”
“진짜? 아닌 거 같은데? 안 그러면 본부장이 자기를 저렇게 대놓고 피할 리가 없잖아?”
“피…….”
‘피하는 거 맞았잖아!’
제삼자의 눈에 보일 정도라니. 얼마나 대놓고 피하면 주희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건지.
조심스러운 주희의 물음을 듣고 수영은 충격받은 심정이 되었다.
이윽고 그녀는 말끝을 흐리다 말고 짤막한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으래?”
거듭되는 부정에 주희의 표정은 더욱더 의심스럽다는 듯 변하였다.
하나 그 티를 온전히 내지는 않은 채 넌지시 어제 일을 재차 입에 담았다.
“아무튼 그거, 본부장이 한 말이야.”
“무슨…….”
“어제 강 주임한테 한 말 말이야. 본부장이 했다고.”
“…….”
“아무리 봐도 강 주임이 자기 두고 한 소리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흘긋. 반응을 살피듯 주희의 눈이 수영을 향했다.
“그것도 내내 말 없다가 자기 없을 때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안 그래?”
“설마요.”
“응?”
“본부장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요.”
수영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냥 우연히 겹쳤겠죠. 때마침.”
주희가 보는 수영의 낯에는 절대적인 불신이 가득했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퍽 상한 것 같기도 하면서, 일부러 더 믿지 않겠다 다짐하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일부러는 무슨. 아무것도 모를걸.’
다 알았으면 그럴 리가 없다며 수영이 흥, 콧바람을 뿜어내었다.
‘더군다나 자기 잘한 건 어떻게든 티 내고 싶어 하는 놈이 일부러 나 없을 때 했다고? 웃기지도 않…….’
온갖 복합적인 기분이 치밀어 오를수록 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길지 않은 복도는 어느덧 끝자락이었다.
‘뭐지?’
사무실에 들어온 수영은 자신보다 일찍이 온 몇 없는 직원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느꼈다.
들어올 때마다 있던 한두 명의 적대적인 시선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말로 딱 잘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
“…….”
그리고 그 이상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 *

“저, 최 팀장님.”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이 한창인 때였다.
“죄송해요.”
직원 두어 명이 주희와 함께 탕비실 앞에 서 있던 수영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사과를 건넸다.
수영이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네?”
너무 놀라 마시던 커피를 도로 내뱉을 뻔했다.
‘갑자기 사과를 한다고?’
물론, 지금 사과하는 이 둘이 제게 상처를 주었던 건 맞았다. 가만히 있으면 맞는 말이니 반박 못 한다며 욕을 했고, 아니라고 부정하면 발뺌한다 욕을 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낸 것도 이 둘이었고.
하지만 왜? 제가 알든 말든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 아닌가.
수영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
“두 분이 왜 갑자기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 저희가 한 말에 팀장님이 피해 보셨잖아요.”
“……팀장님, 저희 때문에 나가시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마지막 말에 순간 그녀의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두 분, 저한테 사과하러 오신 건 맞죠?”
수영의 눈매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시비 걸러 오신 거 아니고요?”
“아, 그, 그게 아니라요. 저희가 말을 잘 못해서…….”
“그렇다기엔 너무 잘하시던데. 제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렇다고 또박또박 주장하실 정도로요.”
수영의 날 선 어조가 계속되자 뒤늦게 둘의 꽁무니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냥,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저희 때문에 나가시는 걸까 봐…….”
풀 죽은 그들의 나지막한 대답이 썩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였다.
꼭 억지로 떠밀려서 사과를 하는 느낌.
아침에 느낀 그 이상했던 기분은 이 둘 때문이었는가 보다. 일찍 온 이들 중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탁.
수영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머그잔을 옆에 내려놓았다.
“두 분이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이러시는 거면, 네.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
“사과, 안 받아도 되는 거죠? 제가 뒤끝이 좀 긴 편이라.”
애초에 소문 퍼트릴 때는 남들 다 있는 자리에서 말해 놓고 사과는 아무도 없을 때 골라서 하는 거 보면 조금 괘씸하기도 하고.
“…….”
수영의 말에 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앞으로 모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그걸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결국, 어느 쪽도 끝까지 말이 없자 상대방이 먼저 고개를 기울였다.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후다닥 나가 버리는 모양새가 아주 꼴불견이었다.
정말 누가 시키기라도 한 건지. 수영은 주희와 둘만 남은 탕비실 벽에 기대어 헛웃음을 토해 냈다.
“최 팀장, 괜찮아?”
주희가 조심스레 그녀를 살폈다. 걱정 가득한 물음에 수영이 다시금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그냥 좀, 어이가 없어서요.”
“그러게. 갑자기 저게 무슨 일이래?”
“그러니까요. 사과는커녕 나갈 때까지 화만 돋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등 떠밀린 것 같다지만 사과라니. 뭐 얼마나 대단한 손에 떠밀렸기에 저러는지 수영은 다시 쫓아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마.”
그러자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주희가 눈을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네?”
순간, 수영의 표정이 신랄하게 구겨졌다.
“말도 안 돼요. 걔…… 아니, 본부장님이 누가 뭘 했는지 어떻게 알고요.”
그녀는 절대 그럴 리가 없음을 확신하는 듯 단호했다.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저 두 사람이 꼭 본부장님 없는 자리에서만 그런 거.”
“그건 그렇긴 한데…….”
하나 그에 반해 주희는 뭔가 짐작이 간다는 얼굴이었다.
주희의 말이 이어졌다.
“본부장님이 자기 예전부터 신경 쓰고 있었는걸? 당장 며칠 전에도 봤는데, 뭐.”
“무슨…….”
“언제였더라. 아마 자기 사직서 내기 며칠 전이었을 거야.”
주희는 지난날을 회상하듯 턱을 매만졌다.
그녀의 기억은 사직서를 내기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수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를 거닐자마자 그 쑥덕거림을 들은 바로 그날.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간 후였다.
사무실에 있던 주희가 마침 복도로 나온 그때.
주희 역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에 절로 눈길을 돌렸다.
〈와, 정말요?〉
먼저 들린 건 태진의 목소리였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되게 힘드셨겠네요.〉
〈그땐 그랬죠. 그래도 지금은 괜찮습니다. 많이 의연해지기도 했고요.〉
〈아하…….〉
〈역시 남 일에 신경 안 쓰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그걸 알아요?〉
〈네?〉
그러다 분위기가 얼어붙는 건 순식간이었다.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떠보는 듯한 음성에 당황하여 되묻는 강 주임의 낯이 너무도 잘 보이는 위치였다.
주희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빤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태진은 그녀에게 뒷모습만 보인 채 자신이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는지 마찰음이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재차 들린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아는 분이 왜 그러셨을까.〉
〈그게 무슨…….〉
〈아뇨. 주임님이 자꾸 남 일에 신경 쓰시는 것 같아서.〉
〈…….〉
〈아님, 최 팀장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다. 주임님은 최 팀장이 팀장 된 것부터 마음에 안 들어 하셨으니까 관심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그가 말을 이을수록 수영의 이름을 담던 입들은 조용해졌다.
웃으면서 화를 낸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말끝마다 작게 터트리는 웃음이 들렸으나 휴게실 내 공기는 무거웠다.
태진이 말을 이어 했다.
〈근데 왜 자꾸 확인되지 않은 일을 들먹이실까.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