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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 둘을 엮으려는 거냐며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건 그마저도 수영에게 밉보일지 모른다는 우려 탓이었다.
“후…….”
숨을 여러 번 내쉬었으나 좀처럼 꼬인 속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에게는 귓속에 박힌 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최수영…….’
최수영 이상형이 뭐였더라.
〈……이상형?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렴풋이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나한테 잘하는 사람이면 없던 호감도 생길 것 같기는 해. 잘 웃고, 친절하고. 나 좋다고 진심으로 표현해 주는 사람, 싫어할 이유는 없으니까.〉
넌지시 물었을 때, 생각보다 진지하게 대답했던 걸 잊을 수 없었다.
‘수영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으니까. 그게 곧 ‘제 자신’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거지.’
태진의 미간이 조금 더 좁아졌다.
성격도 좋고, 잘 웃고, 친절하기까지 한 남자.
친화력이 좋아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남자.
수영이 좋아할 만한 남자였다.
태진은 힐끔, 눈짓으로만 불이 켜져 있는 회의실을 쳐다본 뒤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 빛에 그의 눈이 번득였다.

* * *

선우가 물었다.
“입맛에는 맞으세요?”
수영이 대답했다.
“네. 맛있어요.”
그리고 다시 선우가 물었다.
“어떠세요? 먹을 만하시죠?”
그에 태진이 답했다.
“네. 나쁘지 않네요.”
“다행이에요. 입맛에 안 맞으실까 봐 걱정했는데.”
선우는 하하, 하며 사람 좋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왠지 죄송하네요. 취소하기에는 이미 예약에 주문까지 다 해 놔서……. 본부장님께서 같이 드실 줄 알았다면 더 좋은 곳을 잡을 걸 그랬는데요.”
“괜찮습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요.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우리 직원들 수가 더 많으니까요.”
“하하하. 그러실 것까지는…….”
이게 무슨 상황이람.
이질감 넘치는 인간이 이질감 없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경에 수영이 남몰래 인상을 구겼다.
‘진태진 이 미친놈.’
회의도 잘 끝났고, 전에 못 이룬 점심 약속도 무리 없이 잡혔다.
제 팀원들은 공짜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회의실을 나왔다.
물론 수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아하니 입맛도 비슷한 것 같았고, 선우가 특별히 기대해도 좋다는 말까지 했던 터라 정말 기대를 품은 상태였다.
그런데 왜.
〈점심, 같이 드시죠. 안 그래도 프로젝트 들어가면서 한 번쯤 사 드리려고 했는데.〉
‘대체 얘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얼굴에 철판을 몇 개나 깔았는지 거절할 새도 없이 앞장서서 걸어가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현재 이 상황이 되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태진이 이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허튼소리 해서 분위기 망치기만 해 봐. 진짜 가만 안 둬.’
수영은 올라오는 화를 애써 누르며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천천히 먹어요, 최 팀장. 체할라.”
“…….”
분명 태진은 수영이 본인 때문에 이러는 걸 알았다.
모르면 그건 눈치를 밥에 말아 먹은 놈일 터.
그걸 알면서도 태진의 낯짝엔 사근사근한 웃음이 가득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봐요?”
“…….”
‘이게 진짜 미쳤나?’
갑자기 웬 상냥한 척? 누가 보면 연인인 줄 알겠다.
수영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차마 입엔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실어 눈빛을 보내 보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한결같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흠흠.”
그런 둘을 번갈아 가며 보던 선우는 헛기침 소리를 내며 재차 말문을 텄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최 팀장님 공이 큽니다. 덕분에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고요.”
“…….”
“일정 내에 무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성그룹에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선우의 시선은 어느덧 수영을 향했다.
“일정 때문에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물론 우리 최 팀장 공이 크죠.”
제게 용기를 주려는 듯한 선우의 말에 ‘네.’라는 짧은 대답을 하기도 전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입을 막아 버리는 것처럼 재빠르게 대답을 낚아챈 태진의 행동에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살짝 웃는 듯, 비웃는 듯 애매모호한 웃음을 보였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던 프로젝트였거든요. 규모에 비해 일정이 빠듯해서.”
어쩐지 비소였던 듯싶었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선우가 들으면 당황하고도 남을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본부장님.”
수영이 즉시 그를 불러 세웠다.
“왜요?”
하나 태진은 뭘 잘못했냐는 듯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수영과 마주한 채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진짜……!’
뚫린 입으로 아무 말이나 막 해 놓고 시치미를 떼?
수영이 눈에 힘을 주고 무언의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번만큼은 직원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진태진의 입을 막는 게 우선이지.
그녀는 금세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고, 어색하게나마 무마하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초반에는 좀 불안했는데, 이제 걱정 안 해요. 아직 예상이긴 하지만 큰 문제만 없으면 일정 내에 잘 끝날 것 같던데요? 워낙 과장님이 일을 빨리 끝내 주셔서.”
조건은 좋으나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기간에 비해 할 게 너무 많은 탓에 앞서 두 팀이 차례로 거절한 걸 떠맡은 프로젝트였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이 사람 면전에다 대고 말하냐고.’
필시, 일부러였다.
수영은 힐끔 선우를 쳐다보았다.
잠깐이지만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던 그는 다행히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다행이네요.”
그러자 태진이 화답했다.
“뮤즈넷에서 알아서 잘, 하고 계셔…….”
콱!
“윽.”
웃는 얼굴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었다.
눈매는 아래로, 입매는 위로 휘었다고 한들 입에서 나오는 게 전부 말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의 진태진처럼, 똥을 뱉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그 찰나를 잘 잡아챈 수영은 테이블 밑에서 남몰래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덕분에 그의 말은 칼같이 차단된 후 짧고 작은 신음에 묻혀 버렸다.
“네?”
영문을 알 리 없는 선우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수영이 대신 했다.
“뮤즈넷이 워낙 잘하니까 걱정 없다는 말씀이셨나 봐요. 그렇죠? 본부장님.”
“…….”
“그렇다고 하시네요. 얼른 드세요. 다 식겠어요.”
“아, 네.”
태진의 반응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의도가 제대로 먹힌 듯했다.
그녀의 말에 태진은 물론, 선우도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 * *

“안녕히 가세요.”
“네. 다음에 또 봬요.”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이 났다.
선우는 그대로 뒤를 돌아 반대편으로 걸어갔고, 수영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본부장님.”
수영이 어금니에 힘을 준 듯 반쯤 묵은 목소리로 태진을 불러 세웠다.
“…….”
태진은 고개를 홱 돌려 최대한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진태진, 본부장님.”
수영이 재차 그를 불렀다.
“왜. 왜요.”
그녀의 차디찬 음성은 사람 1명쯤 저승으로 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살벌했다.
태진이 마지못해 대꾸했으나 그마저도 한 번에 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수영이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아니, 나는 어떻게든 프로젝트 잘 끝내고 싶어서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무안을 주면 어떡해요? 아무리 본부장님이라지만, 일이잖아요. 이러다 망치면 본부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책임 못 질 건 뭐 있어요?”
“그래요. 책임지……. 네?”
속사포처럼 밥 먹는 내내 묻어 두었던 말들을 쏟아 내었다.
조금이나마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보일 줄 알았건만 그걸 못하겠냐는 듯 오히려 반문이 되돌아왔다.
덕분에 말문이 막힌 건 수영이었다.
태진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내 직원 잘난 거 알아서 자부심 좀 갖겠다는데, 그게 책임질 일이면 책임져야죠. 그러려고 이 부서 온 거잖아요. 내가.”
“아니……. 그런 의미로 하신 거 아니었잖아요.”
자부심은 무슨. 그냥 별 시답잖은 이유로 그 남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겠지.
수영이 어이가 없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맞는데요. 그런 의미로 한 거.”
그사이 태진의 말은 계속됐다.
“3팀이 제일…….”
그러던 그가 시야에 오롯이 수영만 담다 말고 느껴지는 시선에 그녀의 뒤를 보았다.
그와 동시에 입을 멈추었다.
“헤헤.”
그녀의 뒤에는 3팀의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나 싶었지만, 처음부터 있었다. 그저 감정에 충실하여 꺼낸 수영의 화에 대답해 주다 뒤늦게 깨달은 것뿐.
태진이 끝내 입을 다물었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