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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입술이 닿는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그녀가 풍기던 알코올의 향이 그에게로 옮겨졌고, 그녀 역시 그가 품던 향을 입 안에 머금었다.
수영이 턱을 살짝 들자 입술이 조금 더 벌어졌고, 타액이 알코올 향을 따라 흘러들어 갔다.
곧 향과 향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만큼 섞이기 시작했고, 방 안 가득 수분기 가득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을 에워싸는 주변 공기는 어느샌가 홧홧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윽고 태진의 손이 그녀의 허리께를 잡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수영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감각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듯 간지러운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낯선 감각이지만 그를 뿌리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제 손을 움직여 매달리듯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태진의 손이 더욱 거칠게 그녀를 탐하기 시작했다.
“흣.”
당장이라도 모든 걸 삼켜 버릴 것 같은 그의 손길이 벅찼는지 짤막한 신음과 함께 수영은 이내 눈을 완전히 감아 버렸다.
“…….”
우뚝!
그렇게 이성을 잃은 것 같던 태진의 행동도 멈추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타액으로 촉촉해진 입가가 괜스레 민망해 태진은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미친 새끼.”
그는 조금 전 제가 한 일을 자책하는 뉘앙스를 담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아…….”
이어지는 한숨에는 그래도 완전히 선을 넘지는 않았다는 안도가 묻어났다.
힐끔, 태진이 수영을 바라보았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그녀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하.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녀의 옆에 드러누웠다.

* * *

햇볕이 강한 아침.
이상하리만큼 눈이 부신 기분에 수영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으…….”
마음 같아선 벌떡 일어나고 싶은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수영이 팔로 시야를 가린 후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힘들…….”
힘들었다. 그래서 힘들다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려 했다.
하나 그걸 허용치 않는 상황이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헙……!”
너무 놀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태진의 얼굴에 두 손이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얘가 왜 옆에 있담.
아니, 애초에 여기가 내 숙소 맞나?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니 제가 잡았던 숙소가 아니다.
자기 숙소가 아니면? 진태진의 숙소란 것이다.
‘미쳤어!’
사고 쳤나? 설마? 진짜? 진짜로?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얘랑!
‘미쳤구나, 최수영 너 진짜.’
막막했다. 기억이 나질 않으니 더더욱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아프도록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그때까지였다.
그 이후는 정말 조금도, 단 1초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필름이 끊긴 적도 없었는데. 독한 술이라더니 진짜 독하긴 한가 보다.
“하아…….”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
반쯤 체념한 얼굴로 머리를 푹 숙였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 즉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표정은 되돌아왔다.
‘뭐야. 멀쩡하네?’
살짝 흐트러진 것 같기는 해도 어제 입었던 옷이 그대로였다.
심지어는 양말조차 벗지 않은, 정말 어제 숙소에서 나올 때 입은 차림 그대로.
우려와는 달리 아무 일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
수영이 힐끔 눈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태진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가 깨기 전에 나가야 한다.
행여 진태진이 깼다간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니 빨리 사라져야지.
‘맞다, 캐리어!’
한 발짝 이불 사이로 발을 빼려던 그녀는 문득 든 제 짐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급히 주변을 살펴 캐리어의 행방을 찾았다.
‘저기 있다!’
어디 꼭꼭 숨겨 둔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었다.
네임 태그까지 완벽하게 달린 채로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좋아.’
수영은 속으로나마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돌려 태진을 쳐다보았다.
‘……안 깨겠지?’
휙휙 펼친 손바닥을 그의 얼굴 위로 휘저었다.
단 1mm의 꿈틀거림도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살며시 침대를 빠져나왔다.
‘다시는 보지 말자. 진태진아.’
어제는 우연에 우연이 겹친 하루였을 뿐이다. 나쁜 운의 연속.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이윽고 수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방을 나섰다. 탁, 소리가 조용한 내부에 울려 퍼졌다.
“…….”
잠을 깨우기엔 한참 부족한 소리였지만 때마침이랄 것도 없이 태진의 눈이 떠졌다.
마치 전부터 깨어 있었던 것처럼.
그는 곧장 일어나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었다.
“……또.”
읊조리는 음성이 낮게 깔렸다.
“가 버렸네.”
얼핏 서운하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괜찮아.”
그러다가도 그는 곧 작게 웃음 지었다.
“더는 안 놓치니까.”

* * *

그 후 며칠이 더 지났을까.
“아이 씨…….”
수영의 아침은 신경질을 부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신랄하게 구겼다.
‘꿈을 꿔도 무슨 그런 꿈을 꿔?’
차마 1분도 되새기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
‘왜 하필 그딴 놈이랑!’
무려 진태진이 등장하는 꿈.
꿈속의 자신은 그와 입을 맞추었고, 더한 것도 했다.
너무도 선명해 정말로 한 거 아닌가 싶어 꿈에서 깨자마자 소리를 냅다 지를 정도였다.
‘말도 안 돼.’
벌써 세 번째였다. 지난번 태국으로 휴가를 떠난 첫날, 그의 방에서 눈을 뜬 이후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진짜 무슨 이런 거지 같은 꿈을 다 꾼담.
“씨이…….”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수영은 그렇게 단정 지으며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한데 그 꿈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비틀어진 치약을 쥐어짜 겨우 칫솔 위에 올렸더니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떨어지질 않나.
항상 같은 시간에 오던 지하철이 1분이나 일찍 와서 놓쳐 버렸다.
그뿐이랴?
“아…….”
회사 앞까지 다 와서 껌을 밟았다.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단화로.
그래. 오늘따라 왜 단화가 신고 싶나 했다. 이러려고 신고 싶었지. 젠장.
수영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축 늘이며 탄식했다.
“오늘 진짜 재수가 없구나…….”
슬쩍 발을 들어 보니 아직 다 마르지 않은 껌이 진득하게 늘어났다.
“으.”
당장 떼어 낼 것도 없고. 그저 화단 옆 보도블록 모서리에 긁는 수밖엔 없었다.
‘정말……. 이게 뭐야!’
꿈자리가 사납더니 오늘은 종일 재수가 없을 예정인 모양이었다.
수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런 뒤 무심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헐.”
8시 55분. 지금 뛰어가지 않으면 딱 늦기 좋은 시간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막 회사 로비로 들어선 순간.
[문이 열립니다.]
저 앞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잠시만요!”
수영이 냅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간 남자를 큰 소리로 붙잡았다. 와중에도 발은 멈추지 않았고, 출입 카드를 찍는 둥 마는 둥 하며 엘리베이터 잡는 데에만 급급했다.
마지막 남은 한 발자국. 미처 닿지 못한 거리에서 손을 뻗어 버튼을 부서뜨릴 듯 눌렀다.
“감사합……!”
남자는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준 적이 없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 사람이니 인사는 해야 했다.
수영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
그와 동시에 의아하다는 듯 목소리를 낸 건 그녀가 아니었다. 수영은 몸이 굳어 움직임이 없었고, 대신 저를 보는 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
우연히 세 번 만나면 운명이라지만, 그 운명이 선연이라는 법은 없었다.
운명적으로 만난 인연이 악연일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만난, 저와 태진처럼.
“오랜만이다?”
“…….”
사람이 아무리 잘못한 게 많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시련을 주나.
수영이 찌푸리지도,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을 지은 채 엘리베이터 타기를 망설였다.
“얼른 타.”
그러나 그는 조금도 아무렇지 않은 양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는 여유까지 부렸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예상했다는 듯이.
수영은 머뭇거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멀찍이 그에게서 떨어져 섰다.
‘뭐야.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이야?’
그러고는 얼굴을 푹 숙여 있는 힘껏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왜 얘가 여기 있어?
수영은 이 작은 네모 상자가 고작 3개의 층을 올라가는 사이 수만 가지 험한 말들을 떠올렸다.
‘아니. 아니지.’
그러다 급기야는 현실에서 제대로 도피하고 싶었는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다른 층일 수도 있잖아?’
꼭 저와 같은 곳에 다닐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는 자기 세뇌와 함께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차근히 엘리베이터 버튼들을 훑었다.
“어?”
이상했다. 저는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는데 어째서 제가 갈 층인 8층에만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인지.
수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 채 곧바로 태진을 향했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