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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머쓱하게 웃던 직원들 중 1명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저희가 보이시나 보네요.”
“…….”
“두 분, 되게 친해 보이세요.”
“친하긴 누가……! 누가 친하다는 거예요!”
그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수영이었다.
“하나도 안 친해요. 뭐 하러 본부장님이랑 친하게 지내요?”
“뭐라고? 아니, 나랑 친한 게 뭐 어때서? 방금 그건 좀 불쾌했는데.”
“본부장님이랑 친해서 좋을 게 없죠. 오늘 같은 일만 빈번하게 일어날 텐데!”
“그…….”
“저 먼저 갈게요.”
“어디 가요, 최 팀장. 지금 사람 면전에다 대고 욕…….”
‘욕해 놓고 어디 가!’라는 말은 채 다 꺼내지도 못하였다.
발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어찌나 빠른지, 결국 태진은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본부장님.”
그런 그들을 번갈아 가며 보던 직원들은 혼자가 된 태진을 조심스레 불렀다.
“네.”
태진이 눈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직원들은 두 팔을 올려 주먹을 쥐고 짧게 흔들었다.
“힘내세요, 본부장님.”
“…….”
“그럼, 저희도 점심시간이 끝나서 얼른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고는 태진을 지나쳤다.
“하……. 참 나.”
태진이 눈을 크게 뜨고 기가 찬다는 웃음을 연신 토했다.
“하나같이 최수영을 닮았네.”
이건 웃을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웃자니 욕먹고도 가만히 있는 것 같고, 화를 내자니 저 사람들과 수영이 하던 행동들이 겹쳐 보여 귀엽기만 했다.
태진은 어떠한 반응 대신 실소를 터트렸다.

* * *

창밖은 어언 새까맣게 질려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고, 컴퓨터 불빛이 사그라졌다.
그건 3팀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자리, 수영이 앉아 있는 곳만 빼고.
“후우…….”
자의 반 타의 반 일거리가 한가득했다.
수영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
두 팔을 있는 힘껏 올려 뻐근함을 풀려는데 몸 곳곳이 고통을 호소했다.
“근육이 다 뭉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져 수영이 말끝을 흐렸다.
홱 눈을 돌리자 그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제일 구석 자리에서 빛이 일렁였다.
“누구…….”
눈을 가늘게 뜨고 최대한 얼굴을 보려 노력했다.
그러자 태진이 점점 선명히 시야에 들어찼고,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뭐야.”
누군가 했네.
수영은 주변을 살펴본 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도 없겠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너무도 궁금했던 탓이었다.
“본부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야근이요.”
의외로 태진은 곧장 대답해 주었고, 수영은 의심스럽지만 “아…….” 하며 끄덕였다.
“아직 업무 안 끝나셨어요?”
“네. 그런 것 같네요.”
‘그런 것 같네요?’
이건 또 뭔 소리람. 안 끝났으면 안 끝난 거지, 그런 것 같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 그녀가 목을 쭉 빼 태진의 모니터를 살폈…….
“엥?”
모니터는 새까맸다. 제 얼굴이 다 비칠 만큼.
꺼져 있는 화면에 수영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
두 손이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고,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구겨졌다.
“지금 야근하시는 거 맞죠?”
“네. 하고 있잖아요.”
“게임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나 말고.”
따져 묻는 그녀의 말에 태진이 ‘GAME OVER’를 나타내는 화면을 아래로 내리며 웃었다.
“최 팀장이.”
“허…….”
아. 그러셔?
‘이제는 야근하는 것까지 방해를 하시겠다?’
수영은 곧 심드렁한 낯을 띠었다.
“야근 아니시면 집에나 들어가세요.”
상대를 말아야지. 괜히 궁금해했다. 그냥 나중에 처음부터 있는 줄 몰랐던 척 퇴근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30여 분쯤 지났을까.
툭.
웬 큰 손이 음료수 하나를 그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힐끔, 눈동자만 위로 올리자 태진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마시라고요.”
그는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수영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그 즉시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 앉으세요?”
“그냥요.”
“집에 안 가세요?”
“네. 누가 집에 안 가서.”
“제가 집에 안 가는 거랑 본부장님이랑 무슨…….”
띠링!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는 그에게 따지던 중,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메일 안내음에 둘의 시선이 동시에 모니터를 향했다.
“어?”
수영이 놀란 눈으로 메일함을 클릭했다.
“아직 퇴근 안 하셨나 보네.”

RE : 프로젝트 일정…….

선우에게서 온 답 메일이었다.
“…….”
그녀의 높아진 음성에 태진이 남몰래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 과장님.”
그러거나 말거나 수영은 곧장 휴대폰을 들어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잘 받았어요. 이것 때문에 아직 퇴근 못 하신 거예요?”
“…….”
“아, 정말요?”
그녀는 저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미소를 통화하는 내내 짓고 있었다.
상대와 마주하고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
태진은 살짝 굳은 얼굴로 턱을 괸 채 수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는 듯, 자칫하면 몸뚱어리가 뚫릴 기세였다.
“네. 네, 네. 알겠……. 알겠습니다.”
그의 눈빛이 뜨거웠던 걸까.
수영이 통화를 하면서도 그의 시선을 의식하더니 결국은 일찍이 끊어 버렸다.
“많이 친해졌어요?”
태진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도 허용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이선우 과장인가 하는 그 사람이랑.”
따져 묻는 것 같으면서도 왜인지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 묘하게 느껴져 수영이 그를 보았다.
“많이 친해지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자주 보고 업무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잘 지내는 거죠.”
“업무…….”
그에 태진이 말끝을 흐리며 마지못해 끄덕이듯 고개를 움직였다.
하나 마음까지 이해를 한 건 아니었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좋겠네요, 이선우 과장은. 다양한 방법으로 최 팀장이랑 친해질 수 있어서.”
“…….”
“아, 나도 친해지고 싶다. 최수영 팀장이랑.”
그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수영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담담한 어조에서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났다.
수영이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자 태진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뭔가 그에게선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얼굴.
아마도 제게 보였던 웃음 중에 가장 모호한 웃음일 터.
그녀는 내심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눈을 슬쩍 피했다.
“방금.”
그러나 그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였다.
“솔직히 좀 망설였죠?”
“뭐…….”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최 팀장은 무조건 오케이니까.”
“…….”
수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도 아마 의도한 거겠지.
조금 전 지었던 개 같은 표정은 지금을 위한 발판에 불과했던 거다.
개 같은 거 말고 진짜 ‘개’ 같은 표정.
덕분인지 당황함이 황당함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는 본부장님과 친해질 생각이 없는데요.”
“언제쯤 드는데요?”
“뭐가요?”
“지금은 없다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언제 친해질 생각이 들 것 같냐고요. 나랑.”
“허……?”
수영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언제 ‘지금은’ 없다고 했나? 그냥 없다고 했지.
뻔뻔한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이제는 구별도 안 된다. 어떻게 민망함 한 점 없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잘도 내뱉는지.
듣는 사람이 더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녀의 말에 태진이 낯빛조차 안 바꾸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물어보는 건데.”
“보통 그런 질문은 자신감이 있을 때 나오죠. 아니,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아, 내가 처음이에요? 많이 설렜겠다.”
“전혀요.”
설렘은 무슨.
“있던 설렘도 다 죽었네요.”
“……이런. 아쉽네.”
태진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편안한 얼굴로 말로만 아쉬워했다.
말을 건 순간부터 줄곧 그에게서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왜 얘랑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수영은 뒤늦게 정신이 돌아왔다.
이상하리만큼 태진과 대화만 하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싫었다.
정신 차리고 보면 말려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수영은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 주세요. 제가 지금 바빠서.”
“조금만 이따가요.”
“그……. 아니, 네. 그러시든가요.”
마음대로 하라지.
여기서 더 말을 잇다가는 정말 퇴근도 못 하고 밤새우게 생겼다. 그녀는 말없이 그를 외면한 채 모니터만 주시했다.
집중하는 얼굴로 바뀌자 태진 역시 입을 다물었다.

밀당하는 사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