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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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 게임 ‘아크로드’에는 다양한 PVP 콘텐츠가 존재한다.
50레벨부터 이용이 가능한 PVP 모드 활성화 설정을 통해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는 필드 PVP와 파티를 맺어서 싸우는 투기장, 입장과 퇴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자유 결투장, 진영을 나눠서 싸우는 진영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PVP의 꽃이라 불리는 길드 전쟁이 있다.
특히 이 길드 전쟁은 각 길드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만큼 가장 빡세고 그만큼 치열한 PVP 콘텐츠였다. 유명한 길드끼리 싸움이 붙으면 화제성도 높은 편이다.
[B팀도 다 모였습니다.]
[힐러랑 버퍼 위치 잘 잡아 놔.]
헤드셋에서 나오는 길드원 목소리를 들으며 양손을 겹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2년째 아크로드를 즐기고 있는 나는 ‘요일’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다. 서버의 1, 2위를 다투는 길드인 만큼 규모가 제법 컸고 괜찮은 길드원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길드와 비등비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길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 정면에 보이는 ‘Another’ 길드다.
명실상부 아크로드 내 최대의 라이벌인 어나더 길드는 처음 만들어진 1년 전부터 현재까지 우리와 틈만 나면 부딪히고 싸워 왔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지만…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아, 떨려.]
[시작합니다.]
미리 준비해 둔 에너지 드링크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화면 중앙에 붉은색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곧 길드 전쟁이 시작됩니다! 준비하세요!
 
이제 시작이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상대 힐러나 버퍼부터 바로 죽여요. 죽이기 어려우면 나 부르거나 브리핑하고.”
[오키.]
[넵!]
우리 길드와 마찬가지로 전쟁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어나더 길드원들이 맞은편에 보였다. 그중에서 나처럼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유저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에 동양풍 옷, 허리춤에 차고 있는 푸른 장식이 달린 장검. 장검에서 종결 아이템이라는 걸 증명하듯 선명한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전체] heunjeok: ㅎㅎ
[전체] heunjeok: (이모티콘)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상대가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감정 표현 이모티콘을 띄웠다.
‘하여간 저 미친놈.’
길드 전쟁을 코앞에 두고 길마가 상대편 길마한테 저딴 식으로 인사를 하냐고.
어나더 길드의 길마인 흔적이 워낙 또라이로 유명하고 나도 당한 게 많아서 잘 알지만 이럴 때마다 새삼 대단했다.
 
[길드] 영화별론가: ㅋㅋㅋㅋㅋㅋ
[길드] 영화별론가: 일욜님 흔적이 인사하는데요?
[길드] 영화별론가: 왜 안바다줌ㅠ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받아주지마여ㅡㅡ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일욜님은 도도한거 빼면 시체라구여ㅡㅡ
[길드] 오늘은일요일: ㄷㅊ
[길드] 여여랑: 와 도도해;
[길드] 류페: ㅋㅋㅋㅋㅋㅋㅋㅋ
 
흔적이 허구한 날 나만 보면 저런 식으로 말을 걸어온 탓에 이런 놀림도 이젠 익숙했다.
길마의 위엄은 이미 먼지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라 딱히 불쾌한 건 아니었지만, 장난의 원인이 어나더 길드의 길마인 건 좀 거슬렸다.
 
길드 전쟁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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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포인트를 모아서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자마자 상단에 두 개의 게이지가 떠올랐다. 상대 길드원을 많이 죽여서 먼저 100포인트를 얻는 쪽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으, 얘네 선두에 홀나를 몇 명이나 세워 둔 거야? 일단 7시 방향은 힐러나 버퍼 없어.]
[힐러 하나 5시 방향! 버퍼는 아직 안 보여요.]
A팀 대표이자 부길마인 ‘마하’와 B팀 대표인 ‘좋은날씨’가 연달아 브리핑을 해 왔다.
길드원들이 격돌하는 앞쪽에 버퍼가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제일 뒤에 배치해 둔 모양이다. 단체 PVP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군이 힐러와 버퍼이니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달려드는 적들을 쳐 내며 빠르게 중앙으로 나아갔다. 일반 길드원이 길드 마스터를 처치하면 한 번에 15점이 들어오고, 길드 마스터가 적 길드 마스터를 처치하면 20점이 들어온다. 시선을 들어서 게이지 차는 속도를 확인했다.
40명이나 되는 인원이 부딪쳐서 그런지 게이지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이러면 더 큰 점수를 먹는 쪽이 유리했다. 그리고 이 생각을 나만 했을 리 없었다.
‘역시.’
중앙에 도착하자 나보다 먼저 와 있는 흔적이 보였다.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쓰러트리고 도착한 내게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채팅을 쳤다.
 
[전체] heunjeok: (이모티콘)
 
아까와 똑같은 감정 표현 이모티콘이었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이 상당히 재수 없었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대답 대신 공격 속도와 공격력이 강해지는 강화 스킬을 사용하자 내 캐릭터가 들고 있던 봉을 크게 휘두르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걸 본 흔적 또한 검 끝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나를 따라서 버프 스킬을 켠 것이다.
선공은 나였다. 돌진기와 공격 스킬을 연계해서 거리를 확 좁힌 뒤에 봉을 횡으로 길게 휘둘렀다.
채앵, 봉과 검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 공격 속도를 중심으로 종결을 찍은 흔적의 푸른 검과 공격력을 중심으로 종결을 찍은 내 붉은 봉이 제대로 맞붙었다.
‘A. 그다음에 Z, X. 그럼 이번에 쓸 스킬은 W 아니면 Q.’
흔적의 직업인 블레이드의 스킬부터 공격 패턴까지 모조리 꿰고 있는 나는 미리 거리를 벌렸다. W는 블레이드의 대표적인 카운터 스킬이었고 Q는 상대 공격 흘리기였다. 둘 중 뭐가 됐든 내게는 그리 좋은 스킬은 아니라 한 턴 빼는 게 나았다.
내가 뒤로 물러서자마자 흔적이 돌진기를 아낌없이 쓰며 내게 붙어 왔다. 이 타이밍에 내가 빠질 거라는 것을 예상한 움직임이었다. 내가 그렇듯 흔적도 봉술가 직업 스킬과 내 공격 패턴을 꿰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 흐르듯 다가온 흔적이 검을 날렵하게 휘둘렀다. 쿨타임이 긴 회피기 대신에 방어 스킬로 공격을 막아 냈지만 체력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 방금 공격에 크리티컬이 뜬 것이다.
‘운도 좋은 새끼.’
그 한 번으로 단번에 상황이 불리해졌다. 난 혀를 차며 스킬 연계의 속도를 한층 높였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에 맞춰서 캐릭터의 행동도 그만큼 빨라졌다.
흔적이 턴을 소모했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이동기와 두 개의 공격 스킬을 연속으로 썼다.
캐릭터가 봉을 바닥에 꽂은 뒤 몸을 실어 반 바퀴 휙 돌았다. 흔적의 뒤로 이동한 내 캐릭터가 연달아 공격에 성공하자, 녀석의 캐릭터가 반동으로 공중에 떠올랐다. 떠 있는 동안은 그 어떤 반격기나 회피기도 쓸 수 없으니 이때를 틈타서 아예 궁극기까지 사용했다.
온몸에서 붉은 기를 방출한 내 캐릭터가 훌쩍 뛰어올라 봉으로 흔적을 짓누른 채 바닥에 강하게 처박았다. 쿠웅, 효과음과 함께 땅이 크게 흔들리며 바닥이 갈라졌다. 운 좋게 나 또한 크리티컬이 떠서 흔적의 체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미지가 가장 강한 궁극기를 크리티컬로 처맞은 흔적의 체력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화면에 보이는 킬 포인트 게이지는 80%를 막 넘겼다.
나와 흔적, 둘 중에 살아남는 사람이 곧 전쟁의 승리자였다. 내 체력은 절반보다 좀 더 많았으니 당장은 유리했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을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 흔적이 쓸 궁극기를 어떻게든 버텨야 했으니까.
내 궁극기를 맞은 직후에 곧장 몸을 일으킨 흔적이 궁극기를 사용했는지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차갑게 식은 손으로 급히 마우스를 돌려 흔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블레이드의 궁극기는 주위 5m 이내로 순간 이동을 세 번 연속 할 수 있었다. 공격력과 공격 속도 또한 버프 스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대신 스킬 지속 시간이 굉장히 짧아서 조금만 버티면 된다.
“아.”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화면에 타격 효과가 번쩍이더니 피가 훅 달았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있는 흔적의 공격에 내 캐릭터가 땅을 나뒹굴었다. 이어서 경직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한 상태로 두 번째 공격도 받았다.
내 체력도 흔적과 비슷해졌다. 이대로 마지막 궁극기 공격을 맞으면 높은 확률로 내 패배였다.
쉽게 당해 줄 순 없다. 눈가를 좁히고 집중력을 끌어 올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내 아껴 왔던 회피기를 사용하며 반격 효과가 있는 히든 스킬을 눌렀다.
채앵!
화면 중앙에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드러난 광경에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흔적의 마지막 궁극기 공격이 완벽하게 막히면서 흔적 캐릭터의 남은 체력이 한 번에 사라졌다. 카운터 효과로 내가 받아야 할 대미지를 본인이 대신 받은 것이다.
흔적이 피를 흘리며 털썩 쓰러졌다. 동시에 팡파르가 울리며 길드 전쟁 승리 메시지가 올라왔다.
 
길드 전쟁이 끝났습니다! 승리 길드: 요일
 
축하합니다! 길드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오, 나이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길드] 류페: ㅅㅅㅅㅅㅅㅅ
[길드] 아스타로트: 이야이걸ㅅㅅㅅ
[길드] 불좀켜줄래: 고생하셨습니다~~
[길드] rxrx78: ㅅㄳㄱ
[길드] 영화별론가: 굿
 
“후우…….”
그제야 이겼다는 것을 실감하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걸 이기다니.’
봉술가의 히든 스킬은 발동 조건이 워낙에 까다로워서 거의 없는 스킬이나 마찬가지라 쓰면서도 큰 기대가 없었는데.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거의 다 져 가는 싸움을 반격기 하나로 뒤엎은 셈이었으니까.
 
[전체] heunjeok: 이런
 
흔적이 내 앞에서 죽은 채로 채팅을 쳤다. 패배가 아쉽기는 해도 딱히 억울하거나 분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지금껏 전쟁을 15번이나 하면서 우리는 이기고 지는 걸 반복했으니 새삼 화낼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다음 전쟁 때는 흔적이 이길 수도 있었으니.
그래도 힘들게 이겼는데 조용히 넘어가면 섭섭하지. 짙은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ㅎㅎ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모티콘)
[전체] heunjeok: ?
[전체] heunjeok: ㅋㅋㅋㅋㅋㅋ
 
아까 흔적이 했던 감정 표현과 채팅을 고스란히 따라 하자 흔적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약 오르지, 이 새끼야. 오늘은 내가 승리자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
 
어나더 길드와의 15번째 전쟁에서 승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길드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런지, 요즘 게임을 할 맛이 났다.
오늘은 길드원들을 모아서 레이드나 가 볼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게임에 접속했다.
 
[길드] 류페: ㅎㅇㅎㅇ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일욜님 하이요
[길드] 마하: 하이
[길드] 여여랑: 길마님하이~
[길드] rxrx78: 아니 근데 이게 말이되나
[길드] 좋은날씨: 어이없긴함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해킹당했다는게 좀..
[길드] 오늘은일요일: ㅎ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먼일?
[길드] 좋은날씨: 음....
 
어딘가 어수선한 길드 분위기에 의아해서 묻자 좋은날씨가 난감한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설명을 해 왔다.
 
[길드] 좋은날씨: 어나더 길마 바꼈대요
[길드] 오늘은일요일: ??
[길드] 오늘은일요일: 갑자기? 왜?
[길드] 좋은날씨: 길마가 사라졌나봐요
[길드] 마하: 흔적이 아예 계삭한듯
[길드] 마하: 지금 개인피빕 랭킹에도 사라짐
[길드] 마하: 일단 어나더 길원이 자게에 글 올렷음 갑자기 사라졌다고
 
“뭐?”
아무 생각 없이 길드 채팅을 본 나는 예상치 못한 내용에 미간을 찌푸렸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