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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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만 죽겠다는 서정연의 말대로 세 번째 도전에서 중간 보스를 겨우 클리어한 우리는 최종 보스가 있는 3 스테이지로 향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한번 깼으니까 담에 올땐 더 쉬울거에용^~^
[파티] Rahm: 뉴비 화이팅
[파티] 성하연: 화이팅~~! ^w^)/
[파티] haewo1: ㅎㅎ화이팅
 
뉴비 행세를 하며 파티원들에게 부둥부둥을 받는 서정연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만 나왔다. 아무리 목적이 있다고 해도 양심이 조금은 아플 만도 할 텐데, 서정연은 그런 기색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저 사람들은 뉴비라며 어화둥둥해 주는 저 유저가 진짜 흔적이자 고인물 유저라는 걸 나중 가서 알게 되기나 할까? 사기 치는 건 서정연인데 왜 내가 한숨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빚과송금: 저 이제 슬슬 무서울 지경임.....
 
쥐안에든독: 일욜님이랑 싸우던 흔적은 양반이었어요
 
그 가식적인 모습에 지켜보던 좋은날씨와 여여랑도 혀를 내둘렀다. 나는 녀석들이 보내온 개인 메시지 내용에 마음 깊이 공감하며 답변을 보냈다.
 
Z10N: 그러려니 해....
 
Z10N: 나름 효과가 있으니까 냅둬..
 
결국 내가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서정연이 어나더 길드원을 있는 대로 휘저을 수 있도록 지켜보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현타가 들었다. 서정연 이 자식, 혼자 왔어도 일당백 했을 것 같은데 나랑 내 길드원들은 뭐 하러 데려온 거야? 설마 놀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거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착실히 몬스터를 죽여 가며 나아간 덕분인지 금방 최종 보스를 만나게 됐다.
【감히 내가 관리하는 대지를 건드리다니!】
레이드의 최종 보스 ‘타락한 대지의 관리자’ 칭호를 가진 회색빛 피부의 정령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한 명도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대사가 끝나자마자 땅이 흔들리며 바닥에서 거대한 몬스터 두 마리가 나타났다. 보스가 조종하는 돌 골렘이었다. 첫 페이즈의 시작이었다.
골렘이 모두 죽기 전까지 보스는 무적 상태가 된다. 다행히 골렘은 패턴이 어렵지 않았지만, 일정 확률로 뜨는 훨 윈드 패턴은 피하기가 까다로웠다.
골렘 두 마리가 360도 회전하며 맵 모든 구간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가기 때문에 정확한 타이밍에 돌진기나 회피 스킬을 써서 피해야 했다. 뉴비들이 가장 많이 죽는 구간이고, 가끔 숙련자들도 실수해서 죽기도 했다.
쿠웅, 쿵! 온몸이 돌로 된 골렘이 양팔로 바닥을 내리치자 지진과 함께 하늘에서 돌조각이 쏟아졌다.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캐릭터가 0.5초간 경직에 걸려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조각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음악으로 힘이 나게 해 줄게!】
【제 노래에 귀를 기울이세요!】
피하기 까다로운 공격에 음유 시인인 성하연과 소울 스타인 좋은날씨가 방어력 버프 스킬과 광역 힐 스킬을 사용했다. 버프를 받으며 돌조각을 적당히 피한 나는 돌 골렘의 훨 윈드 패턴을 기다렸다.
【이건 피하지 못할 거다!】
골렘이 훨 윈드를 쓸 거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는 보스 대사가 나오자마자 골렘 두 마리가 동시에 360도 회전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돌진기나 회피기를 연달아 두 번 써야 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피하고 두 번째 피하기 전에 캐릭터가 사망하며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서정연이 실수한 척 첫 번째 훨 윈드를 맞고 죽은 것이다.
 
[파티] haewo1: 아..
[파티] haewo1: 죄송합니다ㅠㅠ
[파티] 나의라임나무: ㄱㅊ아요
[파티] 성하연: 방금 저긴 저두 어려워서ㅇㅅㅇ;;
[파티] Rahm: ㅇㅈ 저도가끔죽음
[파티] 방벽: 나도ㅋㅋㅋㅋ
 
역시나 이번에도 한 명도 불만 없이 이해해 주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네 번 정도 죽는다고 했으니 다음번 골렘 훨 윈드에도 죽을 거고, 세 번째는 다음 페이즈에서 죽을 작정인가 본데.
‘과연 네 번이나 죽어도 계속 이 분위기일까?’
나는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다시 나타난 골렘의 공격을 피했다.
 
***
 
[파티] 방벽: ㄲㅂ아깝다
[파티] 방벽: 해월님 ㄱㅊ음?
[파티] Iilliliilil: 방금 패턴만 버티면 깨는거였는데ㅋㅋㅋㅋㅋ
[파티] Iilliliilil: 까비까비
[파티] Rahm: ㄹㅇ이번건 아깝다 잘하셨는데
[파티] 성하연: 함만 더해요~
[파티] 성하연: 제가 버프 줄게요ㅜ
 
“…대체 왜 착한 건데?”
벌써 네 번째 실수였다.
레이드 던전 특성상 한 명이 실수하면 다른 파티원들도 함께 죽거나 피해를 입으니 상대방 탓이 나오기가 쉬운데, 이번 파티는 서정연이 네 번이나 죽었는데도 끝까지 잘해 보자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상황만 아니었으면 정말 뉴비를 향한 배려심이 넘치는 파티라고 생각했을 거다. 내 한탄을 들은 서정연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예상보다 더 신경 써 주긴 하네요. 성하연은 뭔가 노리는 게 있으니 저러는 거지만 나머지 유저들은 뭐지?]
잠시 고민하듯 틈을 둔 서정연이 이어 말했다.
[일단 깨죠. 깨고 나서 더 지켜봐야겠네요.]
“그래.”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지만, 일단 이번 레이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더 끌어 봤자 새로 알아낼 것도 없으니 슬슬 끝내는 게 맞았다.
 
[파티] haewo1: 이번에는 더 집중해서 해볼게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ㅇㅋㅇㅋ
 
다섯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돌 골렘 두 마리가 나타나고 얼마 안 가 훨 윈드 패턴이 등장했다. 그만 죽겠다고 말한 서정연은 아까와 달리 완벽하게 피해 냈다.
그 후 이어지는 보스의 다른 패턴 공격도 역시나 버벅거리지 않고 가뿐히 피해 냈다. 보스가 공격할 때마다 당황한 것처럼 움찔거리던 서정연의 움직임이 굉장히 유려하고 부드러워졌다.
그런 캐릭터 움직임의 차이가 내 눈에는 잘 보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어나더 길드원들은 여러 번 죽으면서 패턴을 익힌 덕분에 피할 수 있는 거라고 착각할 거다.
【아아악! 이럴 수가……!】
마지막 즉사 패턴까지 아무도 실수하지 않고 피해 낸 우리가 공격을 퍼붓자 대미지를 버티지 못한 보스 몬스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돌로 변한 뒤에 파스스 무너져 내렸다.
 
황폐화 지역의 레이드 던전 클리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1/7)
바위 산 레이드 하드모드를 최초 클리어했습니다!
타락한 대지의 관리자를 처치했습니다!
 
여러 퀘스트 클리어 알림음과 함께 보상 아이템이 우르르 들어왔다.
과연, 만렙을 찍은 직후에 가기 좋은 레이드 중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장비 강화에 꼭 필요한 재료들이 한번 클리어할 때마다 몇십 개씩 들어왔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파티] Z10N: 수고요
[파티] 빚과송금: 고생하셧슴다
[파티] 쥐안에든독: 고생고생~
[파티] Iilliliilil: ㅅㄳㄱ
[파티] 방벽: ㅅㅅ
[파티] 성하연: 고생하셨어영ㅠ-ㅜ!!
 
레이드가 끝나자마자 파티를 나온 나는 새로운 파티를 만들어서 서정연과 좋은날씨, 여여랑에게만 초대를 보냈다. 이번 레이드에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눈치 빠르게 각자 할 일 하러 가는 척하면서 파티 초대를 받았다.
[아… 뭐지? 하하.]
“왜?”
그때, 서정연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어딘가 어이없는 기색을 품은 웃음소리였다.
[방금 같이 레이드 돈 유저 중에 한 명이 저한테 귓속말 채팅을 보내서요.]
“음? 누구?”
[크라나샨트라는 유저예요.]
크라나샨트? 레이드 내내 가장 채팅을 적게 친 유저였다. 애초에 레이드에 끼어든 이유도 성하연 때문이었던 놈이다.
“걔가 귓말로 뭐라고 하는데?”
[저보고 꼬리 치지 말라는데요?]
“꼬… 뭐?”
[꼬리 치지 말래요. 아무래도 성하연이 저한테 신경 써 주는 걸 보고 질투한 모양이에요.]
“허…….”
무슨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에서, 그것도 온라인 게임에서 ‘꼬리 치지 마라’는 말을 처음 본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걸 대체 뭐라고 반응해야 하지? 난감한 건 서정연도 같은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다짜고짜 귓속말로 꼬리 치지 말라면서 욕을 먹으니까 신선하긴 하네요. 심지어 같은 길드원한테.]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보냈냐.”
[뭐, 제 콘셉트를 지켜야 하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보냈죠. 그거 말고는 솔직히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잘… 현실에서 저런 말은 처음 들어 봐서.]
“그, 그렇긴 하지.”
[꼬리 친다는 말을 들은 김에 진짜로 꼬리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죠. 다 제가 잘난 탓인데. 얼마나 불안하면 레이드 한 판 하자마자 귓속말을 보냈겠어요.]
“재수 없으니까 그만해.”
[농담이에요.]
“크라나 어쩌구 하는 놈은 처음부터 성하연 편들어 주던 유저잖아. 게임에서 만난 여자랑 뭐 어떻게 해 보려는 정신 나간 놈인 거 같은데, 앞으로도 괜히 상대하지 말고 무시해.”
[저도 그러고 싶은데 성하연이랑 친해지려면 저 사람도 같이 감당해야 할 것 같네요. 저야 재밌으니까 별 상관없지만.]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정말요? 어떻게 도와줄지 벌써 기대되네요.]
“헛소리 그만하고 파티나 들어와.”
하여간 진지한 얘기가 5분도 채 안 간다니까.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서정연이 웃으면서 파티 초대를 받았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