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 0 0
                                    

[전체] 야옹이라옹: 일휘일비쨩^.^)/~
[전체] 일휘일비: ^^~
[전체] sky004: 파티 ㄱㄱㄱㄱㄱ
 
이 새끼들 진짜 왔네.
어차피 레이드에 들어가려면 인원수를 맞춰야 하긴 하지만, 이 시끄러운 놈들을 데리고 일휘일비에게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놀러온거 아니라니까
[길드] 오늘은일요일: 일휘일비가 흔적 부캐인거 증거 찾으려고 온거라고ㅡㅡ
[길드] sky004: 그게 노는거 아님?
[길드] 마하: ㅋㅋ
 
이 자식들이. 자기들은 흔적한테 당한 게 없다 이거지?
이를 갈며 게시판에서 레이드 목록을 살폈다. 에펠 레이드라고 했던가. 저레벨 유저들이 주로 가는 만큼 짧고 쉬운 레이드였다. 일휘일비를 데리고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레이드를 정하고 파티 창을 열자 길드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들어왔다.
 
[파티] 불좀켜줄래: 근데 둘이 갑자기 왜 친해짐?
[파티] 불좀켜줄래: 일욜님이 쩔을 다해주고 ㄷㄷ
[파티] 좋은날씨: ㄹㅇ일욜님이 뉴비 쩔해주는거 첨봄
[파티] 오늘은일요일: 아니 하...
[파티] 오늘은일요일: 됐다 개새1끼들아
[파티] 마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휘일비: ^.^~
 
이제 보니까 흔적 못지않게 날 놀리는 놈들이 바로 길드원이었다. 얘네는 진짜 나 없으면 게임 무슨 재미로 할까.
나만 빼고 자기네들끼리 화기애애한 꼴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짜증 나서 바로 레이드 입장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며 초록빛 수풀과 나무로 가득한 숲이 나타났다. 에펠은 숲길을 따라서 나타나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마지막에 있는 보스를 죽이면 끝나는 간단한 레이드였다. 아마 30분도 안 걸려서 끝나겠지.
 
[파티] 오늘은일요일: 일휘일비
[파티] 오늘은일요일: 네가 앞장서
 
일휘일비의 실력을 확인하러 온 거였으니 우리가 다 죽이면 의미가 없다.
내 말에 길드원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뒤로 물러섰다. 이놈들도 일휘일비가 정말 흔적인 건지 궁금하긴 한가 보다.
 
[파티] 일휘일비: 무서워서 가기 시러요ㅠ
[파티] 오늘은일요일: 지1랄
[파티] 오늘은일요일: 빨리 가
 
내 재촉에 별로 내키지 않은 듯 미적미적 앞으로 걸어간 일휘일비가 시무룩한 기색으로 채팅을 쳤다.
 
[파티] 일휘일비: 그럼 제 닉넴 이쁘게 불러줘요
[파티] 일휘일비: 그래야 용기가 날듯요ㅠ.ㅠ
[파티] 오늘은일요일: ????
[파티] 야옹이라옹: 마쟈마쟈ㅠ 너무 정없이 불러~
[파티] rxrx78: 네글자를 다 쳐서 부르네;;
[파티] rxrx78: 좀 불.편하네요
[파티] 좋은날씨: ㅇㅈ
[파티] 영화별론가: 두글자로 줄여봐요
[파티] 마하: 일휘야~해봐ㅋㅋ
[파티] 일휘일비: ㅋㅋ
[파티] 일휘일비: 일휘야♡ 해줘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하네 ***
[파티] 오늘은일요일: ***싫으면 빨리 ** ***
[파티] 좋은날씨: ㄷㄷㄷㄷ
[파티] sky004: 히익
[파티] 불좀켜줄래: 필터링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rxrx78: 욕으로 랩ㄷㄷ
[파티] 마하: 극대노하네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일휘일비: ㅠㅠ
 
온갖 가증스러운 척을 하던 일휘일비는 내게 욕을 한 바가지 처먹고 나서야 꾸물거리며 출발했다. 몬스터가 등장하는 구간에 들어선 것을 확인한 나는 길드원한테도 신신당부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도와주지마
[파티] rxrx78: 아니 이거.. 걍 뉴비 괴롭히는거 아닌가여...??
[파티] 좋은날씨: 진짜 너무해....
[파티] 일휘일비: ㅜㅜ
 
어디가 너무해. 어차피 죽으면 살려 줄 건데.
첫 번째 웨이브인 거대 나방 몬스터 떼가 몰려오자 선두에 있던 일휘일비가 열심히 무기를 휘둘렀다.
‘……음?’
조용히 일휘일비의 전투를 구경하던 그때였다. 나는 추적자 직업 특유의 화려한 스킬 이펙트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무어라 콕 짚어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평범한 추적자의 전투와는 달랐다.
‘뭐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2년이 넘도록 아크를 해 오면서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필드 보스와는 달리 레벨 대가 맞는 던전이라서 그런지, 일휘일비는 우리 도움 없이도 어찌어찌 몬스터를 처리하며 나아갔다.
 
[길드] 불좀켜줄래: 딱히 머 대단한건 없는데요?
[길드] rxrx78: 걍 무난한 플레이인데
[길드] 야옹이라옹: 흔적은 저거보다 훨씬 잘했잔아용
[길드] 마하: ㅇㅇ
[길드] 마하: 흔적은 일욜이랑 비등비등했지
[길드] 좋은날씨: 일욜님 겜실력 좋음
[길드] 좋은날씨: 승질이 좀 급해서 글치
[길드] 좋은날씨: 흔적도 실력은 좋지만 또1라이고
[길드] 영화별론가: 일케보니까 둘이 진짜 닮았네?
[길드] sky004: 갑자기 욕을?
[길드] 불좀켜줄래: 솔직히 인정
 
열심히 몬스터를 죽여 가는 일휘일비를 구경하던 길드원들은 녀석이 흔적의 부캐가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난 섣불리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휘일비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포션까지 마셔 가며 길을 뚫어 나가던 일휘일비는 가장 많은 몬스터가 쏟아지는 마지막 구간에서 끝내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가뜩이나 쪼렙에 장비까지 거지 같은 걸 입고 있던 일휘일비가 혼자서 풀썩 쓰러지자 구경꾼들의 반응이 한층 더 거세졌다.
 
[파티] 영화별론가: 정말 눈물없인 볼수없는ㅠㅠㅠㅠㅠ
[파티] 야옹이라옹: 일휘일비쨩ㅠㅠㅠㅠ
[파티] 마하: 저걸 못피하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손에 부활 깃털을 들고 재빨리 뛰어가서 녀석을 살려 줬다. 그리고 부활에 성공한 일휘일비에게 곧장 요구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다시 ㄱ
[파티] 불좀켜줄래: 허얼.....
[파티] sky004: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파티] 영화별론가: 와 방금 살아난 사람한테;; 실화임?
[파티] 좋은날씨: 이거 일휘님이 사사게에 신고해도 할말없다ㄹㅇ
 
‘이게 다 이유가 있다고.’
아무리 비난이 해일처럼 몰아쳐도 꿋꿋하게 일휘일비의 등을 밀었다.
일휘일비가 전투를 하면 할수록 나한테 들어오는 정보도 많았다. 딱 한 번만 더 스킬 쓰는 걸 보면 아까 느꼈던 이상한 기분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파티] 일휘일비: 저 힘들어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이 구간만 ㄱㄱ
[파티] 오늘은일요일: 보스는 잡아줌
[파티] 마하: ?
[파티] 마하: 웬일
[파티] 야옹이라옹: 최소한의 양심?ㅇㅅㅇ
 
일휘일비가 감정 상해서 안 하겠다고 탈주하면 안 되니 적당히 달래 주며 완전 회복 포션도 줬다. 여기까지 오면서 포션은 많이 소비했을 테니까.
그러자 녀석은 의외로 더 투덜거리지 않고 내가 던져 준 포션을 받아 마신 뒤에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가 많았으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일휘일비가 사용하는 스킬을 차분하게 살펴봤다.
‘A, D, W… R. 그리고 다시 A. 다음은 D?’
내 생각이 끝나자마자 일휘일비에게서 검은 장미꽃잎이 흩날리는 이펙트가 나타났다. 내가 예상한 스킬이었다.
그 후에 이어지는 W 스킬. 추적자는 대부분의 스킬 쿨타임이 짧아서 한 턴에 스킬을 두 번씩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복잡하게 뒤엉키는 스킬 순서와 이펙트 속에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원인을 깨달았다.
‘Q와 E스킬을 아예 안 쓰고 있잖아.’
일휘일비는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해 궁극기인 R 스킬까지 써 가면서 Q와 E스킬은 피하고 있었다. 특히 Q스킬은 R스킬의 하위호환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미지는 조금 낮아도 비슷한 이펙트를 가진 스킬이었다.
남들에게 게임을 못 하는 척을 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쉬운 건 일부러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거다. 일휘일비가 지금 하는 것처럼 다른 스킬 이펙트로 교묘하게 숨기면 집중해서 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내 짐작이 맞다면, 일휘일비가 바로…….
‘흔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하루는 온통 흔적으로 가득했었으니까.
흔적이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무슨 전략을 준비해 오는지, 가장 자주 쓰는 스킬 트리가 뭔지, 온종일 흔적 생각만 하면서 녀석을 연구해 왔다. 이건 흔적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었다. 나와 흔적은 마치 쌍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등한 실력에 비슷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저 녀석도 생각한다. 내가 기가 막힌 전략을 준비해 오면 녀석은 그걸 알아채고 대비책을 가져온다.
그러니 나도 치열해져야 했다. 그동안 설렁설렁해도 남들보다 훨씬 웃도는 결과를 가져가던 내 게임 실력과 운빨이 흔적이라는 놈에게 가로막힌 것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내가 지고, 흔적이 놓친 것을 잡아내면 내가 이긴다. 먹고 먹히는 싸움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이렇게 미친 듯이 흔적만 연구하며 1년을 보낸 내가 흔적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흔적이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지.
일휘일비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시험을 해 본 나처럼 일휘일비도 나를 시험하고 있던 거였다.
흔적이 정말로 내게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다 무시하고 나가 버렸을 거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일휘일비가 흔적이야……!’
나는 무심코 입가를 더듬었다. 어느새 내 입꼬리는 한껏 치켜 올라가 있었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