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전쟁은 나흘 후로 정해졌다. 토요일 밤 9시였다.
간만에 잡힌 길드 전쟁 소식에 길드원들은 신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많으면 한 달에 두세 번은 했던 길드 전쟁을 그간 계속 쉬었었으니 이런 반응도 이해가 됐다. 솔직히 나도 기대 중이니까.
이벤트처럼 찾아온 길드 전쟁에 우리 길드만이 아니라 어나더 길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시끄러웠다.
[길드] 미녀사냥꾼: ㅂ.ㅅ들이 깝치네
[길드] zang2213: 저러고 지들이 지면 겁나 웃길듯ㅋㅋㅋㅋㅋ
[길드] 인천구비둘기: 길원수 차이 오지는데 백퍼 우리가 이김;
[길드] kumayoung: ㅇㅈㅇㅈㅋㅋ
[길드] 잇쨔잇쨔: 요일 길원수 개적음^^
[길드] 반숙올챙이: 걍 개털듯ㅎㅎ
[길드] Rahm: ㅇㅇ 섭1위 길드인거 고려하면 숫자 적은건 맞음
[길드] Rahm: 근데 길전은 어차피 최대인원수 정해져 있어서 의미없어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이 짧은 대화만으로도 길드 전쟁을 경험해 본 유저가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길드 전체 인원수가 적은 것보단 많은 게 좋긴 하다. 길드원 숫자가 많으면 직업 조합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제한이 없고, 실력 있는 유저가 있을 확률도 더 높아진다.
우리가 처음 어나더 길드에 들어와서 길드원 숫자를 보고 걱정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전쟁에 참여하는 최대 인원수가 정해져 있다 해도 길드 자체에 인원수가 많으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지는 거다.
‘어차피 최대 인원수도 50명이나 돼서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예전에 어나더와 길전을 했을 때는 서로 50명을 못 채우고 했던 적이 많았다. PVP에 관심 없는 유저들이 괜히 끼어 봤자 렉을 유발시키고 상대 게이지 채우는 데에 제물이 되어 주기만 하니까.
길드 전쟁은 상대를 더 많이 죽여서 게이지를 먼저 100%를 채우는 쪽이 승리한다.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죽기만 하는 사람은 불러 봤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퓨쳐로 리더가 바뀐 어나더 길드가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하려나.’
우리는 예전처럼 전쟁을 많이 해 본 길드원들만 부를 거다. 아마 40명을 못 채우겠지. 과연 노퓨쳐는 서정연이 해 온 전략을 따라 할 지, 자기만의 계획을 세울지 궁금했다.
[길드] 크라나샨트: 근데 저쪽길드 암만봐도 50명 못 모을거 같은데?ㅋㅋ
[길드] zang2213: ㅇㅈ
[길드] 인천구비둘기: 모아도 노상관~
[길드] 인천구비둘기: 다 허접해서~
[길드] Opokjs: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나더 길드가 우리에게 호의적일 리는 당연히 없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적의를 드러내는 몇 명이 눈에 보였다. 차분히 채팅 창을 지켜보던 나는 그 몇 명의 닉네임이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서정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직전, 필드에서 어나더 길드랑 충돌이 있었었지. 그때 우리한테 졌던 어나더 길드원들이 분명 저 중에 있을 텐데. 나는 그때 녹화해 둔 동영상을 켜서 닉네임을 확인했다.
‘역시 있네.’
Opokjs, 인천구비둘기, kumayoung, 미녀사냥꾼, zang2213, 반숙올챙이. 그 외에도 세 명 더 있지만, 대놓고 우리를 도발하며 시비를 걸던 주요 인물은 저 여섯 명이다.
그럼 그렇지. 저런 놈들은 어떻게 매번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정말 한심했다.
“여긴 예전에도 이상한 놈들 천지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심해졌네.”
[너무해. 저 상처 받았어요.]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자 서정연이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을 해 왔다.
“뭘 너무해. 네가 제일 이상했어.”
[그럴 리가요. 전 양반이죠.]
양반이 다 얼어 죽었냐, 네가 양반이게. 할 말은 많았지만 따져 봤자 들은 척도 안 할 게 뻔했으니 나는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근데 도해준 씨, 채팅 보니까 유독 요일 길드를 싫어하는 애들이 좀 보이는데. 왜 그런지 알아요?]
“저번에 싸워서 그래. 그때 우리한테 아주 탈탈 털렸거든.”
[저번이면?]
“내가 그때 너한테 설명해 줬을걸. 어나더 길드에서 PK를 했다고.”
[아아, 기억나네요. 그게 쟤들이라는 거죠?]
“맞아. 우리랑 같이 레이드 가는 길드원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때 싸운 애들이야.”
[본인이 수준 파악 못해서 처맞아 놓고 엄청 시끄럽네…….]
서정연이 심드렁히 중얼거렸다. 비난 한번 신랄하게 잘하네.
아무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놈들은 설마 이전 길마와 적 길드의 길마가 나란히 채팅 창을 구경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로 뒷담을 이어 갔다.
[길드] Opokjs: 전에 피빕햇는데 허접 천지엿음ㅋㅋ
[길드] 미녀사냥꾼: 처맞고 길마 부르던 꼴 ㅈㄴ웃겻는데
[길드] kumayoung: 그걸 부른다고 쪼르르 온 길마도 ㄹㅈㄷ~
[길드] Opokjs: ㄹㅇ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성하연: 저두 요일 개시러함ㅠㅜㅠ
[길드] 성하연: 찐1따새1끼들 같음ㅜㅜ
[길드] 크라나샨트: 맞아ㅎㅎ
[길드] 미녀사냥꾼: 헉 하연님 욕하시는거 첨봄ㅋㅋㅋㅋㅋㅋ
[길드] 반숙올챙이: 요일이면 인정이죠ㅋㅋㅋㅋㅋ
[길드] 성하연: ㅇ.ㅇ
얼씨구. 신났네, 신났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채팅 내용에 헛웃음을 짓던 그 순간이었다. 한참 동안 조용하던 라임나무가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길드] 나의라임나무: 길전 앞두고 의욕 넘치는건 좋은데
[길드] 나의라임나무: 분위기 너무 험악한거 아닌가여?
[길드] 나의라임나무: 걍 서로 굿겜하면 되는건데 머 욕까지
‘오, 이건 또 뭐냐.’
여기서 우리 편을 들어 준다고? 라임나무의 말을 시작으로 중립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길드] 방벽: 그르게
[길드] 방벽: 왤케 ㅂㄷㅂㄷ거림 님들
[길드] 방벽: 요일한테 처맞은거마냥
[길드] 미녀사냥꾼: ㅋ
[길드] 성하연: ㅜ.ㅜ
[길드] Iilliliilil: ㅋㅋㅋㅋㅋ나만 놀란거 아니구나
[길드] Iilliliilil: 길전 ㅈㄴ재밌겠다~ 이러고 있었는데 분위기 개진지해서 좀 당황;;
[길드] 방벽: ㅋㅋㅋㅋ저도 그럼
[길드] Rahm: 원래 서로 이렇게 싫어함?
[길드] Rahm: 난 신입이라 모르는디
“야, 이거 완전 흥미진진하다.”
[그러게요. 관전하는 재미가 있네.]
눈앞에서 펼쳐진 아슬아슬한 기 싸움에 할 수만 있다면 팝콘이라도 준비해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드] 성하연: 안싫어할수가 없죠
[길드] 성하연: 비매짓을 글케 막 하는뎅..ㅇㅅㅇ
[길드] 율냥냥: ㅁㅈ;
[길드] 율냥냥: 하연님은 욕하는거 백번 이해함
[길드] 율냥냥: 길마한테 당했으니까
[길드] 미녀사냥꾼: 쓰레기보고 냄새난다고하는게 욕인가.?
[길드] Opokjs: ㅋㅋㅋㅋ비유 완벽
[길드] kumayoung: 걍 안당했으면 말을 마세요ㅎ
[길드] 나의라임나무: 아~
[길드] 나의라임나무: 님은 당했나봐요?
[길드] 나의라임나무: 확실히 전 뭐 안당해봐서 모르겠네여^~^
[길드] 방벽: ㅋㅋㅋㅋㅋㅋㅋ
라임나무가 의외로 말발이 좀 되는데?
저러다가 같은 길드원끼리 멱살이라도 잡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켜보던 나와 서정연이 기대에 잔뜩 부푼 그때였다.
길드 마스터 heunJeok 님이 로그인했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노퓨쳐 님이 로그인했습니다.
“……!”
연달아 올라오는 접속 알림 메시지에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황급히 바로 세웠다. 미친, 가짜 흔적이랑 노퓨쳐가 나란히 들어왔다고?
‘미끼 효과가 확실하잖아?’
슬슬 노퓨쳐가 들어올 시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가짜 흔적까지 달고 들어오다니.
[길드] Rahm: 두분 ㅎㅇ
[길드] 율냥냥: ㅎㅇㅎㅇ~~
[길드] 나의라임나무: 어서오세여
[길드] kumayoung: 둘이 같이오시넹ㅋ
[길드] 성하연: 안뇽하세요ㅇ.ㅇ
[길드] 미녀사냥꾼: ㅎ2
[길드] 크라나샨트: ㅎㅇ~
[길드] 노퓨쳐: 님들 하이하이ㅎㅎ
인사가 오가는 길드 채팅을 내버려 둔 채로 서정연에게 말했다.
“둘이 동시에 접속한 걸 보면 노퓨쳐랑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친분이 있는 사이인 건 확실하겠어.”
[혹시 모르니까 스샷 찍어 둘게요.]
굉장히 사소해 보이지만, 지금은 이런 증거라도 모아 놔야 했다. 나중에는 더 쓸 만한 증거가 모여야 할 텐데.
[길드] 노퓨쳐: 다들 알겠지만
[길드] 노퓨쳐: 4일 뒤에 요일이랑 길전을 하게 됐습니다ㅎㅎ
[길드] 노퓨쳐: 길마님이랑 회의해본 결과
[길드] 노퓨쳐: 50명 꽉 채울거고요
[길드] 노퓨쳐: 그니까 희망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참가하실 수 있을겁니다^^
[길드] 미녀사냥꾼: 오오오
[길드] Opokjs: ㅅㅅㅅㅅ
[길드] 인천구비둘기: 저할게요
[길드] 크라나샨트: 저도
[길드] 노퓨쳐: 참가하고 싶은 분은
[길드] 노퓨쳐: 저한테 갠쪽 보내주세요^^~
회의는 무슨. 너 혼자 내린 결정이겠지.
결국 노퓨쳐는 서정연이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로 가려는 모양이다. 과연 저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려나.
“근데 사칭범은 채팅을 안 치네. 혹시 저것도 너 따라 하는 거야?”
[글쎄요. 전 그래도 인사 정도는 받아 줬었는데.]
“별거 아니겠지? 찝찝하네.”
[찝찝하면 확인해 볼까요?]
“확인? 뭘 어떻게… 아니, 잠깐만.”
불길한 예감에 다급히 말리려고 했지만 서정연이 더 빨랐다.
[길드] haewo1: 길마님은 왜 채팅 안침?
[길드] haewo1: 흔적님?
[길드] haewo1: 왜 말이 없음?
“…….”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