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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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마카롱을 다시 회수하려던 나는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하여간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라니까. 사실은 디저트 엄청 좋아하는 거 아냐? 매번 케이크도 꼬박꼬박 시키고 슈크림 망고 프라푸치노도 다 마시고 마카롱도 받아 가고.
“반응이 어때?”
카운터로 돌아오자 주방에서 매장을 살피던 사장님이 한걸음에 달려와 물었다.
사장님이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이해가 간다. 이번 디저트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고, 저번 서비스인 쿠키가 좋은 말을 듣지 못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으니까. 그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좀 안쓰럽기도 했다.
“잘 받아 가셨어요. 정말로 후기를 알려 줄지는 모르겠지만요.”
“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고생했어.”
“뭘요. 별일도 아닌데요.”
안도하는 사장님을 보자 서정연에게 좀 더 제대로 말해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이따가 퇴근 시간에 다시 찾아온다고 했으니 그때 좀 더 제대로 부탁해 봐야겠다.
 
***
 
가방을 챙기고 카페를 빠져나오자 곳곳에 가로등이 켜진 밤거리가 보였다. 서정연을 찾으러 건물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간 나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아뇨, 안 갑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상대에게 대답하면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서정연이 마침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 그가 눈꼬리를 살짝 휘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곧 퇴원할 텐데. 제가 가 봤자 시끄럽기만 하겠죠.”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서정연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 갔다.
“그건 감사하지만 병문안이 대가라면 거절하겠습니다.”
“…….”
“안 갑니다. 그렇게 전해 주세요.”
상대방을 향해 재차 단호하게 거절한 서정연이 얼마 안 가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다리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오늘따라 하려는 일마다 타이밍이 영…….’
딱히 나와는 상관없었지만, 마카롱을 먹어 보고 후기를 알려 달라는 부탁을 하려던 찰나에 저렇게 냉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니까 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괜히 이마를 긁적이는 사이에 핸드폰을 몇 번 두드리고 품에 집어넣은 서정연이 그제야 내게 말을 걸어왔다.
“미안해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 일 잘 끝났어요?”
“당연히 잘 끝냈지.”
안 되겠다. 이 상황에서 대뜸 후기 부탁을 하는 건 무리고, 일단 대화 좀 하다가 분위기를 봐서 꺼내는 게 낫겠다.
나는 우선 오늘 서정연과 만난 목적부터 꺼냈다.
“그래서 뭐야.”
“네?”
“뭐냐고. 나한테 시키려는 게.”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이 순간이 오니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묻자 서정연이 잠시간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픽 웃었다.
“걱정 엄청 했나 보네요. 긴장한 게 얼굴에서 티가 나네.”
“네가 워낙 또라이라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야, 웬만하면 타인한테 민폐 끼치는 건 시키지 말자. 너도 그 정도 개념은 있을 거 아냐.”
“당연하죠. 설마 제가 길거리에서 춤이라도 추라고 할 줄 알았어요?”
비웃듯 나온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정확하게 짚었네. 입술을 꾹 다문 나를 본 서정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해준 씨는 절 너무 이상하게 생각해요. 제가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런 짓을 시킬 리가 있나요.”
“유치한 내기만 거는 놈이 말이 많아? 아무튼 그래서 뭐냐고. 뭐 시킬 건데.”
“음…….”
입가를 매만지며 초조해하는 내 반응을 실컷 구경하던 서정연이 곧이어 빙긋 웃더니 제안했다.
“밥 먹으러 갈까요?”
“어, 뭐라고? 밥?”
“네. 저번처럼 라면으로 대충 때우지 말고 시간 좀 들여서 제대로 먹죠. 할 얘기도 있고.”
“잠깐, 그게 다야? 같이 밥 먹어 주는 거?”
“그게 다가 아니긴 하죠. 제가 원하는 식당으로 가야 하고 제가 원하는 메뉴를 먹어야 한다는 거?”
내가 말한 내용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나는 침착하게 서정연의 표정을 살폈다. 이거 함정은 아니겠지? 정말 저게 다라고?
‘설마 엄청 비싼 식당으로 가서 내가 계산하게 한다든가?’
지금으로선 이게 가장 가능성이 컸다. 치사한 놈, 알바하면서 근근이 먹고 사는 휴학생의 돈을 건드리다니. 분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알겠어.”
일단 가 보자. 가 보면 알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정연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
 
직원이 가져온 접시를 내 앞에 천천히 놔주었다.
“주문하신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스테이크에 그치지 않고 직원이 잔에도 와인을 채워 줬다. 넋을 놓고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바라보던 나는 직원이 테이블을 떠나가자마자 곧장 입을 열었다.
“아주 작정하고 왔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아쉽잖아요.”
서정연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처럼 우아하고 깔끔한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 꼴을 바로 앞에서 보자 장난 아니게 재수 없었다.
이제 와서 다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속으로 서정연을 마구 씹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와인도 더럽게 비싼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맛이 기가 막혔으니까.
“할 얘기 있다며. 그건 뭔데.”
“아, 대단한 건 아니고요.”
그새 스테이크를 다 썰었는지 서정연이 내 접시와 자신의 접시를 바꿨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서정연이 바꿔 준 접시에는 스테이크가 한입 크기로 적당하게 썰려 있었다.
‘내가 무슨 10살짜리 어린애도 아닌데, 스테이크를 썰어 주고 난리야?’
어이없었지만 스테이크를 썰기 귀찮았던 건 사실이었기에 따지지 않고 얌전히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더럽게 맛있네.
“어제부로 만렙을 찍었으니까 이제 슬슬 길드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기껏 한다는 대화가 게임이라니. 그것도 망겜 아크라니. 잠시 현타가 찾아왔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는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거에 관련해서 나도 할 말이 있는데.”
“그래요? 도해준 씨가 먼저 해요.”
“지금 어나더 길드가 자기네 길드원을 보내면서까지 우리를 데려가려고 용쓰고 있는 상황이잖아. 이대로 순순히 들어가도 물론 괜찮겠지만…….”
나는 포크로 스테이크 조각을 강하게 꿰뚫었다. 육즙과 함께 핏물이 살짝 배어났다.
“네가 저번에 내 길드를 언급하면서 있는 대로 도발을 해 놨잖아?”
“그랬죠.”
“그걸 그냥 넘겨 버리고 얌전히 어나더에 들어가는 건 좀 아쉬워서. 이왕 벌려 놓은 판, 좀 더 써먹으면 어떨까 하는데.”
“흠…….”
노퓨쳐가 우리에게 진심이 되어야 한다.
노퓨쳐가 우리를 신경 쓰면 신경 쓸수록, 노퓨쳐에게 접근하기 쉬워진다. 그건 곧, 노퓨쳐가 직접 데려와 앉힌 가짜 흔적에게 접근하기 쉬워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린 부캐를 키워서 어나더 길드에 들어가는 게 끝이 아니라 노퓨쳐의 계획을 알아내고 흔척 사칭범의 증거를 얻기 위해 들어가는 거였다. 그러니 최종 목표는 결국 노퓨쳐였다.
“써먹으려는 방법이… 혹시 요일 길드가 직접 나서는 건가요?”
“그래.”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서정연은 어렵지 않게 내 생각을 알아챘다. 나는 미소 지으며 서정연에게 말했다.
“바로 알아채는 거 보니까 너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본데?”
“맞아요. 사실 저도 오늘 하려는 얘기가 그거였거든요.”
나를 따라 짙게 웃은 서정연이 와인 잔을 들었다.
“기껏 도발해서 안달 나게 해 놨는데 어나더 길드에 그냥 들어가기엔… 아까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더군다나 우리에겐 진짜 요일 길마인 도해준 씨가 있으니까.”
“저번부터 내 길드를 너무 이용해 먹는 거 아니냐?”
“능력 좋은 사람과 협력 관계가 됐는데 이 정도는 바라도 되는 거 아닌가요?”
뻔뻔한 놈. 눈가를 찌푸리며 스테이크 한 조각을 더 입에 넣었다. 이 찝찝한 기분은 비싼 고기로 풀어야겠다.
“지나치게 시끄러우면 노퓨쳐가 오히려 도망갈 테니까, 적당한 선에서 끼어들면 충분하겠네요.”
“어. 내가 직접 나서는 건 힘들고, 과한 느낌도 있으니까 마하한테 시키는 게 제일 좋아 보여.”
한 계정에서 ‘오늘은일요일’과 ‘Z10N’을 같이 키우고 있어서 그 두 캐릭터를 동시에 한 자리에 불러내는 건 불가능했다. 괜히 애매한 상황을 만들 바에는 아예 마하에게 역할을 넘겨주고 나는 ‘Z10N’으로 자리를 채우는 게 훨씬 나았다.
“부길마분한테 설명은 했어요?”
“아직. 오늘 해야지. 안 그래도 따로 시킬 일도 있고… 일주일째 부캐만 했으니까 슬슬 본캐도 접속해야 해서.”
“저녁 먹고 가면 시간도 별로 없을 테니까, 오늘은 부길마한테 설명해 두고 상황은 내일 한번 만들어 보죠.”
“좋아.”
설마 이런 생각까지 서정연과 겹칠 줄은 몰랐다. 자잘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라는 건, 내 예상보다 훨씬 편하고 좋을지도 모르겠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