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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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놀랍게도 일휘일비가 흔적이라는 걸 알게 되자 반가운 마음이 솟구쳤다.
흔적 이 새끼, 계삭하고 튀더니 그새를 못 참고 부캐를 키우고 있었냐? 나한테 시비 걸려고 다시 찾아온 거고? 진짜 또라이 같고 미친놈이잖아? 근데 난 왜 이렇게 신나는 거지?
“흠, 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머쓱해져서 헛기침이 나왔다. 나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채팅을 쳤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ㅇㅋ이제 됏음
[파티] 오늘은일요일: 보스는 쟤들이 잡을거야
[파티] 영화별론가: 엥?
[파티] 야옹이라옹: ㅇ.ㅇ?
[파티] rxrx78: 우리가요...?
 
갑작스럽게 보스 처리를 떠맡게 된 길드원들이 당황해서 수군거리는 걸 싹 무시하고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를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일휘일비가 하루 종일 때려야 겨우 죽던 몬스터가 내 스킬을 맞고 한방에 녹아내렸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뒤에서 얌전히 있어ㅋㅋ
[파티] 일휘일비: ㅎㅎ?
 
바뀐 내 태도가 당황스럽긴 해도 싫지는 않은지 일휘일비가 냉큼 내 옆으로 달려왔다.
그 재수 없는 흔적이 60레벨짜리 뉴비가 되어서 저런 잡몹도 못 잡고 쩔쩔매는 꼴을 보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부캐까지 키울 정도면 흔적 계정은 정말로 삭제된 게 맞나 보네.’
단순히 캐릭터를 삭제한 게 아니라 계정 자체를 삭제했으니 복구는 불가능할 거다. 결국, 나와 비슷한 실력의 재수 없던 놈은 이제 없고 저 귀여운 뉴비만 남았다는 거지.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뭐, 길드에 넣는 거까진 별로지만 친추해서 가끔 이렇게 놀아 주는 정도는 나쁘지 않겠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보스 처리하면서 봐
[길드] 오늘은일요일: 일휘일비=흔적 맞음ㅇㅇ
[길드] 마하: ??
[길드] 좋은날씨: 어딜봐서요..?
[길드] 불좀켜줄래: 일휘일비는 암만봐도 음;; 좀 못하는데
[길드] 불좀켜줄래: 흔적이랑 실력차이가ㅠㅠ
[길드] sky004: 근데 사실 진짜 흔적이면
[길드] sky004: 일부러 못하는척 하는걸지도?
[길드] 오늘은일요일: ㅇ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일부러 못하는척 하는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난 바로 눈치깜ㅋㅋ
[길드] 오늘은일요일: 나만큼 흔적 잘아는놈도 없어
[길드] 마하: 자랑이다....
[길드] 야옹이라옹: 둘이 왜 결혼 안해용?ㅇㅅ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ㅡㅡ
[길드] 오늘은일요일: 암튼 흔적맞음
[길드] 오늘은일요일: ㄹㅇ임
[길드] 좋은날씨: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길드] 좋은날씨: 일욜님이 저렇게 확신하는거면 맞긴할지도;;
[길드] rxrx78: 둘이 친했으니까
[길드] 오늘은일요일: 안친해
[길드] 마하: 하긴
[길드] 마하: 둘이 허구한날 놀앗으니까
[길드] 오늘은일요일: 안놀았어
[길드] 아옹이라옹: 그럼 이제 일휘쨩 우리 길드에 넣는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안넣어
[길드] 마하: 뭐여
[길드] 마하: 그럼 이고생을 왜 한거여
 
애초에 길드에 넣으려고 일휘일비의 정체를 알아낸 건 아닌데. 다들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숨기는게 ㅈ같아서 알아낸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알아냈으니까 이제 차단해야지ㅋ
[길드] 오늘은일요일: 일단 지금은 보스부터 처리 ㄱㄱ
[길드] 오늘은일요일: 빨리해ㅡㅡ
[길드] rxrx78: ㄷㄷ
[길드] 야옹이라옹: 8ㅅ8
[길드] 마하: 지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길드] 영화별론가: 차단하는거 맞죠..?
[길드] 영화별론가: 계속 쩔해주고 그럴거 아니죠?
[길드] 야옹이라옹: 이미 귀여워하고잇는거 가튼뎅ㅋ.ㅋ
[길드] 오늘은일요일: 개솔 ㄴ
 
차단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길드원들을 쳐 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일휘일비를 데리고 다닐 거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면 이번처럼 자꾸 쫓아다닐 테니까. 묘하게 일휘일비랑 장단이 잘 맞는 이놈들을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
마무리되어 가는 레이드를 보며 앞으로 일휘일비를 어떻게 놀려 먹을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당한 거 이번 기회에 다 갚아 줘야지.
두 번 다시 나를 이길 수 없게 되어 버린 흔적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부려 먹을 생각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만들고 있는 내게 사장님이 다가와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었어?”
“네?”
그 정도로 티가 많이 났나? 머쓱한 기색으로 고개를 젓자 사장님이 은근하게 놀리는 표정으로 소리 낮춰 재차 질문해 왔다.
“에이, 딱 봐도 좋은 일 있었는데 아니긴. 그러고 보니 오늘 학교 선배가 찾아온다고 했지? 혹시 그 선배가 여자야?”
“여자는 맞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약속이 있어서 오늘 알바를 1시간 일찍 빨리 끝내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건 사장님의 오해였다.
내 대답을 듣고도 의심의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때마침 들어온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며 시선을 들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며칠 전에 사장님이 준비한 쿠키를 내가 준 서비스라고 착각했던 그 비싼 성격의 단골손님이었다.
“딸기 생크림 조각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오늘도 여전하구만.
계산해 주며 힐끔 시선을 올렸다. 저번에는 나처럼 피곤해 보이던 단골손님은 오늘따라 기분이 제법 좋아 보였다. 묘하게 나랑 계속 겹치는 것 같단 말이지.
“완성되면 진동 벨로 알려 드릴게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카운터 구석에 쌓여 있는 진동 벨 중에 하나를 넘겨줬다.
‘우연이겠지.’
설령 진짜로 겹쳤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냐. 아는 거라곤 얼굴밖에 없는 상대인데.
단골손님이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려던 그때였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다시 들리며 새로운 손님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도해준!”
“선배, 오셨어요?”
만나기로 약속했던 대학 선배, 임소희가 카운터로 걸어오며 인사를 해 왔다.
“오랜만이네. 여기가 알바한다는 카페구나. 넓고 좋은데? 지금 주문해도 되나?”
“네. 제가 계산할 테니까 먹고 싶은 거 편하게 주문해요.”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찾아와 준 임소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리 말하자, 임소희가 까르르 웃으며 손을 휙휙 저었다.
“됐어, 휴학한 학생한테 얻어먹을 정도로 못돼 먹진 않았거든? 난 초코 셰이크. 너도 마시고 싶은 거 하나 시켜. 디저트도 괜찮은 거 아무거나 추가해 주고. 네가 일하는 카페인데 음료만 시킬 순 없지.”
“정말로 제가 계산해도 괜찮아요.”
“어허, 선배가 사 주는 거 얌전히 받아먹어. 비싼 것도 아니고 음료랑 디저트인데, 뭘.”
어쩔 수 없이 임소희가 내민 카드를 받아 계산을 마쳤다. 임소희가 빈자리를 찾을 동안 아까부터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려는데, 사장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차피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 퇴근한 셈치고 옷 갈아입어. 여기서 얘기 나누기로 했다며?”
“그래도 괜찮을까요?”
“손님으로 주문까지 해 줬는데 나야 오히려 좋지. 가서 얘기 나누고 있어. 주문한 음료랑 디저트 갖다 줄게.”
이럴 때는 사장님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참 좋네. 허리에 매고 있던 앞치마를 풀며 양해를 구했다.
“그럼 오늘은 1시간만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리 한군데 쓸게요.”
“알았어.”
사장님에게 뒤를 맡기고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매장을 둘러보며 임소희가 앉아 있는 자리를 찾던 나는 임소희의 뒷모습을 발견한 동시에 다른 사람도 알아챘다.
‘윽…….’
임소희가 앉은 자리의 맞은편에는 아까 그 단골손님이 앉아 있었다. 심지어 2인 테이블이 놓여 있는 곳이라 자리마다 간격이 좁아서 거리가 굉장히 가까웠다.
‘하필… 좀 불편한데.’
저번에 있었던 쿠키 사건이 영 찝찝했던 터라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상대였는데.
어쩔 수 없지. 저 거리에서는 임소희에게 다른 자리로 가자고 소리를 낮춰서 말한다 해도 어느 정도 들릴 테고, 그렇게까지 해서 피하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 한숨을 삼켜 내며 자리로 걸어갔다.
노트북을 꺼내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던 임소희가 맞은편 의자에 앉는 나를 보고 놀라서 입을 열었다.
“어? 벌써 왔어?”
“사장님께서 일찍 퇴근시켜 줬어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뒤로 슬쩍 시선을 보냈다.
나와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단골손님은 웬일로 노트북이 없이 책을 두어 권 쌓아 놓은 채로 보고 있었다. 스치듯 본 제목으로 짐작했을 땐, 아마 추리 소설인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타닥, 엔터 키를 경쾌하게 두드린 임소희가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려줬다. 화면에는 희망하는 컨셉과 방향성, 제품 관련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PPT가 띄워져 있었다.
“전화로 말했듯이 홈페이지에 올라갈 디자인 두 개만 맡아 주면 좋겠어. 네가 예전에 작업해 줬던 키보드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거든.”
임소희는 PC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사업은 안정적인 성장을 이뤘고 내년에는 오프라인 매장까지 낸다고 했다.
디자인 전공인 나는 임소희에게 외주를 받아 어느 한 키보드 제품의 상세 컷과 홈페이지에 올라갈 배너를 제작해 준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키보드에 새로운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그때와 비슷한 홍보 디자인을 만들려고 하는 거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