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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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유진호가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파티원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사실 파티원들이 딱히 해 줄 역할은 없었지만, 괜히 실수해서 문제가 생기면 안 되기도 했고 이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설득해야 하니까.
 
[파티] 쥐안에든독: 아예 노퓨쳐도 자리에 초대해서 삼자대면하는건 어때요?
[파티] 빚과송금: 헐 ㅈㄴ재밌겠다ㅋㅋ
[파티] Z10N: ㅡㅡ
 
두 명 다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 나도 저 입장이었으면 재밌겠다고 했을 테니 이해는 하지만.
 
[파티] haewo1: 좋은 아이디어네요
[파티] haewo1: 재밌을듯
 
“…야,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같이 진지해야 할 놈이 동의하고 앉아 있네. 따지는 말에도 서정연은 여전히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부길마끼리 만나서 인재 데려가려고 기 싸움 하는 모습이요.]
“그야 당연히…….”
무심코 동의하려던 나는 급히 이성을 되찾았다. 이럴 때가 아닌데.
“헛소리하지 말고 라임나무 들어오면 알려 줘.”
[9시에는 온다고 했으니 곧 들어오겠네요.]
우리 중에서 라임나무와 친추한 사람은 서정연이 유일했다. 라임나무는 서정연을 뉴비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친추까지 해 가면서 특히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요일 길드가 우리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어나더 길드 측에 확실히 전하기 위해서는 라임나무가 있어야 했다.
지금이 8시 50분이니까 10분 정도 남았네. 라임나무가 들어오면 유진호에게도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유진호는 이미 아크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연락 한 번이면 여기로 금방 오겠지.
“크흠, 그…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아까부터 서정연의 눈치를 보던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네?]
“오늘… 바빴냐?”
[오늘요? 딱히?]
안 바빴다고? 그럼 대체 왜…….
“안 온 건데?”
[어딜요?]
“카페 왜 안 왔냐고.”
뱉자마자 후회가 몰려왔다.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려던 게 아니었는데. 낭패감에 손으로 입을 막은 나는 어쩔 수 없이 변명처럼 물어본 이유를 알려 줬다.
“아니, 대단한 건 아니고. 오늘 올 줄 알고 부탁하려던 게 있어서…….”
[말해 봐요.]
“어제 서비스로 마카롱 준 거 있잖아.”
[돌려줘요? 이미 먹어서 그건 좀 힘든데.]
“먹었다고?”
[먹으라고 준 거 아니에요?]
“맞긴…한데. 그거 엄청 달지 않아?”
[달았죠. 제 예상보다 더 달더라고요.]
“사장님이 후기 알려 달라고 하셔서. 사실 서비스 준 날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퇴근하고 만났을 때는 서정연이 누군가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찔려서, 식사한 다음에는 그럴 정신이 없어서 마카롱에 대해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에라도 카페에 오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던 서정연이 웬일로 오지 않았다.
‘이런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내 사정이 어땠는지 시시콜콜 털어놓을 사이도 아니고. 본론만 꺼내자, 본론만.
“아무튼, 먹었으면 후기 알려 줘. 솔직히 많이 달아 보여서 먹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거든.”
[맛은 너무 달아서 잘 모르겠고. 크림은 적당히 부드러워서 괜찮았어요. 맛이 제 취향이 아닌 거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먹었을 거예요.]
“다음 서비스는 초코케이크라고 하던데. 그것도 받으면 먹을 거냐?”
[하하… 좀 봐줘요. 마카롱은 양이 적으니까 어떻게 먹은 거지만 초코케이크는 버거워요.]
“역시 그렇지?”
[도해준 씨가 만든 케이크면 먹을 의향 있고요.]
“헛소리 말고.”
내가 케이크를 왜 만들어. 한숨을 내쉬자 킥킥거린 서정연이 말했다.
[사장님께 잘 좀 전해 줘요.]
“알겠어.”
사람이 아무리 재수 없어도 음식으로 괴롭히는 건 너무 치사하지. 이제 사장님도 현실을 알 때가 됐다. 그걸 내가 알려 줘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서정연이 이어 물었다.
[도해준 씨는 안 만들어요?]
“뭘?”
[디저트요. 알바생은 그런 거 안 하나?]
“음료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디저트를 내가 어떻게 하냐.”
[그래요? 내가 그쪽은 잘 몰라서.]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팔짱을 끼며 입매를 비틀었다.
“내가 만들면 먹을 자신은 있고? 단 거 못 먹으면서 무슨 자신감이야.”
[도해준 씨가 만든 거면 먹죠. 그래서 저번에 다 먹었잖아요.]
“뭐?”
[아, 라임나무 들어왔네요. 부길마한테 연락해요.]
서정연이 아주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잠시간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 자식이…….’
일부러 날 놀리려고 저런 소리를 한 게 틀림없었다. 애써 침착한 척 유진호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Z10N: 케일 중앙
Z10N: 5분내로 와라
마하: ?
마하: 머임?ㅋ
마하: 먼가 기분이 더러워보이는데ㅋ
 
“…….”
그렇게 티 나나? 힘이 들어간 미간을 손끝으로 꾹꾹 누르며 표정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이런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노퓨쳐를 한 번 더 자극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인데,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지.
“불렀어. 라임나무는?”
[저기 왔네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라임나무의 캐릭터가 앞에 슉 나타났다. 세이브 이동으로 곧장 날아온 모양이다.
 
[전체] 나의라임나무: 님들ㅎㅇ!^~^
[전체] 빚과송금: ㅎㅇㅋㅋ
 
그보다 라임나무… 며칠 만에 완벽하게 우리 쩔 노예가 된 것 같은데. 부른다고 저렇게 재깍 날아오다니. 우리가 딱히 대접을 잘해 주지도 않았는데, 좀 신기했다.
 
[전체] 나의라임나무: ㅍㅌㅍㅌ
[전체] 빚과송금: 오늘도 쩔 빡세게 해줄거면 초대해줌~
[전체] 나의라임나무: ㅋㅋㅋㅋㅋㅋ
[전체] 나의라임나무: 아 당근빠따죵>~<
[전체] 빚과송금: ㅎ당장 들오셈
 
‘좋은날씨랑 유독 잘 맞는 것 같긴 하네.’
탱커와 서포터의 조합이라서 그런가? 서정연하고는 친추도 했으면서 별 교류가 없어 보였다. 하긴, 친해지기 쉬운 성격이 아니긴 하지.
 
[파티] 나의라임나무: 근데 님들
[파티] 나의라임나무: 이제 만렙인데 레이드 또 가게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길드 안들어오심?
[파티] 빚과송금: ㅋㅋ길드 어디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어나더 오셔야져ㅠ
[파티] 빚과송금: 고민중~
 
아까 내 설명을 들은 덕분인지 좋은날씨가 아주 적절하게 뜸을 들였다. 그때, 타이밍 좋게 유진호가 나타났다.
금발에 검은 제복, 푸른 보석이 박힌 배틀 메이지 전용 스태프를 들고 있는 유진호의 머리 위에는 요일 길드의 부길마라는 표시가 적나라하게 달려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빛나는 부길마 마크를 보며 화면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일부러 장소를 유저들이 많이 오가는 도시로 잡았으니 그만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전체] 마하: 지온님?
[전체] Z10N: ?
[전체] 마하: ㅎ안녕하세요
 
익숙해도 너무 익숙한 놈과 모르는 척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이 영 오글거렸지만 참아야 했다.
 
[전체] Z10N: 아네 안녕하세여
[전체] 마하: 혹시 지금 바쁘신가요
[전체] 마하: 잠깐 대화 가능하실?
[전체] 나의라임나무: 헐 마하님???
 
대화 정도야 당연하죠, 라고 답하려던 나는 갑자기 끼어든 라임나무 때문에 어리둥절해졌다. 뭐야, 네가 여기서 왜 끼어들어? 뭔데?
[부길마하고 라임나무랑 아는 사이예요?]
“아니,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제 얘기했을 때 유진호는 라임나무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았는데.
 
[전체] 마하: ?
[전체] 나의라임나무: 아 그
[전체] 나의라임나무: 저 기억안나세요?
[전체] 나의라임나무: 저랑 같이 레이드도 돌고 그랬는데
 
라임나무의 채팅에서 어딘가 절박한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나만 느꼈는지, 유진호는 평소의 심드렁하고 무심한 태도로 반응했다.
 
[전체] 마하: ㄴㄴ모름
[전체] 마하: 지온님
[전체] 마하: 길드 없으시면 우리 길드 오실?
[전체] 나의라임나무: 아..
 
아니, 이 상황에서 길드 제안을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라임나무의 말에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나 하겠다는 유진호의 태도에 이마를 짚었다. 게임인데도 어쩐지 라임나무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전체] 마하: 우리 길드가 지금 1위인거 알죠
[전체] 마하: 오셈 잘해드림 ㄱ
 
심지어 성의까지 없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노퓨쳐랑 비교가 됐다.
 
[전체] Z10N: ㅎㅎ; 갑자기요?
 
결국 나는 제대로 하라는 뜻을 담아서 대답했다. 그래도 유진호가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금방 의미를 알아채고는 좀 더 정성을 담아서 말했다.
 
[전체] 마하: 농담이 아니라
[전체] 마하: 요즘 우리 길드에서 지온님네 파티가 인기가 참 많거든요
[전체] 마하: 듣기로 어나더 길드에서도 길갑 제의를 했다던데
[전체] 마하: 뭐ㅋ 어나더같은 길드 갈바에는
[전체] 마하: 우리 길드가 백번 낫지 않나?ㅋㅋ
 
…정성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거였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신랄한 채팅에 나는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