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간 단계를 너무 건너뛰었나? 어쩔 수 없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파티 창부터 만들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일단
[전체] 오늘은일요일: 들어와봐
아무리 근처에 유저가 없다고 해도 전체 채팅은 위험했다. 흔적 관련한 얘기를 할 때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전체] 일휘일비: 네에
방금은 까칠하더니, 그새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일휘일비는 냉큼 파티에 들어왔다. 좋아. 한결 낫군.
[파티] 오늘은일요일: 잘봐
[파티] 오늘은일요일: 이거 되게 귀한 펫이야
[파티] 오늘은일요일: 서버에 딱 한명만 있는 펫이라고
[파티] 일휘일비: 오~
[파티] 일휘일비: 여기까지 불러서 자랑할만하네요ㅎㅎ
[파티] 오늘은일요일: ㅡㅡ
[파티] 일휘일비: ㅋㅋㅋㅋㅋ
[파티] 일휘일비: 그래서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그래서
‘잠깐만, 뭐라고 말해야 하지?’
흔적도 잘 알고 있는 이 고양이를 갑자기 보여 주면서 반응을 좀 보려고 했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실패한 것 같다.
‘…아, 귀찮아. 모르겠다.’
이게 뭐 중요한 문제라고 이만큼 머리를 굴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드렁해진 나는 그냥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너 흔적이지?
[파티] 일휘일비: ????
[파티] 일휘일비: 네??
너무 본론이었나 싶었지만, 이왕 뱉어 낸 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아님?
[파티] 일휘일비: 너무 뜬금없잖아요
[파티] 일휘일비: 펫 얘기하다가
[파티] 일휘일비: 갑자기 왜 물어보는건데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뭐 갑자기 물어볼수도 있는거지
[파티] 오늘은일요일: 이런 일에 이유까지 필요한가
[파티] 오늘은일요일: 그래서 맞아 아니야
[파티] 일휘일비: 글쎄요?
[파티] 일휘일비: 어떤거같아요?
이 자식이 또 지랄이네. 하여튼 한 번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다니까.
[파티] 오늘은일요일: 너 흔적이면 길드 넣어줄게
[파티] 일휘일비: 어 진짜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ㅇㅇ
[파티] 오늘은일요일: 싸가지없는 새1끼 내 길드로 넣어서
[파티] 오늘은일요일: 졸라 부려먹어야지
[파티] 오늘은일요일: 길마라고 부르게하고
[파티] 일휘일비: 너무 유치하잖아요ㅋㅋㅋㅋㅋㅋ
[파티] 오늘은일요일: 남이사 유치하든말든
[파티] 일휘일비: 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그리 웃긴 지, 한참을 킥킥거리던 일휘일비가 아까보다 훨씬 유한 태도로 대답했다.
[파티] 일휘일비: 네 맞아요
[파티] 일휘일비: 제가 흔적이에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
[파티] 오늘은일요일: 이렇게 쉽게 수긍을 한다고?
[파티] 일휘일비: 흔적이면 길드 가입시켜준다면서요
“…….”
탄식을 내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내 길드에 꿀이라도 발라 놨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 거야?
[파티] 오늘은일요일: 사실 구라엿어
[파티] 오늘은일요일: 당장 차단해야지
[파티] 일휘일비: 저도 구라였어요
[파티] 일휘일비: 흔적 아니에요ㅋ
[파티] 오늘은일요일: ㅋㅋㅋㅋㅅㅂ
이거 하루 종일 해도 끝이 안 나겠다. 나한테 이러는 놈은 흔적 말고 없으니 일휘일비가 흔적의 부캐인 게 확실할 텐데,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었다.
[파티] 일휘일비: 그럼요 오일님
[파티] 일휘일비: 이렇게 하는건 어때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
[파티] 일휘일비: 제가 흔적인지 아닌지 궁금하면
[파티] 일휘일비: 길드에 넣어서 증거를 잡아보는건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ㅋㅋㅋㅋㅋㅋ?
[파티] 일휘일비: 완전 좋은 아이디어죠? 그쳐?
[파티] 오늘은일요일: 완전 ㅈ같은 아이디어네
이러다가 날 새겠네.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 갈 바에는 두 번째 계획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 나는 둘이서 탈 수 있는 말 펫을 소환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타
앞에 나타난 말을 잠시 바라보던 일휘일비가 얌전히 올라탔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말을 잘 듣네.
[파티] 오늘은일요일: 증거야 머
[파티] 오늘은일요일: 길드없이도 찾을수있지
[파티] 일휘일비: 어떻게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일단 ㄱㄱ
일휘일비를 따라 말에 올라탄 나는 미리 정해 둔 목적지를 향해서 이동했다.
***
내 부름을 듣고 찾아온 마하가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파티] 마하: 너 이럴때마다
[파티] 마하: 왜 내가 쪽팔린건지 모르겟어
[파티] 오늘은일요일: 머?
내가 일휘일비를 데려온 곳은 바로 가장 약한 필드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는 와인 저장고 맵이었다.
채널마다 상시 등장하며 죽으면 10분 안에 리셋 되는 덕에 필드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몬스터였다. 80레벨쯤에 사냥하라고 퀘스트가 날아오는 몬스터였으니, 60레벨 정도 찍은 일휘일비에게 아주 적당한 상대일 거다.
‘물론 저 일휘일비가 흔적의 부캐가 맞다면 말이지.’
흐흠,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마녀의 형상을 한 보스 몬스터와 마주 서 있는 일휘일비를 구경하던 그때였다.
증인으로 끌려온 마하가 차마 더 버틸 수 없었는지 일휘일비가 보지 못하게 길드 채팅으로 물어 왔다.
[길드] 마하: 아니 근데 이런게 증거가 되냐?
[길드] 오늘은일요일: 저새1기 저번에 현상금 걸렸을때
[길드] 오늘은일요일: 공격 다 피하면서 도망쳐온거 봣잔아
[길드] 오늘은일요일: 뉴비 실력이 아니라니까?
[길드] 오늘은일요일: 몹 잡는거 보면서 컨이 얼마나 좋은지 제대로 확인해야지
[길드] 영화별론가: 두분 머하세여?
[길드] 마하: 뭔말인진 알겟는데
[길드] 마하: 음..
마하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퍼억! 타이밍 좋게 일휘일비가 몬스터의 공격을 맞고 휙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
[길드] 마하: 진짜 개못한다
내가 쓴 채팅인 줄 알았네.
‘뭐야, 왜 이렇게 못해?’
고작 저것도 못 피하면 이 험한 온라인 게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한번 맞기 시작하자 공격 패턴을 완전히 놓쳤는지, 일휘일비는 쉴 틈 없이 공격을 맞고 여기저기로 튕겼다. 탱탱볼이야, 뭐야?
빠른 속도로 훅훅 줄어드는 체력에 결국 일휘일비 캐릭터가 으윽, 단말마를 내뱉으며 털썩 쓰러졌다. 나는 모든 체력이 소모돼서 새까맣게 변한 녀석의 체력 바를 허무하게 응시했다.
[길드] 마하: 너 그러다가
[길드] 마하: 뉴비 괴롭히는 썩은물로 신고당한다
[길드] 영화별론가: 먼데???
[길드] sky004: 일욜님이면 ㅇㅈ이지
[길드] 좋은날씨: 지금 머하는데요?
아, 뭔 신고야. 저 새끼 뉴비 아니라니까.
억울한 마음에 일휘일비에게 후다닥 달려가서 부활을 눌러 줬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티 ㅈㄴ 나니까
[파티] 오늘은일요일: 연기 그만해라;;;
[파티] 일휘일비: 연기 아닌데요ㅠ
[파티] 일휘일비: 제가 저걸 어케 잡아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왜 못잡아?
[파티] 일휘일비: 딜이 안들어가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딜은 개뿔 처맞기만 햇으면서
어휴, 답답해. 일휘일비에게 한 번에 풀 피를 채울 수 있는 체력 포션을 던져 주고 무기를 장착했다.
죽었던 일휘일비가 다시 깨어나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보스 몬스터가 다시 이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녀석을 뒤로 보내고 봉을 크게 휘둘렀다.
빠각, 호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얻어맞은 몬스터가 비틀거리며 체력이 훅 깎였다. 필드 보스 몬스터지만 워낙 약해서 굳이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봉으로 두어대 더 내리치자 몬스터가 대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픽 죽어 버렸다. 보스 몬스터가 죽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파티 전체에 경험치가 들어왔다.
나와 마하는 이미 만렙이라서 별 의미 없었지만, 보스 몬스터와 레벨 차이가 좀 있는 일휘일비에게는 꽤 괜찮은 경험치였을 거다. 재가 되어서 사라지는 몬스터 시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 몬스터는 너무 강했나?’
일휘일비의 실력이나 보려고 온 건데, 실력이고 뭐고 대미지가 이 정도로 안 들어갈 줄이야. 필드 보스 몬스터 중에선 얘가 제일 약한데, 차라리 던전을 들어가야 하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님들 60렙대 갈만한 던전 머있음?
[길드] 여여랑: 에펠 레이드?
[길드] 여여랑: 저번에 패치해서 겸치 잘줘요
그렇군. 역시 이런 정보는 허구한 날 부캐를 키우고 노는 길드원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에펠이라면 노스 대륙에 있는 던전인가? 멀긴 해도 어차피 도시 세이브 포인트로 넘어갈 거니까 상관없었다.
[길드] 좋은날씨: 60렙대 던전은 왜요?
[길드] 좋은날씨: 부캐 키우시게요?
[길드] 오늘은일요일: ㄴㄴ
[길드] 마하: 부캐 키우는게 아니라
[길드] 마하: 뉴비를 키우는거겠지
[길드] 오늘은일요일: 뭐래
[길드] 오늘은일요일: 흔적 부캐인지 알아보려고 하는거잖아
[길드] 마하: 존1나 열심히 쩔해주고 있잖아 지금ㅋㅋ
[길드] 마하: 난 왜부른겨 ㅅㅂ
[길드] 오늘은일요일: 너도 옆에서 같이 증거를 잡아야지ㅡㅡ
[길드] 좋은날씨: 헐 저도 갈래요
[길드] rxrx78: 나도
[길드] 야옹이라옹: 일휘일비짱 쩔해주는거야?
[길드] 야옹이라옹: 야옹이도 낄래~><
[길드] 영화별론가: 저도33333
[길드] sky004: 선착순 미쳤다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여전히 내 말은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길드원들을 내버려 둔 채 다시 말을 소환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자리 이동하게 타
[파티] 일휘일비: 우리 또 어디 가요?
[파티] 오늘은일요일: ㅇ
심드렁한 대꾸에도 일휘일비는 말에 냉큼 올라탔다.
설마 이 자식도 내가 쩔해 주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의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노스 대륙에 있는 도시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