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나더 길드에 들어간 지 사흘째가 됐다.
첫술에 배부르기 어렵다지만, 이틀 동안 우리가 알아 낸 거라고는 성하연이 주동하는 쓰레기 같은 소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 제한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급하게 생각할 건 없었지만… 막상 들어오고 나니 노퓨쳐와 친해지는 것도 어렵고 정보를 얻어 내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가짜 흔적은 접속조차 안 하네.’
이제 겨우 삼 일 됐으니 아쉬워하기엔 이르지만.
[길드] 나의라임나무: 신입 뉴비분들이랑
[길드] 나의라임나무: 레이드 가실분? ^~^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은 라임나무뿐이었다. 어나더 길드에서 제일 정상인이면서 우리에게 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라임나무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먼저 어나더 길드에 들어가서 활동하던 라임나무를 선두로 파티를 만들고 길드원들과 같이 게임을 하다 보면 길드에 좀 더 수월하게 녹아들 수 있을 거다.
[길드] 방벽: 레이드 어디감?
[길드] 나의라임나무: 황폐바위 하드
[길드] 방벽: 저도 ㄱㄱ
[길드] Iilliliilil: 손
[길드] Rahm: 저도 갈게요
[길드] 성하연: ㅇㅅㅇ
[길드] 성하연: 몇자리 남았나용?ㅇ.ㅇ
[길드] 나의라임나무: 3!
[길드] 성하연: 저두 갈게용ㅎㅎㅎ
[길드] 크라나샨트: 하연님 가면 저두감ㅎ
성하연이 오는 건 반길 만한 일이었지만 하필 여미새도 같이 딸려 왔다. 성가셔 죽겠네.
나는 혀를 차며 파티 채팅으로 어제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파티] Z10N: 노퓨쳐님은 레이드 잘 안가심?
일부러 노퓨쳐가 들어와 있는 타이밍에 레이드 얘기를 꺼낸 건데, 예상대로 노퓨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ㅇㅇ
[파티] 나의라임나무: 일단 전 한번도 못본듯
[파티] 빚과송금: ㄹㅇ단한번도 없음?
[파티] 빚과송금: 레이드 안하고 뭐하지그럼
[파티] 쥐안에든독: 템 먹을라면 레이드 필수일텐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글쎄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노퓨쳐님 장비가 꾸지진 않던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나 없을때 돌았을수도 있고
[파티] Z10N: 라임님
[파티] Z10N: 어나더 길드에 들어간지 얼마나 된거임?
[파티] 나의라임나무: 흠
[파티] 나의라임나무: 저 길마님 복귀하자마자 길갑해서
[파티] 나의라임나무: 얼마안되긴함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
[파티] 빚과송금: ㄹㅇ길전 하나 보고 가입한거네
[파티] 나의라임나무: ㅋㅋ그거아님 여길 왜옴
흔적 사칭범이 나타났을 때 가입한 거면 길어 봤자 3주 정도인가.
그 시간 동안 노퓨쳐가 레이드 도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면, 우리가 지난날 길드 전쟁을 할 때 빼고는 노퓨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유와 같을 거다.
‘노퓨쳐… 정말로 길드 전쟁 말고는 다른 콘텐츠를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
여태 게임을 안 접고 계속하는 게 신기했다. 그럼 대체 게임에 접속해서 뭘 한단 말인가. 필드에 돌아다니지도 않고 필요한 아이템이나 재료는 모두 경매장에서 구매한다니. 엄청 지루할 것 같은데.
왜 그런 식으로 게임을 하는 거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흔적 대타를 세워서 길마로 만들어 놓고? 이해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파티] 빚과송금: 그럼 라임님
[파티] 빚과송금: 여기 오기 전엔 어느 길드였음?
[파티] 쥐안에든독: 실력좋아서 인기많았을거같음
[파티] 나의라임나무: ㅋㅋㅋ ㄴㄴ
[파티] 나의라임나무: 저 솔직히 철새였어영
[파티] 나의라임나무: 길드 여기저기 옮겨다녔음
[파티] 빚과송금: 엥 왜요
[파티] 빚과송금: 길드 적응 어려워서?
[파티] 빚과송금: 근데 지금 하는거보면 어려워보이진 않은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가고싶은 길드가 있었는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거기 까여서..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뒤로 재가입 안열더라구영^~^..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래서 방랑 생활을....
[파티] 빚과송금: ㅇㅎ..
콘텐츠 활동을 안 하는 노퓨쳐와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파티 채팅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잠깐, 혹시 라임나무가 가고 싶었다는 길드가…….
[파티] 빚과송금: 거기 혹시
[파티] 빚과송금: 요일 길드?
[파티] 나의라임나무: 넹^~^..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
설마 했는데 진짜 우리 길드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파티] 쥐안에든독: 그럼 요일 길마 싫다고 한것도?
[파티] 나의라임나무: 다른 문제도 더 있긴한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때 일이 아무 영향이 없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빚과송금: 개웃기네ㅠㅠ
[파티] Z10N: 결국 까여서 싫다는거네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렇긴한데 그게 다는 아니구여..
[파티] 쥐안에든독: 요일 들가려고 한거 설마
[파티] 쥐안에든독: 요일 부길마때매?
[파티] 나의라임나무: ㅠ~ㅠ
맞다는 거네. 이쯤 되면 신기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길드 가입을 언제부터 막아 놨지? 최소한 반년은 됐을 텐데.’
어나더 길드와 길드 전쟁을 시작했을 무렵에 길드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걸 골라내는 일만 해도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도 그때 공들여 뽑은 길드원 대부분이 아직까지 남아서 열심히 활동해 주고 있으니 결과적으론 잘된 거긴 하지만.
아마 라임나무가 그때 우리 길드에 가입을 신청했다면 탈락했을 가능성이 컸다. 워낙 많은 인원이 몰려든 탓에 라임나무처럼 괜찮아 보이는 유저들을 어쩔 수 없이 탈락시켰으니까.
그때부터 여태껏 유진호와 친해지고 싶어서 이 난리를 피우고 있다 이거지? 이 사실을 유진호에게 전해 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 줄지 궁금해졌다.
‘2년 전에 진짜로 뭔가 일이 있었나 보다.’
몇 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좋아한 거니까 사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거 참, 아무리 봐도 나보다는 유진호가 직접 와서 물어보는 게 답을 얻기 빠를 것 같은데.
그래도 라임나무 관련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은 거니까 나쁘지 않았다. 현재 내가 정보를 얻어야 할 상대는 노퓨쳐와 성하연, 라임나무 이렇게 세 사람인데, 저 중에서 라임나무가 그나마 제일 쉬워 보였다.
나도 처음엔 라임나무가 재수 없었지만 나서서 쩔해 주고 길드 들어와서도 여러 도움이 되는 걸 보니까 점점 호감이 차올랐다. 라임나무가 날 싫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만 이득 보면 끝이지. 속 편하게 생각하며 라임나무에게 응원을 보냈다.
[파티] Z10N: 힘내세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ㄳㄳ
***
어나더 길드원들과 처음으로 가게 된 레이드는 황폐화 지역에 있는 바위산 레이드였다. 최대 10인 레이드로 무난한 난이도의 레이드였다.
서정연이 접속한 건 레이드 출발 직전이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상관없어. 산책은 잘했냐?”
[덕분에요.]
정이 산책시켜 주고 올 테니까 기다려 달라는 서정연의 부탁으로 일부러 레이드 시간을 늦게 잡았다.
[어제 못해서 그런가,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사진 찍었는데 보내 줄까요?]
“……어.”
반사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정이 사진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자마자 책상에 던져둔 핸드폰이 바르르 울렸다.
“몇 장을 보낸 거야?”
[한번 찍을 때 스무 장은 기본이에요.]
팔불출이 따로 없네. 속으로 서정연을 비웃으며 사진을 확인한 나는 스무 장이 기본이라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미친. 너무 귀여워. 사진 속 정이는 활짝 웃으면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동영상이 아닌 사진인데도 여기까지 활기가 느껴졌다.
입을 틀어막은 채로 저장 버튼을 연타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상대는 정이를 키우는 서정연이었다.
“흠흠, 스무 장 찍을 만하네.”
[그렇죠? 레이드 파티에 저 초대해 주세요.]
“아, 맞다.”
정이 사진에 한눈팔려서 깜빡했다. 파티에 초대해 주자 레이드 멤버를 확인한 서정연이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하연 저 사람도 온 건가요? 의외네요. 도해준 씨가 첫날에 이것저것 물어봐서 불편해할 줄 알았더니.]
“자기가 먼저 오겠다고 하더라. 내가 봐도 의외긴 해.”
[뭐, 잘됐네요. 안 그래도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보여 주고 싶은 거? 그게 뭐냐고 묻기 전에 서정연의 캐릭터가 레이드 입구 앞에 도착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다 도착했으니까 출발할게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각자 스킬셋이랑 장비확인 ㄱㄱ
파티장인 라임나무의 말에 길드원이 저마다 무기를 착용했다. 나는 제일 먼저 성하연의 무기부터 확인했다.
황금 세공이 들어간 플룻. 음유 시인이 사용하는 무기였다. 예상했던 대로 서포터 직업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린 그때였다.
“……?”
[파티] 쥐안에든독: 으잉?
[파티] 빚과송금: ???
[파티] 나의라임나무: 헐
[파티] 방벽: 오
나와 같은 것을 발견한 파티원들도 저마다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나는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인 다음에야 겨우 물었다.
“야, 그거… 뭐냐?”
[이거요?]
경직된 내 질문에 서정연이 들고 있던 무기를 한 바퀴 휙 돌렸다. 새파란 빛이 단검을 따라 은은하게 빛났다.
[윈드 헌터 무기요. 마침 경매에 올라와 있길래 미리 사 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