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싫어해?’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라임나무가 싫다고 말한 상대는 내가 확실했다.
요일 길드는 내가 만들었으니 어나더와 다르게 중간에 길마가 바뀐 적도 없다. 과거도 현재에도 길마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라임나무가 싫다던 요일 길드 길마는 내가 맞을 텐데.
그래도 혼란스러운 건 여전했다. 어나더 길드에 억지로 들어가서 버틸 만큼 우리 길드와의 전쟁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유가 나를 죽이기 위해서? 대체 왜? 나는 흔적처럼 온갖 곳에서 시비 걸고 다닌 적도 없는데! 억울해!
[도해준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녔나 봐요?]
“닥쳐. 네가 할 소리야?”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서 주먹이 쥐어졌다. 으득, 이를 갈며 라임나무를 노려봤다. 라임나무의 갑작스러운 ‘요일 길마 싫다’ 선언으로 나름 훈훈하던 분위기에 찬물이 뿌려졌다.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좋은날씨와 여여랑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파티] 빚과송금: 요일 길드를.... 싫어하시나봐요ㅎ..
[파티] 나의라임나무: 길드 자체는 별 생각업서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싫어하는건 길마뿐임!
[파티] 쥐안에든독: 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요일 길마면 오늘은일요일 이 분 맞아요?
[파티] 쥐안에든독: 싫어함?
[파티] 나의라임나무: 넹 싫어함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채팅을 보던 나는 결국 서정연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왜… 싫어하냐고… 물어봐.”
[그럴까요?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대답하는 서정연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톤 높았다. 이 자식은 대체 왜 신나 보이는 거지? 짜증 나 죽겠다.
[파티] haewo1: 왜 싫어함?
[파티] haewo1: 난 좋은데 요일 길마
“쓸데없는 사족 붙이지 마라.”
[진심인걸요.]
이 와중에 장난을 치는 서정연을 무시하고 라임나무의 대답을 기다렸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왜 싫냐고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이거 설명하려면 좀 걸리는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레이드중에 ㄱㅊ?
[파티] haewo1: ㄱㅊ
[파티] 빚과송금: 레이드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알려주세요
[파티] 쥐안에든독: ㄹㅇ세상에서 젤궁금함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럼 알려줄게여
[파티] 나의라임나무: 때는 바야흐로.... 2년전.....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아니 2년전이욬ㅋㅋㅋㅋ?
2년 전? 2년 전이라면 내가 아크로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될 때인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만렙 찍고나서 레이드 공팟 드갓는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거기서 요일 길마 만났거등요
[파티] 빚과송금: 헉 설마
[파티] 빚과송금: 요일 길마가 레이드 공팟에서 민폐를??
[파티] Z10N: ㅡㅡ
[파티] 나의라임나무: 아녀
[파티] 나의라임나무: 레이드는 잘 끝냄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때도 겜 잘하더라구여
뜬금없이 나온 칭찬에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위로 치솟았다. 저 자식이 뭘 좀 알긴 하네.
‘근데 좋아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날 싫어한다는 놈이 실력은 인정해 주니까 기분 엄청 좋다.
자꾸만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손으로 내리누르는데, 헤드셋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해준 씨, 지금 웃고 있죠?]
“아, 신경 꺼!”
자꾸 깐족거리는 서정연 때문에 집중이 하나도 안 됐다.
[파티] 빚과송금: 그럼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사건은 레이드가 끝난 뒤에 터졌죠....
[파티] 나의라임나무: 공팟에서 요일 길마 실력을 본 저는
[파티] 나의라임나무: 같이 파티하자고 물어보면서 친추를 보냈습니다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랬더니 요일 길마가...
[파티] 쥐안에든독: ㅁㅊ설마
[파티] 쥐안에든독: 친추를 씹고 무시..?
[파티] 나의라임나무: 아뇨
[파티] 나의라임나무: 알겠다면서 친추 받아줌ㅎㅎ
[파티] 쥐안에든독: .?
[파티] 빚과송금: 저기요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빚과송금: 뭐하자는거임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하 설명 맛깔나게 하시네;;
[파티] 나의라임나무: ㅋㅋㅋ
[파티] 나의라임나무: 아니~ 님들 이렇게 말 많은줄 몰랐네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이틀동안 몇마디 안하길래 섭섭했잖아요ㅠㅠ
잠자코 채팅을 지켜보던 나는 이어지는 라임나무의 채팅에 싸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괜찮은 건가?’
어째 지켜보면 볼수록 라임나무한테 휘말리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중간에서 끊어야 할 것 같네요. 지금요.]
뭔가 미묘한 차이를 서정연도 알아챘는지 곧장 입을 열었다. 단순하게 능청 떠는 채팅일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지금 상황은 여기서 정리하는 게 나아 보였다.
“그래. 내가 정리할게.”
[파티] Z10N: ㅋㅋ됐음
[파티] Z10N: 거까지 하고 일단 레이드마저 ㄱㄱ
[파티] 나의라임나무: 그를까여
라임나무가 흔쾌히 동의하며 다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태도에 내 기분만 더 복잡해졌다.
“단순히 기분 탓이었던 건 아니겠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우리를 도와준다고 해도 결국 어나더 길드원이니까.]
“어쩌면 나를 싫어한다는 것도 우리를 떠보려고 해 본 말일 수도 있겠어.”
[아뇨, 그건 진심 같던데?]
“네가 뭘 알아?”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 신경 써요?]
“아니… 평소라면 무시하겠는데.”
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담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널 놔두고 왜 나를… 어이가 없잖아. 심지어 날 죽이려고 다른 곳도 아니고 어나더 길드를 들어갔다니… 기가 막혀서 기절할 지경이다.”
진심이 가득 담긴 내 한탄을 들은 서정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도해준 씨도 애들 패고 다녔으면서 뭘 억울해해요.]
“그건 상황이 다르지. 난 맞을 짓 한 놈들만 때렸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개소리하지 마. 넌 맞을 짓 한 놈들이 아니라 네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때린 거고. 나랑은 달라.”
[그게 그거 아니에요?]
“그게 그거겠냐고…….”
서정연이랑 대화하다 보니 미약한 두통이 일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길을 막고 있는 수정 벽을 부수며 나아가자 두 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몰려왔다. 스킬을 사용해서 근처에 있는 몬스터 세 마리를 동시에 죽이며 말했다.
“내기 건 거나 제대로 해. 지면 각오하고.”
[당연하죠. 근데 도해준 씨, 정말로 괜찮겠어요?]
“뭐가.”
[이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요. 내가 이기면 어떡하려고요?]
“이기고 나서 말해.”
코웃음을 치며 무성의하게 대꾸하자 서정연의 캐릭터가 내게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알겠어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런 소리는 이기고 나서… 뭐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화면이 새빨간 빛으로 번쩍였다. 서정연이 단검을 날려서 내 캐릭터 바로 옆에 있는 붉은 수정을 건드린 것이다!
하필 그 많고 많은 CC기 중에 폭발이 걸린 탓에 내 캐릭터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허공을 붕 떠올라 이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윽, 윽! 바닥을 구를 때마다 캐릭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체력이 훅훅 깎여 나갔다.
쏟아지는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풀피를 유지하고 있던 내 캐릭터의 체력이 단숨에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이 미친놈이… 이게 무슨 짓이야?”
[못하는 척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개소리하지 마. 넌 뒤졌어!”
장검 대신 활로 무기를 교체한 나는 서정연 캐릭터 바로 옆에 있는 붉은 수정을 노리고 활을 쐈다. 콰앙! 붉은 수정이 터지며 주변에 벼락이 내리쳤다.
뒤늦게 피하려던 서정연의 캐릭터가 벼락을 맞고 체력이 깎이며 경직이 걸렸다. 흔적에게 당한 만큼 배로 갚아 줘야 직성에 풀리는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근처에 있는 다른 붉은 수정도 모조리 터뜨렸다.
콰아앙! 쾅!
붉은 수정이 연달아 터지며 다양한 CC기 이펙트가 여러 차례 번쩍였다. 경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서정연은 그 CC기를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파티] 쥐안에든독: 뭐야
[파티] 쥐안에든독: 아니 뭐임 님들 뭐해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엥
[파티] 빚과송금: 아니 갑자기 왜저럼
[파티] 쥐안에든독: 고만해!!
갑자기 싸우기 시작하는 나와 서정연을 본 파티원들이 당황하며 말리려던 그때였다. 용케 마지막 폭발을 회피기로 피한 서정연이 아까처럼 단검을 날렸다.
필드가 아닌 레이드 내부에서는 PVP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를 향해 날아온 서정연의 공격은 캐릭터를 뚫고 지나가 뒤에 있는 붉은 수정을 정확히 맞춰 터뜨렸다.
쾅!
이번 붉은 수정도 또 폭발이었다. 왜 나는 자꾸 폭발 CC기가 걸리냐고!
등 뒤에서 폭발이 터지자 이번엔 캐릭터가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나와 서정연의 캐릭터가 동시에 땅으로 풀썩 쓰러졌다.
“…….”
[…….]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나와 서정연의 캐릭터 주변으로 파티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