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빚과송금: 그래서 뭔데요
[파티] 빚과송금: 왜 싸운건데요
[파티] 쥐안에든독: 이제 하다하다 레이드와서도 싸우넼ㅋㅋㅋㅋ
[파티] Z10N: 난 억울해
[파티] Z10N: 저 **가 먼저 시비걸었잖아
[파티] haewo1: 시비라니 너무해요
[파티] haewo1: 저 여기 첨와보는데..
[파티] haewo1: 지온님이 알려준다고 했으면서 설명도 안해주고ㅜㅜ
[파티] Z10N: **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진짜 돌았냐?”
주먹을 꽉 쥐며 따지자 헤드셋 너머로 밝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미안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터뜨려 봐서 궁금했거든요.]
“이건 무효야! 내가 분명 트롤 짓은 인정 안 한다고 했잖아!”
[그럼요. 이건 정말 그냥 궁금해서 해 본 거예요.]
그러니까 궁금증을 왜 내 옆에 있는 수정을 건드리는 거로 푸냐고.
[파티] 나의라임나무: 저 아크 2년했는데
[파티] 나의라임나무: 구라안치고 여기서 수정으로 두1진사람 첨봣ㅇㅓ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해월님은 아예 첨키우시는거?
[파티] Z10N: 우리 다 첨키우는건데요?ㅡㅡ
[파티] 나의라임나무: 에이 구라 ㄴㄴ
[파티] 나의라임나무: 님들 부캐인거 이미 소문다남
[파티] haewo1: 네ㅠ 첨이에요
[파티] 나의라임나무: 아~글쿠나
글쿠나는 개뿔이 글쿠나! 아니, 왜 내 말은 안 믿고 서정연 말만 믿는 건데? 어이없어서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파티] 쥐안에든독: 하여간 두분 너무 친해서 문제라니깐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그만 놀고 레이드 마저 깹시다
[파티] 빚과송금: 어휴 틈만나면 이러지
[파티] 빚과송금: 둘이 친한거 알겠으니까 ㄱㄱ
[파티] 나의라임나무: ㅇㅎ둘이 젤 친해요?
[파티] Z10N: 안친한데요?ㅡㅡ
[파티] 쥐안에든독: 서로 죽고못삼ㅇㅇ
[파티] Z10N: ????
[파티] haewo1: ㅎㅎ
[파티] haewo1: 저랑 지온님은 B세이브에서 부활해서 갈테니까
[파티] haewo1: C세이브에서 기다려주세요^^
[파티] 빚과송금: 눼
[파티] Z10N: 하 ***
듣는 척도 안하네, 개자식들.
필드가 아닌 레이드 던전 속이라서 세이브 B지점에서 부활해서 다시 여기까지 달려와야 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마지막 세이브 지점에서 부활하기를 눌렀다. 죽어 있던 내 캐릭터가 세이브 지점에서 몸을 일으키자 이어서 바로 옆에 서정연의 캐릭터도 부활했다.
[파티] 쥐안에든독: 둘이 또 놀지말고 바로 오셈!!
저 앞에서 나랑 서정연 없이 몬스터를 잡고 있을 여여랑이 파티 채팅으로 끝까지 장난을 쳤다. 서정연의 도발에 걸려든 나도 잘한 건 아니라 분하게도 저 장난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너 때문에 내가 진짜 미치겠다…….”
[정말요? 로맨틱하네요.]
“닥쳐!”
서정연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이를 갈았다.
어나더의 짜증 나는 행보와 흔적 사칭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 관계가 됐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협력이고 나발이고 다 내던지고 연을 끊고 말 테다.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돌진기를 사용해 열심히 세이브 C지점을 향해 달렸다.
***
서정연과 나란히 달려서 세이브 C지점에 도착한 우리는 남은 몬스터도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일부러 쉬운 레이드를 고른 덕분에 최종 보스가 등장하는 위치까지 금방 갈 수 있었다.
‘확실히 탱커가 있으니까 플레이 자체가 편하긴 하다.’
라임나무가 보여 준 상황 판단력이나 몬스터를 끌고 다니는 폼을 보아 하니 제법 상위권 실력인데.
아크를 2년 동안 했다고 말했던가? 옛날에 나와 레이드 공팟에서 마주친 적 있다고 했으니, 그 뒤로 접지 않고 꾸준히 해 온 모양이다.
‘나랑 친추까지 했다는데 기억이 전혀 안 나…….’
그야 2년 동안 했으니까 스쳐 지나간 유저들은 많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탱커를 잘하는 유저를 잊을 리는 없는데. 이상하네.
“역시 수상하단 말이야.”
[누구요? 라임나무?]
“그래.”
때마침 모든 몬스터를 처리한 우리 앞에 보스가 나타났다. 나방 날개를 달고 있는 곤충형 마족은 하늘을 날며 검은빛 가루를 뿌렸다.
【후후, 새로운 먹잇감이 들어왔구나.】
나는 보스를 구경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런 놈을 만난 기억이 없단 말이지. 이 게임은 닉네임 변경권도 없어서 닉네임이 달라지지도 않았을 텐데.”
[도해준 씨를 만났다는 계정과 지금 계정이 다를 수도 있죠. 한번 키워 봤으면 다른 계정을 새로 키우는 건 금방 하니까. 우리처럼요.]
“음, 그럴 수도 있고. 솔직히 닉네임이 너무 무난해서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어.”
[딱히 기억에 남는 닉네임은 아니긴 하죠.]
서정연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보스의 공격 패턴이 시작됐다. 지겨울 정도로 많이 클리어한 레이드라 나는 발밑에 내리꽂히는 검은 구슬을 가뿐히 피하며 심드렁히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아. 나를 싫어해서 어나더 길드에 들어갔다는 게 말이 돼?”
[현실을 너무 외면하는 태도도 좋지 않아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도해준 씨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만나면 PVP로 다 패고 다녔잖아요. 제가 본 것만 몇 번인데.]
“그건 상대가 그만한 잘못을 했을 때고. 일휘일비 키울 때도 봤잖아? 너 때리던 애 내가 쫓아내 준 거 기억 안 나냐?”
[당연히 기억하죠. 너무 멋있어서 길드 넣어 달라고 졸랐는데 저 계속 무시했잖아요.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아직도…….]
“너 같으면 그런 또라이를 길드에 넣겠냐고.”
[또라이라니… 너무해요.]
서정연이 흑, 가식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회피기를 사용해서 보스의 공격을 피했다. 나 또한 전방향으로 쏟아지는 불덩이를 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갈수록 미친놈 같냐, 너는…….”
[그래요? 오히려 전보다 더 착해지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싸가지가 더 없긴 했지.”
얘기를 하다 보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전, 서정연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서정연은 나를 만나는 족족 시비를 걸고는 했다.
지금처럼 돌려 까거나 장난치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시비였다. 내가 괜히 1년 동안 길드 전쟁에 열을 낸 게 아니었다. 옛날의 나와 서정연은 지금 이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으니까.
‘지금은 길드원들 사이에서 사실은 친한 거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도 그렇고 과거도 그렇고, 서정연이 많이 달라졌다. 내게 먼저 디코하자고 하는 걸 보면 이 계획에도 진심인 것 같고.
애가 좀 재수 없고 또라이 같고 미친놈 같고 싸가지 없고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닌 것 같다. 얼굴도 멀쩡하게 생겼고.
[그땐 제가 좀… 예민한 시기였거든요. 지금이라도 사과할게요.]
“됐어. 어차피 사과 한 번으로 넘어갈 수준도 아니고… 나도 받은 만큼 돌려줬으니까 상관없어.”
[그건 그래요. 미친개한테 잘못 걸린 줄 알고 놀랐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네가 먼저 시비 걸어 놓고 누구보고 미친개래?”
그때, 열심히 처맞던 보스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다, 침입자 놈들!】
마지막 공격 패턴을 알리는 대사였다. 어느새 레이드가 끝나 가고 있었다.
남은 보스의 체력을 단번에 깎기 위해 궁극기 스킬을 사용하자 내 캐릭터의 등 뒤로 새하얀 빛과 함께 날개가 나타났다. 파티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각자 궁극기를 사용했다.
“…뭐,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건 인정한다.”
[네?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계속 잘 떠들다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혀를 차는 와중에도 손을 움직여 보스에게 궁극기를 정확히 꽂아 넣었다.
“너 나한테 먼저 디코 하자고 했잖아.”
[……그랬죠.]
“그게, 크흠. 나쁘지 않았다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런 계획에서 상대가 의욕을 보인다는 건 중요하잖아? 협력하는 사이니까.”
[…….]
잠깐, 이거 곧이곧대로 털어놔도 되는 건가?
숨기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뒤늦게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칭찬은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런 태도가 그… 좋았다고. 솔직히 걱정을 좀 했는데 네가 제대로 할 마음이 있어 보여서 좀 다행인… 뭐야?”
퍽, 콰직!
한창 말을 하던 나는 서정연의 캐릭터가 궁극기를 삐끗하면서 도리어 보스의 스킬을 처맞고 바닥으로 털썩 쓰러지는 꼴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잘하다가 갑자기 왜 저래? 당황하는 사이, 서정연의 탄식이 귓가에 들려왔다.
[아… 이런.]
실수했다는 듯, 한숨 섞인 서정연의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여여랑의 궁극기를 맞은 보스가 죽으면서 레이드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