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휘일비의 채팅을 보자 기가 차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 올리며 메시지 창에 한가득 적은 욕설을 지웠다.
‘뭐? 끝?’
내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다른 또라이들과 같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일휘일비 이 자식은 그런 또라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것도 다 내가 상대를 해 줘서 그런 거겠지. 뜨거운 숨을 훅 내뱉은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침착하게 키보드를 쳤다.
오늘은일요일: 예 님 ㅈ대로하세요
오늘은일요일: 끝이고 나발이고 난 이제 관심 끌라니까
대답한 후에 친추 창에서 일휘일비를 즉시 삭제했다. 아주 꼴도 보기 싫었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출발해
[길드] 야옹이라옹: ㅇㅅㅇ??
[길드] 마하: 뭐야
[길드] 마하: 어케 된건데?ㅋㅋ
[길드] 오늘은일요일: 곧죽어도 계속 저 ㅈ1랄하겠대서
[길드] 오늘은일요일: 니 ㅈ대로하라고 햇음^^
[길드] 아스타로트: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마하: 와
[길드] 마하: 찐또1라이 맞나보다;
[길드] 여여랑: 일단 일욜님을 향한 집착이 ㄷㄷ함
[길드] sky004: 왜저러는건지 이유도 모름?
[길드] 영화별론가: 일욜님이 자기 도와줘서 그런거아님?
[길드] sky004: 고작 그거로 저런다고?
[길드] 마하: ㄸㄹㅇ들 생각을 우리가 어찌 알어
[길드] 류페: ㅁㅈ요
[길드] 류페: 따져보면 흔적도 별 대단한거 없이 그랫던건데
[길드] 저6천원있어요: 하긴
[길드] 야옹이라옹: 암튼 끝난거면 출발합니닷?!?
[길드] 오늘은일요일: ㄱㄱ
파티장인 야옹이 레이드 입장을 눌렀는지 화면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잔뜩 힘이 들어간 미간을 손으로 꾹 눌렀다.
***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나와 끝을 볼 거라는 개소리를 지껄인 일휘일비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확성기로 내 위치를 물어보고 뒤를 쫓아다녔다.
빡친 내가 떼어 놓으려고 레이드 던전에 들어가도 일휘일비는 내가 나올 때까지 입구에서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진짜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일부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난이도 높은 던전을 들어가서 두 시간 뒤에 나왔지만, 일휘일비는 똑같은 위치에서 그대로 서서 날 기다렸다.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땐 얼마나 끔찍하던지.
나를 따라서 레이드를 갔다가 상황을 모두 지켜본 길드원들의 수군거림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길드] rxrx78: 흔적을 달고 다니던 일욜님은
[길드] rxrx78: 이제는 일휘일비를 달고 다니시는...
[길드] 아스타로트: 이정도면 사실 일욜님이 문제일지도
[길드] 불좀켜줄래: 어허!
[길드] 불좀켜줄래: 언행을 조심하시오
[길드] sky004: 사실 다들 눈치챘는데 모른척 하고있는겁니다
[길드] 마하: ㅋㅋ
[길드] 마하: 흔적 한명이면 그러려니하는데 일휘일비까지 저러는거면
[길드] 마하: 킹리적갓심아님?
[길드] 오늘은일요일: 진짜 ***싶음?
[길드] 여여랑: 무서옹ㅠㅠ
[길드] 저6천원있어요: ㅠㅠ
이 자식들이 남은 고생하는데 아주 살판났다. 단 한 명도 일휘일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한 게, 길드 단위로 허구한 날 우리랑 전쟁하던 흔적과 달리 일휘일비는 그저 한 명의 가녀린 뉴비였다. 게다가 내 뒤를 따라다니다가 길드원을 마주치면 어찌나 착한 척을 하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길드] rxrx78: 근데 머 흔적이랑 달리 일휘일비는
[길드] rxrx78: 딱히 피해주는거 없지 않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뭔 ㄱㅐ소리야ㅡㅡ
[길드] 불좀켜줄래: 우리 레이드 나올때까지 혼자 기다리는거
[길드] 불좀켜줄래: 넘 안쓰러움ㅠㅜ
[길드] 여여랑: 고인물 따라다니는 뉴비? 이거부터가 넘 귀엽!
[길드] 야옹이라옹: 카와이데스네 일휘일비쨩^.^
[길드] 오늘은일요일: 그렇게 귀여우면 니들이 갖고 꺼1져 ㅅㅂ
[길드] 마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야옹이라옹: ㅈㅅ그건 좀
이것 봐라. 일휘일비가 길드원들한테는 얼마나 착한 척, 불쌍한 뉴비인 척을 하는지 이 채팅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영악한 놈…….’
터지는 속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모니터 상단에 서버 채팅이 올라왔다.
[서버] 일휘일비: 오일님 어디있나요? 2만골
또 시작이네.
하, 짧게 한숨을 내쉬며 확성기를 사용했다.
[서버] 오늘은일요일: 세이츠
현재 내가 있는 도시 이름을 알려 주자 대답이 곧장 날아왔다.
[서버] 일휘일비: 곧갈게 기다려 자기^^
[길드] rxrx78: 맨날 일휘일비 욕하면서
[길드] rxrx78: 어디냐고 찾으면 대답해주는건 뭔데요
[길드] 마하: 이건 걍 놀아주는거지ㅋㅋㅋㅋㅋ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솔직하게 말해바여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일휘일비 마음에 들었죠?
[길드] sky004: 헉
[길드] 오늘은일요일: ㄷㅊ
[길드] 오늘은일요일: 어차피 나한테 쳐올거
[길드] 오늘은일요일: 돈이라도 내가 먹어야지
[길드] 불좀켜줄래: 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누가 누구보고 또.라이라고 하는거야진짴ㅋㅋㅋㅋㅋㅋ
[길드] 여여랑: 도찐개찐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마하: 운명의 상대아니냐
그 와중에 우편으로 2만 골드가 날아왔다. 진작 이럴걸. 내가 말 안 해도 길드원이나 다른 유저가 위치 알려 줄 게 뻔한데.
일휘일비가 보내 준 2만 골드로 무기 수리나 하고 있는데, 저 맞은편에서 골드 주인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전체] 일휘일비: ㅎㅇㅎㅇ
하여간 쓸데없이 해맑다니까. 일휘일비의 채팅을 무시하고 무기 수리를 마저 이어 갔다.
[전체] 일휘일비: 오일님
[전체] 일휘일비: 오늘도 레이드가요?
오늘도 레이드 가냐고?
간다. 그것도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가장 최근에 나온 레이드 헬 모드로 갈 예정이다. 오늘따라 길드가 유난히 복작거리는 이유도 레이드를 가기 위해 많은 인원이 모여서 그렇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휘일비한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다섯 시간짜리 레이드를 가려는 이유도 일휘일비를 떼어 놓기 위해서였으니까.
[전체] 일휘일비: 원래 레이드 이렇게 자주가요?
[전체] 일휘일비: 그정도 키웠으면 레이드 열심히 안해도되지않나
[전체] 일휘일비: 생활퀘는 안해요?
일휘일비는 대답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재잘거렸다. 이번에도 그걸 모조리 무시하고 레이드 세이브 포인트로 바로 이동했다.
[서버] 일휘일비: 오일님 현 위치 골드 2만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일휘일비가 급히 새로운 서버 채팅을 띄웠다. 이거까지 이미 예상했던 나는 한 번 더 확성기로 알려 줬다.
[서버] 오늘은일요일: 불타는 폐허 앞
띠링, 알림 소리와 함께 우편이 날아왔다. 하루 만에 일휘일비에게 4만 골드를 뜯어냈다. 개이득.
나처럼 세이브 포인트를 이용했는지 일휘일비가 금방 뒤쫓아 왔다. 뉴비 주제에 고인물들이 가는 레이드 던전에 세이브 포인트는 왜 해 둔 거야.
미리 와 있던 길드원들의 파티에 들어갔다. 그러자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일휘일비를 발견한 길드원들이 경악스러운 반응을 보여 왔다.
[파티] 여여랑: 헉
[파티] 여여랑: 일휘일비 또 따라왔네
[파티] 마하: 이번에도 기다리려나
[파티] 불좀켜줄래: ㅁㅊ다ㅋㅋㅋㅋㅋㅋ
[전체] 야옹이라옹: 카와이데스네 일휘일비쨩ㅇㅅㅇ!
[전체] 일휘일비: 야옹님도 카와이~
[전체] 야옹이라옹: 꺅><ㅋㅋㅋㅋ
잘들 논다. 야옹이랑 저렇게 마음이 잘 맞으면서 왜 상대도 안 해 주는 내 뒤를 따라다니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파티] rxrx78: 에이
[파티] rxrx78: 5시간은 더걸릴텐데 어케기다림
[파티] 울팀인성봐조인성: ㅇㅈ치사하고 더러워서 안기다리지
[파티] 불좀켜줄래: 흠 내가 저 렙이엇을때
[파티] 불좀켜줄래: 할거 졸라 많앗는데...
[파티] 여여랑: 뉴비가 시간낭비하는거 내가 다 아깝다
[파티] 마하: 자업자득이지
[파티] 아스타로트: 뉴비도 갈수있는 레이드면 데려갈텐데
[파티] 오늘은일요일: 누구맘대로;
[파티] 오늘은일요일: 걍 무시해
[파티] 마하: 일휘일비가 5시간 기다린다? 안기다린다?
[파티] 마하: 내기 ㄱㄱ
[파티] 아스타로트: 기다린다!
[파티] rxrx78: 난 ㄴㄴ에 한표
[파티] sky004: 5시간은 좀 에바
[파티] 저6천원있어요: 근데 켜두고 딴거할수도 있자나요
[파티] 불좀켜줄래: 그럴거면 겜을 왜켜둠?ㅠㅠ
[파티] 저6천원있어요: 음....어....
[파티] 저6천원있어요: 일욜님 기다리려고?;;
[파티] 류페: 글케 따지니까 진짜 말도안되긴하네ㅋㅋㅋㅋ
[파티] 오늘은일요일: 절대 못기다림ㅋ
레이드에 맞게 스킬을 세팅하고 장비를 착용한 뒤 짙게 미소 지었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그러니까
[파티] 오늘은일요일: 아주 느~긋하게 클리어 해봅시다^^
[파티] 오늘은일요일: 아시겠죠 님들?
[파티] 류페: ㄷㄷ
[파티] 아스타로트: ㄷㄷㄷ....
[파티] 불좀켜줄래: ㄷㄷ
[파티] 마하: 광기vs광기
파티장을 건네받은 나는 일휘일비를 내버려 두고 레이드 입장을 눌렀다.
새까맣게 물들어 가는 화면 사이로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일휘일비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