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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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서정연은 성하연이라는 유저가 진짜 여자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 다 진짜 여성 유저를 여러 번 봤으니까.
일단 우리 길드만 하더라도 인파이터 ‘아스타로트’나 홀리나이트 ‘울팀인성봐조인성’ 둘 다 여성 유저였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상대 유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본인이 밝히기 전까지는 구분이 안 된다는 거였다.
물론 성하연이 정말 여자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해서 지저분한 소문을 퍼뜨리는 당사자인 데다가 난 실제로 만나 본 적 없는 상대인 점을 따져 봤을 때 여자라고 순순히 믿어 주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저 유저가 진짜 여자인지 확인부터 해야겠네요. 다른 어나더 길드원이 여자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유도 있을 거고.]
“그래. 같은 길드니까 다 같이 디코를 했을 수도 있고.”
물론 디코를 통해서 여자 목소리인 걸 들었다 해도 요즘엔 마땅한 증거가 되어 주진 못한다. 음성 변조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남자도 얼마든지 퀄리티 높은 여자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남자면 차라리 다행인데, 여자면 일이 복잡해지겠어요.]
“하아…….”
드디어 어나더 길드에 들어왔다고 좋아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파티] 빚과송금: 저 **들이 뭐라는거임?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각오했는데도 더 역겹네..
[파티] 쥐안에든독: 근데 일욜님 존잘인거 누가 소문낸거임 대체;; 하 우리들만의 비밀이었는데;;;
[파티] 빚과송금: 그니까요ㅠㅜ 지금 막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파티] Z10N: 개솔ㄴ
[파티] 빚과송금: ㅋㅋㅋㅋㅋㅋ
[파티] 쥐안에든독: 근데 진짜 뭐지
[파티] 쥐안에든독: 웬 개 **같은 소문을 내고 앉아있네
[파티] 빚과송금: 저게 찐이었으면 진작 난리났지ㅋㅋ
[파티] 빚과송금: 상대가 듣보도 아니고 서버1위길드 길마인데
[파티] 쥐안에든독: ㄹㅇ
[파티] 쥐안에든독: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고 그저 부둥부둥하는 꼴 웃기네
[파티] 빚과송금: 흔적님이 길마였을땐 저런거 없었죠?
[파티] haewo1: 있었을리가요
[파티] 쥐안에든독: 캬
[파티] 빚과송금: 하ㅠㅠ
[파티] 빚과송금: 흔적님.. 그립읍니다....
[파티] 쥐안에든독: 돌아오세요..
[파티] haewo1: ?ㅋㅋㅋ
[파티] 빚과송금: 근데 나만 일케 생각하나
[파티] 빚과송금: 피해자라는 저 사람 남자같음..
[파티] 쥐안에든독: 저도 그런거같긴함
[파티] 쥐안에든독: 애초 공론화 안하고 주변 부추기기만 하는거보니까 뭔가 지도 찔리는게 있다는건데
[파티] 빚과송금: 찐여자고 저런 피해 당햇으면
[파티] 빚과송금: 진작 사사게에 글 쓰지 않았을까요
 
좋은날씨와 여여랑도 이상한 걸 눈치챘다. 게임을 어느 정도 한 사람이라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정상이 아닌지 알 수밖에 없었다.
“혹시 다른 어나더 길드원들도 우리처럼 꺼림직하게 여기고 있지 않을까? 굳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음,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애초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지도 않아서.]
내가 물어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 것만 봐도 뻔했다. 그렇다면 저런 거짓말을 길드 내에 퍼뜨린 이유가 뭘까.
‘지금이 길드원을 마구잡이로 가입시킨 시기인 걸 고려하면… 역시 그 이유밖에 없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단합력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 주는 거다. ‘여성 유저에게 아이템을 뜯고 버렸다’ 같은 내용처럼 누가 들어도 가해자가 명백하고 내용이 자극적이면 더욱 효과적이겠지.
여기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고,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라고 나서 줄 사람도 없다. 아마 절반은 이상하게 느껴도 굳이 지적하지 않을 거고, 나머지는 저 말이 진짜든 가짜든 관심 없겠지.
실제로 성하연을 옹호하는 길드원은 두세 명뿐이지만, 그 두세 명이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거다.
‘어나더 길드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이런 소문이 도는 것도 몰랐을 거야…….’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었다. 어나더가 소문을 계속 퍼뜨려서 해명이 통하지 않을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나더 길드 안에서 도는 소문이지만, 나중에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 어떻게든 해결해야 돼.”
[흠. 저 유저가 남자라는 것만 밝혀지면 해결될 텐데, 쉽진 않겠네요.]
“친해져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해 본다 거나?”
[제가 접근해 볼까요? 돈 많은 척하면서.]
“네가?”
[네. 불안해요? 잘 못할까 봐?]
나는 서정연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터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아니, 불안하다기보다는… 굳이 네가 그럴 필요는 없는데.”
[제가 왜 그럴 필요가 없어요? 같이 협력하기로 하고 들어온 건데.]
“친해진다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잖아. 너무 시간 낭비야.”
[어차피 어나더 길드에서 활동하면서 노퓨쳐랑 사칭범의 정보를 얻어야 하잖아요. 별 차이 없어요.]
“그런 거라면 내가 할게. 넌 사칭범이랑 노퓨쳐한테 집중해.”
[글쎄요. 그러려면 저 유저한테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흠…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도해준 씨가 과연…….]
“나 뭐, 개자식아.”
[하하, 제가 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재차 권유하는 서정연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풍겼다.
이쯤 되자 도리어 내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거지?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진짜 괜찮은 거야? 노퓨쳐한테 협력하면서 저딴 소문을 내는 놈이 제정신일 리가 없는데. 괜히 엮여서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
[어차피 부캐인데 뭐 어때요. 여차하면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새로 키워서 길갑 노려보죠, 뭐. 저 한 명 빠져도 도해준 씨나 파티원 분들이 남아 있으니까 든든하기도 하고.]
“괜찮은 거 맞아?”
[이런 변수는 저도 예상 못 해서 놀라긴 했는데, 생각할수록 제가 하는 게 나아 보여요. 솔직히 말해서 저야 남이 절 사칭하든 말든 아크를 접으면 끝인데 도해준 씨는 아니잖아요. 어나더 길드한테 계속 시달릴 텐데. 저 소문도 내버려 두면 문제고. 아니에요?]
“그건…….”
[실패해도 별다른 리스크가 없는 제가 나서는 게 좋죠. 전 노퓨쳐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서 온 거니까. 겸사겸사 도해준 씨랑 놀고.]
날 설득하는 서정연의 목소리는 지극히 가벼웠지만, 나는 어쩐지 처음 이 계획을 들었을 때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단순히 궁금해서 왔다기에는 서정연은 나를 따라서 일이 밀릴 정도로 아크를 열심히 했고, 먼저 디코를 하자고 말할 정도로 성의도 보였다.
‘서정연은 게임을 접거나 사칭범을 고소하면 끝날 문제일 텐데 나 때문에… 좀 미안하네.’
그동안 서정연에게 잘 대해 준 것도 아니라서 녀석이 날 도와주는 이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거지 같은 소문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참 동안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맡겨도 되는 거야? 현실도 아니고, 게임에서 관심 끌어내는 게 쉽지는 않을걸.”
[우선 해 볼게요. 안 통하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죠.]
서정연이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입을 열었다.
[도해준 씨, 혹시 저 아직도 불편해요?]
“그건 갑자기 왜.”
[저한테 도움받는 상황이 많이 어색해 보여서요. 저랑 별로 안 친해서 그런가 하고. 부길마가 도와줬을 때는 이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잖아요.]
이런. 불편한 티가 났나 보다. 속으로 혀를 차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마하는 길드 부길마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근데 넌… 그, 엄연히 따지면 내 소문이랑은 별 연관이 없으니까 부탁하기 좀…….”
[결국 불편하다는 거죠?]
“그야 불편하다, 아니다라고 따지면 당연히 불편한 쪽에 가깝긴 하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되긴요. 1년 넘게 같이 게임해 놓고?]
“거기까지 카운트하는 거냐?”
[실망이에요.]
서정연이 대뜸 한숨을 푹 내쉬더니 시들시들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도해준 씨랑 친해진 줄 알았는데… 도해준 씨는 자꾸 거리 두려고 하고… 저는 카페도 매일 찾아가고 퇴근도 기다려 줬는데…….]
“자, 잠깐…….”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헛소리라면 모를까, 실제로 서정연이 모두 다 했던 것들이라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저 섭섭해요, 도해준 씨.]
“…….”
[설마 이번 일이 끝나면 저랑 연 끊으려고 생각한 건 아니죠? 진짜 그런 거면…….]
“…그럴 리가 있냐?”
정곡을 찔려서 그런지, 순간 가슴 속이 따끔했다. 아파 오는 양심을 힘겹게 외면하며 애써 웃었다.
“내가 그렇게 쓰레기로 보여? 그냥 너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그런 거야.”
[흠, 그래요?]
“그렇다니까.”
[못 믿겠어요.]
“뭐 어떡하라고!”
[내일 퇴근하고 같이 밥 먹어요. 얼굴 보고 다시 얘기해 봐야겠어요.]
“네 마음대로 해라…….”
이젠 서정연을 막을 기운도 없었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자 헤드셋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런 거로 웃는 건지 모르겠네. 하여간 이해 못 할 놈이었다.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