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이 다르잖아.”
본래 흔적의 닉네임은 ‘heunjeok’ 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보창에 올라온 길드 마스터의 닉네임은 ‘heunJeok’이었다.
‘중간에 교묘하게 소문자를 대문자로 바꿔 놨어.’
이유가 뭐지? 어차피 삭제된 계정을 복구해서 돌아온 거라면 닉네임을 바꿀 필요가 없을 텐데?
‘역시 뭔가 찝찝해…….’
흔적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기엔 미묘한 구석이 많았다. 일휘일비가 날 속인 거와 별개로 복귀했다는 저 흔적 또한 진짜가 아닐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
[길드] 마하: 근데이거
[길드] 마하: 다시보니까 닉이 달라졌네
[길드] 마하: 대소문자가 바뀜
[길드] 불좀켜줄래: 오
[길드] 여여랑: 저도 방금 알아챔
[길드] 여여랑: 찐흔적 맞나이거??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길드원들도 닉네임의 변화를 알아챘다. 나는 입가를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친추 창을 켰다. 그리고 ‘heunJeok’에게 친추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몇 분을 기다려도 상대는 내 요청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길드] 오늘은일요일: 친추 보냈는데 안받네
[길드] sky004: 이거 구린내가 나는뎁쇼?
[길드] 오늘은일요일: 지금 한가한 사람 몇명임
[길드] 아스타로트: 저용
[길드] sky004: 손
[길드] 불좀켜줄래: 일퀘하려고 하긴했는데 이따해도됨
[길드] rxrx78: ㅅㅅㅅ
[길드] 여여랑: 나도~
[길드] 마하: 찾게?
[길드] 마하: 단톡에도 애들 불러?
[길드] 오늘은일요일: ㅇ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최대한 조용히 찾아봐
[길드] 오늘은일요일: 닉 바뀐거보면 예전 계정이 아니라 새 계정일 가능성이 큼
[길드] 오늘은일요일: 한달동안 만렙 찍고 아까 막 길갑한거면
[길드] 오늘은일요일: 아직 일주일 못채워서 길드홀에 들어가지 못할거야
[길드] 오늘은일요일: 그럼 어나더 길원들이 자주 모이는 포르페섬이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유저 많은 레이드 앞이나 광장에 있을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거기 위주로 찾아봐
[길드] 마하: ㅇㅋ
[길드] 불좀켜줄래: 넵
[길드] rxrx78: 전 북쪽대륙 갑니다~
만약 노퓨쳐가 흔적의 대타를 데려와서 마치 흔적이 복귀한 것처럼 계획한 거라면, 포르페 섬에서 기존 길드원들에게 흔적을 소개해 주고 있거나 유저가 많이 오가는 레이드 앞이나 도시 광장에서 일부러 흔적의 모습을 보여 줄 거다.
그래야 ‘heunJeok’을 본 유저들이 진짜 복귀한 거라고 착각할 테니까. 나중에 우리처럼 닉네임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알아도 계삭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바꿨다고 변명할 거고.
‘이 모든 건 저 복귀했다는 놈이 진짜 흔적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떠오른 생각이긴 한데.’
길드원들이 흔적을 찾는다고 해도 진짜인지 아닌지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해 봐야 알 수 있을 거다. 그사이, 마하가 단톡방에 상황을 전달했는지 길드원들의 접속이 이어졌다.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과제하다 달려왔습니다...
[길드] rxrx78: 지금 방학 아니에요?
[길드] 울팀인성봐조인성: 앗 들킴
[길드] 류페: ㅋㅋㅋㅋㅋㅋ
[길드] 야옹이라옹: 하이잉~
[길드] 좋은날씨: 서쪽 누구 담당임?
[길드] 마하: 님이 가셔도될듯
[길드] 좋은날씨: ㅇㅋ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길드원들을 지켜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그렇게 20분 정도 흐르자, 길드 채팅이 새로 올라왔다.
[길드] 좋은날씨: 찾았어요
[길드] 좋은날씨: 슈텔 도시 광장요
내 예상대로였다.
***
제보받은 장소로 마하를 데리고 곧장 이동했다.
다른 길드원들도 궁금하다면서 따라오려고 했지만, 괜히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 막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저 흔적이 내가 아는 그 흔적이 맞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슈텔 도시 중앙에 위치한 광장에 도착하자 NPC 옆에 서 있는 ‘heunJeok’과 노퓨쳐가 보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마하만 데려온 우리 쪽과 딱 맞았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왜 친추 안받으세요?
굳이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니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그제야 상대도 내가 온 걸 알았는지 노퓨쳐가 반응을 해 왔다.
[전체] 노퓨쳐: ?
[전체] 오늘은일요일: 흔적님한테 친추 보냈는데 안받으시길래
[전체] 오늘은일요일: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려고 왔어요~
적당한 말을 보내며 ‘heunJeok’ 캐릭터의 장비를 살펴봤다. 장비 공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자세한 능력치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과 똑같았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연하늘색 머리카락과 동양풍 옷. 다만 허리에 찬 검은 다른 무기였다.
‘그러고 보니 흔적이 사용하던 무기는 한정판이라고 했었지.’
이제는 판매하지 않는 블레이드 전용 무기에 능력치가 종결이라서 항상 푸른빛이 감돌았다. 지금은 다른 무기에 푸른빛도 나지 않았다.
이로써 닉네임에 이어서 계정을 복구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든 계정이라는 증거가 확실해졌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게임 화면을 스크린 샷으로 찍어 둔 후에 채팅을 쳤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왜 대답이 없으시지?
[전체] 오늘은일요일: 방금까지 움직이던데 갑자기 잠수탄건 아닐거고ㅋㅋ
[전체] 노퓨쳐: 갑자기 와서 뭐임?
[전체] 노퓨쳐: 왜 시비질?
[전체] 오늘은일요일: 시비라뇨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냥 물어본건데?
[전체] 오늘은일요일: 진짜 시비가 뭔지 보여줘?
[전체] 노퓨쳐: ?ㅋㅋㅋ
불쾌감이 점점 커졌다.
원래 노퓨쳐는 흔적 뒤에 숨어서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 놈이었다. 내가 흔적과 말싸움을 할 때도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지, 이런 식으로 나서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게 마치 옆에 있는 ‘heunJeok’을 숨겨 주려는 의도 같아서 굉장히 거슬렸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진짜 섭섭하네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래도 1년간 같이 겜 즐긴 사이 아님?
[전체] 오늘은일요일: 복귀했다길래 축하해주려고 친추한거였는데 씹기나하고
[전체] heunJeok: ㅈㅅ
그때였다. 드디어 새로 나타난 흔적이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전체] heunJeok: 복귀한지 몇시간 안대서
[전체] heunJeok: 이것저것 하느라 좀 바빳네여ㅎ
[전체] 오늘은일요일: 아~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해하죠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래서 친추는 왜안받음?
[전체] heunJeok: 왜받아야함?
왜 받아야 하냐고? 흔적이 친 채팅을 읽고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머 그렇긴하죠
[전체] 오늘은일요일: 한달만에 복귀라 적응하기 바쁘시겠네여?
[전체] 오늘은일요일: 근데 장비가 바꼈네?
[전체] 오늘은일요일: 닉도 좀 묘해졌고?ㅋㅋㅋㅋ
[전체] 노퓨쳐: 그게 님이랑 뭔상관임
[전체] 노퓨쳐: 본론ㄱ
또 끼어드네. 하긴, 이젠 상관없다. 어차피 알아야 할 건 다 알았으니까.
[전체] 오늘은일요일: 본론?ㅇㅋㅇㅋ
[전체] 오늘은일요일: 복귀 ㅊㅊ
[전체] heunJeok: ㄳ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마하에게 가자고 개인 메시지를 보낸 후에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순순히 따라온 마하가 길드 채팅으로 물어 왔다.
[길드] 마하: 그래서 어떤데?
[길드] 마하: 결론이?
[길드] rxrx78: 흔적 맞는거같기도?
[길드] 아스타로트: 싸가지없는게 흔적 느낌나는데
마하가 찍은 스크린 캡처를 단톡방에서 받아 본 길드원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보내왔다.
나 또한 아까 찍어 둔 스크린 캡처와 마하가 단톡방에 올린 나와 흔적의 대화 채팅을 다시 읽었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흔적 아님
[길드] 오늘은일요일: 다른놈이야
[길드] 마하: ?
[길드] 영화별론가: 엥 왜요?
[길드] 오늘은일요일: 내가 존대쓰는데도 신경안쓰는거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부길마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나서는거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원래 흔적이랑 달라도 너무 다름
[길드] sky004: 하긴 몇마디 안하긴 하네
[길드] sky004: 다 노퓨쳐가 대신 대답하고
[길드] 마하: 원래 노퓨쳐가 저런 성격이 아닌데
[길드] 마하: 이상하긴하네
[길드] 오늘은일요일: 진짜 흔적이었으면
[길드] 오늘은일요일: 내가 존댓말로 채팅치는거 보고 바로 지1랄했음 백퍼임ㅋㅋ
[길드] 불좀켜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아 알거같닼ㅋㅋㅋㅋㅋ
[길드] 좋은날씨: ㄹㅇ
[길드] 좋은날씨: 왜 그런 말투 쓰냐고 딴지 겁나 걸엇을듯요ㅋㅋ
[길드] 마하: 보인다보여
[길드] 마하: 정리하면 지금 흔적은 흔적이 아니고
[길드] 마하: 일휘일비? 얘가 흔적이 맞는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그것도 몰라
[길드] 마하: ????
[길드] 야옹이라옹: 잉?ㅇㅅ;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그새1끼도 갑자기 사라졌음
[길드] 오늘은일요일: 일휘일비도 아닐 가능성 있음
[길드] 여여랑: ㄷㄷㄷㄷ
그래.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사라진 흔적은 대체 누구일까. 일휘일비일까, 아니면 노퓨쳐가 직접 데려온 ‘heunJeok’일까. 아니면 두 명 다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머리를 굴리던 나는 친추 창을 열어서 이번에는 일휘일비에게 친추 요청을 보냈다.
흔적이 복귀했다는 서버 채팅을 읽자마자 사라진 일휘일비. 이 녀석과 한 번 더 만나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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