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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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휘일비는 그 뒤로 무려 2시간 동안 나한테 처맞았다.
제자리 부활을 하자마자 도망가는 일휘일비를 끝까지 쫓아가서 때린 탓에 레이드 입구 앞에서 시작했던 싸움은 맵 구석진 곳까지 이어졌다.
 
[전체] 일휘일비: 아ㅋㅋㅋ
[전체] 일휘일비: 잠만
[전체] 일휘일비: 잠만요
 
8시부터 10시까지 제자리 부활과 사망을 반복하던 일휘일비가 드디어 항복을 외쳤다.
2시간 동안 30번 넘게 죽은 일휘일비가 조금은 불쌍해진 나는 이쯤에서 용서해 주기로 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사과박고 꺼지셈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럼 더 뭐라안함
 
와, 나 부처 아냐? 어떻게 이렇게 이해심 많고 착할 수가 있지?
조금이나마 제정신이 박혀 있으면 내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옳다구나 하면서 냉큼 사과하고 꺼지면 되는 거다.
 
[전체] 일휘일비: 그럼 더 죽으면
[전체] 일휘일비: 길드 들어갈수있어요?
 
“…….”
응, 아니야. 이 새끼는 그냥 글러 먹은 놈이야.
순식간에 가슴 속이 차가워지며 2시간 내내 반복했던 짓을 한 번 더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휘일비가 아직 제자리 부활을 안 해서 때리지는 못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또 한 대 후려치고도 남았을 거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ㄴ
[전체] 일휘일비: 그럼 친추는요?
[전체] 오늘은일요일: 싫음
[전체] 일휘일비: 딱 친추만!
[전체] 오늘은일요일: 싫다고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일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긁적이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자 질문을 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왜 나한테 이 ㅈㄹ이야
[전체] 오늘은일요일: 님 혹시 이거 부캐임?
[전체] 오늘은일요일: 본캐가 나랑 뭐 잇엇음?
 
지금까지 막힘없이 떠들던 일휘일비가 이번 질문에는 잠시간 침묵했다.
뭐야, 설마 진짜야? 하도 이상해서 그냥 물어본 건데? 혹시, 하는 마음이었지 정말로 부캐였을 줄이야.
‘대체 본캐로 나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부캐를 가지고 와서 이 난리인 거지?’
본캐의 정체가 궁금해질 때쯤에 조용하던 일휘일비가 드디어 채팅을 쳤다.
 
[전체] 일휘일비: 이거 본캐는 맞아요
[전체] 일휘일비: 근데 아크가 처음인건 아님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니까
[전체] 오늘은일요일: 처음 아크할때 나랑 몬일 있었냐고
[전체] 일휘일비: 궁금해요?ㅎㅎ
 
“미친놈…….”
나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 온 또라이들 중에서 랭킹 2위 자리에 올려놔도 될 것 같았다. 1위는 물론 흔적이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ㅋㅋ
[전체] 오늘은일요일: ㄴㄴ
[전체] 오늘은일요일: ㅅㄱ하세요
 
놀랍게도 궁금하냐는 채팅 한 번에 모든 궁금증이 싹 사라졌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반면 일휘일비는 내가 단번에 거절하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는지 급히 이어 말했다.
 
[전체] 일휘일비: 왜요?
[전체] 일휘일비: 왜 안궁금한데요?
[전체] 일휘일비: 이상하네.. 궁금해야 정상인데
[전체] 오늘은일요일: 또라이가 정상 운운하니까 ㅈㄴ웃기긴하네
[전체] 오늘은일요일: 님 본캐가 뭐던 알게뭐임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젠 끝난 일인데
[전체] 오늘은일요일: 본캐닉 들어봐도 모를수도 있고 ㅎ
 
지금 이 순간에도 일휘일비는 죽어 있다. 제자리 부활하자마자 내가 바로 죽여 버려서 대화하려면 저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일휘일비가 아무리 귀찮게 굴어도 결국 녀석과 내 차이는 이거였다. 꼬우면 본캐를 가져오든가, 본캐 닉네임을 까고 정정당당하게 항의하든가.
 
[전체] 오늘은일요일: 한번만 더 서버챗으로 나 들먹거려봐
[전체] 오늘은일요일: 진짜 님이랑 끝을 볼테니까
[전체] 오늘은일요일: ㅇㅋ?
 
더 때릴 의향이 없다는 뜻으로 무기를 집어넣으며 말하자 일휘일비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전체] 일휘일비: ㅇㅋ
 
드디어 말귀를 알아들었구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일휘일비에게 나름 어른의 마음으로 인사를 보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굿
[전체] 오늘은일요일: 즐겜하셈
 
부디 앞으로 내 남은 겜생에서 저 새끼를 마주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곧장 도시 세이브 포인트로 이동했다.
 
***
 
[길드] 야옹이라옹: 올만에 접속한 야옹이랑 혼돈광산가실분 9함ㅇㅅㅇ/~
[길드] 야옹이라옹: 야옹이가 힐 맛깔나게 해줄 예정!! ^,^S2
[길드] rxrx78: 나잇값좀
[길드] 야옹이라옹: 혼돈광산 3연 가실분 계십니까 현재 5자리 비어있습니다.
[길드] 여여랑: ㅋㅋㅋㅋㅅ1ㅂ;
[길드] 류페: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알바를 마치고 게임에 접속한 나는 마침 레이드를 가려고 하는 길드원의 파티에 합류했다.
 
[길드] 영화별론가: 근데 일욜님
[길드] 영화별론가: 어제 그 뉴비분이랑 잘 해결했음??
[길드] sky004: ㅁㅈ 구경하다가 딴거하러갔는데 어케끝남?
[길드] 불좀켜줄래: 어제 뉴비가 그사람인가
[길드] 불좀켜줄래: 일희일비?
[길드] 여여랑: 일휘일비<-ㅇㅇ
[길드] 오늘은일요일: 걍 잘 달래서 보냈음
[길드] 마하: 니가 퍽이나 그랫겟다
[길드] 저6천원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류페: ㅠㅠ
[길드] rxrx78: 그 뉴비 접은거 아님?ㅠㅠ
[길드] 영화별론가: 뉴비니뮤ㅠㅠㅠ
[길드] 여여랑: 소중한 뉴비 한명이 이렇게 떠났읍니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ㅡㅡ
[길드] 야옹이라옹: 머야 먼데?
[길드] 야옹이라옹: 일욜님 뉴비 키움?
[길드] 오늘은일요일: ㄴㄴ
[길드] 오늘은일요일: 뉴비가 문제가 아니라 또라이인게 문제지
[길드] 오늘은일요일: 그러지말라고 진지하게 말하니까 알아듣길래 ㅇㅋ하고 끝냇음
[길드] 마하: 신기하네
[길드] 마하: 개또라이같던데
[길드] 아스타로트: ㄹㅇ요 약간 음
[길드] 아스타로트: 전성기 흔적이랑 좀 비슷할정도;;
[길드] 야옹이라옹: ?
[길드] 야옹이라옹: 그게 가능?
[길드] sky004: 놀랍게도 비슷하긴했음
[길드] sky004: 그 집착이랑 또라이력이ㄷㄷ
 
나한테 처맞는 일휘일비를 구경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진 길드원들이 내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줬다.
역시 게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땐 길드가 있어야 좋다니까. 내 편을 들어 주는 길드원들이 나름 감동적이었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암튼 대화로 잘 마무리 지었음
[길드] 오늘은일요일: 이제 안그럴거임
[길드] 오늘은일요일: 여기 없는사람 얘기 더 하지마셈
[길드] sky004: 넹ㅠㅠ
[길드] 영화별론가: 하 대화 어케 끝냇는지 알고시픈데
[길드] 여여랑: 잘가요 뉴비...
 
좋아. 이거로 일휘일비 관련한 말은 길드에서도 더 나오지 않겠군.
뒤늦게나마 길드원들의 입단속을 하며 어제 마지막으로 봤던 일휘일비를 떠올렸다. 이왕이면 그대로 접어 줬으면 좋겠는데. 우연이라도 다시는 마주치지 않게.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드를 막 출발하려던 그때였다.
 
[서버] 일휘일비: 오늘은일요일님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는분 제보주세요 2만골 우편 드립니다
 
“……?”
 
[길드] 마하: ?
[길드] 아스타로트: 엥
[길드] 야옹이라옹: ㅇㅅㅇ?
[길드] sky004: ????
 
“뭐야, 시발.”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왜 어제랑 똑같은 서버 채팅이 보이는 거지?
모니터에 들어갈 기세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쳐다봐도 서버 채팅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그럼, 일휘일비 저 새끼가, 지금…….
“하!”
기가 막히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지은 채로 머리를 쥐어 싸맨 나를 두고 길드 채팅이 폭발했다.
 
[길드] 마하: 잘 해결했다며?
[길드] sky004: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야옹이라옹: 방금 서버챗이 아까 말한 그 뉴비아님?
[길드] 야옹이라옹: 지금 일욜님 현상금 건거?
[길드] 류페: 와 진짜 상또라이다;
[길드] sky004: 아니 어제 그렇게 처맞고 또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전혀 알아들은거같지가 않은데
[길드] 여여랑: 이제 저 뉴비 얘기 해도 되는건가요?
[길드] 마하: 야 위치 알려줘도댐?ㅋ
 
[서버] 영화별론가: 일욜님 지금 혼돈광산 앞~
[서버] 일휘일비: ㅎㅎ감사합니다 우편드릴게요
 
[길드] 마하: 아 ㅅㅂ
[길드] 아스타로트: 미친 졸라빠르넼ㅋㅋㅋㅋ
[길드] sky004: 또 뺏겻네 ;
 
“아오!”
갑갑함에 냅다 소리를 내지른 나는 우선 길드 채팅에 분노를 쏟아부었다.
 
[길드] 오늘은일요일: 이 *** 진짜 **?
[길드] 오늘은일요일: ** 개같은 **때문에 ****
[길드] 마하: ㅋㅋ
[길드] 야옹이라옹: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ㅠㅠ
[길드] 여여랑: ㅋㅋㅋㅋㅋ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왜 우리한테ㅠㅠㅠ
[길드] 영화별론가: 후... 욕과 돈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역시....
[길드] 영화별론가: “돈”
[길드] rxrx78: 미쳤나봐ㅋㅋㅋㅋㅋㅋ
 
역시 내 분노가 쥐뿔도 통하지 않았다. 감동을 느낀 게 1분 전인데, 거지 같네.
그래도 6천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길드원들을 아무리 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나는 이를 갈면서 일휘일비에게 친추를 보냈다.
 
친구 추가 요청을 보냈습니다. 닉네임: 일휘일비
새로운 친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일휘일비: 안녕하세요ㅎㅎ
일휘일비: 그렇지 않아도 지금 혼돈광산 가는 길인데^^
 
그렇겠지! 서버 전체에 나 어디 있냐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서 물어봤으니까!
친추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서 메시지를 보내오는 일휘일비의 행동에 가슴속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오늘은일요일: 진짜 두1지고 싶으세요?
오늘은일요일: 내가 어제 분명 말하지않음?
오늘은일요일: 서버챗으로 나 들먹거리지말라고
오늘은일요일: 그때 님 뭐라고 대답했음?
오늘은일요일: ㅇㅋ라며? ㅇㅋ라며??
일휘일비: 넹
오늘은일요일: ㅇㅋ해놓고 왜 또 ㅈ1랄하고 난리?
일휘일비: ㅎㅎ
일휘일비: 끝을 보자고 하셨잖아요
일휘일비: 저도 님이랑 끝을 보고 싶어서요

মই প্ৰতিদ্বন্দ্বী হোৱা বন্ধ কৰি দিম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