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가게 잘 부탁할게.”
“네.”
핸드백을 챙긴 사장님이 밝은 목소리로 당부를 남기고 카페를 떠나갔다. 사장님이 카페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후 타임 알바생들이 차례대로 도착하며 본격적으로 카페 영업이 시작됐다.
사장님이 말한 단골손님은 내 예상대로 항상 나타나던 시간에 카페를 찾아왔다.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음, 이 시간대에 여자 손님들이 유독 많아지는 이유는 역시…….’
인기 참 많네. 내가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 동안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 둔 남자가 카운터로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음…….”
이어질 주문을 기다리며 남자를 살펴봤다. 오늘은 어쩐지 좀 피곤해 보이는데. 눈도 살짝 충혈된 것 같고. 나처럼 새벽 늦게까지 게임이라도 했나.
잠시간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남자가 곧 입을 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레드 벨벳 조각 케이크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번에도 커피와 케이크 조합이구나. 항상 케이크만 남기는 거로 봐서 역시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지만.’
단골손님에게 전해 달라던 쿠키를 떠올렸다.
초코칩이 잔뜩 박혀 있는 쿠키랑 마시멜로가 중앙에 들어 있는 쿠키였지. 저 남자가 과연 쿠키를 받고서 먹을지 의문이다.
빠르게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쇼케이스에서 케이크를 꺼내 트레이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사장님께서 부탁하신 쿠키도 트레이 위에 올린 후에 진동 벨을 울렸다.
노트북을 켜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자가 진동 벨을 가지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내게 진동 벨을 돌려주고 트레이를 가져가려던 남자가 쿠키를 발견하고 손을 멈칫했다.
“이 쿠키는 뭐죠?”
“서비스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나와 쿠키를 번갈아 보던 남자는 이내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
뭐지, 저 가식적인 반응은.
잔뜩 달아 보이는 쿠키 때문이라기엔…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겉으로는 무슨 쿠키인지 안 보였을 텐데.
당황한 내가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남자는 트레이를 들고 카운터를 떠나갔다. 나는 눈가를 좁히고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바라봤다.
‘설마… 내가 준 서비스라고 착각해서 저러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억울한 쪽은 나였다. 난들 남자한테 쿠키 따위를 서비스로 챙겨 주고 싶겠냐고.
사장님, 아무래도 쓸데없이 쿠키 같은 거 챙겨 주다가 단골손님만 잃은 것 같은데요.
찝찝하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
[길드] 저6천원있어요: 일욜님 지금 잇나?
[길드] 류페: 아까까진 있던거같은데
[길드] 류페: 잠수신가?
[길드] 불좀켜줄래: 근데 오늘은 왜이렇게 조용하지
[길드] rxrx78: 나만 글케 느끼는게 아니구나
[길드] rxrx78: 뭔가...조용함...
[길드] 좋은날씨: 일휘일비가 아직 로그인을 안했나보죠
[길드] rxrx78: ㅇㅎ!
나를 찾는 길드 채팅이 보였지만 일부러 잠수인 척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에 있는 펫에 집중했다.
미야오옥, 목에 나비넥타이를 맨 턱시도 고양이가 바닥에 등을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떨었다. 소환해 놓고 일정 시간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동으로 나오는 애교 모션이었다.
‘역시 이상하단 말이지…….’
턱을 괸 채로 고양이를 지켜보던 나는 흔적을 떠올렸다.
흔적이 그간 보여 준 재수 없는 행동들과 일휘일비의 행동이 묘하게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길드원이 말한 것처럼 흔적의 부캐가 사실은 일휘일비라든가.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일휘일비가 비슷한 채팅을 쳤던 것 같은데.’
일휘일비 캐릭터가 본캐는 맞지만, 아크를 처음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던가?
처음 그 채팅을 봤을 때는 옛날에 게임을 했다가 최근에 다시 복귀한 복귀 유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흔적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었다.
흔적은 기껏 키운 캐릭터를 삭제하고 계정을 탈퇴했으니까. 그러니 만약 한 달 만에 복귀한 거라면… 새로 계정을 만들었을 거다. 그러니 일휘일비가 본캐나 다름없는 거지.
‘결국 말장난인 거잖아.’
대충 흘려 넘길 게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따졌어야 했는데.
아오옹, 고양이가 나를 마치 비웃듯이 높게 울었다. 짜증 나 죽겠네, 정말.
[서버] 일휘일비: ㅇㅇㄴ ㅇㄷㅇㅇ? 2ㅁ
때마침 일휘일비가 접속했는지 나를 찾는 확성기 메시지가 떴다. 얼씨구, 이젠 초성만 쓰는 거냐? 자기도 귀찮다 이거네.
[서버] 오늘은일요일: 아르덴 북쪽 끝
뭐, 상관없다. 어차피 오늘은 일휘일비랑 할 얘기가 있었으니까. 남은 확성기로 대답해 주자 그걸 본 길드원들이 채팅으로 난리를 쳤다.
[길드] 저6천원있어요: 아니 저기요 일욜님;;
[길드] 저6천원있어요: 잠수 아니셨어요?
[길드] rxrx78: 뭐야진짜
[길드] 불좀켜줄래: 이젠....
[길드] 불좀켜줄래: 일휘일비랑만 놀겠다 이거지?
[길드] 아스타로트: 와 좀 에반데
[길드] 저6천원있어요: 내가 아까부터 그러케 찾앗는데!!
[길드] sky004: 역시 사랑 앞에 장사없구나
[길드] 오늘은일요일: ㅡㅡ
[길드] 오늘은일요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그래
[길드] 마하: 중요한일=일휘일비랑 둘이 만나기ㅋ
[길드] 여여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좋은날씨: 꺄악~~~
[길드] 불좀켜줄래: 아니 딱 말을 해달라구요
[길드] 불좀켜줄래: 일휘일비랑 진지하게 만나본다는거야 뭐야!
[길드] 영화별론가: 일휘일비랑 결혼하겠다는거야 뭐야!!
[길드] 좋은날씨: 미리 축하드려용~
[길드] 오늘은일요일: **
미친놈들…….
하여간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두통이 밀려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는 사이, 내가 있는 곳을 찾았는지 일휘일비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매번 직접 뛰어다니더니 드디어 펫을 샀나 보다.
[전체] 일휘일비: 오일님 ㅎㅇㅎㅇ~
이 자식은 왜 또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거지?
[전체] 오늘은일요일: 펫 샀음?
[전체] 일휘일비: 아 이거
[전체] 일휘일비: 퀘 깨니까 주던데요?
아, 그래? 초반 퀘스트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예전에 듣기는 했는데. 하긴, 맵이 워낙 넓으니 말 한두 마리 정도는 주는 편이 뉴비들한테도 좋을 거다.
그래도 마침 잘됐다. 나는 일부러 소환해 놓은 고양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야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 고양이 어때?
[전체] 일휘일비: ??
무려 흔적과 함께 찾아낸 이벤트 보상 고양이였다. 이 서버에서 유일하게 나만 갖고 있는 펫이었고. 그러니 일휘일비가 흔적이라면, 이 고양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내 질문에 일휘일비가 드물게 당황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전체] 일휘일비: 음
[전체] 일휘일비: 귀엽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런 감상 말고;
[전체] 오늘은일요일: 펫 이름을 좀 봐
[전체] 일휘일비: ???
[전체] 일휘일비: 생긴거랑 다르게 이름은 좀 험악하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아니;
나는 시선을 내려 캐릭터 앞에서 열심히 애교를 부리고 있는 ‘내인생의걸림돌’을 바라봤다.
이름이 험악하다니? 줄여서 ‘돌이’라고 부르면 나름 어울리고 괜찮은데. 아무튼 지금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체] 오늘은일요일: 나한테 할말없냐?
[전체] 오늘은일요일: 진짜 마지막 기회다
[전체] 일휘일비: ㄷㄷ
경고를 담아서 재차 묻자 일휘일비가 난감한 기색으로 나와 돌이 주변을 몇 번이고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 숨겨 둔 줄 알고 찾는 모양이다.
뭔가를 숨겨 뒀을 리가 있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일휘일비는 한참 고민하더니 다시 채팅을 쳤다.
[전체] 일휘일비: 혹시 오일님
[전체] 일휘일비: 저한테 바라는거 있어요?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래
이제야 눈치를 챘네. 그래도 아예 멍청한 놈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일휘일비에게 흔적에 대한 말을 꺼내려던 그때였다.
[전체] 일휘일비: 아ㅎㅎㅎㅎㅎ
[전체] 일휘일비: 오일님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여?
[전체] 일휘일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오늘은일요일: ?
[전체] 오늘은일요일: 뭐?
[전체] 일휘일비: 펫 새로 얻어서 저한테 자랑하려고 여기 부른거죠?
[전체] 일휘일비: 진작 설명을 하시지ㅎㅅㅎ
[전체] 일휘일비: 고양이 이뻐요>.<~
“…….”
모니터를 바라보던 내 두 눈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내가 조용히 무기를 장착하자 화들짝 놀란 일휘일비가 다급하게 채팅을 쳤다.
[전체] 일휘일비: 잠깐잠간만요
[전체] 일휘일비: 이것도 아니면 저도 진짜 모르겠거든요
[전체] 일휘일비: 장난친거 아니라구요ㅠ
[전체] 오늘은일요일: 그딴 ㅈ같은 오해를 한거부터가 빡치는데
[전체] 일휘일비: 구석에 숨어서 펫만 꺼내놓고 있는데
[전체] 일휘일비: 저라고 뭐 어떻게 아나요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 고양이를 정말 모른다고?
[전체] 오늘은일요일: 이걸 보고도 나한테 할말이 없다고???
[전체] 일휘일비: 그러니까 대체 뭐요...
내가 계속 따지기만 하자 일휘일비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처음으로 말투가 까칠해졌다.